
2002년, 척박했던 베트남 땅에 ‘씬짜오베트남’ 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터를 잡던 순간이 선합니다. 교민이 고작 3천 여명 정도였다고 생각되는데, 인터넷이 대중화되지 않은 시기에 격주로 발간되는 ‘씬짜오베트남’ 이라는 종이잡지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지요. 이국 땅에서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는 유일한 정보원이자, 교민 사회의 실상을 비추는 거울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씬짜오베트남’ 한 권을 얻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했고, 그 속에서 이웃의 소식과 생활의 지혜를 찾으며 외로움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23년간, ‘씬짜오베트남’은 호찌민 한인사회라는 물리적 영토를 샅샅이 살피고 연결하는 가장 신뢰받는 메신저로 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세상의 모든 정보가 작은 핸드폰 안에 들어오자, 이제 그 종이잡지라는 아날로그 매체의 효용가치가 약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씬짜오베트남’은 지난해부터 아날로그 영토를 벗어나 새로운 디지털 세상으로 망명을 시도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더욱 충실한 매체로 거듭나기 위함입니다.
이주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종이 위에 물리적 디자인으로 펼쳐지던 콘텐츠를 코드와 서버, 웹과 앱이라는 가상의 언어로 치환하는 과정은 지난 수십 년간 익숙했던 사고의 근간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습니다.
매일같이 낯선 기술적 난제들과 마주하며 ‘망명자’가 겪어야 할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단한 초기 과정을 겪고 나면 놀라운 세상이 펼쳐집니다.
무엇보다 디지털 세상이 주는 진정한 자유를 깨닫습니다.
아날로그 세상은 지역적 물리적 제약에 갇힌 세상이지만, 디지털 세상은 그 한계를 지워버립니다. 이런 날개를 단 ‘씬짜오베트남’ 은 호찌민, 하노이, 다낭, 냐짱을 포함한 모든 베트남 전역은 물론이고 전세계 어디서든 베트남이라는 관심사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휴대폰에서 동시에 출현합니다.
공유하는 정보가 넓어질 수록 우리의 인연은 깊어 갑니다. 인지하든 아니든 ‘씬짜오베트남’의 독자들은 ‘씬짜오베트남’이 제공하는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느낌을 공감하는 이름모를 독자들로 인연의 지평을 넓혀갑니다.
디지털 세상은 진짜 다르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2022년 말 발표된 LLM(인공지능)이라는 기술로 불과 두 달 만에 1억 명의 사용자를 확보한 Chat GPT입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라면 아무리 뛰어난 상품이라도 전 세계 1억 명에게 존재를 알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디지털은 그 불가능한 일을 쉽게 해냅니다. 디지털 세상에는 시장의 한계가 사라지고, 지구상의 모든 이가 잠재적 고객이 되는 곳입니다.
하지만 세상 이치에는 늘 음양(陰陽)이 존재합니다.
한계 없이 넓은 시장은 곧, 국경 없는 전쟁터, 제한 없는 경쟁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의 경쟁자는 이웃 잡지사가 아닙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와 전문성을 갖춘 글로벌 프로페셔널들이 날카로운 칼을 들고 이 자유의 영토에 가득 차 있습니다.
데이터와 효율, 그리고 냉정한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이 디지털 바다에서 새로운 망명자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비록 낯선 코드와 서버의 숲을 헤매는 망명자의 처지이지만, 우리에겐 저들이 갖지 못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23년 전 3천 명의 교민과 함께 나누었던 땀방울, 그리고 베트남의 습한 공기 속에서 길어 올린 ‘아날로그적 진심’입니다.
세상이 온통 0과 1의 디지털 코드로 치환될수록, 사람들은 그 너머에 있는 ‘온기 있는 서사’를 갈구합니다. 아무리 Chat GPT가 1억 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시대라지만, 그 인공지능이 23년 전 호찌민 거리의 습한 공기속에 3천 명 교민들이 나누었던 우리 이웃들의 삶의 애완을 알 리 없습니다.
눈만 뜨면 새로운 기술 패권이 세상을 흔들어 놓아도 결국 미디어가 도달해야 할 종착역은 ‘사람의 마음’입니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영토는 결코 아날로그의 가치를 폐기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날로그가 품고 있던 ‘진심’이라는 보석을, 디지털이라는 도구에 실어 더 멀리, 더 넓게 퍼뜨리는 기회의 땅입니다.
디지털의 바다에서도 ‘씬짜오베트남’은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여전히 당신의 정겨운 이웃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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