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Report – 1950년 이후 최강 엘니뇨가 동남아에 던진 두 얼굴

베트남은11월부터 시작…말라붙는 인도네시아, 물에 잠긴 방콕

9월 26일 오전 10시 16분, 방콕 전역에 재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48시간 동안 300mm 가까운 비가 쏟아진 뒤였다. 주요 도로 37곳이 물에 잠겼고 시민들은 허리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며 걸었다. 50개 구 전체가 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15년 만의 최악이었다.
같은 시각,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반뚤에서는 131일째 비가 오지 않고 있었다.
두 장면은 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원인에서 나왔다. 지금 태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1950년 이후 가장 강한 엘니뇨

미국 해양대기청(NOAA) 기후예측센터가 9월 10일 내놓은 진단은 수치가 명확하다. 동태평양 적도 해역 해수면 온도 편차가 섭씨 3.0도를 넘어섰고, 남미 연안에 가까운 니뇨-1+2 지수는 평년보다 3.4도 높았다. 2026~27년 북반구 가을과 겨울에 ‘매우 강한’ 수준에 도달할 확률이 90%를 넘는다.
더 주목할 것은 10~12월 전망이다. NOAA는 이 기간에 1950년 이래 기록된 모든 엘니뇨를 뛰어넘는 역대급 사건이 될 확률을 75%로 제시했다.


‘슈퍼 엘니뇨’는 NOAA 공식 용어가 아니다. 기관의 최고 등급은 섭씨 2도부터 시작하는 ‘매우 강함’이다. 이번 사건이 그 선을 크게 넘어서면서 언론과 예보관들이 ‘슈퍼’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다만 NOAA는 단서를 달았다. 이 규모의 사건이라도 엘니뇨식 영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커질 뿐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엘니뇨는 올해 초만 해도 없었다. 2026년 2월까지 적도 태평양 대부분에서는 오히려 평년보다 낮은 해수면 온도가 나타났다. 2월 초 극동태평양에서 고온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왜 태평양이 더워지면 동남아가 마르나

엘니뇨는 남미 앞바다 얘기인데 왜 인도네시아 논이 갈라지나. 답은 태평양 위를 도는 거대한 공기 컨베이어벨트에 있다.
평상시 적도 태평양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무역풍이 분다. 이 바람이 따뜻한 표층수를 서쪽으로 계속 밀어 인도네시아 부근에 쌓아 올린다. 그 효과는 눈에 보일 정도다. 평년이면 인도네시아 쪽 해수면이 페루 앞바다보다 40~50cm 높다.
따뜻한 바다 위에서는 공기가 데워져 올라간다. 인도네시아 일대에 저기압이 형성되고, 올라간 공기가 식으면서 수증기가 응결해 두꺼운 적란운과 폭우가 만들어진다. 동남아가 세계에서 비가 가장 많은 지역에 속하는 이유다.
비를 쏟고 건조해진 공기는 상공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페루 앞바다 쪽에서 식어 가라앉는다. 가라앉은 공기는 다시 지표를 따라 서쪽으로 흘러 무역풍이 된다. 이 한 바퀴가 **워커 순환(Walker Circulation)**이다. 20세기 초 적도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기압의 시소 운동을 발견한 영국 기상학자 길버트 워커의 이름을 땄다.
핵심은 하나다. 올라가는 쪽에는 비가 오고, 내려가는 쪽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평상시 올라가는 쪽은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내려가는 쪽은 동태평양이다.
엘니뇨가 오면 이 벨트가 느슨해진다.
중동부 태평양이 데워지면 그곳에 저기압이 생긴다. 저기압이 바다 한가운데로 옮겨오면서 무역풍이 약해진다. 바람이 약해지니 서쪽에 쌓여 있던 따뜻한 물이 동쪽으로 되돌아 흐르고, 그러면 중동부 태평양이 더 따뜻해져 무역풍이 더 약해진다. 한번 시작되면 스스로 증폭되는 구조다.

▲ 워커 순환 모식도 – 평상시와 엘니뇨 때 비교

문제는 공기가 올라가는 자리가 따라 움직인다는 데 있다. 서태평양에 있던 상승 기류가 동쪽으로 끌려가면서,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상공에서는 올라가던 공기가 거꾸로 내려앉는다. 가라앉는 공기는 구름을 만들지 못한다. 비구름이 형성되는 과정 자체가 억제된다.
그래서 엘니뇨가 오면 중태평양 한가운데에는 비가 늘고 인도네시아 쪽에는 비가 줄어든다. 가뭄의 원인은 비구름이 다른 데로 갔다기보다 비구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쪽에 가깝다.
올해 NOAA 관측이 이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9월 10일 진단에 따르면 적도 태평양 서쪽에서 중동부에 걸쳐 하층에는 평년과 반대인 서풍 편차가, 상층에는 동풍 편차가 나타났다. 무역풍이 약해진 정도를 넘어 방향이 뒤집힌 구간이 생겼다는 뜻이다. 대류와 강수는 중부 태평양 쪽에서 강화된 상태로 유지됐다. 바다와 대기가 함께 엘니뇨를 향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NOAA의 종합 판단이다.
NOAA가 올해 2월부터 감시 기준을 기존 ONI에서 RONI로 바꾼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고정된 30년 평균을 쓰는 ONI와 달리 RONI는 기준값이 매달 변한다. NOAA는 여러 해의 관측 끝에 RONI가 워커 순환의 변화와 더 밀접하게 연동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다 온도 자체보다 그 온도가 대기를 어떻게 흔드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인도네시아에는 변수가 하나 더 있다. 인도양 쌍극자(IOD)다. 양의 국면이면 아프리카 쪽 서인도양이 더워지고 인도네시아 쪽 동인도양이 차고 건조해진다. 올해는 엘니뇨와 양의 IOD가 겹쳤다. 태평양과 인도양 양쪽에서 동시에 건조 신호가 들어오고 있다.
다만 이 순환은 평균을 바꾸는 것이지 하루하루의 날씨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계절 전체로 건조해도 국지적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온다. 방콕이 그 사례다.

인도네시아 -25개 주에서 두 달 넘게 비가 없다

동남아에서 엘니뇨는 건조로 작동한다. 인도네시아가 가장 먼저, 가장 직설적으로 그 영향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기상기후지구물리청(BMKG)이 9월 22일 발표한 내용이 현 상황을 요약한다. 8월 말 니뇨3.4 해역 해수면온도 편차는 +2.83, 7~9월 ENSO 지수는 +2.63으로 ‘매우 강한 엘니뇨’를 가리켰다.
떼우꾸 파이살 파타니 BMKG 청장은 엘니뇨와 IOD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인도네시아 대부분 지역의 가뭄이 악화되고 길어져 우기가 늦게 오고 더 짧아진다고 밝혔다.
숫자가 상황을 말해준다. 현재 556개 계절구역, 국토 면적의 61.91%가 건기 상태다. 25개 주에서 무강수일이 60일을 넘었고 가장 긴 반뚤은 131일을 기록했다. 7월 중순 기준으로 이미 국토의 92.93%가 낮은 강수량 범주에 들어 있었다.
2026-2027 우기 시작은 529개 계절구역, 전 국토의 61.08%에서 평년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대부분 지역은 11월과 12월에야 비를 보게 된다.


산불은 이미 시작됐다. 7월 29일 위성영상 기준 수마트라, 칼리만탄, 자바, 누사뜽가라, 술라웨시, 말루쿠, 파푸아에 걸쳐 중간 신뢰도 핫스팟 1,729곳이 관측됐다. 7월 24~27일 중부자바에서 가뭄 피해가 보고됐고 중부자바, 동부자바, 중부칼리만탄, 동부칼리만탄, 남술라웨시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8월 초에는 서누사뜽가라 7개 시·군이 기상학적 가뭄 ‘경계’ 단계로 지정됐다.
정부 대응은 두 축이다. 산불 대비와, 기상조절기술을 활용한 전략 저수지 수량 확보다. BMKG는 가스와 석탄, 태양광, 풍력을 아우르는 에너지원 다변화도 권고했다.
BMKG는 가뭄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경고도 함께 냈다. 9~10월 가뭄과 산불을 경계하는 동시에, 우기 초입과 최성기의 홍수·산사태에 대비해 배수 체계를 정비하고 대피 준비를 갖추라는 것이다.

태국 – 비가 적은 해에 터진 홍수

인도네시아가 말라가는 동안 방콕은 물에 잠겼다.
태국 재난방지완화국 집계에 따르면 9월 29일 기준 29개 주와 방콕에서 167개 군, 890개 면, 5,077개 마을, 94만 300가구, 260만 2,309명이 피해를 봤다. 사망자는 22명으로 집계됐다가 같은 날 23명으로 늘었다. 피해액은 최소 110억 밧(약 3억 2,700만 달러)이다. 9월 16일 이후로 범위를 넓히면 42개 주와 방콕이 침수를 겪었다.
방콕 안에서도 피해는 고르지 않았다. 가장 심한 곳은 랏끄라방으로 피해자가 4만 명에 이른다. 방깝과 칸나야오, 락씨, 사판숭도 높은 수위가 이어졌다. 반면 수쿰빗이나 실롬-사톤 같은 중심 상업지구는 지대가 높고 배수가 나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내각은 9월 28일과 29일을 방콕과 논타부리, 빠툼타니, 사뭇쁘라깐의 공공부문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수완나품 공항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뭇쁘라깐에 위치해 지상 근무자들의 출퇴근이 막히면서 운항에 차질이 생겼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올해 태국은 비가 적은 해다.
태국 일간 타이랏이 2011년 대홍수와 비교한 분석을 실었다. 2011년에는 상반기에 라니냐가 발생해 3~4월부터 강수량이 평년을 웃돌았고, 열대저기압 5개가 태국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반면 2026년은 엘니뇨 국면이어서 강수량이 평년을 밑돌고, 올해 태국에 직접 영향을 준 열대저기압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도시가 마비됐다.
기상학자 톤의 설명은 이렇다. 지점당 100~200mm씩 쌓이는 국지성 집중호우는 우기, 특히 비가 가장 많은 9~10월에 전형적으로 돌발홍수나 침수를 일으키며 이는 슈퍼 엘니뇨 해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슈퍼 엘니뇨 해임에도 지구온난화가 국지성 강우를 강화해 심각한 홍수 위험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절 전체로는 건조해도, 하루 이틀 쏟아지는 비 한 번이면 도시가 멈춘다는 뜻이다.
참고로 지난해 11월 태국 남부에서는 사망자 145명 이상이 나온 수십 년 만의 최악의 홍수가 있었다. 그때는 라니냐 국면이었다. 엘니뇨든 라니냐든 물난리는 난다.

베트남 – 11월부터 시작될 엘니뇨의 영향

베트남에 엘니뇨가 남길 것은 홍수가 아니라 가뭄이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았다.
베트남 기상수문국의 분석은 명확하다. 엘니뇨는 통상 베트남에서 평년을 웃도는 기온, 폭염 증가, 계절 강수 부족, 유량 감소, 가뭄과 물 부족, 염수 침투를 불러온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지역은 남중부 연안과 중부 고원, 메콩델타다. 이어 타인호아-후에 구간과 북부 삼각주, 서북부에서 국지적 물 부족과 장기 폭염 가능성이 커진다.
일정표는 이미 나와 있다. 광범위한 가뭄과 염수 침투 위험은 2026-2027 건기 초입인 11월경부터 시작해 2027년 5월까지 메콩델타와 남중부 고원, 동남부 지역에서 이어진다. 메콩델타의 염수 침투 최성기는 2027년 1~4월로 예상된다.

▲ 염수 침투 피해를 입은 메콩델타 논

수치는 구체적이다. 하천 유량은 20~40% 줄어들 전망이다. 염수 침투는 2015-2016년 건기와 비슷한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메콩강 하구에서 염도 4g/l 경계선이 50~70km, 밤꼬강 하구에서는 110~130km까지 내륙으로 들어올 수 있다. 건기 최성기에는 14만~19만 헥타르가 가뭄과 물 부족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
엘니뇨 영향이 더 강할 경우 ‘물이 매우 적은 해’ 시나리오가 발생하며, 이때 염도 4g/l 경계선은 메콩강 58~78km, 밤꼬강 115~143km까지 침투한다.
정부는 이미 움직였다. 8월 18일 농업환경부가 중부와 동남부, 메콩델타 지역 성·시 인민위원회에 공문을 보내 2026-2027 건기 대응책을 조기 시행하라고 요청했다. 핵심은 ‘위험 매우 높음’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대응 방안을 수립하라는 것이다. 당국은 염수 침투가 일찍 올 경우에 대비해 2026-2027 동춘작 벼 파종 시기를 앞당기도록 하고 있다. 이미 남중부와 중부고원 지역 3,800헥타르 이상의 논이 작기를 미뤘다.
2027년 전망은 더 무겁다. 연초부터 전국적으로 폭염이 이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여름에는 폭염 강도가 세고 일수도 평년과 2026년보다 많아 역대 최고 기온 경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갈래 갈림길

베트남 기상수문국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현재 예보는 엘니뇨가 2027년 초부터 약해지는 흐름이다. 이 경우 영향은 2026-2027 건기에 집중된다. 반면 2027년 중반까지 이어진다면 장기 폭염과 우기 지연, 수자원 감소로 3~6월 피해가 더 커진다.
반대로 빠르게 라니냐로 전환되면 감시 초점이 달라진다. 가뭄과 염수 침투에서 2027년 하반기의 폭우와 태풍, 홍수로 옮겨간다.
어느 쪽이든 2015-2016년이 비교 기준이다. 당시 엘니뇨가 베트남에 남긴 것은 장기 폭염과 강수 부족, 가뭄, 염수 침투였고 태풍 수는 평년보다 줄었다.

교민이 알아야할 두가지

이번 사태에서 교민이 읽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다가올 건기다. 호찌민은 동남부 지역에 포함돼 대응 대상이다. 11월부터 건기가 시작되고 2027년 1~4월이 최성기다. 메콩델타에 농수산 관련 사업을 하는 교민이라면 작기 조정과 용수 확보가 당장의 과제다. 식자재 가격과 수돗물 수급도 함께 봐야 한다.
다른 하나는 방콕이 보여준 장면이다. 호찌민 역시 저지대 도시이고 11월까지는 우기다. 방콕에서 중심 상업지구는 버티고 저지대 주거지역이 잠겼다는 사실은 그대로 읽힐 만하다. 계절 전체가 건조하다는 예보가 하루치 폭우를 막아주지는 않는다.
엘니뇨는 평균을 바꾼다. 하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은 평균이 아니라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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