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4달러 잡일 소년, 구글·애플 거래하는 ‘1조원 건설사’ 일구다

시급 4달러 잡일 소년, 구글·애플 거래하는 '1조원 건설사' 일구다

씬짜오베트남 편집부 번역·정리
출처: VnExpress
날짜: 2026. 10. 6.

어린 시절 공사장에서 시작한 잡일이, 훗날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을 고객으로 둔 사업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

토드 위버(55)가 열두 살 무렵, 그는 홀로 자신을 키우던 어머니가 병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일자리를 구하러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집 근처 공사장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위버가 처음 마주친 사람이 건설사 클레이코(Clayco)의 창업자 밥 클라크였다.

정식으로 일하기에는 너무 어렸지만, 클라크는 그에게 방과 후 잡초 뽑기와 쓰레기 줍기 같은 허드렛일을 시급 4달러에 맡겼다. 이 방과 후 아르바이트는 오래 이어지는 인연으로 발전했다. 훗날 억만장자가 되는 클라크는 위버를 보살피며 여러 건설 분야를 소개하고 그가 업계에 들어서도록 도왔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위버는 직원 585명을 둔 건설 관련 5개사 그룹 DGN엔터프라이즈를 이끌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해 이 그룹의 매출은 지난해의 약 4억 달러에서 두 배 넘게 늘어 1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성장의 상당 부분이 기술 호황을 뒷받침하는 인프라에서 나오고 있다.

그룹의 주력 건설사인 TW컨스트럭터스는 현재 구글 캠퍼스 6곳의 데이터센터를 관리·개선하고 있다. 위버의 회사들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관련한 일감은 물론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일도 따냈다.

◇ 문을 두드린 소년 = 위버는 미주리주 헤이즐우드에서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병을 앓았고 형편은 빠듯했다. 미국 신문 세인트루이스 아메리칸이 2007년 전한 바에 따르면, 한 친구가 동네로 이사 온 클레이코를 찾아가 주인에게 일을 달라고 해보라며 위버를 부추겼다.

클라크는 위버에게 왜 학교에 있지 않으냐고 묻고 가정 사정을 듣고는 방과 후 잡일을 시작하도록 허락했다. 같은 신문이 2009년 실은 또 다른 인물 소개 기사에는 위버 본인의 회고가 담겼다. 그는 “어머니의 생계를 돕고 싶어 절박했다”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처음 본 사람이 밥이었다”고 말했다.

클라크 부부는 위버가 10대 초반일 때부터 그를 키우다시피 했고, 위버는 많은 시간을 이 가족과 보냈다. 클라크는 그에게 여러 건설 직종을 소개하고 노조 조합원증을 얻도록 도왔다.

위버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이후 미주리대 세인트루이스에 진학해 1997년 마케팅 학위를 받고 졸업했다. 대학을 마친 뒤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사업 개발 일을 하다, 1999년 클레이코로 돌아와 하도급 업체를 관리하고 건설 사업의 소수자 참여 업무를 맡는 부현장소장으로 일했다.

이 경험은 그가 훗날 직접 풀고자 하는 문제를 접하는 계기가 됐다. 위버는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회사들이 없었다”며 “현장을 알거나 사무 업무를 알거나 둘 중 하나였고, 대부분의 소수자 기업은 한쪽만 갖췄다”고 말했다. 그는 “입찰을 하고 정해진 기간 안에 공사를 마치려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자기 회사를 세우다 = 2002년 위버는 경쟁력 있는 건설사를 세우는 동시에 소수자 하도급 업체와 근로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목표로 레거시빌딩그룹을 창업했다.

클라크는 15만 달러를 빌려주며 그의 출발을 도왔고, 위버는 이를 6개월 만에 갚았다. 사업은 빠르게 커져 창업 5년 만인 2007년 레거시의 연 매출은 36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초기 사업으로는 월드와이드테크놀로지의 사무실 개보수, 월그린 물류센터, 세인트루이스 도심의 식료품점 공사 등이 있었다. 레거시는 클레이코와 함께 1억 달러 규모의 이스트세인트루이스 카지노퀸 복합시설 같은 대형 개발 사업에도 참여했다.

위버는 점차 일반 건설을 넘어 사업을 넓혔다. 2006년에는 기계 설비 업체를 인수해 냉난방·환기·배관 역량을 갖춘 메커니컬솔루션스로 키웠다. 레거시는 2012년 TW컨스트럭터스로 발전했고, 현재 위버의 모그룹 DGN엔터프라이즈에는 전기 공사와 유리 시공, 소방 설비 등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 확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 끝날 뻔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건설 지출이 무너지면서 위버의 사업은 25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채무불이행 직전에 몰렸다. 위버는 클라크에게 추가로 손을 벌리는 대신 비용을 줄이고 사업 인맥을 통해 자금을 구했다.

그 인맥 중에는 기술 서비스 대기업 월드와이드테크놀로지의 창업자 데이비드 스튜어드가 있었다. 수년 전 클라크가 위버에게 소개해 준 인물이다. 스튜어드는 또 다른 멘토가 됐고, 월드와이드테크놀로지는 중요한 고객이 됐다. 위버의 회사는 이후 월드와이드테크놀로지의 본사 두 곳과 약 200만 제곱피트(약 18만6000㎡)의 물류센터·IT 실험실, 데이터센터 네 곳을 지었다.

중대한 전환점은 10여 년 전 구글이 위버의 회사에 작은 데이터센터 사업을 맡기면서 찾아왔다. 이 첫 일감은 훨씬 큰 관계로 성장했고, 오늘날 TW컨스트럭터스는 구글 캠퍼스 6곳의 데이터센터를 관리·개선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클라우드 서비스와 인터넷 플랫폼, 그리고 갈수록 인공지능(AI) 시스템을 떠받치는 컴퓨팅 장비로 가득 찬 거대 시설이다. 그 급격한 확장은 서버와 칩뿐 아니라 이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건물과 전기 설비, 냉각 장치 등 인프라 수요까지 낳았다.

위버에게 이 수요는 주요 성장 동력이 됐다. 그의 회사들은 2025년 매출을 약 4억 달러로 거의 두 배 늘렸고 올해는 10억 달러에 육박할 전망이다. 그룹은 인수를 통해서도 몸집을 키웠다. 2025년 말 TW컨스트럭터스는 직원 80명 이상의 세인트루이스 전기 업체 비전일렉트릭&시스템스를 인수해 전기 공사 역량을 내부로 들였다.

그 규모는 어린 시절 클레이코에서 하던 잡일과는 까마득히 멀지만, 처음 그에게 일을 준 사람과의 인연은 여전하다. 클라크와 위버는 지금도 함께 사업을 한다. 2024년 두 사람의 회사는 65만7000제곱피트 규모의 세인트루이스 사이트먼 암센터 공사를 함께 진행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사업을 훌쩍 넘어선다. 자산이 약 70억 달러로 추정되는 클라크는 포브스에 위버가 자기 가족의 “완전하고 동등한” 일원이며 세 친자녀와 함께 자신의 재산 일부를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라크는 2021년 개인 웹사이트 글에서 위버를 두고 “토드는 내 아들이기도 하며, 그가 일군 훌륭한 회사와 그가 지키는 가치가 더없이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이어 “그가 큰 영향을 남길 것을 늘 알고 있었고, 그의 노력과 끈기가 메커니컬솔루션스를 오늘의 모습으로 키우는 데 한결같이 힘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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