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미식의 상징으로 통하는 ‘레스토랑(Restaurant)’의 기원은 18세기 프랑스 파리의 작은 수프 집에서 시작됐다.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고품격 식사 문화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낸 이 혁신은 세계인의 외식 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0일 역사학계와 현지 매체 등에 따르면, 18세기 이전 파리의 외식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귀족들은 전담 요리사를 두고 진수성찬을 즐겼으나, 여행객이나 일반 시민들은 위생이 불량한 선술집에서 정해진 메뉴를 공동 식탁에 앉아 먹어야 했다. 메뉴 선택권이나 개인 공간은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변화의 물결은 1765년 마튀랭 로즈 드 샹투아조(Mathurin Roze de Chantoiseau)라는 사업가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작은 가게를 열고 뼈를 고아 만든 수프와 가금류 요리 등을 선보였다. 가게 앞에는 “위장이 아픈 자들이여, 내게 오라. 내가 당신을 회복(restaurer)시켜 주리라”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걸렸다. ‘레스토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회복시킨다’는 의미의 프랑스어 동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로즈 드 샹투아조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서비스들을 처음 도입했다. 긴 공용 식탁 대신 개별 탁자를 배치했고, 메뉴판에 가격을 공개했으며, 깨끗한 식탁보와 도자기를 사용했다. 철학자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 등 당대 지식인들은 이 새로운 식사 공간의 사생활 보호와 편의성에 찬사를 보냈다.
이후 1786년, 앙투안 보빌리에(Antoine Beauvilliers)가 ‘라 그랑드 타베른 드 론드르(La Grande Taverne de Londres)’를 열며 레스토랑은 한 단계 더 진화했다. 그는 귀족들의 호화로운 식사 경험을 대중에게 이식했다. 178종에 달하는 방대한 메뉴와 화려한 샹들리에, 전문 웨이터의 서비스는 식사를 하나의 사회적 의식으로 격상시켰다.
1789년 발생한 프랑스 혁명은 역설적으로 레스토랑 산업의 기폭제가 됐다. 몰락한 귀족 가문에서 일하던 수천 명의 일류 요리사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이들이 저마다 독립적인 식당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1789년 약 50개였던 파리의 레스토랑은 1804년 500개, 1834년에는 2,000개 이상으로 급증했다.
19세기 중반에는 노동자들을 위한 저렴한 고기 수프 집인 ‘부용(Bouillon)’ 모델이 등장하며 레스토랑 문화가 대중화되었고, 경쟁이 치열해진 파리를 떠난 요리사들이 뉴욕 등 해외로 진출하면서 프랑스식 레스토랑 모델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작은 수프 한 그릇에서 시작된 프랑스의 레스토랑은 단순한 허기 채우기를 넘어, 미식과 환대(Hospitality)가 결합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