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빕 구르망’ 사이공의 리얼 미식 가이드라인

’2026 미쉐린 가이드’가
증명하는 ‘가성비 식당’ 탐방기

지난 6월 4일 하노이에서 발표된 2026 미쉐린 가이드 베트남 편에서, 호찌민은 빕 구르망(Bib Gourmand) 24곳을 보유해 베트남 도시 중 가장 많은 이름을 올렸다. 별이 파인다이닝의 인증이라면, 빕 구르망은 ‘좋은 음식을 합리적 가격에’ 내는 노포와 골목 식당에 주어지는 인증이다. 한인이 실제로 걸어 들어가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진짜 사이공의 맛은, 바로 이 목록 안에 있다.

별 두 자릿수 시대,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빕 구르망

올해 베트남 미쉐린은 상징적 분기점을 지났다. 1스타 식당이 처음으로 두 자릿수인 11곳에 도달했고, 이는 1926년 첫 미쉐린 스타 수여 100주년과 겹쳐 더 큰 의미를 얻었다. 신규 1스타 중에는 하노이의 온빛(ONVIT)이 포함됐는데, 베트남 최초로 별을 받은 한국 컨템포러리 레스토랑이라는 점에서 한인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따뜻한 빛’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한식의 파인다이닝화가 국제 무대에서 공인받은 장면이다.

▲ 사진의 ONVIT은 베트남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레스토랑 으로는 처음으로 미쉐린스타를 받은 곳이다 

그러나 호찌민 생활자의 식탁에 더 가까운 것은 별이 아니라 빕이다. 전국 빕 구르망 72곳 가운데 3분의 1인 24곳이 호찌민에 몰려 있다. 미쉐린 평가원이 보기에 이 도시는 베트남에서 가장 맛있고, 동시에 가장 저렴한 한 끼가 가능한 곳이라는 의미다. 올해는 다섯 곳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반깐꾸어 바 바(Bánh Canh Cua Bà Ba), 반꾸온 떠이호 127(Bánh Cuốn Tây Hồ 127), 분지에우 옌(Bún Riêu Yến), 찌 머(Chị Mơ), 라 롤라(La Lola)다. 게살 반깐, 반꾸온, 분지에우 등 남부 가정식과 노점 음식이 대거 포함된 점이 눈에 띈다.
별점 식당이 아닌 이 친근한 목록에서, 기자가 실제로 다녀온 세 곳의 후기를 전한다.

▲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식당들

홍팟 타오디엔점 본점은 3군,
분점은 한인 동네에

후띠에우(Hủ Tiếu) 노포 홍팟(Hồng Phát)은 1975년 3군에서 시작해 40년 넘게 사이공 사람들의 입맛을 지켜온 집이다. 미쉐린 빕 구르망에 오른 것은 3군 본점이지만, 기자가 찾은 곳은 2022년 문을 연 2군 타오디엔(Thảo Điền)의 분점이다.
이 집의 간판 메뉴는 후띠에우 남방(Hủ Tiếu Nam Vang), 즉 프놈펜식 후띠에우다.
본점과 분점의 맛 차이를 단언하기는 어려웠지만, 타오디엔점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서빙하는 직원들이 영어를 그럭저럭 구사한다는 점이다. 외국인 주민이 많은 동네 특성에 맞춰, 처음 온 손님이 메뉴를 고르는 데 큰 불편이 없을 정도였다. 본점이 현지인의 추억이 깃든 골목 노포라면, 타오디엔점은 그 맛을 외국인 거주 지역으로 옮겨 온 가교 같은 인상이다.

▷ 홍팟(타오디엔점) │ 주소: 102A Xuân Thủy, Thảo Điền | 영업시간: 매일 07:00~22:00
▷ 미쉐린 공식 (본점·3군 보반떤 391번지 기준):
https://guide.michelin.com/us/en/ho-chi-minh/ho-chi-minh_2978179/restaurant/hong-phat-district-3

반꾸온 떠이호 127
미쉐린을 안 내건 65년 노포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올해 빕 구르망에 새로 이름을 올린 반꾸온 떠이호 127(Bánh Cuốn Tây Hồ 127)이다. 주소 그대로 딘띠엔호앙(Đinh Tiên Hoàng) 127번지, 떤딘(Tân Định) 지역에 있다. 흥미롭게도 그냥 지나치면 이 집이 빕 구르망 선정 식당인지 알아채기 어렵다.
올해 처음 받아서인지, 미쉐린에 선정됐다는 사실을 가게 어디에도 내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집의 내력은 깊다. 1961년 쩐티까(Trần Thị Cà) 여사가 판쩌우찐(Phan Châu Trinh)을 모신 사당 근처에서 가게를 연 것이 시작으로, 판쩌우찐의 호 ‘떠이호(Tây Hồ)’가 그대로 상호가 됐다. 1978년 지금의 딘띠엔호앙 거리로 자리를 옮겨 65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얇고 부드러운 반꾸온 안에 다진 돼지고기와 목이버섯을 넣고, 바삭한 튀긴 양파를 얹어 내는 전통 방식을 그대로 잇고 있다.

▷ 반꾸온 떠이호 127 │ 주소: 127 Đinh Tiên Hoàng, 떤딘, 1군
▷ 영업시간: 매일 06:00~21:00 (재료 소진 시 조기 마감)
▷ 미쉐린 공식: https://guide.michelin.com/us/en/ho-chi-minh/ho-chi-minh_2978179/restaurant/banh-cuon-tay-ho-127

퍼미엔 가 끼동
닭곰탕을 닮은 국물 한 그릇

세 번째는 3군의 퍼미엔 가 끼동(Phở Miến Gà Kỳ Đồng)이다. 끼동 거리 14번 골목 안쪽에 있으며, 1975년 ‘바못(Bà Một) 여사’의 길거리 후띠에우 수레에서 출발해 50년 가까이 이어온 닭 요리 전문점이다. 퍼미엔 가 끼동은 2023년 미쉐린 첫 베트남 진출 때부터 빕 구르망에 올라, 올해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기자가 주문한 것은 퍼가(Phở Gà), 즉 닭 쌀국수였다. 양도 넉넉했고 가격도 7만 5000동 정도여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국물이 일품이었다. 닭 뼈를 여러 시간 고아낸 육수가 마치 한국의 닭곰탕 국물 같은 깊고 진한 맛을 냈다. 화려한 공간도, 요란한 간판도 없지만 닭 한 마리에서 끌어낸 국물의 힘만으로 반세기를 버텨온 집이라는 점이 한 그릇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 퍼미엔 가 끼동 │ 주소: 14/5Bis Kỳ Đồng, 9방, 3군
▷ 영업시간: 매일 06:00~22:00 (자료에 따라 05:30 개점)
▷ 미쉐린 공식: https://guide.michelin.com/en/ho-chi-minh/ho-chi-minh_2978179/restaurant/pho-mien-ga-ky-%C4%91ong

별이 아닌 골목에서 찾은 진짜 사이공

세 곳을 돌아본 뒤 남은 인상은 분명하다. 빕 구르망은 비싼 코스 요리가 아니라, 7만 5000동짜리 닭 퍼 한 그릇과 65년을 이어온 반꾸온 한 접시에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댄다.
미쉐린이라는 권위를 가게에 내걸지조차 않는 노포의 담백함, 외국인 동네로 맛을 옮겨 온 분점의 영어 메뉴판, 닭곰탕을 닮아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국물까지 – 호찌민 빕 구르망 24곳이 그려내는 것은 화려한 미식 지도가 아니라 사이공 사람들이 매일 먹고 사는 일상의 지도다.
별을 따라가는거 보다 이런 골목을 한 곳씩 찾아 나서는 편이, 어쩌면 이 도시의 진짜 맛에 더 가까이 닿는 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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