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콘서트장에서 시작된 ‘비매너’ 논란이 온라인이라는 가상 공간을 타고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발단은 규정을 어긴 일부 한국 팬의 ‘대포 카메라(고성능 망원 렌즈)’였으나,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서로의 국격과 자존심을 향해 쏘아대는 ‘혐오의 대포’들이다.
현지 SNS에서는 한국인의 외모와 문화를 비하하는 게시물이 넘쳐나고, 이에 질세라 일부 한국 네티즌들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현장을 취재하며 피부로 느끼는 온도는 온라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현지에서 만난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K-팝을 사랑하고, 한국 드라마에 열광하며, 한국인 친구에게 따뜻한 미소를 건넨다.
우리는 지금 ‘일부의 일탈’을 ‘전체의 본심’으로 착각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온라인 알고리즘은 본래 갈등과 혐오를 먹고 자란다. 자극적인 댓글 하나가 수천 번 공유되며 마치 그것이 그 나라 전체의 여론인 양 둔갑한다.
소위 ‘국뽕’이나 ‘혐한’ 콘텐츠가 클릭 장사에 이용되는 구조 속에서, 일부 몰지각한 네티즌들의 배설에 가까운 비난을 현지 사회 전체의 정서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들의 비난이 아니라, 그 비난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상대국을 존중하지 않는 배타적인 태도”의 우월감 섞인 대응은 우리가 그토록 비판했던 서구권의 인종차별과 다를 바가 없다.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이라면, 그에 걸맞은 ‘문화적 품격’과 성숙한 소통 방식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 사태를 단순히 ‘온라인 해프닝’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SEAbling(Southeast Asia Sibling·동남아시아 형제자매)’이라는 해시태그의 등장이다. 이는 개별 국가의 불만이 온라인을 통해 ‘지역 정체성’으로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지금은 키보드 위에서의 전쟁일 뿐이지만, 이 정서적 연대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그것은 실제 시장에서의 ‘불매 운동’이라는 물리적 행동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과 올리브영 화장품이 거론되는 것은 섬뜩한 경고다. 소비자는 감정이 상하면 지갑을 닫는다. 그것이 시장의 냉혹한 진리다.
K-콘텐츠의 확산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일부의 일탈을 전체의 적으로 돌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맞불’이 아니라, 일부의 소음을 차분하게 걸러듣고 현지의 진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냉정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