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베트남의 남부 해방일과 노동절이 겹쳐 5일간의 강제 휴일이 주어졌지요. 휴일이 반가운 것도 있지만 뭔가 쫓기는 듯 살아가는 범부들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되곤 합니다. 이 길고 긴 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대책 없이 주어진 텅 빈 주머니를 받은 것처럼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은 5일간의 휴일이 어떻게 전개되고 마감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휴일을 보내면서 미국에서 열리는 여자 골프 대회를 시청했지요. 우리 한국의 태극 낭자 중에 유해란이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한국 여자치고는 아주 건강한 몸을 가졌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밝고 수줍은 얼굴을 지난 선수입니다. 2년전 미국으로 진출하여 이번에 두번째 시즌을 맞는데 이미 2승을 챙긴 선수입니다. 이번주 전, 그러니까 전주에는 아깝게 우승을 놓친 기억이 있는데, 이번주는 3라운드까지 선두를 내달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기대와 불안이 교차됩니다. 이번주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이번주도 전주와 같이 또 막판에 무너지면 어쩌지 하는 불안입니다. 그런데 이번주는 제대로 해냈습니다. 무려 5타차이로 우승 프로피를 당당하게 받습니다.
이제 이 선수의 게임은 안심하며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 드는 안심이라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 감정입니다. 잘 할 거야 라는 믿음은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당당한 기량에 대한 기억이 가져다주는 보상입니다. 미래의 믿음은 현재의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불안이 사라지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 평온한 마음을 우리는 안심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늘 불안이라는 감정과 싸우며 살아갑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데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불안입니다. 자신이 원치 않은 방향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죠.
어떻게 보면 비논리적입니다. 아니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 대하여 걱정을 하며 불안에 떠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이해되지도 않고 전혀 타당하지 않지만 실제 우리에게 가장 큰 정신장애를 주는 것이 바로 이 비논리적인 감정 즉 불안입니다.
그렇게 염려하고 걱정하던 일은 안 일어날 수도 있고, 일어나도 그때 대처하면 되지, 왜 미리부터 걱정을 하며 자신을 불안의 구덩이에 밀어 넣는지 참 어리석은 인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누가 이런 질타를 당당하게 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부처나 예수 같은 성인이 아닌 이상 불안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불안을 씻어내는 방안으로 우리는 긍정을 말합니다. 늘 무엇이든지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를 지닌다면 불안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긍정의 힘이라는 말이 있지요 우리 삶에 든든한 지원군이 될만한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가끔 대책 없는 긍정을 내세우는 사람을 만납니다. 무슨 일이든지 무조건 잘 풀린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인데. 이게 마땅한 대책이 없이 이루어지는 긍정의 사고라면 정말 문제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믿으니 안심하며 사는 지 몰라도 주변 사람은 더욱 불안에 휩싸입니다.
바둑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인데, 어떤 수를 두어야 이 난제가 풀리나 고민을 하다가 대책은 보이지 않고 시간은 촉박할 때, 우리는 “아따, 모르겠다” 하며 아무 곳에나 던지듯이 착수를 합니다. 이때 아따, 모르겠다 라는 푸념 식 용어는 두는 사람의 기량에 따라 달라집니다. 조훈현이나 이창호가 그런 소리를 하며 착수를 했다면 치밀한 수읽기를 마치고 결과를 내다본 것이지만, 5급짜리 하수가 이런 말을 했다면 진짜 대책 없는 긍정의 기대와 멸망의 불안을 함께 안고 둔 것이 대부분입니다. 결국 하수의 대책 없는 착수는 백이면 백 다 망합니다.
우리가 이런 불안에 휩싸여 세상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누가 미래를 알겠습니까? 시간 여행을 하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미래의 일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미래의 불확실성이 불안을 낳고 그런 불안이 개인에게는 정서적 불안정을 안겨주며 사회와 국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이런 미래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덜어낼 것인가가 우리의 또 다른 과제입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출현으로 증시가 바닥을 치고 달러 가치가 폭락하는 것은 트럼프의 예측 불능의 정책과 성격 때문입니다. 그 뿐인가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신 시대를 맞은 우리는 요즘 거의 다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어디까지 갈 것이고 어떻게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이유로든지 모르는 것, 무지가 불안을 부릅니다. 그렇다면 불안의 감정에서 해방되는 방안 역시 추출할 수 있습니다. 알면 됩니다, 배우면 됩니다. 그 앎을 통해 준비하면 됩니다. 그러면 미래가 보입니다. 상상이 될 것입니다.
유해란 선수의 경기가 불안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고 그 믿음은 유해란 선수가 엄청난 노력을 통해 실력을 키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불쑥 다가온 5일간의 연휴가 즐거워지려면 이미 5일간에 휴일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한 탓입니다. 이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며 사는 지혜입니다. 조훈현이 아따 모르겠다 푸념에도 불안하지 않은 것은 이미 다 수를 읽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안다는 것, 말로는 간단한데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실현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전히 미래는 보이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시 역으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미래란 아직 생성되지 않은 세상이니, 내가 주도적으로 생성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즉 내가 미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게 진짜 긍정적인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미래는 아직 백지 상태 아닌 가요? 그런데 그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누구인가요?
우리가 미래가 불안한 것은 이미 만들어진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미래의 모습을 미리 알지 못하기에 불안한 것이지요.
내일 나는 어떤 모습일까 를 상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나의 내일은 이렇게 만들어야지 하는 생각이 올바른 사고입니다.
내가 사는 인생인데 내 미래는 내가 만들어간다.
맞습니다. 그 생각이 우리를 불안에서 구해줄 것입니다.
내일의 나의 모습을 지금 열심히 상상하며 그리는 것, 이것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현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미래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만 할 수 있어도 우리의 삶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