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이끈 식품혁명… 보존기술의 진화가 인류 문명을 바꾸다
인류 문명사에서 ‘먹는 것’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었다. 특히 전쟁과 탐험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식량을 어떻게 보존하고 운반할 것인가는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고대 로마군의 건빵에서 나폴레옹의 병조림, 그리고 현대 우주비행사들의 동결건조식품에 이르기까지, 식품 보존기술의 발전은 곧 인류 문명의 진보였다.
21세기 한국인의 식탁에 오른 동결건조 과일과 인스턴트 커피, 전투식량과 우주식품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기술의 산물이다. 전쟁과 우주개발이라는 극한 상황이 요구한 기술적 혁신이 어떻게 현대인의 일상을 바꿨는지, 그 역사를 되짚어본다.

고대 전쟁, 보급로가 승패를 갈랐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급이다.” 군사 전략가들의 이 격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변함없는 진리다. 군인도 사람이기에 먹어야 싸울 수 있고, 보급로가 끊기면 아무리 정예부대라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
고대와 중세의 전투식량은 휴대성과 보존성을 최우선으로 했다. 육포와 염장고기, 견과류, 말린 과일, 그리고 건빵이 주를 이뤘다. 특히 건빵의 역사는 깊다. 고대 이집트 선원들과 로마군이 먹었던 건빵은 십자군 전쟁 시기에 ‘무슬림의 비스킷’이라 불리며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해군에서 사용된 ‘쉽비스킷’은 밀가루 반죽을 불에 여러 번 구워 수분을 완전히 제거한 것이었다. 보존성은 뛰어났지만 너무 딱딱해 ‘창과 칼이 없으면 쉽비스킷으로 싸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19세기 영국 해군 군율에는 ‘절대 식사시간 중에 건빵을 던지지 말 것’이라는 규칙이 있었고, 미군 군가에는 “식탁에서 떨어진 빵에 내 친구가 맞아죽었어요”라는 가사까지 등장했다.
몽골 제국군은 ‘보르츠’라는 육포를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가축을 잡아 말려 만든 육포를 물에 풀어 고깃국을 끓여 먹었다. 간편한 전투식량 덕분에 몽골군은 빠른 기동력을 유지하며 전 세계를 석권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도 이를 도입하려 했으나 향신료와 소금이 귀했던 탓에 누린내 때문에 실패로 끝났다.
동아시아에서도 독특한 전투식량이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는 인절미와 가래떡, 미숫가루, 북어 등이 사용됐다. 전투 직전 군량미로 인절미를 만들어 들고 다녔는데, 요즘의 부드러운 인절미가 아니라 물 없이는 먹기 힘들 정도로 딱딱하게 굳은 덩어리였다. 고구려 때는 삶은 콩을 짚 주머니에 넣어 말안장에 달고 다녔는데, 말의 체온과 짚의 발효균으로 전국장(청국장의 전신)이 만들어졌다.

나폴레옹의 병조림, 근대 전쟁을 바꾸다
근대적 전투식량의 혁명은 나폴레옹 시대에 시작됐다. 이집트 원정에서 보급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나폴레옹은 전투식량 개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1809년, 프랑스 정부는 대량의 음식을 값싸게 보존하는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 1만2천 프랑의 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열었다.
당시 제과업자였던 니콜라 아페르가 유리병에 조리한 음식물을 넣고 봉인하는 ‘병조림’을 개발해 우승했다. 병조림은 획기적이었지만 유리병이 쉽게 깨지고 무거웠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문제는 영국인 피터 듀란트가 1810년 주석 캔으로 통조림을 만들어 특허를 내면서 해결됐다.
통조림은 병조림보다 장기간 보관이 가능했고 견고했다. 프랑스군의 뛰어난 기동성과 원활한 보급은 각국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는 데 적잖은 기여를 했다. 다만 초창기 캔은 제작에 6시간이나 걸렸고 대량 생산이 어려워 나폴레옹 전쟁 때는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발전한 것은 19세기 중반 기계식 생산 시스템이 등장하면서부터다. 크림전쟁, 미국 남북전쟁, 보불전쟁 등 19세기의 대형 전쟁들이 통조림 수요를 늘렸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도시 노동계층에게 편리한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은 전통적 우호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에 군용식량 조사단을 파견했다. 이때 독일군의 ‘비스킷’에 주목해 ‘중소면포(重燒麵包)’, 즉 ‘두 번 구운 빵’을 만들었다. 밀가루에 찹쌀가루를 혼합해 구운 중소면포는 보존연한이 7년이나 되는 ‘괴물’이었다. 수분을 한계치까지 줄여 굳기와 맛이 형편없었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실질적 버팀목이 됐다. 이것이 발전해 현재의 ‘건빵’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 통조림의 전성기와 한계
제1차 세계대전은 통조림의 전성기였다. 수백만 명의 병력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고, 참호전의 불결한 환경에서도 썩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 입장에서는 가짓수도 적고 맛도 없는 데다 전쟁통이라 질까지 떨어진 물건이었다.
특히 매커너키사의 통조림 스튜가 악명 높았다. 제대로 데워 먹으면 괜찮았지만 참호 안에서 불을 피우면 적군 포병에게 좌표를 알려주는 꼴이라 차갑게 먹어야 했다. 차고 느끼한 기름덩어리가 된 국과 건더기를 먹는 것은 고역이었다. 참전자의 증언 중에는 이틀 동안 굶은 끝에 급히 전달된 통조림을 받고도 먹을 수 없어 버렸다는 대목까지 나온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각국은 전투식량이 단순히 영양 공급뿐만 아니라 맛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호전의 열악한 환경과 스트레스 속에서 맛없는 음식을 강요받은 장병들은 식욕이 떨어져 영양실조에 빠지거나 심하면 굶어 죽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후 각국은 메뉴를 다양화하고 향신료를 넣어 자극적인 맛을 내거나 사탕, 커피, 술 같은 기호품도 함께 지급하기 시작했다.

동결건조, 남미 고산지대에서 시작되다
현대 우주식품의 핵심 기술인 동결건조는 사실 오래된 기술이다. 현대적인 산업용 동결건조 기술이 개발되기 이전에도 건조하고 추운 날씨와 높은 일조량을 동시에 만족하는 일부 지역에서는 원시적인 동결건조법이 사용됐다.
남미 고산지대의 전통 동결건조 감자 ‘추뇨’가 대표적이다. 가을에 감자를 수확한 뒤 알이 작은 것들을 골라 널어두어 3일간 밤새 얼어붙었다가 낮 동안 마르기를 반복한 뒤 발로 밟아 남아있는 물을 짜서 만들었다. 잉카인들은 대략 13세기부터 이 방법으로 감자를 보존했으며, 고기도 비슷한 방법으로 말렸다. 한국의 황태나 과메기도 이러한 원시적 동결건조의 예다.
산업용 동결건조 기술은 1811년에 처음 개발됐다. 초기에는 복잡한 공정 때문에 광견병 치료제에 사용되는 물질의 변질을 막는 정도로만 그쳤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이 기술의 전환점이 됐다.

동결건조의 원리, 승화를 이용하다
동결건조는 용기의 온도를 급격하게 낮춰 건조시키고자 하는 재료를 얼린 다음, 용기 내부의 압력을 진공에 가깝게 하여 재료에 포함된 고체화된 용매를 바로 수증기로 승화시켜 건조하는 방법이다. 조직은 수축하지 않고 얼음결정이 생긴 자리에 공간이 생겨 가볍고 복원성이 좋은 제품이 된다.
동결건조는 동결, 승화, 건조라는 3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시료를 급속냉동한다. 온도를 낮추는 속도나 방법에 따라 건조된 시료의 미세구조를 조절할 수 있다. 다음으로 얼어붙은 시료의 압력을 낮춘다. 압력을 낮추면 승화점이 낮아지면서 시료 내의 동결된 용매가 승화하여 기체가 된다. 마지막으로 승화된 기체를 제거하면 수분기가 거의 없는 고체만 남는다.
이 기술은 상온이나 고온에서 반응성이 높아 열에 민감한 물질을 손상 없이 건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빠르고 완전한 재수화가 가능하며, 수분의 유입이 쉬운 점도 장점이다. 혈장이나 혈청과 같은 물질을 저온에서 건조시켜 분말로 만들면 장기간 보존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결건조의 실용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이후 엄청난 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대량의 수혈용 혈액과 페니실린을 비롯한 의약품들이 필요해졌다. 그러나 냉장 시설의 부족으로 혈액과 주사용 혈청이 쉽게 변질됐다. 이때 혈장은 동결건조했다가 복원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점이 밝혀졌다.
미군은 이 점에 주목해 대규모 동결건조 시설을 건설했다. 이 공장에서는 수혈용 혈장을 동결건조하고, 혈장을 혈청으로 재가공한 뒤 페니실린, 스트렙토마이신 같은 의약품도 만들어 동결건조한 뒤 전장으로 보냈다. 덕분에 많은 장병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동결건조법은 의약품뿐만 아니라 전투식량에도 사용됐다. 전쟁 기간 동안 혈액을 혈장화하여 군납하던 NRC(National Research Corporation)는 전투식량에 들어가는 오렌지 주스 분말을 생산하는 계약을 땄다. 이를 위해 Florida Foods Corporation이라는 자회사를 만들었고, 전쟁 후에도 사업을 유지하며 ‘미닛메이드’라는 주스 브랜드가 탄생했다.
전쟁 이후 동결건조 기술은 민간에서도 널리 쓰이게 됐다. 그 혜택을 가장 크게 본 분야는 인스턴트 커피 산업이었다. 동결건조는 열에 민감한 물질을 손상 없이 건조할 수 있어 커피의 풍미를 최대한 보존할 수 있었다.

우주개발, 식품기술의 새로운 도전
인류가 우주에 진출하면서 식품 기술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우주식품은 극한의 보존성과 휴대성을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전투식량과 비슷하지만, ‘무중력’ 내지 ‘저중력’ 같은 중력의 특이성 속에서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주식품은 중량을 줄여야 한다. 우주로 무언가를 보낼 때는 중량이 곧 비용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저궤도 우주 정거장까지 화물을 운송하려면 재사용 로켓을 사용해도 kg당 수천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우주식량은 수분을 최소화하고 부피 대비 취식량을 극대화해야 했다.
또한 장기 보존이 가능해야 하고, 음식 국물이나 가루가 날리면 밀폐된 우주선 내를 떠돌아 다니다가 기계의 틈에 들어가 고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해야 했다. 무중력에서 오래 거주하면 근육에서 질소가, 뼈에서 칼슘이 빠지기 때문에 고영양의 음식이어야 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우주식량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첫 우주비행 시 먹은 것으로, 익힌 고기가 담긴 160g 튜브 두 개와 초콜릿 소스가 담긴 튜브 한 개였다. 초기 우주식량은 짜먹는 튜브식으로 휴대의 편의성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간단한 유동식만 제조했으므로 미각의 즐거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실제 경험담에 따르면 ‘접착제나 치약을 짜서 먹는 것 같았다’고 한다. 보스토크 5호의 우주비행사 발레리 비콥스키는 이 끔찍한 우주식량을 먹으며 5일이나 버텼는데, 3일째 되던 날엔 ‘이런 끔찍한 음식을 먹느니 우주 밖으로 몸을 던지는 게 낫겠다’는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우주식량의 진화, 동결건조가 해법이 되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어느 정도 수분이 유지되는 상태에서도 우주로 가져갈 수 있는 우주식량이 개발됐다. 물을 넣어서 불린 다음 조리해서 먹을 수 있도록 가공하는 법이 개발되면서 가장 큰 문제였던 수분 문제가 해결됐고, 이후 식단의 맛 개선에 대한 노력이 쏟아졌다.
진공 포장법이 개발된 이후로는 적당히 건조한 채 진공포장을 하여 가져가서 섭취할 수 있게 됐다. 동결건조 기술은 우주식품에 이상적인 해법을 제공했다. 중량을 최소화하면서도 영양소와 맛을 보존할 수 있었고, 물만 부으면 원래 상태로 쉽게 복원할 수 있었다.
현대의 우주식량은 지구에서 먹는 것과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유인 우주탐사 초창기처럼 형체도 없이 갈은 상태로 튜브에 담기는 우주식은 보기 힘들다. 딱딱한 재료들이 흩어지는 단점도 본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하되 소스나 재료의 점성을 강화시켜 서로 붙어있게 하는 식으로 개선됐다.
국제 우주정거장에서는 도시락처럼 한 끼 식사를 식판째로 동결건조해서 조리기에 넣기만 하면 된다. 수프나 국, 아이스크림류의 음식도 무리 없이 우주식량화가 가능하며, 비교적 대기권과 비슷한 맛을 낼 수 있게 됐다.
각국은 자국의 고유 음식을 우주식으로 개발했다. 한국은 김치와 라면을 시작으로 불고기와 비빔밥, 미역국 등 총 14종의 한국 요리를 우주식으로 등록했다. 일본은 타코야키와 팥밥, 미소된장국을, 중국은 개고기를 특식으로 지급했다.
현대로 이어지는 기술, 일상 속 동결건조
전쟁과 우주개발을 위해 개발된 동결건조 기술은 현대인의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인스턴트 커피는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동결건조 기술 덕분에 커피의 향과 맛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장기 보관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라면의 건더기 스프에 있는 건조 채소, 건강간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동결건조 과일, 등산객 및 헬스장 이용객이 애용하는 단백질 파우더 등이 모두 이 기술의 산물이다. 의학 분야에서는 열에 의한 변형이 큰 재료를 온전히 건조시키는 데 사용되며, 생명공학에서는 시료를 분말 형태로 만들 때 널리 활용된다
국군의 전투식량도 동결건조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불로에서 나온 동결건조 비빔밥은 맛이 괜찮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9년에는 ‘중간 수분형 복원용 밥 및 이의 제조방법’이 등록됐다. 이 발명에 의해 만들어진 밥은 19~25%의 수분 함량을 유지하여 복원력이 우수하고, 미생물 성장이 억제되어 장기간 보관 및 유통이 가능하며, 복원 시 일반 밥과 같은 식감과 맛을 지니고 있어 전쟁 중에도 집에서 한 것 같은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게 한다.
추운 겨울 전장에서도 뜨끈뜨끈한 음식을 먹게 해주는 ‘스팀방지구조의 전투식량 발열팩'(특허 제10-1619434호)도 개발됐다. 발열제에 의해 찬물을 가열해 음식물을 데워 먹을 수 있으며, 증기 제거팩이 구비되어 다수의 군인들이 모여 식사를 할 때에도 증기에 의해 위치가 노출되는 것을 막고 화상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생존기술이 만든 미래
고대 로마군의 건빵에서 현대 우주정거장의 동결건조 비빔밥까지, 식품 보존기술의 발전은 인류가 극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쏟은 노력의 결정체다. 전쟁과 우주개발이라는 생존의 문제가 기술 혁신을 이끌었고, 그 기술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모든 이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나폴레옹이 1만2천 프랑의 상금을 걸고 찾았던 식품 보존 기술은 통조림을 낳았고, 2차 세계대전의 절박함은 동결건조 기술을 실용화했으며, 우주개발의 도전은 이 기술을 극한까지 발전시켰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인스턴트 커피 한 잔, 등산길에 간편하게 먹는 동결건조 식품 하나하나에는 이러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식품 보존기술의 발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기후변화와 식량 안보, 우주 탐사의 확대 등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화성 유인 탐사를 준비하는 지금, 동결건조 기술은 또 한 번 진화를 요구받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시작된 기술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 주목된다.
결국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영양 섭취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사기, 그리고 문명의 발전과 직결된 문제다. 전쟁터에서든 우주 공간에서든, 좋은 음식은 생존을 넘어 희망을 의미한다. 동결건조 기술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희망을 지키기 위한 인류의 끊임없는 도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