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아름다운 이별

며칠 전, 골프 동우회 친구가 한 편의 자작시를 올렸습니다.
짧은 시였지만 그 속에는 세월과 이별, 그리고 인생의 잔향이 고요히 스며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별 마지막 술잔을 비우며

그대를,
이제 보내려 한다
반세기의 사랑은 별빛처럼 흐르고
첫 순간 내가 그대에게 다가갔지만
그대가 나를 더 사랑한 것은
벗들이 아는 사실.
쓰디쓴 담배 한 모금 더하면
은은한 그대 향기 입안에 가득하고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사랑했다.
반짝이는 어둠이 내리면
어김없이 마주한 선술집.
헤어짐이 헤어짐이 아니었기에,
우린 추억을 나누고
인간사의 한계를 논하며
유토피아를 잔에 띄웠다.
그대를 보내는 일은 일생일대의 고통.
하지만 넘어야 할 에베레스트,
불면의 밤들.
사랑했기에 차마 나를 보내는 것이
진정 그대의 참 마음.
눈물 한 방울은 마지막 이별주.
또 다른 인연을 찾을 수 없다면
나는 고독을 즐기는 삶을 살아가리라.
어차피 남자는 외로운 방랑자이기에
아듀, 디오니소스!

이 시를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뭔가 슬픈 이별을 고하는 듯합니다. 한 번 더 읽어보면 그 슬픈 이별의 사연이 드러납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어쩔 수 없이 금주, 술과 이별해야만 할 중년남자의 서글픔이 배어납니다. 일반적인 한국 남성에게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늘 함께 감정을 나누던 술과의 이별은 그야말로 인생 최대의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을 수용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중년 남성의 고독이 묻어납니다.

또한 이 시를 읽으면 단순히 ‘이별’의 슬픔만이 아니라, 젊은 날의 추억과의 작별이 겹쳐지는 듯한 아련함이 전해집니다. 술과의 이별이 아니라, 삶의 한 페이지를 덮는 듯한 고요한 퇴장처럼 느껴집니다.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원치 않는 이별을 맞이합니다.
젊은 시절 즐기던 기호품을 몸이 거부하기 시작하고, 언제부터인가 술잔보다 미지근한 물 한 컵이 더 편해지는 순간이 찾아오지요. 이제는 “끊어야만 하는 것”이 늘어나며, 남은 삶의 맛이 옅어지는 듯한 쓸쓸함도 찾아옵니다.

이별은 그렇게 우리 삶을 채워갑니다.
어린 시절, 이사로 인해 친구와 헤어질 때부터 우리는 이별을 배웁니다. 학교가 바뀌고, 친구가 바뀌고, 연인이 떠나며, 시간은 늘 새로운 만남과 이별로 우리를 단련시킵니다.

젊은 날의 사랑이 무너질 때 느끼는 가슴 저림, 죽마고우의 병환 소식, 그리고 어느 날 부모님의 이름을 되새기며 눈물을 삼키는 밤을 보내면서 우리는 이별에 익숙해집니다.
베트남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또 다른 이별을 배웁니다. 이국의 하늘 아래서 가까웠던 인연이 멀어지고, 마음이 통하던 친구가 다른 길을 찾아 떠나갈 때마다 조용히 마음속 잔을 비워야 했습니다. 외국에 산다는 건, 만남보다 이별이 더 많은 삶을 감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소식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 침묵이 오래될수록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던 말이 진심이었다는 것을. 때로는 병실의 커튼 너머로 사라진 누군가를 보며, 이별은 이름만 바꾸며 우리의 생을 채워갑니다.
어쩌면 이별이란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증거입니다. 살아있기에 경험할 수 있는 이별입니다. 마지막 나와의 이별로 이별의 대장정이 마감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조금 더 다정해져야 합니다. 함께 있을 때 나눈 미소와 온기가 언젠가 찾아올 이별의 아픔을 덜어주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 술과 함께 웃고 울던 대화가 오늘의 우리를 위로하듯이, 지금 이 순간의 인연도 언젠가 아픈 이별을 위로할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야 합니다.

자, 마지막 술잔을 들고 한번 외쳐보세
그대가 있었기에 내 삶은 조금 더 뜨거웠고, 이별은 비로소 아름다웠다고. 그리고 오늘의 만남이 내일의 추억이 되기 전에, 잔을 들어 서로의 존재에 건배해보세.
안녕, 디오니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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