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行 연료할증료 3배 뛰어
호찌민 공항(SGN) 출발 항공권 가격이 심상치 않다. 중동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지 한 달, 국제유가는 사상 최대 월간 상승폭을 기록했고, 그 충격파가 베트남 거주 한인 사회의 ‘생활 동선’을 직격하고 있다. 방콕 주말여행부터 한국 귀국편까지, 4월 들어 항공권 가격 체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항공업계에 더 직접적인 지표인 항공유(Jet A-1) 가격은 원유보다 훨씬 가파른 곡선을 그렸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계에 따르면, 싱가포르 시장 기준 Jet A-1 가격은 3월 20일 주간 배럴당 197달러를 기록해 한 달 전 100달러 미만 수준에서 두 배로 뛰었다. 3월 24일에는 배럴당 234.34달러까지 치솟았다. 정제비용 상승과 전쟁위험보험료 증가, 역내 정유시설 가동률 저하가 겹치면서 항공유와 원유 간 가격 격차(크랙 스프레드)가 배럴당 39.6달러까지 벌어졌다.
한국行이 가장 아프다 연료할증료 214% 인상
베트남 거주 한인에게 가장 민감한 노선은 단연 호찌민-인천(SGN→ICN) 구간이다. 비엣젯항공은 4월 1일 발권분부터 한국-호찌민·푸꾸옥·냐짱·달랏·껀터 노선의 연료할증료를 편도 기준 50만동에서 157만동으로 인상했다. 인상률 214%. 한화로 환산하면 편도당 약 4만2000원, 왕복이면 약 8만4000원이 순수하게 연료비 명목으로 추가되는 셈이다. 하노이·다낭·하이퐁 출발 한국행 노선도 42만동에서 133만동으로 올랐다.
베트남항공 역시 2026년 들어 여섯 번째 연료할증료(YQ) 조정을 단행했다. 한국·홍콩 노선은 3월 25일부터, 여타 국제선은 3월 18일부터 새 요금이 적용됐다. 업계에서는 4월 총운임 기준 한국행 항공권이 3월 대비 12~20%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동남아 단거리 노선도 예외 없어
단거리 노선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비엣트래블항공은 방콕 노선 연료할증료를 편도 45만동에서 75만동으로 67% 올렸다. 총운임 기준 5~15% 인상 효과다.
싱가포르·쿠알라룸푸르행 역시 베트남항공과 말레이시아항공 등이 연료할증료를 조정하면서 편도 기준 50만동 안팎이던 할증료가 85만~90만동 수준으로 뛰었다. 홍콩행은 캐세이퍼시픽이 3월 18일부터 전 노선 연료할증료를 2배 이상 인상한 데 이어, 베트남 항공사들도 4월 초 추가 인상에 나선다. 타이베이행은 편도 약 50만동에서 140만동 수준으로 180% 가까이 올랐다.

노선별 연료할증료 변동 요약 (3월 vs 4월, 편도 기준)

※ 거리가 길수록 연료비 비중이 커지는 구조 탓에, 할증료 인상률은 비행거리에 비례해 가파르게 올라간다.

거리가 길수록 연료비 비중이 커지는 구조 탓에, 할증료 인상률은 비행거리에 비례해 가파르게 올라간다. 730km인 방콕행과 3,670km인 인천행의 할증료 인상률 차이가 세 배 이상 벌어지는 이유다.
구조적 배경 – 공급 위기가 가격 위기로
단순한 유가 상승이 아니라 공급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길목인데, 3월 2일부터 상업 선박 통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란은 위안화 기반 ‘통행료’ 시스템을 가동해 중국·러시아 등 우호국 선박만 선별 통과시키고 있다.
베트남 항공업계의 연료 공급 구조도 취약하다. 베트남 민간항공청(CAAV)에 따르면, 항공유 공급사인 스카이펙(Skypec)과 페트롤리멕스 에이비에이션은 물량의 약 80%를 중국·태국·싱가포르에서 수입하며, 국내 정유소(둥꿧·빈선)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현재 연료 공급 확약은 4월 중순까지만 유효한 상태다.
항공사 대응 – 감편·노선 정지·긴급경영
베트남항공은 4월 1일부터 국내선 7개 노선을 잠정 운휴하고, 2분기 월별 700~1,700편을 감축할 계획이다. 항공유가 배럴당 160~200달러 구간에 머물 경우 국제선 최대 18%, 국내선 최대 26%까지 감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엣젯항공은 3월 29일~4월 30일 기간 국내선을 27% 줄인다. 좌석 기준 28.6% 감소다. 밤부에어웨이즈도 하노이-호찌민-다낭 핵심 노선에 역량을 집중하고 나머지는 빈도를 낮춘다.
한편 한국 국적사인 대한항공도 4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다. 우기홍 부회장이 사내 공지를 통해 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 압박에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아 노선은 연료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장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운임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CAAV는 3월 20일 기준 글로벌 항공사 4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조사에서, 60% 이상이 3월 중순 이후 연료할증료를 인상했거나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에어프랑스·타이항공·유나이티드항공은 기본 운임에 5~20%를 직접 반영했고, 말레이시아항공·ANA·중국남방항공 등은 별도 할증료(YQ/YR)를 편당 약 13만동(5달러)에서 최대 1,000만동(약 400달러)까지 부과하고 있다.

유가 내려도 운임 하락엔 한 달 반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흐 비롤 사무총장은 이번 사태를 “역사상 가장 심각한 글로벌 에너지 안보 위기”로 규정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가스 공급 충격을 합친 것보다 심각하다는 진단이다. 블룸버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2분기까지 장기화할 경우 브렌트유 배럴당 150~200달러 시나리오를 제시했고, 골드만삭스는 3~4월 브렌트유 평균 전망치를 종전 98달러에서 11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차례 제시한 해협 재개방 최후통첩은 번번이 연장됐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주권을 협상 불가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업계에서는 4월 중순까지 해협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공급 차질이 본격적으로 악화된다고 경고한다. 베트남 항공유 공급사들의 물량 확보 역시 4월 중순까지만 유효한 상태다.
대한항공은 4월부터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베트남 정부는 항공유 환경보호세 인하(리터당 1,500동→1,000동), 수입관세 0% 유지, 착륙료 50% 감면 등 긴급 지원책을 가동 중이며, CAAV가 제안한 국내선 경제석 임시 연료할증제는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3개월 한시로 적용된다.
한인 사회가 체감하는 핵심 질문은 하나다. 운임이 언제 내려오느냐. 답은 낙관적이지 않다. 유가가 하락세로 전환되더라도 항공유 가격 반영에는 통상 4~6주의 시차가 발생한다. 지금 당장 휴전이 성사돼도 실제 항공권 가격이 내려오는 것은 이르면 6월이다. 5월 연휴(4·30 남부해방기념일·5·1 노동절)를 앞두고 수요까지 겹치면 좌석 확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한 곳의 봉쇄가 호찌민 한인타운의 귀국 항공편 가격까지 뒤흔드는 현실. 지정학 리스크가 생활 물가로 전이되는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