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낭족들이 귀띔하기 시작한 도시
베트남에 왠만한 곳을 갔다왔다고 자부하는 본 기자, 하지만 최근 여행유튜브를 보다가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작년 중순부터 한국인 배낭족과, 유튜버 여행자들 사이에서 나짱 북쪽에 위치한 뚜이호아가 인기를 끌기 시작한거다.
호찌민에서 북쪽으로 560킬로미터, 비행기를 타면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거리에 베트남 여행자들이 슬슬 귀띔하기 시작한 도시가 있다. 푸옌(Phu Yen)성의 성도(省都), 뚜이호아(Tuy Hoa)다. 냐짱(Nha Trang)에서 북쪽으로 120킬로미터, 꾸이년(Quy Nhon)에서 남쪽으로 110킬로미터 지점에 자리한 이 해안 도시는 동쪽으로 동해(East Sea)를 접하고 있어 30킬로미터가 넘는 길고 고운 해안선을 품고 있다.
다낭과 냐짱이 코로나 이후 관광객 수를 120~150% 회복한 사이, 푸옌성은 아직 6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수치만 보면 뒤처진 것 같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파라솔도, 줄 서는 레스토랑도, 호객 행위도 없다. 조용함은 그대로고, 바다는 여전히 맑다. 베트남 여행을 어지간히 다녀본 사람들이 “이제 뚜이호아 갈 때가 됐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슬란드가 베트남에 있다면 – 간 다 디아(Ganh Da Dia)
뚜이호아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간 다 디아(Ganh Da Dia)다. 뚜이호아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를 달리면 나타나는 이 해안 절벽은 육각형 현무암 기둥이 바다를 향해 가지런히 늘어선 장관으로 유명하다. 아이슬란드나 제주도의 주상절리와 구조가 흡사하지만, 입장료는 우리 돈으로 채 3,000원이 되지 않는다.
기둥 하나하나가 수천만 년의 화산 활동이 빚어낸 작품이다. 썰물 때 바위 위를 걷다 보면 파도 소리와 함께 현무암 특유의 검은 빛이 햇빛에 반짝이는 장면이 펼쳐진다. 관광객보다 현지 가족들이 더 많고,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바다 안개와 어우러진 신비로운 풍경을 덤으로 얻는다. 체력이 좋다면 절벽 위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어보자. 탁 트인 동해와 어촌 마을의 일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베트남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 무이 디엔(Mui Dien) 곶
간 다 디아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무이 디엔(Mui Dien) 곶이 나온다. 베트남 본토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알려진 이 최동단 지점은, 여행 안내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 숨은 명소다. 새벽 6시면 고요한 수평선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관광객보다 많다. 일출을 보러 갔다가 한참을 더 앉아 있게 되는 곳이다. 등대까지 올라가는 작은 오르막이 있지만 경사가 완만해 누구든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새파란 동해와 해안선은 뚜이호아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힌다.
바다 옆에 일상이 붙어 있는 도시 뚜이호아 해변 (Tuy Hoa Beach)과 주변 해변들
뚜이호아의 해변은 하나가 아니다. 독립로(Doc Lap Street)를 따라 펼쳐지는 뚜이호아 해변을 시작으로, 시내에서 북쪽으로 달리면 롱투이 해변(Long Thuy Beach), 동딱 해변(Dong Tac Beach)이 차례로 등장한다.
롱투이 해변은 안푸(An Phu) 읍에 위치하며 양쪽으로 울창한 녹음이 드리워진 세 가지 해변 중 가장 한적한 곳이다. 보트를 빌려 인근 해양 생태계를 탐방하거나, 현지 어민의 하루를 가까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이 채워진다. 동딱 해변은 새하얀 모래와 쪽빛 바다로 유명하며 해변 스포츠와 캠핑을 즐기는 현지 젊은이들이 주말마다 몰려드는 곳이다.
어디를 가도 파라솔 장사꾼은 없다. 아침엔 어민이 그물을 손질하고, 낮엔 동네 사람들이 산책을 한다. 억지로 무언가를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공간이다.
“뭘 안 해도 되는 곳”이라는 말이 이 해변들에는 아주 잘 어울린다.
시내에서 남쪽으로 30킬로미터를 달리면 붕 로(Vung Ro) 만이 나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천혜의 항구로, 맑은 날이면 수면이 거울처럼 잔잔하다. 인근 바이 몬(Bai Mon), 바이 곡(Bai Goc), 다이 란(Dai Lanh) 해변도 각기 다른 매력으로 여행자를 붙잡는다.
이색적인 사진을 원한다면 씀 로 이끼 해변(Xom Ro Moss Beach)을 빼놓을 수 없다. 평범한 방파제 돌담이 어느 때부턴가 초록 이끼로 뒤덮이며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햇빛과 바닷물을 머금은 이끼가 반짝이는 모습은 여느 해변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인근 어촌 마을의 소박한 일상과 어우러져 사진 속에 이야기가 담긴다.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도심 – 냔 탑(Nhan Tower)과 사원들
뚜이호아 시내로 돌아오면 문화유산이 기다린다. 1구(Ward 1)에 위치한 냔 탑(Nhan Tower)은 11세기 참족(Cham族)이 쌓은 이 지역 최대 규모의 참 양식 탑으로 높이가 23.5미터에 달한다. 탑은 세 단으로 나뉘는데, 각각 지상계·영계·신계를 상징한다. 정상에는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링가(Linga) 상이 놓여 있으며, 내부에는 푸옌의 수호 성모에게 헌정된 신단이 자리한다. 탑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벽돌 쌓기 방식과 정교한 부조를 살펴보면, 천 년 전 참족 장인들의 솜씨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짭 차이(Chop Chai) 산 자락에는 칸선 사원(Khanh Son Pagoda)이 있다. 1802년 창건된 이 사찰은 2만여 제곱미터에 달하는 넓은 경내에 금빛·갈색·붉은빛의 정교한 목각 장식을 갖춘 대웅전이 우뚝 서 있다. 2011년 성급 유적으로 지정된 뚜이호아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로, 사계절 울창한 수목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빈끼엔 (Binh Kien) 읍에 자리한 바오 람 사원 (Bao Lam Pagoda)은 민망 (Minh Mang) 왕 재위 시절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높이 18미터의 불상, 12미터짜리 종각, 무게 1.5톤의 대형 범종, 15미터 높이의 석가모니 좌불상 등이 경내에 들어서 있어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다. 꽃밭과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걷는 것 자체가 여행의 일부다.

5구(Ward 5)에 자리한 푸옌 박물관 (Phu Yen Museum)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3,350여 점의 유물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석제 악기, 참족 조각상, 응우옌(Nguyen) 왕조 옥새, 꽝득 (Quang Duc) 도자기 등 쉽게 볼 수 없는 유물들이 줄지어 있다. 화·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열며 입장료가 없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다.

중부에 내려앉은 럭셔리 웰니스 투이블루 뚜이호아 (TUI BLUE Tuy Hoa)
뚜이호아가 단순한 ‘조용한 해변 도시’를 넘어 본격적인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에는 투이블루 뚜이호아(TUI BLUE Tuy Hoa)의 등장이 있다. 짭 차이 산과 천 년 고탑 냔 탑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잠에서 깰 수 있는 이 리조트는 현대적 럭셔리와 베트남 전통미를 정교하게 결합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리조트의 가장 큰 자랑은 한국식 찜질방 ‘루미에르 짐질방 (Lumiere Jjimjilbang)’이다. 건식·습식, 온탕·냉탕을 아우르는 11개 사우나룸을 갖춘 이 공간은 베트남 중부에서는 보기 드문 시설이다. 뜨거운 돌 위에 누워 하루의 피로를 녹이고, 냉탕에서 몸을 식히는 전통 방식의 찜질 루틴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해변을 걷고 명소를 돌아본 뒤 찜질방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동선은 한국인 여행자에게 특히 익숙하고 편안하다.

웰니스 철학은 리조트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고요한 태극권 명상 정원에서 심신을 다스리고, 탁 트인 바다를 향해 요가 매트를 펼칠 수 있다. 사계절 이용 가능한 전용 수영장과 피클볼·테니스 코트에서는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레스토랑과 바에서는 현지에서 직접 조달한 식재료와 전통 조리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팜 투 테이블 (Farm-to-Table) 메뉴가 계절마다 바뀐다.
투이블루 뚜이호아만의 특별한 경험 프로그램인 ‘BLUE® Experiences’도 눈길을 끈다. 지역 장인·농부·공연자들과 협력해 베트남 요리 교실, 라이스페이퍼 만들기, 공예 체험 등을 리조트 안으로 끌어들였다. 전담 가이드인 ‘Blue® Guides’는 간 다 디아, 바이셉(Bai Sep), 망랑 교회(Mang Lang Church) 등 상징적인 명소로의 맞춤형 투어를 운영하며, 이 아름다운 해안 지역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현지의 시각으로 들려준다.
리조트의 건축과 인테리어에는 베트남 전통 모티프와 현지 소재가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푸옌의 문화유산을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설계다. 투이블루 뚜이호아는 결국 뚜이호아라는 도시 자체를 여행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가와 음식, 둘 다 놓칠 수 없다
뚜이호아의 물가는 다낭 대비 20~30% 저렴하다. 로컬 식당 한 끼가 2,000~4,000원, 커피 한 잔이 1,500~2,500원 수준이다. 해산물 저녁을 즐기더라도 1인당 7,000~10,000원이면 충분하다. 음식의 수준은 물가를 배반하지 않는다. 이 지역의 대표 먹거리는 참치(까 응으·Ca Ngu)다. 근해에서 갓 잡아 올린 참치를 베트남 전통 양념으로 조리한 참치 눈 요리와 참치 회무침은 뚜이호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진미로 꼽힌다. 르 두안(Le Duan) 거리 7구의 ‘바 떰(Ba Tam)’ 식당이 현지에서 입소문난 참치 전문점이다.

현지인들의 아침 메뉴인 반깐(Banh Can)도 빼놓기 아깝다. 작은 쌀 반죽 팬케이크에 계란과 해산물을 얹은 이 음식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해 먹다 보면 어느새 접시를 비우게 된다. 바인호이 롱 헤오(Banh Hoi Long Heo·돼지 내장 쌀국수)는 6구 흥브엉(Hung Vuong) 거리의 ‘옌(Yen)’ 식당이 원조로 통한다. 저녁엔 항구 근처 노포에서 2인 기준 15,000~20,000원이면 해산물 만찬을 즐길 수 있다. 메뉴판에 영어는 없지만 손가락으로 고르면 그만이다.
여기서 팁 하나. 쌀국수는 아침에 찾아야 한다. 저녁 장사를 하는 집보다 새벽부터 문을 여는 집이 진짜다. 국물이 맑고 비리지 않은 해산물 쌀국수 한 그릇이면 뚜이호아의 하루를 시작하기에 충분하다.

뚜이호아 가는 법
뚜이호아에는 시내 중심에서 남쪽으로 5킬로미터 거리에 뚜이호아 공항(Tuy Hoa Airport)이 있다. 호찌민과 하노이에서 베트남 항공(Vietnam Airlines)과 비엣젯 에어(Vietjet Air)가 매일 운항하며, 공항에서 시내까지 택시비는 6만 동 안팎이다. 기차를 이용한다면 뚜이호아역(Tuy Hoa Train Station)에서 하노이·호찌민을 잇는 남북선 열차를 탈 수 있어 창밖으로 베트남 중부의 해안선을 감상하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여행 최적기는 1월에서 8월 사이 건기다. 특히 1~6월은 기온이 온화하고 습도가 낮아 야외 관광에 적합하다. 음력 1월 7일의 다 랑(Da Rang) 강 용선 경기, 음력 3월 20~23일의 비아 바(Via Ba) 축제 기간에 방문하면 현지 전통문화를 가까이서 체험하는 특별한 기억을 만들 수 있다.
오염이 덜 됐을때 가자
베트남에서 오래 살았거나 여행을 자주했으면 알겠지만, 베트남은 관광객이 없는 조용한곳과, 관광객이 몰리는 지역의 편차가 심한편이다. 한때 조용했던 북부 싸파, 하장이 배낭족의 성지가 되면서 호텔들이 들어섰고 지금은 여행객들이 넘치는 관광지가 되어버린거 처럼, 뚜이호아도 언제 이렇게 될 지 모르는 지역 중 하나다. 뚜이호아는 아직 ‘여행자용 포장’이 덜 씌워진 도시다. 관광지로서의 편의보다 날것의 베트남 해안 도시가 주는 여유를 원한다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다.
천 년 된 탑, 아이슬란드를 닮은 현무암 해안, 소박한 어촌의 아침 풍경, 그리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찜질방까지. 뚜이호아는 여행자가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을 기다리는 도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