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이 호르무즈해협(Strait of Hormuz)을 사실상 유료 통행 관문으로 운영하면서 국제 해운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이란 언론은 26일 이란 의회가 호르무즈해협 통과 선박에 대한 통행료 징수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모하마드레자 레자에이 쿠치(Mohammadreza Rezaei Kouchi)의원은 “이 계획이 시행되면 이란은 호르무즈 통과 선박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통행료를 징수할 것”이라며 “이는 이 같은 해상 통로에 완전히 정상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해운 전문지 로이즈리스트(Lloyd’s List)에 따르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이미 사실상의 통행료 징수 체계를 운용하고 있다. 2월 28일 전쟁 발발 이전 하루 약 100척이 통과하던 호르무즈해협은 현재 하루 10척 미만으로 급감했으며, 수천 척의 선박이 공격 위험으로 대기 중이다.
실제 통과 절차는 복잡한 다단계 과정을 거친다. 선사는 먼저 IRGC와 연결 가능한 중개자를 통해 선박 서류, 국제해사기구(IMO) 식별번호, 화물 종류, 전체 선원 명단, 최종 목적지 등을 제출해야 한다. IRGC 해군사령부의 심사를 통과하면 승인 코드와 지정 항로를 안내받는다. 선박이 해협에 진입하면 IRGC가 무선으로 승인 코드를 요구하고, 확인 후 호위 선박이 이란 영해를 따라 라라크(Larak) 섬 부근까지 에스코트한다.
로이즈리스트의 해상 리스크 분석가 토메르 라아난(Tomer Raanan)은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선박들은 이란 영해 내 좁은 항로를 지나야 하며, IRGC는 선박 정보를 확인하고 사실상 통행료 징수소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NBC뉴스에 말했다.
로이즈리스트는 통행료가 최소 200만 달러(USD)에 달한다고 앞서 보도했다. 이란 국가안보위원회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 위원도 TV에서 이 금액을 언급한 바 있다. 알려진 바로는 최소 2척이 중국 위안화(CNY)로 통행료를 납부했으며, 한 건은 중국 해운 서비스 기업이 중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란은 24일 IMO 176개 회원국에 보낸 통보에서 테헤란(Tehran)과 협력하고 안보 규정을 준수하는 ‘비적대적’ 선박은 해협 통과를 허용한다고 밝혔다. 미국·이스라엘과 연계된 선박이나 분쟁 당사자 선박은 통항이 금지된다. 이란이 공식 지정한 우호국은 인도(India), 파키스탄(Pakistan), 이라크(Iraq), 중국(China), 러시아(Russia) 5개국이다.
한편 26일 이란 IRGC 해군사령관 알리레자 탄사리(Alireza Tangsiri)는 허가증 없이 해협을 통과하려던 컨테이너선 셀렌(Selen)호를 강제 회항시켰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같은 날 밤 이란 항구도시 반다르아바스(Bandar Abbas) 인근 공습으로 탄사리 사령관과 IRGC 해군 고위 장교들을 사살했다고 밝혔으며, 미국 국방부도 이를 확인했다.
이란의 통행료 징수 계획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법적 근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도 ANB리걸(ANB Legal) 아푸르바 메타(Apurva Mehta) 변호사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제38조가 국제 해협의 통과통항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란 의회가 UNCLOS를 비준하지 않아 법적 구속력을 부정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해상법 전문가 제이슨 추아(Jason Chuah) 교수는 “호르무즈해협 전체가 이란과 오만(Oman)의 중첩 영해이며 공해가 없는 구조”라며 “이론적으로 선박이 오만 해안에 붙어 항행하면 이란의 통행료를 피할 수 있지만, 이란이 미사일·기뢰·드론으로 오만 쪽 해역도 공격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 선사들은 결국 이란 쪽 항로를 택하고 통행료를 내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