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았던 1990년대, 적국이었던 미국과 베트남 사이에 교육의 다리를 놓은 한 남자가 있다. 시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베트남 인재들을 위해 미국 명문대 총장들을 상대로 ‘등록금 할인’ 협상을 벌인 팜 득 쭝 끼엔(68) 베트남재단(VNF) 설립자다. 그는 최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이 선정한 ‘개교 100주년 동문 촉매제(Alumni Catalysts) 100인’에 이름을 올리며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끼엔 설립자의 이력은 화려하다. 1977년 19세의 나이로 미국에 이민한 그는 콜로라도대를 거쳐 스탠퍼드에서 MBA를 마쳤다. 망막 퇴행성 질환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역경 속에서도 백악관과 미 국방부 장관실에서 전략 기획 담당자로 근무하며 미국 정계의 핵심 인맥을 쌓았다.
그의 진면목은 2003년 설립된 베트남교육재단(VEF) 사무총장 시절 드러났다. 당시 그는 “인구가 8,000만 명인데 우수한 박사 과정 인재 20명을 못 찾겠느냐”며 회의론을 일축했다. 실제로 모집 첫해 13명에 불과했던 장학생은 이듬해 83명으로 급증했다. 문제는 연간 6만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등록금이었다.
끼엔 설립자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미국대학협회(AAU) 회장을 직접 찾아가 “베트남의 천재들을 보내줄 테니 등록금을 50% 깎아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던졌다. 또한 첫 2년만 재단이 지원하고, 이후 박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대학 측이 전액 장학금을 주는 조건을 관철했다. 그의 끈질긴 설득에 일리노이대를 비롯한 100여 개 미국 명문대가 손을 들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400여 명의 박사와 130여 명의 석사가 배출됐다.
엘리트 교육에 성공한 그는 2008년 베트남재단(VNF)을 설립하며 대중 교육으로 눈을 돌렸다. 2020년에는 세계 최대 무료 온라인 학습 플랫폼인 ‘칸아카데미(Khan Academy)’의 베트남어판 도입을 이끌어냈다. 현재 베트남 내 이용자만 200만 명에 달하며, 이는 전 세계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특히 산간 오지인 뚜옌꽝(Tuyen Quang)성에서는 소수민족 학생 80%가 칸아카데미를 통해 세계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있다. 끼엔 설립자는 “컴퓨터 사용법도 모르던 소수민족 학부모들이 아이의 학습을 돕기 위해 학교를 찾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베트남 전체 학생 2,000만 명 중 10%에 불과한 이용자를 더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끼엔 설립자는 “한국과 싱가포르가 교육을 통해 강대국이 되었듯, 베트남 역시 지성의 힘으로 세계 과학 발전에 기여하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그가 뿌린 인재의 씨앗들이 이제 ‘베트남의 기적’을 일구는 거대한 숲으로 자라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