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좋은 사람, 나쁜 사람 –
우리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일은 적게 시키면서, 하는 일마다 칭찬을 해주고, 월급을 듬뿍 주는 사장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항상 내 편이 되어주고, 필요할 때 항상 달려오고, 내가 경제적으로 힘들 때는 이유도 묻지 않고 큰 돈을 선뜻 꿔주는 친구를 갖고 싶습니다.
연예인 같은 외모에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고, 물려 받을 건물 덕분에 노후는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육아에 헌신적이고, 항상 집을 청결히 관리하며, 집안 어른들에게도 항상 공손한 그런 배우자를 갖고 싶습니다.
매월 규칙적으로 엄청난 오더를 하면서도, 대금 결제는 정해진 날자에 꼬박꼬박 해주며, 가끔씩 있는 품질 문제에는 스마일 이모티콘과 함께 ‘다음에는 좀 더 주의해 주세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라고 응원 문자를 보내주는 그런 거래처 담당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바램과는 달리, 현실에는 나쁜 사람 투성이입니다. 사장님은 항상 내 월급이 하는 일에 비해 많다고 생각하시고, 돈을 빌려간 친구는 연락이 안되고, 거래처 담당자는 일본의 철판 볶음밥인 데판 야끼 장인처럼 나를 볶아 댑니다.
서로 잘해보겠다며 노력하다가 생기는 갈등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데, 우연히 듣게 된 나에 대한 험담, 믿었던 사람의 배신, 깜쪽같은 사기를 당하고 나면 마음이 무너지고, 사람이 두려워집니다.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일까요, 악한 존재일까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500년 전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살았던 마키아벨리라는 퇴직 공무원이 당시 피렌체의 최고 권력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후계자를 위해 쓴 <군주론>이란 한 권의 책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고 견디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구글맵 같은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한문장 한문장이 노골적이고 핵심을 찌릅니다.
보통 글을 쓰다보면 좀 민망하거나 불편한 얘기는 스스로의 검열 작용을 통해 적절히 순화해서 쓰게 됩니다. 마지 제가 이번 칼럼의 시작글에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해 대응하는 글에서 사장님, 친구, 거래처에 대한 얘기는 용감하게 썼지만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는 살짝 빼버린 것과 같은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살면서 정말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들은 책, 교실, 사무실이 아닌 한밤중의 술자리에서 한잔 걸쳐 용감해지거나 솔직해진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마키아벨리가 술을 마시고 이 책을 썼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제가 알고 있는 고전중에 가장 대담하면서도 노골적으로 인간 군상의 모습과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정확하게 묘사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혹시 예전의 저처럼 ‘내가 군주가 아닌데 이 책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이 책은 군주(오너), 귀족(임원), 시민(직원), 용병(하청업체), 지원군(투자자 또는 동업자), 이웃나라(경쟁사)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대하고 있으며,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거나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책입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 <미생>의 명언에 공감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전쟁(시장 점유율 확장)’과 ‘군사력(경쟁력)’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상황에 맞게 하나의 비유로 보며, 앞뒤가 안 맞아 보이는 이 혼탁한 세상을 좀 더 높은 화질로 볼수 있는, 새로운 안경 하나를 얻으시는 기쁨을 얻으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책에 있는 ‘행운’에 대한 조언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행운이 우리의 행동의 절반을 결정할지라도, 절반 정도는 우리 스스로 지배하도록 놔둔다’라고 마키아벨리는 말합니다. 인생에서 ‘운’이라는 것은 정말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한, 혈연에 의한 군주와 귀족이 존재하던 시대, 종교가 세상의 중심원리였던 시절에도 마키아밸리는 ‘행운’이 사람의 인생에서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50%로 한정을 지었습니다.
오히려 인생에서 행운 복권에 먼저 당첨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다 행운이 떠나게 된 사례를 얘기하며, 행운에 안주하지 말고 저항함으로써 행운을 지키고, 보다 대담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함으로써 행운을 복종시키라고 권합니다.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불공평한 현실, 권력을 가졌으나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인생 운칠기삼이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충동을 느낍니다.
저는 살면서 제일 불행한 일을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나면 우리가 아는 모든 정상적인 일상이 멈추고, 먹는 것, 입는 것, 치료받는 것, 안전한 곳에서 자는 것을 걱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500년 전후의 이탈리아는 그런 전쟁이 일상이었던 세상이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도 행운의 영향력을 50%로 한정짓는데, 이처럼 안정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불운을 탓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많은 시간을 쓴다면, 우리에게 찾아올 행운을 붙잡기는 커녕, 알아보지도 못하고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란 말로 글을 시작했지만, 그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좀 더 공정하게 표현하자면 ‘나에게 좋은 사람’, ‘나에게 나쁜 사람’이란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내가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일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일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리한 욕심이고, 전체적인 상황을 망칠 수 있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조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규칙을 어기고 반칙을 통해 성공을 꿈꾸는 ‘악한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 역시 명심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에 대해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부도덕적인 마키아벨리즘의 창시자’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 책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마키아벨리는 때로는 상황에 따라 나쁜 사람이 되는 용기를 요구하긴 했지만 악한 사람이 될 것을 권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악한 사람은 증오와 경멸로 인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역사적 증거를 여럿 제시하며 증오와 경멸을 받지 않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기도 했으니까요. 이 책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중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악한 사람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필터 역할도 해줄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사회 생활, 사람 관계에서 피로감을 느끼시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 장연 (칼럼리스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