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History – 2000년 크리스마스 음식 전통의 비밀

고대 로마 사투르날리아부터 일본 KFC까지… 축제의 음식은 어떻게 진화했나

크리스마스 저녁 식탁에 오르는 칠면조 구이, 크리스마스 푸딩, 진저브레드 쿠키. 우리는 매년 이 음식들을 당연하게 즐기지만, 왜 하필 이런 음식들이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을까. 겨울 축제의 음식 전통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시작해 2000년 넘는 세월 동안 종교, 계급, 무역, 그리고 문화의 변천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진화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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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의 사투르날리아, 크리스마스 잔치의 기원

크리스마스 음식 전통의 뿌리는 기독교보다 앞선 고대 로마의 동지 축제에서 찾을 수 있다. 로마인들은 농업의 신 사투르누스(Saturnus)를 기리기 위해 매년 12월 17일부터 최대 7일간 사투르날리아(Saturnalia) 축제를 열었다. 이 기간 동안 평소 엄격했던 사회 규범이 완전히 뒤집혔다. 노예들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자유민들은 화려한 옷과 원뿔 모양의 필레우스(pileus) 모자를 쓰고 도박을 즐겼다.
사투르날리아의 핵심은 며칠간 이어지는 성대한 가정 잔치였다. 주인들은 노예들을 식탁에 초대하거나 심지어 직접 음식을 서빙하기까지 했다. 일 년 중 이때만큼은 신분의 벽이 무너지고, 모두가 평등하게 음식을 나누며 축제를 즐겼다. 기독교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이러한 동지 축제 전통은 자연스럽게 크리스마스와 융합되었고, 겨울철 풍성한 잔치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중세 귀족의 과시, 멧돼지 머리와 공작 통구이

중세 시대 크리스마스는 귀족들에게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영국 햄프턴 코트(Hampton Court) 궁전의 헨리 8세(Henry VIII) 시대 주방을 보면, 궁전 면적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였다. 소수 인력이 아닌 수십 명의 주방 직원들이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했으며, 신선한 사냥감과 농산물, 정교한 과자, 화덕 위에서 굽는 고기들로 넘쳐났다.
중세 귀족의 크리스마스 테이블 중앙에는 금이나 은 접시에 담긴 멧돼지 머리 통구이가 트럼펫 소리와 노래와 함께 등장했다. 깃털을 다시 붙인 공작 통구이, 고급 재료로 속을 채운 거대한 파이가 손님들을 압도했다. 전통적으로 쇠고기, 사슴고기, 멧돼지를 먹었지만, 오소리, 지빠귀, 딱따구리 같은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동물들도 식탁에 올랐다.
반면 하층민들의 크리스마스는 검소했다. 귀족들의 성대한 연회가 끝난 후 남은 음식 찌꺼기를 받거나,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은 빵과 죽으로 명절을 기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시기 말린 과일이 더욱 널리 보급되면서 프루트케이크가 등장했다. 향신료와 꿀로 보존한 말린 과일을 겨울 동안 저장했다가 명절 케이크에 사용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프루트케이크의 시초다.

튜더 시대, 칠면조의 등장과 ‘크리스마스 파이’

16세기 튜더(Tudor) 시대는 크리스마스 음식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523년 칠면조가 영국에 처음 도입되면서 크리스마스 테이블에 혁명이 일어났다. 노퍽(Norfolk)과 서퍽(Suffolk)에서 런던 시장까지 칠면조를 걸어서 이동시켰는데, 당시에는 매우 이국적인 진미로 여겨져 부유층만 즐길 수 있었다.
튜더인들의 크리스마스 요리 중 가장 독특한 것은 ‘크리스마스 파이(Christmas Pie)’였다. 비둘기를 자고새 안에 넣고, 자고새를 닭 안에, 닭을 거위 안에, 거위를 칠면조 안에 넣은 뒤, 이 모든 것을 ‘관(coffin)’이라 불리는 페이스트리 케이스에 담았다. 여기에 토끼와 다른 사냥감 새들을 곁들여 내놓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요리였지만, 이는 튜더 귀족들의 부와 창의력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와세일링(wassailing)도 튜더 크리스마스의 중요한 전통이었다. 과일 나무가 다음 해에 좋은 수확을 내도록 건배하는 의식으로, 최대 1갤런을 담을 수 있는 거대한 나무 그릇에 뜨거운 에일이나 사이더, 설탕, 향신료, 사과를 넣고 바닥에 빵 껍질을 깔았다. 이 그릇은 먼저 가장 중요한 사람에게 전달되고, 차례로 돌아가며 모두가 “와세일(Wassail, 건강하게!)!”이라고 외쳤다.

조지 왕조 시대, 고기의 시대와 민스 파이의 변화

18세기 조지 왕조(Georgian) 시대 부유층은 크리스마스에 엄청난 양의 음식, 특히 고기를 먹었다. 쇠고기, 양고기, 사슴고기가 주류를 이뤘고, 거북이 수프, 생선, 조개류, 양념한 송아지 머리로 만든 육류 젤리인 브론(brawn) 같은 요리도 인기였다. 가금류는 반찬으로 제공되었는데, 주요 새는 거위였지만 칠면조가 점점 더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대규모 저택에서는 음식이 워낙 많아 상당 부분을 일주일 전에 미리 준비했다. 삶은 푸딩은 일주일 전에 만들었고, 차가운 음식을 내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에는 크리스마스 푸딩과 민스 파이를 로스트 고기와 동시에 제공했다. 오늘날 디저트로 여겨지는 음식이 당시에는 메인 요리와 함께 나온 것이다.
조지 왕조 시대의 민스 파이와 크리스마스 푸딩 레시피는 중세와 튜더 시대보다 고기가 줄고 말린 과일, 향신료, 설탕이 늘었다. 하지만 1850년대 유명 요리 작가 일라이자 액턴(Eliza Acton)의 레시피에도 여전히 3테이블스푼의 다진 쇠고기와 수에트(suet, 동물성 지방)가 포함되어 있었다. 완전히 달콤한 디저트로 전환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트웰프스 나이트 케이크(Twelfth Night cakes, 주현절 케이크)도 매우 인기가 있었다. 리젠시(Regency) 시대에 이르면 색깔 있는 프로스팅, 장식, 설탕 인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케이크가 등장했다. 와세일링 전통도 계속 이어져, 파티에서 손님들은 꿀을 넣은 가볍게 향신료를 넣은 에일을 큰 음료 그릇에서 마셨다.

빅토리아 시대, 현대 크리스마스 저녁의 탄생

19세기 빅토리아(Victorian) 시대에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의 틀이 확립되었다. 이 시기 가장 큰 변화는 크리스마스가 수백 명의 손님을 위한 대규모 연회에서 가족 중심의 친밀한 모임으로 바뀐 것이다.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A Christmas Carol)’에 등장하는 가난한 크래칫(Cratchit) 가족이 ‘거위 클럽(Goose Club)’에 가입한 것처럼, 노동 계급도 크리스마스를 위해 1년 내내 조금씩 돈을 모았다.
19세기까지 거위가 가장 일반적인 크리스마스 고기였다. 닭과 다른 가금류는 일 년 내내 달걀을 제공하는 귀중한 자산이었지만, 거위는 계절적으로만 알을 낳았기 때문에 처리하기에 더 적합했다.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 후반, 가족들이 크리스마스 데이에 대규모로 모이기 시작하면서 칠면조의 큰 크기가 결정적 이점으로 작용했다.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에 충분했고, 박싱 데이(Boxing Day) 이후에도 남은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여러 가지 고기 대신 채소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구운 감자, 파스닙(parsnip), 당근이 표준이 되었고, 부유한 가정에서는 아스파라거스와 토마토 같은 고급 채소를 추가했다. 브뤼셀 스프라우트(Brussels sprouts, 방울다다기양배추)는 18세기 말 영국에 도착해 노퍽과 링컨셔(Lincolnshire) 같은 동부 지역에서 잘 자라는 겨울 작물로 자리 잡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현대 크리스마스 전통이 형성되면서 이 작은 채소도 크리스마스 테이블의 필수품이 되었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지만, 현재 영국의 스프라우트 산업 규모는 연간 6500만 파운드에 달한다.

19세기 후반, 상징적 디저트들의 등장

19세기 후반은 오늘날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여러 디저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다. 프랑스의 뷔슈 드 노엘(bûche de Noël, 크리스마스 통나무 케이크)은 19세기 파리의 제과사들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스칸디나비아와 켈트 이교도 문화에서 동지 축제 때 빛이 어둠을 이기는 것을 상징하며 태우던 큰 나무 유일 로그(Yule Log) 전통에서 영감을 받아, 통나무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어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에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파네토네(panettone)는 13세기부터 어떤 형태로든 구워졌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유명한 전설에 따르면, 15세기 밀라노(Milano) 공작의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디저트가 타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토니(Toni)라는 젊은 요리사가 밀가루, 달걀, 설탕에 절인 과일, 설탕, 그리고 자신의 가족 식사를 위해 아껴두었던 효모로 급히 새로운 브리오슈 빵을 만들었다. 공작이 이를 극찬하면서 요리사의 이름을 딴 ‘판 데 토니(Pan de Toni)’가 되었고, 이후 파네토네로 발전했다.

독일의 진저브레드 하우스는 그림 형제(Brothers Grimm)가 1800년대에 ‘헨젤과 그레텔(Hansel and Gretel)’ 등 동화 모음집을 출판한 후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초기 독일 이민자들이 이 전통을 미국으로 가져갔고, 미국에서는 200년 넘게 사탕으로 장식된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만들어왔다.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어머니도 자신만의 진저브레드 레시피를 가지고 있었으며, 혁명 전에는 쿠키를 작은 왕 모양으로, 독립 후에는 독수리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는 백악관(White House) 제과 주방장들이 수백 파운드에 달하는 정교한 진저브레드 하우스와 장면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캔디 케인(candy cane)의 기원도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속 전승에 따르면 1670년 독일의 한 합창단 지도자가 어린 가수들이 예배 중에 조용히 있도록 하기 위해 지역 제과업자에게 페퍼민트 맛 막대 사탕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 지팡이 모양의 이 사탕은 미국에서 가장 상징적인 크리스마스 사탕이 되었다.
에그노그(eggnog)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중세 초기 영국에서 상류층이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마시던 따뜻한 우유와 에일 음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원래는 셰리주를 넣었지만, 미국으로 건너간 후 더 저렴한 럼주로 대체되었다. 향신료를 넣고 알코올을 첨가한 달걀노른자와 우유 음료는 오늘날까지 미국의 크리스마스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20세기 이후, 세계화와 새로운 전통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크리스마스 음식은 대중화와 세계화를 경험했다. 현재 영국에서는 매년 약 1000만 마리의 칠면조가 크리스마스에 소비된다. 최근 수십 년간 채식주의와 비건주의가 확산되면서 너트 로스트(nut roast) 같은 비육류 대체품도 등장했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여전히 칠면조를 산더미 같은 채소, 베이컨으로 감싼 소시지, 각종 케이크와 푸딩, 그리고 술과 함께 즐긴다.
흥미롭게도 프루트케이크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인기가 급락했다. 뉴욕대학교(NYU)의 음식 역사가 에이미 벤틀리(Amy Bentley)는 “20세기 대부분 동안 미국인의 미각은 설탕, 지방, 소금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며 “베티 크로커(Betty Crocker) 스타일의 가볍고 달콤한 케이크가 지배적이었고, 무겁고 진한 프루트케이크는 구식 취향으로 여겨지며 농담의 소재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코미디언 조니 카슨(Johnny Carson)은 “세상에 프루트케이크는 단 하나만 존재하고, 사람들이 서로에게 계속 보내는 것”이라고 농담했다.
가장 독특한 현대 크리스마스 음식 전통은 일본의 KFC다. 일본에서는 인구의 약 1%만이 기독교인이고 크리스마스가 공식 휴일도 아니지만, 1970년대 KFC의 성공적인 마케팅 캠페인 덕분에 약 360만 가정이 크리스마스에 프라이드 치킨을 먹는다. 주문의 40%가 최대 2개월 전에 이루어질 정도로 이 전통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음식에 담긴 2000년의 역사

크리스마스 음식 전통은 단순한 요리법의 모음이 아니다. 고대 로마의 평등 정신, 중세 귀족의 권력 과시, 르네상스 시대의 신대륙 발견, 산업혁명 이후의 가족 중심 문화, 그리고 현대의 세계화와 다양성을 모두 담고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칠면조 한 마리, 크리스마스 푸딩 한 조각에는 2000년이 넘는 인류의 축제 문화가 응축되어 있다. 올해 크리스마스 저녁을 즐길 때, 접시 위의 음식이 품고 있는 긴 역사를 떠올려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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