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7년생 레홍민(Lê Hồng Minh). 베트남 전쟁 이후 태어나 가난한 시절을 겪었던 그는 18세에 호주 유학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인터넷을 만났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친구가 물었다. “너 핫메일(Hotmail) 있어?” 그때까지 핫메일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청년은 몇 달 후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핫메일을 2억달러에 인수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꿈을 키웠다. “나도 인터넷 회사를 만들겠다.”
2004년 9월 9일, 레홍민은 단 5명의 동료와 함께 VNG를 창업했다. 그들에게 있는 것이라곤 게임에 대한 열정뿐이었다. 첫 번째 제품 ‘보람전기(Võ Lâm Truyền Kỳ)’는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성공 뒤에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람전기 성공 직후 기술, 제품, 사업, 법률, 사회적 인식까지 온갖 도전이 몰려왔습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는 숨 쉴 틈도 없었죠.” 레 회장은 뜨어이째(Tuổi Trẻ)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회상했다.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서버를 살 돈이 부족해 팀원들이 총동원됐고, 거래처에 외상 판매를 간청하기도 했다. 가장 큰 위기는 2005년 말 찾아왔다. 베트남에 온라인 게임 허가 규정이 없어 보람전기가 폐쇄 위기에 처한 것이다. 초창기 팀원들은 “이번 달만 버티자”며 서로를 격려했다.
2007년 무렵 상황이 안정되자 그들은 비로소 앉아서 물었다. “우리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가?” 어느 날 레 회장이 등산하는 사진을 올리자, 공동 창업자 부엉꽝카이(Vương Quang Khải)가 말했다. “VNG의 가치에 대해 더 논의할 필요가 뭐 있나? 바로 이거야. 우리는 도전을 좋아하고 어려운 일을 좋아한다.”
그렇게 ‘Embracing Challenges(도전 포용하기)’가 탄생했다. ‘challenge’에 복수형 ‘s’를 붙인 것은 여러 도전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나중에 사람들이 농담 삼아 말했죠. ‘왜 s를 붙였냐, 이제 우리가 매일 고생이다!’ 하지만 익숙해지더군요. 어려운 일이 없으면 오히려 이상한 것 같았습니다.”
이 철학을 바탕으로 VNG는 게임 회사에서 인터넷 회사로 전환을 결심했다. 그 첫 결실이 ‘징 엠피쓰리(Zing MP3)’였다. 2007년 베트남에서 가장 방문자가 많은 사이트는 야후(Yahoo)였다. VNG는 ‘미친’ 목표를 세웠다. 그해 안에 야후를 넘어서겠다는 것이었다. 출시 3개월 만에 징 엠피쓰리는 월 10억 조회수를 기록하며 1위 웹사이트로 올라섰다.
“그 성공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줬습니다. 이후 소셜네트워크, 전자상거래, 포럼, 심지어 유튜브(YouTube) 같은 동영상 플랫폼까지 만들었죠.” 레 회장은 말했다. “많이 하면 실패도 많지만, 모두 우리의 일부가 됐습니다. VNG의 방식은 일단 하고, 틀리면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2012년, VNG는 PC 시장에서 정점에 있었다. 매출과 이익 모두 최고 수준이었고, 게임 수익의 100%가 PC에서 나왔다. 그러나 레 회장은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 매출은 신경 쓰지 마세요. 내년 목표는 전부 모바일로 전환하는 겁니다.”
당시 논란이 상당했다. 많은 이들이 PC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레 회장은 단호했다. 5년 후 PC 매출은 15%로 떨어졌고, 85~90%가 모바일에서 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일찍 전환하지 않았다면 VNG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 결정은 관찰에서 나왔다. “기술은 매우 빠르게 변하고, 기술 회사들이 그것을 가장 무섭게 느낍니다. 야후, 노키아(Nokia) 같은 큰 이름들이 변신하지 못해 과거가 된 것을 봤죠. 변화는 기회를 봐서가 아니라 생존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모바일 시대 VNG는 잘로(Zalo)와 잘로페이(Zalopay) 같은 제품을 내놓았다. 잘로는 월 8000만 사용자, 잘로페이는 1600만 사용자를 확보했다. 하지만 수익은 사용자 수에 미치지 못했다.
“기술 산업에서는 매우 정상적인 일입니다. 이 업계의 특성은 제품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 사용자, 마지막으로 매출이 오는 겁니다. 페이스북(Facebook), 구글(Google), 아마존(Amazon), 챗GPT(Chat GPT) 모두 이 원칙을 따릅니다.” 레 회장은 설명했다.
그는 챗GPT를 예로 들었다. “베트남 사용자의 95%가 무료로 쓰지만, 모회사 오픈AI(Open AI)의 가치는 5000억달러입니다. 그들은 매년 50억~60억달러 손실을 보지만, 향후 5년간 인프라와 칩에 1조달러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경쟁자가 따라올 수 없는 우위를 확보한다고 믿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철학도 시험대에 올랐다. 2023년 VNG는 띠끼(Tiki), 뗄리오(Telio) 같은 모바일 제품 투자로 2조3000억동(약 12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 레 회장은 이를 인정했다. “2018년 무렵 인터넷과 금융시장의 흥분 속에서 전 세계가 모바일 인터넷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VNG도 과감하지 않으면 많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이것이 FOMO(놓칠까 봐 두려워하는 심리)입니다.”
“틀렸으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2022~2023년은 이전의 과다 투자에 대한 대가를 치른 해였습니다. 겪어야 하고, 많은 돈을 잃어야 진정한 교훈이 됩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나 레 회장은 핵심 철학을 바꾸지 않았다. “도전을 포용한다는 철학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어떻게 고칠지 고민해야 하죠. 저는 사람들에게 항상 말합니다. ‘뭐든 시도해도 되지만, 사고는 내지 마라. 사고가 나더라도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는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 죽지만 않으면 된다고요. 행복해지는 방법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겁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건강하고, 사랑하는 일을 하고, 동료와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면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는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를 10년간 빠짐없이 참가하며 체력과 정신력을 단련했다. “달리기 철학을 삶에 적용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거리를 선택하고, 천천히 가더라도 끈기 있게 하면 목표에 도달합니다. 빨리 달려야 한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번 경주가 없으면 다른 경주에 참가하면 되니까요.”
21년의 여정을 돌아보며 레 회장은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첫째, 끈기 있으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에베레스트(Everest)를 오르고 싶다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 목표가 충분히 중요하고 충분히 끈기가 있다면요.”
“둘째, 더 어려운 것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겁니다. 많은 청년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걱정하지만, 괜찮습니다. 젊음은 시도할 권리가 있고, 틀릴 권리가 있는 시기니까요.”
그는 자신의 딸에게도 같은 조언을 한다.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많이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시도해봐야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탐험하세요. 그러면 답은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경험에서 나올 것입니다.”
5명으로 시작해 수백만 사용자를 보유한 기술 생태계로 성장한 VNG. 그 중심에는 “시도하고, 실패하고, 배우고, 다시 일어서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철학이 있었다. 레홍민은 오늘도 그 철학으로 다음 산을 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