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망 위기·트럼프 관세로 ‘리쇼어링’ 가속…하지만 비용 경쟁은 여전히 신흥국 우위
1945년 세계 공장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미국이 80년 만에 제조업 탈환전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제품에 최고 145%의 관세 폭탄을 터뜨리며 “미국인이 구매하는 제품은 미국인이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정부가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에만 4,200억달러(약 600조원)를 쏟아부은 데 이어, 트럼프는 관세라는 칼을 빼들었다.
문제는 이 전쟁의 승자가 누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이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는 사이, 중국 기업들은 멕시코와 베트남으로 우회해 미국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베트남의 대미 수출은 3년 만에 83% 급증했고, 물류비가 싼 신흥국들의 비용 경쟁력은 여전히 압도적이다. 세계 제조업 지형도를 뒤흔드는 이 전쟁, 과연 누가 웃을 것인가.

왜 지금 제조업 부활인가
안보·공급망·일자리, 3중 위기가 촉발
선진국들이 제조업 부활에 나서게 된 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세계화의 부작용이다. 중국과 동남아 등 신흥국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구축된 글로벌 공급망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치명적 약점을 드러냈다.
미국 투자 옹호 단체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은 리쇼어링과 외국인 직접투자를 통해 약 200만개의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했다. 특히 첫 100만개 일자리를 추가하는 데 11년이 걸렸지만, 두 번째 100만개는 단 3년 만에 달성했다.
전문가들은 리쇼어링 확산의 배경으로 △공급망 안정성 확보 △국가 안보 강화 △일자리 창출 △기술 주권 확립 등 네 가지 요인을 꼽는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면서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산업에서 제조업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국가안보 차원의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트럼프, 관세 카드로 제조업 부활 압박
“미국 제품은 미국서 만들어야”… 최고 145% 관세 폭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핵심은 미국 제조업 부활을 위한 리쇼어링이다. 그는 관세, 감세, 규제완화, 원자재 공급 안정 등 당근과 채찍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며 “미국인이 구매하는 제품은 미국인이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2025년 2월부터 중국, 캐나다, 멕시코를 중심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4월에는 전 세계 58개국과 EU 27개 회원국에 10% 기본 관세를 부과하는 ‘상호관세’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는 한때 145%까지 치솟았다가 11월 휴전 협정으로 30%로 낮춰졌다.
1945년 세계 공장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미국 제조업은 현재 15.1%로 급락했다. 유엔 산업개발기구는 미국의 제조업 비중이 2030년까지 11%로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중국은 현재 31%를 차지하며 2030년까지 45%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사상 최대 규모 제조업 지원
CHIPS법 527억달러·IRA 3700억달러 투입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생산을 위해 527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CHIPS법을 시행했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약 3700억달러를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투입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5년 1월 기준 CHIPS법, IRA, 인프라투자법을 통해 총 1조달러의 민간투자를 유도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반도체·전자제품 분야 4490억달러, 전기차·배터리 1840억달러, 청정에너지 2150억달러가 포함된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 조사에서는 미국 제조업체의 62%가 생산시설의 리쇼어링 또는 니어쇼어링(인접국 이전)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2025년에만 35만개의 일자리가 미국으로 돌아올 것으로 추산된다.
인텔, TSMC,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시설 확장에 나섰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향후 10년간 1500억달러를 미국 내 공장 건설에 투자하기로 했다. 과거 아시아 대비 35~45% 높은 비용 때문에 미국 투자를 꺼렸지만, 정부 지원이 게임체인저가 됐으며 심지어 트럼프 2기 행정부도 해당법을 무력화 시키지 않고 오히려 공장 건설에 따른 세액공제를 확대시키면서 반도체 공장 유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일본도 동참…전략은 제각각
독일 ‘GDP 25% 제조업’ 목표, 일본은 탈중국 주력
유럽은 미국과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독일은 ‘국가산업전략 2030’을 통해 2030년까지 GDP 대비 제조업 비중 25%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은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산업정책을 통해 리쇼어링을 간접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지멘스는 2017년 덴마크에 있던 풍력터빈 공장을 독일로 이전했고, 2016년 이후 독일, 영국, 북유럽을 중심으로 공장 자동화를 실현하며 중국으로부터의 리쇼어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본과 대만의 경우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중국 진출 기업들의 본국 회귀를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특정 산업에서만 한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성공 가능할까…”도전과제 산적”
인력 부족·높은 비용·인프라 한계 직면
리쇼어링의 미래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중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KB증권은 “트럼프의 리쇼어링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시장 혼란과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대규모 감세와 제조업 투자가 추진되지만, 미국이 실제로 제조업 국가로 전환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노동력 부족, 비용 상승, 공급망 미비 등이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딜로이트는 “관세로 인해 미국 물가 수준이 1.0~1.2% 상승하고, 2024년 기준 가구당 평균 소비자 손실액은 1,600~2,000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2025년 미국 실질 GDP 성장률이 0.6%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미국 소비자들은 이미 가격 인상을 체감하고 있다. 세계 최대 가구제조업체 애슐리 퍼니처는 제품 가격을 최대 12% 인상했고, 커피, 의류, 공구 등의 가격도 5~14% 상승했다.
국제금융센터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리쇼어링 정책이 확대되면서 투자 증가와 일자리 창출 등 긍정적 영향이 기대되나, 노동비용 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과 경제 블록화 심화 등 부정적 영향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캘리포니아처럼 규제가 까다롭고 토지·전력 비용이 높으며 물 공급이 불안정한 지역에서는 새로운 제조시설 건설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캘리포니아는 1990년 이후 제조업 일자리가 33% 감소했다.
무엇보다 생산설비 이전에는 통상 3~5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리쇼어링이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장기적 추세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평가했다.
中·베트남의 역습…”비용 경쟁력은 여전”
베트남, 미국 3대 교역국 부상…중국은 프렌드쇼어링 우회
선진국들의 제조업 부활 노력이 과연 중국, 베트남 같은 저비용 국가들을 상대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비용 격차가 여전히 크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0~2018년 한국의 단위노동비용은 연평균 2.5% 증가한 반면, 주요 진출국들의 단위노동비용은 연평균 0.8% 감소했다. 1인당 노동비용 증가속도가 노동생산성보다 2배 빠른 것이 문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국과 베트남 등 신흥국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 직면한 중국 기업들은 멕시코,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프렌드쇼어링’ 국가로 공급망을 재편하며 미국 시장 접근성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대멕시코 수출은 2018년 835억달러에서 2022년 1,186억달러로 급증했다.
베트남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영국 MDS 트랜스모달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베트남의 선복량 규모는 2019년 대비 83% 증가했다. 물동량 측면에서 2019년 8위였던 베트남은 이제 미국의 3번째 중요한 파트너 국가가 됐다.
중국 자체의 경쟁력도 만만치 않다.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제조업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31%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고기술 제품에서는 미국·일본에 밀리고 저기술 영역에서는 베트남·인도에 쫓기는 ‘샌드위치’ 신세라고 하지만, 생산성 향상과 제조 인프라 강화, 소재·부품 역량 제고 등을 통해 저변에서부터 힘을 비축하고 있다.
한국은 ‘Stuck in the Middle’
연평균 97개 기업 리쇼어링하지만 규모 작고 생산성 낮아
한국 제조업은 ‘중간에 끼인(Stuck in the Middle)’ 처지다. 생산력과 기술력 측면에서는 중국에 추격당하고, 남은 생산시설은 미국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흡수되는 양면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에 따르면, 1200개 다국적 제조업 기업 중 연평균 약 97개(24%)가 리쇼어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리쇼어링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노동집약적이며 생산성이 낮은데다 해외 자회사 수도 가장 적었다.
정부가 국내 복귀 기업으로 선정한 곳은 2022년 기준 20곳에 불과했다. 높은 인건비, 규제, 인센티브 부족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팩토리 등 첨단 제조 기술 도입 △반도체·2차전지·AI 등 전략산업 집중 지원 △산업 생태계 전체에 대한 패키지 지원 △고급 기술인력 양성 등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자국에서 생산하기 어려운 산업 분야를 찾아 선점하는 전략이다. 실제로 조선·방산·항공우주 산업은 미국의 산업 파트너로 선정되면서 호황을 누리고 있다.
글로벌 제조업 지형도 재편…승자는?
리쇼어링은 단순한 산업 이전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 질서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각국의 산업정책 경쟁이 사실상 ‘경제적 군비경쟁’으로 귀착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KB증권은 “트럼프의 관세와 보조금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혼란을 가져오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제조업 지형도를 바꿀 것”이라며 “다만 미국이 1945년의 제조업 강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리쇼어링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지만, 일부 전략산업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를 낼 것으로 전망한다. 반도체, 배터리, 방산 등 국가안보와 직결된 첨단산업은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자국 생산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반면 의류, 생활용품, 저부가가치 제품 등은 여전히 중국, 베트남, 인도 등 저비용 국가들이 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선택적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략이 현실적 대안이 될 전망이다.
KDI는 “공급망 안정화, 제조업 경쟁력 유지, 고용 촉진 등의 정책 목적은 해외 생산시설의 국내 복귀 여부에 관계없이 국내 투자 인센티브 강화를 통해 달성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며 “과도한 생산 국제화의 해결책은 ‘생산의 국내화’이지 ‘기업의 국내화’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향후 5~10년은 제조업 패권을 둘러싼 선진국과 신흥국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유럽은 막대한 보조금과 관세 장벽으로 첨단 제조업 육성에 나서고, 중국·베트남은 비용 경쟁력과 거대한 생산 생태계로 맞서는 구도다.
한국이 이 격변의 시기에 어떤 전략을 취하느냐에 따라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중간에 낀’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조선·방산처럼 지정학적 틈새를 활용한 성공 사례가 있는 만큼, 전략적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