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해 보니 일년 내내 학교의 선생님들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범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졸업 전 한달 동안 현장실습을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교생실습 제도입니다. 제가 다니던 시골 중학교에는 청주사범대학의 대학생들이 교생으로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과 학교에서의 어떤 이유로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기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다닐 때마다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작심 3일, 30일, 3개월
베트남에 산 날이 오래될수록 피하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오래 계셨네요. 그럼 베트남어를 잘하시겠네요?” “….”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던 질문, 바로 그것입니다.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학생들을 보면 공부한 지 불과 3, 4년 임에도 정말 한국어를 잘합니다. 그 학생들이 똑똑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한국어가 워낙 탁월하여 배우고익히기에 쉬워서 일까요? 저도 베트남어를 무지무지 열심히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 수고하셨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16대 호찌민 한인회장 선거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후보가 단독 후보였다고 합니다. 자동 당선이므로 선거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구한 한인회 역사(?) 가운데 말 없고 탈 없던 때가 거의 없었는데 선거가 사라지니 예전 같으면 덩달아 시끄러웠을교민사회도 조용했습니다. 시끄러웠다 하는 것도 어폐가 있습니다. 그들만의 잔치였으니 방 안의 세숫대야에 담긴 물이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슬기로운 격리생활
창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갈 수도 없습니다. 빼꼼히 문을 열고 내다보니 복도에 바람만 가득합니다.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밖으로 나서면 소독제통을 맨 파란색 방호복으로 무장한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문 앞에는 방번호가 붙은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그렇게 창 밖 풍경을 벽에 걸린 그림 보듯 입국 후 호텔격리생활을 맞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르쳐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다섯 번째 책을 손에 들고 다섯 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는 ‘Park tiên sinh sống giữa Sài Gòn’ 이라는 제목이 베트남어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출판사에 의해 베트남어로 번역된 책이기에 그렇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손가락 끝을 저리게 합니다. 지금껏 ‘몽선생의 서공잡기’란 책으로 시작해서 소설 ‘크룩스크리스티’와 ‘베트남, 체제전환국가에서의 도시개발’이라는 전문서적에 짧은 동화 한 권을 얹어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추억은 방울 방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오카지마 타에코는 평범한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입니다. 그녀는 평소에 그리던 시골생활을 위해 휴가를 얻어 떠납니다. 그녀는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시골의 삶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형부의 고향이 시골인 야마가타 현인 덕에 열흘 간의 농촌 체험을 위한 휴가 행선지는 쉽게 정해졌습니다. 최근 들어 어렸을 적 일을 자꾸 떠올리던 그녀는 짧은 시골 …
Read More »원칙은 지속의 힘
어떤 분이 제게 왜 씬짜오베트남에 글을 쓰는지 물었습니다. 아마 기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생각하신 듯합니다. 물론 계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 일을 계속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이 험한 강호와 같은 무가교민지 시장에서 그나마 씬짜오베트남이 원칙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원칙은 경기의 룰과 같습니다. 그런데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베트남 …
Read More »사이공의 그래피티 또는 낙서
‘그래피티(graffiti)’라는 예술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래피티는 다양하게 불리는데 거리 미술이라 하거나 도시예술이라고 의미가 확장되어 불리기도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단순히 벽 그림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옳을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프레이 아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주로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이나 문자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업적 광고가 만들어낸 별칭이기에 그리 탐탁치 않지만요. 그래피티가 여러 용어로 불리거나 해석되는 것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성격의 …
Read More »한국어는 제 1외국어
제목으로 삼은 ‘한국어는 제1외국어’ 라는 표현이 사뭇 생소합니다. 우리가 아는 제1외국어는 그냥 ‘영어’ 였습니다. 지금은 유치원 이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는데 저는 중학교에 와서야 다른 나랏말로 영어를 처음 대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니 제2외국어라는 교과과정이 있음도 알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독일어와 일본어 중에 선택하도록 했는데 저는 독일어를 택했습니다. 지금도 정관사 변화, 부정관사 변화를 암송할 …
Read More »그 너머
직원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개발회사의 주요 파트너가 회사를 옮긴다고 합니다. COVID-19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업의 발굴이 어렵다 보니 눈치가 보이고 기회가 생기니 하루라도 빨리 이직을 하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허나 회사로는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어렵게 일궈낸 현지 비즈니스 파트너가 떠난 다니요. 이제야 한두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거래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문이 닫히는 …
Read More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하늘이 어둑어둑해 집니다. 곧 비가 내릴 모양입니다. 열대몬순의 비는 어김없습니다. 바람을 보내 길을 준비하고 일시에, 그리고 강하게 대지를 뒤덮습니다. 전광석화같이 빠르게, 적의 예봉(銳鋒)을 여지없이 꺾어 버리는 질풍노도의 강력함으로. 사이공의 대지는 벼락 같이 덮치는 비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잠자던 땅 아래의 물까지 하늘의 물과 합세하여 순식간에 땅을 덮습니다. 도로가 …
Read More »굿바이 레이먼드
6.25 전쟁은 우리에게 아픈 상처이지만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립니다. 약 30만 명의 병력이 투입되고 그 가운데 약 3만 7천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미국임에도 전쟁의 의미가 축소된 채로 여겨지는 것을 보면 의아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제2차 대전이라는 세계적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발발한 전쟁이었기에 주변 강대국들에게 있어 …
Read More »아들의 귀환
반지의 제왕 시리즈 마지막 편이었던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은 너무나 인상 깊었습니다.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당시 흥행 수익으로 세계 2위를 기록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반지의 제왕은 J.R.톨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제작된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피터 잭슨이라는 감독의 이름과 함께 판타지 영화를 역대급 영화의 수준으로 높여준 작품이었습니다. ‘반지 …
Read More »팬이 되었습니다
간만의 휴일을 맞았습니다. 제대로 게으름을 떨어 보겠다 작심하고 침대를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몸을 바로 했다 뒤집었다 방정을 떨었지만 찌를 듯 날카로운 사이공의 햇살, 스멀스멀 들어오는 열기가 기어코 몸을 일으키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노트북도 핸드폰도 열지 않겠노라 다짐했는데 딱히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뉴스 정도는 봐야겠지 싶어 콘텐츠 목록을 살피는데 눈에 …
Read More »스파이더맨
나는 스파이더맨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나의 영웅이었습니다. 별딱지에 그려진 스파이더맨 때문에 치지도 않는 딱지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슉, 슉, 입으로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손바닥을 뒤집어 거미줄 발사하는 시늉을 하며 사촌동생들과 함께 동네 골목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물론 단지 나이가 나보다 어리다는 이유로 사촌동생들이 빌런 역할을 해야 했음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
Read More »호찌민과 서울 사이에는 무엇이 있나
우리 회사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보낸 직원이 있습니다. 일년 여 파견 나와있던 한국 본사의 총각과 우리 현지법인의 베트남 처녀 사이에 찌리릿! 전기가 통해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때아닌 혼주가 되어 한국의 혼례식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또 석사과정의 공부를 위해 한국으로 보낸 직원도 있습니다. 제게 좋은 계기가 있어서 모교 대학원에 장학생으로 도시계획을 공부할 …
Read More »건강이 제일?
갑자기 허리가 아파왔습니다. 3주 전 저녁 손님들과 더불어 식사하며 환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 다음 날부터 허리 통증이 심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자리가 양반자세로 앉는 곳이었는데 지속된 불편한 자세가 이유였던 듯합니다. 머리를 감고 옷을 갈아 입기도, 출근을 위해 차를 타고 오를 때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먼 거리의 행사는 취소해야 했습니다. 디스크일지 모른다고 하루하루 염려를 키워가는 …
Read More »길이 막히면 창밖을 보세요
십년 전에 응우옌흐우까인 거리에 가면 도로가 뻥 뚫렸었습니다. 랜드마크로는 유일하게 마노(The Manor Apartment) 정도 꼽을 수 있었습니다. 사이공대교를 건너 2군으로 가면 더욱 황량했습니다. 투티엠은 습지여서 웬만해서는 가 볼 엄두도 못내었지요. 지금은 MM메가마켓으로 바뀐 메쪼(Metro) 쇼핑센터 만이 그나마 2군 개발지역의 주인처럼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시를 이해하는 일이 보다 단순했습니다. 그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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