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아들과 함께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았습니다. 당시에 제법 입소문을 탔던 뮤지컬이었고 내용도 좋았던 터라 아이와 함께 보기로 했던 것이죠. 시간이 꽤 지나 극의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아들이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습니다.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아들의 무게가 전해졌습니다. 작은 덩치가, 조그마한 머리가 묵직하게 어깨를 누르고 가슴을 밀고 내 안의 깊은 어딘가를 지긋이 눌러왔습니다. 눌려 우묵 해진 자리에서 생각이 흘러나왔습니다. 아이가 자라 청년이 되었을 때 그는 자기의 아버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그가 아이를 갖고 아이와 더불어 어딘가를 찾아 함께 했을 때 그는 그의 아버지를 어떻게 떠올리게 될까요? 두터운 추억의 더미로 덮인 책장을 넘기 듯 상념에 빠질까요? 혹은 아무 기억의 자취도 남기지 못한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 탐욕의 전쟁은 멈춰야 한다
탐욕의 전쟁은 멈춰야 합니다. 무력으로 억압하는 모든 행위는 멈춰져야 합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침공(侵攻)’입니다. 약 두 달 전의 일입니다. 전쟁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침공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침략을 의미합니다. 공격하는 측의 도덕적 명분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 사태가 딱 그렇습니다. 하기야 전쟁을 벌이는데 ‘도덕적’ 명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음을 살 일이기는 합니다. 명분이란 게 포장일 뿐 속셈은 항상 다른 곳에 있는 법이니까요. 전문가들은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도로 촉발되었다고 합니다. 크림반도는 2014년 러시아에 합병되었고 돈바스는 친러 반군의 활동으로 내전이 끊이지 않던 터라 이런저런 이유가 얽혀 나토 가입을 추진했지만 이를 불안히 여기던 러시아를 가만 있지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우아베 당모베
‘우아베 당모베’는 마술 주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베트남, 당신이 모르는 베트남’이라는 말의 축약어로 작년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본사 방문 시에 가진 세미나의 제목입니다. 우리가 베트남을 잘 아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바로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사업이나 생활로 오랜 시간 머무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뭘 좀 아는 것 같지만 일을 당해보면 밑천을 금세 드러내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자기가 보았거나 경험한 정도 외에는 알지 못해서입니다. 그래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적인 관계의 일이라면 어쨌든 문제가 될 게 없습니다. 문제는 의도를 가지고 편협한 지식과 일면의 경험을 가지고 마치 전체의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이들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실을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베트남 타임, 코리안 타임
다낭에서 우리 현지법인과 협력하는 부동산개발회사의 10주년 창립기념식 행사가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고 회사의 베트남 디렉터와 함께 다낭으로 가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식은 오후 5시에 시작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호찌민시에서 수많은 행사에 참여해 본 경험 상 정시에 식이 시작되는 경우란 없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으니까요. 결혼식 피로연이 특히 그랬습니다. 6시 시작한다고 하면 7시면 다행이고 그 시간도 넘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어디에서고 가장 먼저 참석하는 축에 속하니 텅 빈 식장에서의 뻘쭘한 기다림은 항상 저 같은 외국인의 몫이었습니다. 그러니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라도 시간을 지켜야지, 그래도 직원이 같이 가니까…, 하는 설득력 없는 이유들을 챙겨가며 행사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아, 그런데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친구‘親舊’
얼마 전 저녁식사를 겸한 모임 자리가 있었습니다. 드물게 식당이 아닌 집으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멋진 분위기였습니다. 짧아 아쉬운 피아노 연주도 들었습니다. 시간이 어찌 흐르는지도 모르게 병은 비고 웃음으로 빈 공간을 채워 가며 잔의 수를 늘려갔습니다. 업무로도 고향으로도 아무런 접촉점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년배도 아닙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찾을만한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 모임을 나가면 문제가 벌어지곤 합니다. 젠 체하기 좋아하고 잘 어울리지 못하는 제가 유독 그 모임에서는 실수다 싶을 정도로 먼저 흥에 취해 버립니다. 아무리 단단히 무장을 해도 금새 해제되어 실없는 소리를 연신 웃음에 달고 쏟아내게 됩니다.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시는 음료에 무얼 타는 것도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삼십 년
직장생활이 올해로 30년을 넘겼습니다. 1992년 1월 1일자로 첫 사령장을 수령했을 때만해도 이 생활을 이토록 오래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면 독립해서 아뜰리에를 꾸리며 나름의 건축관을 세워가리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은 계획한대로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했을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잠언의 말이 딱 맞습니다. 내 앞의 길이라고 해서 내 맘과 뜻과 계획대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사건을 겪고 마음과 생각이 변하면서 모든 길의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유학을 고민하다 2, 3년 몸 담을 요량으로 대형조직설계회사를 들어간 것이 결국 이 자리에까지 이르렀으니까요. 마치 북경의 나비가 날개를 쳐서 일어난 바람이 LA에 허리케인이 되어 불어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어떤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니?
중학교에 입학해 보니 일년 내내 학교의 선생님들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범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이 졸업 전 한달 동안 현장실습을 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교생실습 제도입니다. 제가 다니던 시골 중학교에는 청주사범대학의 대학생들이 교생으로 왔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과 학교에서의 어떤 이유로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기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다닐 때마다 그 분이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좌판 노점상 또는 불구의 지체로 구걸하는 어떤 분을 맞닥뜨렸을 때와 같은 경우였습니다. “무슨 생각을 해?” 열 세 살의 소년에게는 버거운 질문이었습니다. 대개의 경우에 생각은 커녕 그 자리를 면하고 싶은 불편한 장면들이기 십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생각을 하는 것은 관심과 연결된다는 것을 그 후에 한참을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작심 3일, 30일, 3개월
베트남에 산 날이 오래될수록 피하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오래 계셨네요. 그럼 베트남어를 잘하시겠네요?” “….” 묵묵부답일 수밖에 없던 질문, 바로 그것입니다.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학생들을 보면 공부한 지 불과 3, 4년 임에도 정말 한국어를 잘합니다. 그 학생들이 똑똑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한국어가 워낙 탁월하여 배우고익히기에 쉬워서 일까요? 저도 베트남어를 무지무지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한 때’ 였지만요. 베트남에서 맺은 첫 노동계약서의 잉크가 마르기 전이였음에도 일을 하려면 말을 먼저 익혀야겠다는 당찬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에 다른 나라에서 근무할 때 겪은 소홀함의 후회가 겹겹이 쌓였던 터라 체재 기간이 어찌 되든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딱 6개월이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남보다 일찍 출근해 연습하고 저녁에는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 수고하셨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16대 호찌민 한인회장 선거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후보가 단독 후보였다고 합니다. 자동 당선이므로 선거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구한 한인회 역사(?) 가운데 말 없고 탈 없던 때가 거의 없었는데 선거가 사라지니 예전 같으면 덩달아 시끄러웠을교민사회도 조용했습니다. 시끄러웠다 하는 것도 어폐가 있습니다. 그들만의 잔치였으니 방 안의 세숫대야에 담긴 물이 출렁이는 것과 같은데 이를 두고 교민사회 전체를 운운하는 것도 지나친 표현일 듯 합니다. 그럴지라도 선거와 더불어 후보의 검증절차가 어떻네, 자격조건이 되네 마네, 또는 선거 과정에 문제가 있네 없네 하며 교민지에 오르내리던 단골 이슈들도 사라진 듯하니 신기합니다. 혹은 저만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코로나바이러스 영향도 있었을 테고요. 한인회장 자리가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슬기로운 격리생활
창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나갈 수도 없습니다. 빼꼼히 문을 열고 내다보니 복도에 바람만 가득합니다. 비어 있는 듯 보이지만 밖으로 나서면 소독제통을 맨 파란색 방호복으로 무장한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옵니다. 문 앞에는 방번호가 붙은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있습니다. 그렇게 창 밖 풍경을 벽에 걸린 그림 보듯 입국 후 호텔격리생활을 맞았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르쳐 준 것이 많습니다. 당연히 여기던 일상이 당연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우친 일을 첫 손가락으로 꼽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일들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이 무너진 것은 충격인 동시에 최고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사는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있음도 드러내 줬습니다. 위기 가운데 시간과 재물을 희생해가며 다른 이들을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다섯 번째 책을 손에 들고 다섯 번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표지에는 ‘Park tiên sinh sống giữa Sài Gòn’ 이라는 제목이 베트남어로 인쇄되어 있습니다. 베트남 출판사에 의해 베트남어로 번역된 책이기에 그렇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느낌이 손가락 끝을 저리게 합니다. 지금껏 ‘몽선생의 서공잡기’란 책으로 시작해서 소설 ‘크룩스크리스티’와 ‘베트남, 체제전환국가에서의 도시개발’이라는 전문서적에 짧은 동화 한 권을 얹어 모두 네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입니다. 그러고보니 작년에만 두 권의 책을 내어 놓았습니다. 그간 정리해 둔 원고와 논문을 쓰기 위해 공부하던 내용들을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쉬운 문체로 정리한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COVID-19가 준 선물입니다. 애쓴다 해도 일을 하기 어려웠던 2020년, 시간을 만들어 낼 필요도 없이 원고 정리에 몰두할 수 있었음은 지나보니 선물과 같았습니다.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추억은 방울 방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오카지마 타에코는 평범한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입니다. 그녀는 평소에 그리던 시골생활을 위해 휴가를 얻어 떠납니다. 그녀는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시골의 삶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침 형부의 고향이 시골인 야마가타 현인 덕에 열흘 간의 농촌 체험을 위한 휴가 행선지는 쉽게 정해졌습니다. 최근 들어 어렸을 적 일을 자꾸 떠올리던 그녀는 짧은 시골 생활이었지만 사람들과 만나고 생각과 마음을 나누면서 어린시절의 추억, 기쁨과 슬픈 일들, 후회, 그리고 풋풋한 사랑의 기억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런 그녀를 통해 우리의 성장을 일상의 추억으로 보여줍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추억의 방울방울(おもひでぽろぽろ)’의 대략의 줄거리입니다. 애니메이션의 배경은 1980년대의 일본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고도 성장기를 맞은 일본 도쿄에서 사는 이 여성의 이야기는 동시대 일본인들에게 지난 시절인 1960, 70년대에 …
Read More »원칙은 지속의 힘
어떤 분이 제게 왜 씬짜오베트남에 글을 쓰는지 물었습니다. 아마 기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생각하신 듯합니다. 물론 계기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 일을 계속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이 험한 강호와 같은 무가교민지 시장에서 그나마 씬짜오베트남이 원칙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원칙은 경기의 룰과 같습니다. 그런데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베트남 사회에서 원칙을 세우고 지키는 일은 때로 자해행위가 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일하는 한국계 건설시장에서는 무원칙의 예가 흔하다 못해 관례 같아졌습니다. 원칙은 사라지고 정글게임이 정상인 듯 여겨져 갑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기 얼마전 인근 성의 한 건설현장에서 공사 중이던 벽이 무너졌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은 사고였습니다. 사건이 위중한지라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가 오랫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에 관계된 …
Read More »사이공의 그래피티 또는 낙서
‘그래피티(graffiti)’라는 예술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래피티는 다양하게 불리는데 거리 미술이라 하거나 도시예술이라고 의미가 확장되어 불리기도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단순히 벽 그림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옳을 때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프레이 아트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주로 스프레이 페인트로 그림이나 문자를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업적 광고가 만들어낸 별칭이기에 그리 탐탁치 않지만요. 그래피티가 여러 용어로 불리거나 해석되는 것은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성격의 다양성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래피티는 화실이나 전시장과 같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제도권의 예술이 아니라 공간의 제약이 없는 ‘거리의 예술(street art)’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피티에 심취한 어떤 부류는 미술의 기원을 그래피티에서 찾기도 합니다.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나 고대 이집트의 벽화가 모두 그래피티에 속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뿐 아니라 자유로운 공간으로부터 전시장이라는 제도와 액자라는 공간으로 한정되기 전까지의 모든 미술 활동, 예를 …
Read More »한국어는 제 1외국어
제목으로 삼은 ‘한국어는 제1외국어’ 라는 표현이 사뭇 생소합니다. 우리가 아는 제1외국어는 그냥 ‘영어’ 였습니다. 지금은 유치원 이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는데 저는 중학교에 와서야 다른 나랏말로 영어를 처음 대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가니 제2외국어라는 교과과정이 있음도 알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독일어와 일본어 중에 선택하도록 했는데 저는 독일어를 택했습니다. 지금도 정관사 변화, 부정관사 변화를 암송할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대학입시는 영어로 보았습니다. 제2외국어로 시험을 택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제1외국어를 입시 과목으로 정했습니다. 그러고보니 왜 그렇게 2 외국어를 열심히 했나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제1외국어가 갖는 위상이 있으니까요.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을 보니 다른 것 같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한국에서 영어는 부동의 제1외국어입니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한국어가 제1외국어가 되었답니다. 반갑지만 참 …
Read More »그 너머
직원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개발회사의 주요 파트너가 회사를 옮긴다고 합니다. COVID-19 때문입니다. 새로운 사업의 발굴이 어렵다 보니 눈치가 보이고 기회가 생기니 하루라도 빨리 이직을 하는 것이 현명하겠지요. 허나 회사로는 당혹스러운 일입니다. 어렵게 일궈낸 현지 비즈니스 파트너가 떠난 다니요. 이제야 한두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거래의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는데 말입니다. 문이 닫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호찌민시에 총리령 16호가 발효되었습니다. 강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재개된 이후로 씬짜오베트남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인쇄소의 가동 일정을 예측할 수 없었고 배포처로써 중요한 매개가 되던 교민사업장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도 교민정보지로서의 역할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우편과 온라인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던 배포방식은 코참의 회원사, 개인 회원 등 특정 …
Read More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하늘이 어둑어둑해 집니다. 곧 비가 내릴 모양입니다. 열대몬순의 비는 어김없습니다. 바람을 보내 길을 준비하고 일시에, 그리고 강하게 대지를 뒤덮습니다. 전광석화같이 빠르게, 적의 예봉(銳鋒)을 여지없이 꺾어 버리는 질풍노도의 강력함으로. 사이공의 대지는 벼락 같이 덮치는 비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합니다. 잠자던 땅 아래의 물까지 하늘의 물과 합세하여 순식간에 땅을 덮습니다. 도로가 강을 이루고 빈 땅이 호수가 됩니다. 하지만 도무지 그치지 않을 듯한 비도 시간이 차면 일시에 멈춥니다. 그리고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 미련없이 툴툴 털며 다시 등장하는 태양에게 길을 비켜줍니다. 쎈 놈인데 쿨~하지요. 열대 국지성 집중호우인 스콜(squall), 거칠어 다루기 어려운 이 비의 선봉장은 바람입니다. 비가 올 때에는 바람의 형세가 먼저 달라집니다. 불던 …
Read More »굿바이 레이먼드
6.25 전쟁은 우리에게 아픈 상처이지만 미국에서는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립니다. 약 30만 명의 병력이 투입되고 그 가운데 약 3만 7천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미국임에도 전쟁의 의미가 축소된 채로 여겨지는 것을 보면 의아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제2차 대전이라는 세계적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발발한 전쟁이었기에 주변 강대국들에게 있어 한반도 밖으로의 확전은 안된다는 무언의 약속이 작용했던 이 전쟁의 성격을 알고 보면 나름 이해가 갑니다. 유엔이 결의하여 참전한 첫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극동에서의 국지전, 제2차 대전의 부속 전쟁, 혹은 냉전의 잔존물 같이 여겨진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입니다. 승리도 패배도 아닌 휴전이라는 어정쩡한 종결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요. 당시의 분위기에 대하여 한국전 참전용사협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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