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속한 작은 모임 하나가 있습니다. ‘공동체’라 부릅니다. 공동체는 공통의 가치,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일컫는 용어이니 사회문제에 대하여도 같은 관심사를 갖기 마련입니다. 이 공동체의 일 가운데 사람과 지역을 돕는 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공동체에서는 이에 대해 ‘섬김(service)’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어디에 광고할 만한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호찌민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자그마한 한국인 커뮤니티로서 베트남 사회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정도입니다. 공동체의 섬김은 지금까지 세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나는 심장병 등으로 고통받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단체를 통한 긴급 지원입니다. 기껏 두 세 차례에 불과했지만 우크라이나 난민 문제나 튀르키예 지진으로 인한 어려움을 돌아본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나이를 끌어안다
‘오십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는 제목의 책을 읽었습니다. 내용은 한마디로 별 볼 일 없었는데 일본에서 유명세를 탔다는 광고에 무어라도 나올 줄 알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지만 읽는 내내 어쩐지 한심한 생각이 드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건진 게 있다면 나라면 나의 오십 대를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는 점일 겁니다. 저자인 사이토 다카시 씨도 오십 대 후반에 이 책을 썼는데 그에 의하면 자기 나이대를 당당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고 싶어서 이런 책을 썼다고 합니다. 나이 얘기가 나오면 곧바로 소환되는 것이 공자입니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이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로부터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 유산(遺産)
어릴 때는 설날이 되면 마냥 신이 났습니다.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설빔을 차려 입고 풍성한 먹거리와 오랜만에 친척 형제자매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세배를 하면 할수록 두둑해지는 주머니에 흐뭇해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세뱃돈을 받는 입장에서 달려 드는 조카들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 입장으로 변한 때부터였습니다. 결혼 때를 지나친 사촌 형, 취업을 못한 동생들에게는 더욱 달갑지 않은 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기쁨이라는 게 남아 있었습니다. 가능성이라는 미래가 젊음이란 이름으로 우리 삶에 살아 꿈틀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친지 어른들의 걱정과 타박 속에도 간만에 만나는 또래 사촌들과 어울리며 니캉내캉 주고받는 우리만의 설풍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진격(進擊)!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을지라도 ‘다윗’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골리앗’이라는 거인에 맞싸웠던 소년 다윗의 서사는 시대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 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지금으로부터 삼천 년 전 팔레스타인의 시골 양치기 소년이 돌팔매질로 위대한 전사를 쓰러뜨린 내용은 모두를 흥분하게 합니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동화와 같이 회자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기는가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극복할 수 없어 보이는 거인 앞에 선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극복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에베스담밈의 엘라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이동해 봅시다. 골짜기 중간쯤 건너 시냇가에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한 번 더 해보자고, 한 걸음 더 가자고
휴일을 맞아 청소를 했습니다. 집안 일의 노고를 덜어줄 생각이었는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티가 나지 않습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다시 해? 아님 말아? 문득 초등학교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새로 학기가 시작되면 교과서를 지급받는데 책을 깨끗하게 사용하려고 따로 커버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후에 비닐 커버가 나왔기에 책 표지 싸는 일이 수월해졌지만 그 전에는 해 지난 달력으로 책을 감싸곤 했습니다. 이것도 작업이라고 헌 달력, 가위, 자를 앞에 두고 재단을 해가며 나름 고생을 했는데 일의 클라이맥스는 하얀 달력 포장지 위에 과목의 이름을 쓸 때였습니다. 깔끔하게 표지를 싼 후 교과서 제목을 단번에 멋지게 쓸 수도 있지만 어떤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부자되세요
새해 인사 가운데 최고로 인기를 누리는 덕담이 있습니다. ‘부자 되세요’가 그것입니다. 부자가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부자라 하면 돈이 많은 상태를 일컫습니다. 무얼 하든지 주저하거나 따질 것 없이 가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세상이 모두 ‘경제’, ‘경제’하며 돈에 목을 매는 때에 부자로 산다는 건 세상을 통제하는 중심 원리의 영향을 벗어나 테두리 바깥에 자유로이 머문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부류는 불황이면 불황인 대로, 활황이면 활황인대로 그저 ‘굴리면’ 됩니다. 내가 써 줘야 막힌 데가 좀 풀리는 거라 하면서요. 누가 말하길 한국은 돈만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 저 나라 다녀보니 돈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다 살기 좋은 나라가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 당신, 오늘 성공했네!
‘성공한 건축가가 되고 싶다. 그렇다면 성공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정상에서 얻어지는 영예가 아니요, 다만 일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격려이고 칭찬이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한창 건축에 대해 꿈을 꾸던 때에 적어 두었던 메모를 오래된 노트에서 발견하였습니다. 제대로 기억 나지 않지만 성공이 무얼까, 어떤 길을 걸을까, 꽤나 고민하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그 때 ‘성공한’이라는 표현을 지우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목표할 대상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성공’이란 말을 쓸 때 사회적으로 또는 경제적인 성공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유명해지거나 힘(권력) 있는 자리에 오르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사전적으로 성공의 의미는 단순합니다. 재물과 명성뿐 아니라 목적하는 바, 뜻하는 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가 무엇을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걸어보지 못한 길
베트남에 진출한 지가 어느덧 십 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텅 빈 사무실에 두 사람이 동그마니 앉아있던 조직은 북적대기 시작했고 이제는 베트남의 개발사들이 먼저 연락을 줄 정도의 지명도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본사의 대표이사는 세 번 얼굴을 바꾸었고 조직도 해외사업본부를 거쳐 자회사로서의 위치를 갖게 되었으니 변화가 많았던 셈입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이루어진 해외법인의 평가와 연말의 이사회는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고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였으며 어떤 점들을 보완해야 하는가를 정리해 본 기회였습니다. 동시에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미리 가늠해 본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지나온 길은 정리하고 평가하면 될 일이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 한 걸음 더, CSR
본지 제469호(2022.08.14 발행)에 소개되었던 제1회 베트남학생건축문화대상의 작품접수가 마감되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열 다섯 팀의 작품들이 심사대에 올라 경쟁했습니다. 준비로 치면 9개월만이었고 학생들에게는 2개월 간에 걸친 설계경쟁의 마무리였습니다. 9월 27일 심사장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건축학과, 인테리어학과, 한국어학과의 교수들과 정림건축의 건축가로 구성된 심사진은 보다 나은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학생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선정된 작품들은 일정 기간 동안 전시가 될 것이고 시상식으로 행사의 클라이맥스를 이룰 것입니다. 한 해에 걸친 행군의 마지막 종착점이 건너다 보입니다. 어쩌면 행군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합니다. 하지만 무모했습니다. 걸어야 하는 이들은 왜 걸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교수들을 독려하고 학생들에게 이 설계경기의 의의와 개념을 설명하기에도 벅찼습니다, 회사의 경영진을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 행복의 집
‘행복의 집(Nhà Hạnh Phúc)’이라는 곳이 호찌민시 한 구석에 있습니다. 어느 선교사 분을 통해 소개받은 시설입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지만 고아원도 아니고 정부로부터 인가된 시설도 아닙니다. 그 선교사 분은 제게 시설과 아이들을 돌보는 현지인 목사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해 주셨지만 그 날 이후 단 한 번도 다시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마치 계주를 하며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건네 주는 것처럼 저에게 넘겨준 것은 아닐까 했습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요. 그럼에도 저와 이 시설과의 관계가 햇수로 사 년에 이르고 있습니다. 행복의 집이라고 불리는 이 시설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첫 인상은 전혀 행복해 보이지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결핍의 유익
“1418년부터 1450년까지 흑점 기록이 하나도 없다. 또한 그때를 전후로 150년간 흑점 기록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박사는 이 시기가 소 빙하기와 일치하는 때로, ‘태양 활동이 매우 적었고 일조량이 적어 농사 짓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세종 시대는 가뭄의 연속이었다.” 위 내용은 KBS 한국사傳 제작팀이 쓴 『한국사傳3』(한겨레 출판 245~247쪽)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태평성대를 누렸을 것 같은 세종대왕의 재위 시대에는 사실 기후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세종이 임금으로 즉위한 이후로 약 10여년간 단 한 해도 가뭄이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전합니다. 『세종실록』에는 이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흙을 파먹고 연명하는 백성들이 있었을 정도라 하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기록으로 보면 세종 6년에는 가뭄 때문에 강원도 전체 가구의 3분 1이 사라지고 농토의 절반이 폐허가 되었다 합니다. 농업 국가였던 조선에 가뭄으로 흉년이 장기화되었다는 것은 국가적 위기를 맞았음을 뜻합니다. 지금 같으면 경제가 어려워 민생이 파탄 났다고 광화문에서 촛불 들고 대통령 탄핵을 외칠 만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니 임금이 된 세종이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요? 세종 임금은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거처하던 강녕전을 버리고 경회루 한쪽에 초가집을 짓고 2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기우제를 드리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이 이런 이유입니다. 그가 앓았던 온갖 병의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여행, 불안정을 사랑하다
사막에 가고 싶습니다. 뜨거운 땅. 모래와 적막이 머무르는 곳. 열기를 담은 바람이 땀을 메마르게 하는, 하루를 다해 걸어도 자신의 자취 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곳. 지나온 기억 마저도 바람이 지우는 곳. 사막에 가고 싶습니다. 남극에 가고 싶습니다. 차가운 땅. 얼음과 눈보라가 불어오는 곳. 냉기를 담은 바람이 칼이 되어 살을 찌르는, 하루를 다해 걸어도 자신의 지난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곳. 지나온 기억 마저도 눈보라에 묻히는 곳. 남극에 가고 싶습니다. 바이러스에 꽁꽁 묶여 있던 세상이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항공편마다 만석이 되고 여행지마다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갇혔던 심장들이 펄떡이며 숨 쉴 곳을 찾아 다닙니다. 사막을, 남극을, 그 어디라도 다시 꿈 꿀 수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부자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먼저 자리를 잡은 분들에게서 부러웠던 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중요한 위치의 베트남 사람들을 알고, 주변 사람들의 힘을 빌어 문제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인적 네트워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또 신기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네트워크라는 게 시효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현직에서 물러날 때였습니다. 계급장 떼고 붙자는 표현을 아실 겁니다. 군대에서는 명령에 의한 위계, 상명하복의 원칙을 벗어날 길이 없으니 상관의 명령에 반발하는 길은 그 계급 문화의 상징인 계급장을 떼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계급이 깡패라는 속어처럼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걸친 옷의 계급이 주는 권위가 무서운 것이니까요. ‘부자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A rich …
Read More »몽선생(夢先生)의 짜오칼럼 – 행성 S4077VEGA
우주력 20IIVIIXVIII년 마침내 우리는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S4077VEGA에 착륙하게 된다. 천문학자들이 이 별을 발견했을 때 항해자들은 이를 ‘Terminus’라고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 별의 지적 존재들-자신들을 ‘인류’ 또는 ‘사람’이라고 부르는-이 말하듯 ‘지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더욱 좋아했다. 지구 시간으로 약 일 년에 걸쳐 나와 승무원들은 지구에 대한 이해를 갖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해왔다. 지구에 머무르며 조사를 수행한 선발대의 희생 어린 수고가 없었다면 이런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지구 안내서’라고 불렀는데 여기에는 이 행성에 사는 여러 생명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다양했다. 동물이라고 불리는 움직이는 탄소화합물 기반의 유기체가 있었고, 식물이라 불리는 고착 생명체가 있었다. 개체수로는 곤충으로 불리는 엄청난 수와 종류를 가진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음식기행
‘기행(紀行)’이란 여행 중에 보거나 들은 것들, 체험하면서 느낀 것들을 적은 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기행, 기행문, 여행기, 여행문학은 모두 하나의 문학 양식으로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간혹 글이나 TV와 같은 매체에서 문학기행, 역사기행, 생태기행 등과 같은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만일 기행을 여행 중의 견문을 기록한 것이 아닌 여행 자체로 표현했다면 이는 잘못된 용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기행=여행’이 아니고 ‘기행=여행문(글)’이라는 것이지요. 왜 이런 재미없는 얘기로 시작하느냐 하면 이 칼럼의 제목을 ‘음식기행’으로 잡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제목을 붙이려면 음식 또는 음식점들을 찾아 다니며 눈으로 보고, 맛으로 느낀 것을 적은 글이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이 글의 내용으로는 음식 여행이라는 뜻에 더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청년들에게
한 때 호찌민 거리에 한국 청년들이 눈에 치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청년 실업이 사회 문제화되자 많은 한국 기업들이 활동을 하는 베트남이 대안으로 급부상했습니다. 제 메일계정으로도 한 달에 두세 번은 청년 취업과 관련된 소개 메일이 들어오곤 했습니다. 거기에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소정의 언어 교육을 마친 청년들의 프로필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을 계약직으로 우선 채용하고 서로 간에 합이 맞으면 정직원으로 채용하는 구조였습니다. 대학교에서 직접 안내문을 보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졸업예정자들을 소개함은 물론 학교가 이들의 자질을 보증한다는 문구도 빠지지 않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 입국하는 가장 적극적인 케이스는 아예 베트남으로 유학 와서 대학생활을 하고 현지에서의 취업을 꾀하는 경우입니다. 대학 졸업장과 취업의 두 가지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우리는 나아지고 있을까
‘메타버스’는 최근의 핫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개념은 원래 1992년 미국의 SF작가인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가상’, ‘초월’의 의미를 갖는 ‘메타(Meta)’와 ‘우주’ 또는 ‘세계’을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입니다. 메타의 세계로 버스를 타고 넘어가는 구나 우스개를 해도 그리 틀린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그 버스가 그 버스는 아니겠지만요. 주로 SF물에서 거론되기 시작하더니 다양한 방면으로 두루 언급되고 있습니다. 성공한 영화로 거론되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에서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다루면서 혼동하는 분이 있는데 이와는 다른 얘기입니다. 그리고 보니 왠 버스가 이리 많나 싶기도 합니다. 메타버스는 가상의 세계에서 자기를 대체하는 아바타를 이용하여 실제 현실과 같은 경제, 사회, 문화적인 활동들을 벌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
Read More »몽선생( 夢先生)의 짜오칼럼- 폭우라도 하늘 전체를 덮지 못한다
거실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노라니 생소한 느낌이 듭니다. 거실 전체를 채우고 있는 유리창으로 거리의 풍경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큰 길 건너 공사 현장도 여전하고 사철 하얀 꽃망울을 커다랗게 피우고 있는 꽃나무도, 타는 듯이 쏟아지는 노란 햇빛도 그대로입니다. 심지어 언제쯤 달리게 될 지 해마다 시험운행을 미루고 있는 비어 있는 메트로 1호선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때와는 같은 듯 달랐습니다.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은 작년의 일입니다. 그 때에 저 큰 길을 달리던 오토바이와 차량은 멈췄고 사람들의 모습은 철망과 바리케이드 뒤로 자취를 감췄었습니다. 그때 나는 바깥 출입도 할 수가 없어 감옥에 들어 앉은 수형자처럼 이렇게 앉아서 거실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가끔씩 날아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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