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 위의 만찬, 지상의 맛을 담다-
호찌민의 미식 지형도가 또 한 번 흥미로운 변화를 맞았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네펠레(Nephele)가 단 8개월 만에 미슐랭 셀렉티드 2025(MICHELIN Selected 2025)에 선정되며, 베트남 파인다이닝계의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구름의 님프에서 이름을 따온 이 레스토랑은, 마치 구름처럼 가볍고 몽환적이면서도 땅의 진한 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역설적 매력으로 식도락가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불과 함께 춤추는 요리사
네펠레의 중심에는 셰프-파트론 프란시스 투안 트란(Francis Thuan Tran)이 있다. 본명이 투안 트란(Thuận Trần)인 그는 다클라크(Dak Lak)성 부온마투옷(Buon Ma Thuot) 출신으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가 우연히 주방에 발을 들인 비전형적 경력의 소유자다. 2016년부터 태국과 네팔을 포함한 글로벌 팝업 다이닝에 참여하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트레킹하는 등 모험적인 여정을 통해 식재료에 대한 독창적 철학을 구축했다.
그의 요리 철학은 명확하다. 베트남 전통의 우드파이어 쿠킹을 통해 계절 식재료의 본질을 극대화하는 것. 레스토랑 중앙에 자리한 화덕은 단순한 조리 도구가 아닌, 그의 철학이 구현되는 무대다. 불의 원시적 힘으로 식재료 깊숙한 곳에 잠든 맛을 깨우는 과정은, 마치 연금술사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시간을 거슬러 온 빌라의 속삭임
빈탄군(Quan Binh Thanh) 응우옌 쿠우 반 거리(Nguyen Cuu Van Street) 125/12번지에 네펠레가 소재한 빌라는 아늑하면서도 공간이 넓어서 고객 1인에게 제공되는 공간이 넓은편이다. 인도차이나 아르누보 양식의 3층 건물은 각 층마다 서로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1층 에테리얼 바는 마치 오래된 친구의 응접실 같은 아늑함을, 2층 키친 홀은 도지(dó paper)로 드리워진 천장이 구름의 몽환적 느낌을 연출한다. 3층 프라이빗 다이닝룸은 10-12명의 소규모 모임을 위한 고요한 장소다.
(외부 모습)
(1층 에데리얼 바의 모습)
(2층 다이닝 홀의 모습)
(3층 프라이빗 다이닝룸)
7코스의 여정, 소스가 품은 이야기
네펠레의 시그니처 7코스 테이스팅 메뉴(290만 동++)는 베트남 고유의 식재료로 펼치는 감각적 여정이다. 이곳의 가장 독특한 매력은 손님이 미리 메뉴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치 신뢰하는 친구가 준비한 깜짝 여행을 떠나는 듯, 모든 것이 정교하게 짜여진 스토리를 따라 전개된다. 몇 가지 시그니처 요리를 제외하고는 매주 약 30%의 메뉴가 계절의 리듬에 따라 바뀌어, 재방문하는 손님들에게도 언제나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프란시스가 ‘요리의 영혼’이라 부르는 소스에 대한 집착이다. 각 접시마다 정교하게 설계된 소스가 모든 구성 요소를 하나로 묶어내며, 한 입 한 입이 생생한 감각적 경험으로 승화된다.
대표 요리인 ‘토마토(Tomato)’는 이러한 철학의 완벽한 구현체다. 세 가지 품종의 토마토를 각각 다른 방식으로 조리해 개성을 살린 뒤, 석탄에 구운 수박을 다시마에 재워 소고기 토마토와 함께 말아 스칼렛 번들을 만든다. 은두자(N’duja) 오일과 얼음 베르가못 그라니타가 어우러지며 단순함이 비범한 조화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시그니처 사워도우 브레드(Sourdough Bread)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예술작품이다. 36시간에 걸쳐 천천히 발효시킨 반죽을 숯불에 구워 겉은 바삭하게, 속은 촉촉하게 완성한 뒤, 현지 밀랍과 수제 블랙 트러플 버터를 곁들인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요리는 프란시스의 기법과 철학이 집약된 걸작이다. 오랜 숙성을 통해 육질의 깊이를 극대화한 비둘기는 우드파이어의 세심한 조절을 통해 완벽한 익힘 정도를 자랑한다. 한 입 베어물면 육즙이 터져나오면서 동시에 은은한 훈제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현지 꽃을 곁들인 스캘롭(Scallop with Local Flower) 역시 놓칠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바다의 단맛을 고스란히 간직한 스캘롭 위에 베트남 고유의 식용꽃을 올려 시각적 아름다움과 미묘한 꽃향을 더했다. 바다와 땅이 만나는 순간의 조화가 입안에서 펼쳐진다.
디저트는 다양하게 나오는 편이다. 특히 아이스크림과 더불어 나오는 캐비어는 베트남 고유감칠단맛을 느낄 수 있어서 잔맛과 단맛의 발란스가 은은하게 감돌면서 전체 코스의 완벽한 피날레를 장식하며, 이외에도 여러 다른 음식들이 나와서 식객의 마음에 만족감을 선사한다.
양고기(Lamb) 요리는 우드파이어 기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압권이다. 완벽하게 구워낸 양고기는 겉은 고소하게 캐러멜라이즈되고 속은 분홍빛을 유지하며, 양고기 특유의 풍미가 훈제향과 어우러져 깊은 맛의 층을 만들어낸다. 함께 나오는 소스가 양고기의 진한 육즙을 한층 끌어올린다.
와인잔 속에 담긴 마법
네펠레의 또 다른 핵심은 헤드 소믈리에 겸 제너럴 매니저 폴 보(Paul Vo)다. 올해 미슐랭 소믈리에 어워드를 수상한 그는 베트남에서 이 영예를 안은 유일한 소믈리에다. 사이공 소믈리에 협회 이사이자 콘소르티움 피노 그리지오 델레 베네치에(Consortium Pinot Grigio delle Venezie) 브랜드 앰배서더인 그의 이력은 화려하지만, 진짜 실력은 테이블에서 발휘된다.
폴의 진가는 프란시스의 복잡하고 소스 중심적인 요리와 와인을 페어링하는 섬세함에 있다. 두 액체 간의 조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는 손님과 몇 마디 대화만으로도 그 순간의 기분과 입맛에 맞는 완벽한 한 병을 선택해낸다. 샴페인, 부르고뉴,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클래식 지역을 중심으로 한 와인 리스트는 바이오다이나믹과 유기농 와인메이커들의 철학까지 담아낸다.
금년 미슐랭 소믈리에 어워드를 수상한 총지배인 폴 보(Paul Vo)
바텐더 헝 리(Hung Lee)가 운영하는 1층 에테리얼 바(Ethereal Bar)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경험이다. 마치 취향 좋은 지인의 집 거실에 초대받은 듯한 편안함과 고급스러움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는, 손님들을 진짜 소중한 손님처럼 맞이한다. 은은한 조명과 우아한 인테리어가 어우러진 이곳은 조용한 대화와 진중한 비즈니스 미팅, 그리고 문화적 담론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헝 리의 칵테일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선다. 잊혀진 클래식의 재해석을 통해 그의 장인정신과 창의적 영감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저녁 식사로 이어지는 전체 여정의 완벽한 프롤로그 역할을 한다. 친밀하면서도 격조 있는 분위기 속에서 칵테일과 대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이곳만의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바텐더 헝 리(Hung Lee)
구름 위에서 내려다본 새로운 지평
28석의 아담한 규모(월-토 18:00-23:00, 마지막 주문 20:30)는 각 테이블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하며, 그 결과 손님들은 마치 개인적인 초대를 받은 듯한 특별함을 경험한다. 290만 동이라는 가격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1:1 패키지 여행을 하는 느낌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깊이와 음식, 제공되는 술의 완성도를 고려할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네펠레는 단순히 먹으러 오는 레스토랑이 아니다. 이곳은 하나의 무대이고, 당신은 관객이자 동시에 주인공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든다. 쉐프 프란시스의 불과 식재료가 만들어내는 서사, 폴이 와인잔에 담아내는 감정의 흐름, 칵테일로 써내려가는 프롤로그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게 계산된 하나의 대본을 따라 전개된다. 고객으로써 네펠레를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은 단순한 포만감이 아니라, 네펠레의 팀이 들려주는 깊고 오래된 이야기와 그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