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금융 당국이 2026년 금융 정책의 키워드로 ‘안정’을 선택했다.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부실 은행(Weak Bank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실 은행 인수에 ‘자금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반면, 이번 정책의 수혜권 밖에 있는 한국계 등 외국계 은행들은 정부의 지원 사격을 받은 현지 공룡들과 더욱 힘겨운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12일 베트남 중앙은행(SBV, State Bank of Vietnam) 은행감독국에 따르면, 당국은 부실 금융기관을 의무적으로 인수한 은행들에게 전체 예금액 대비 지급준비금의 비율인 지급준비율(지준율)을 50% 감면해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대상은 ▲비엣콤뱅크(Vietcombank) ▲MB은행 ▲VP은행 ▲HD은행 등 현지 4개 은행이다.
이들은 각각 CB뱅크, 오션은행, GP은행, 동아은행 등 경영 난항을 겪던 부실 은행들을 인수하며 베트남 금융권의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이를 두고 “정부의 압박에 의한 울며 겨자 먹기식 인수”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당국은 ‘지준율 반값 인하’라는 확실한 보상책을 꺼내들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이 제안이 확정되면 해당 은행들은 현재 3%인 12개월 미만 예금의 의무적립금 비율이 1.5%로, 1%인 12개월 이상 예금은 0.5%로 대폭 낮아진다.
중앙은행에 묶여 있던 막대한 자금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대출 여력 확대와 조달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 즉, 부실 은행 정상화 비용을 은행 자체 수익으로 상쇄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베트남 정부가 2026년을 기점으로 금융 시스템의 체질 개선을 완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그간 베트남 경제의 뇌관으로 꼽혀온 부실 채권 문제와 좀비 은행들을 대형 우량 은행의 자본력으로 흡수·소화시켜 시스템 리스크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전략이다.
2025년 12월 31일 기준, 4개 은행의 총 대출 잔액은 약 42억 5천만 동(한화 약 2억 3,545만 원)에 달하며, 이는 전체 경제 대출 잔액인 185억 8천만 동(한화 약 10억 2,933만 원)의 약 23%를 차지한다.
현지 금융권 관계자는 “중앙은행이 개별 은행의 수익성 악화를 방지하면서도 국가 전체의 금융 불안을 해소하는 ‘핀셋 정책’을 폈다”며 “이는 올해 베트남 금융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외형적 팽창이 아닌 ‘내실 다지기’와 ‘건전성 확보’에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베트남에 진출한 신한베트남은행, 우리은행 베트남 등 한국계 은행들이다. 이번 정책은 철저히 ‘부실 은행을 떠안은 현지 은행’에 국한된다.
외국계 은행들은 부실 은행 인수 의무가 없는 대신, 이번 지준율 인하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표면적으로는 공평해 보이지만, 시장 경쟁의 관점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저원가성 자금을 확보한 현지 ‘빅4’ 은행들이 이를 무기로 대출 금리를 낮추거나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경우, 외국계 은행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 금융과 리테일 시장에서 현지 은행들과 치열하게 점유율 다툼을 벌이고 있는 한국계 은행들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비용 절감’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장착한 셈이 된다.
금리 경쟁력 확보와 순이자마진(NIM) 방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한국계 은행들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결국 2026년 베트남 금융 시장은 시스템 안정화를 꾀하는 당국의 의지 아래, 정책 수혜를 입은 현지 대형 은행과 맨몸으로 맞서야 하는 외국계 은행 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치열한 생존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