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이런 새로운 숫자를 맞이하면 한 해가 얼마나 빠른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이제 막 익숙해졌다 싶었던 2025를 떠나보내고, 다시 새로운 숫자를 몸에 익혀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해가 바뀌는 일은 더욱 각별해집니다.
젊은 시절엔 해가 넘어가도 마음에 크게 남지 않던 일이, 늙어갈수록 더욱 커다란 사건이 됩니다.
젊은 시절 ‘가계수표’ 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약속어음과 달리 은행이 보증하는 수표라, 소규모 사업자들은 어음 대신 이를 많이 사용하던 시절이었지요. 저 역시 작은 사업을 하며 가계수표를 쓰곤 했습니다.

그 시절, 지금도 기억에 남는 해프닝이 하나 있습니다.
해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외지에 나가 있는데 은행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제 가계수표가 들어왔는데 잔고가 없어 당일 마감 전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부도가 난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온라인 뱅킹이 없던 때라, 결국 1차 부도를 감수하고 다음 날 돌아와 돈을 구해 막았습니다.
이상한 건, 그 시점에 돌아올 수표를 쓴 기억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수표책을 확인해 보니 지불일은 아직 석 달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문제는 연도였습니다. 해가 바뀐 줄도 모르고, 익숙한 지난해 숫자를 그대로 써버린 것이지요. 그 수표를 받은 사람은 이미 기한이 지난 수표로 알고 은행에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 일로 저는 평생 처음 ‘부도 수표’와 형사기소를 경험했습니다. 다행히 사정을 설명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대가는 제게 꽤 뼈아픈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던 젊은 시절에는 해가 바뀌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 인생은 더하기보다 빼기로 계산해야 할 시간이 되었고, 그래서 해가 바뀌는 일은 하나의 큰 사건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해가 가기 전에는 무언가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깊어집니다. 새로 바뀐 연도를 익히기 위해 숫자를 몇 번이고 되 뇌이며 마음에 새깁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제 맞이하는 새로운 숫자로 그려진 새해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
이대로 흘려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새 아침을 맞는 마음속에, 최소한 하나쯤은 담아둘 꿈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중년을 넘어 장년의 인간이 새해를 맞아 새 꿈을 꾼다는 것이, 세상 일반의 시선으로 보면 가당치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요즘 저에게 들어오는 새해 덕담은 늘 같습니다.
“건강하세요.” 시작이자 끝입니다.
“꿈 이루세요” 라는 말은 어느새 사라져버렸습니다.
속으로 되묻습니다.
그래, 건강해야지. 그런데 그 건강한 몸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을 건강이라면, 그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괜히 서글퍼집니다. 돌아봅니다
내가 새해를 꿈과 함께 맞이한 적이 언제였던가.
아무것도 없던 젊은 시절에는 늘 꿈이 있었습니다. 새해가 오면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아주 분명한 목표 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난 남자의 첫 번째 의무는 돈을 버는 일이니까요.
돌아보면 씁쓸합니다. 평생을 돈을 벌기 위해 살아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한 채 아직도 일의 대가를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에게 돈 말고 다른 꿈이 있었던 적이 있었을까.
이제 와서 지난 삶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면 하루라도 더 늙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으로 신정 연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접한 탈북자의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모든 탈북자들은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루어야 할 꿈이 있었다고, 자유 대한민국으로 가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그들은 꿈을 위해 모든 것을 겁니다.
자나 깨나 그 생각뿐이고, 결국 목숨을 담보로 실행에 나섭니다. 어떤 꿈이든, 죽을 각오로 덤비는 사람에게는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이 마음에 깊이 꽂혔습니다. 먹먹했습니다.
나에게는 과연, 목숨을 걸고라도 이루겠다고 결심했던 꿈이 있었던가.
어쩌면 저는 참 편안한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한 일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편한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일 터니까요.
그럼에도 미련은 남습니다. 사내로 태어나서 세상을 바꿀만 한 큰 일은 이루지 못해도 꿈조차 갖지 못했음은 충분히 부끄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이미 큰 꿈을 품기에는 턱없이 늦은 나이지만, 그래도 올 한 해만의 꿈이라도 가져보려 합니다.
올해 제 꿈은 이것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한 [씬짜오베트남]이 지난 해부터 시작한 디지털화의 완성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씬짜오베트남]이 시대를 넘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문화적 가교로 남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내년 이맘 때쯤에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한 해였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작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국 땅 베트남에서 만만치 않은 삶을 이어가는 교민 여러분, 올해는 부디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하고 아름다운 꿈 하나씩 가슴에 품으시 길 기원합니다.
건강 하십시오. 그리고 뜨겁게 꿈꾸십시오.
“꿈을 품고 사는 자가 축복받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이미 삶의 뜨거운 열정이 동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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