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가 잘 안될 때는 핑계가 99가지가 있다고 하지요.
몸 컨디션이 나빠서, 감기약을 먹어서, 어제 과음을 해서, 잠을 못 자서, 아이가 아파서, 아침에 와이프에게 잔소리를 들어서, 사업에 문제가 안 풀려서, 담이 와서, 목 디스크 때문에, 캐디가 신경을 거슬려서, 동반자가 맘에 안 들어서, 날씨가 안 좋아서, 클럽을 바꿔서, 등등 수많은 이유가 따른다. 결국 마지막 핑계로 “오늘은 이상하게 안 맞는다”라는 핑계까지 나옵니다.
수많은 핑계를 앞세워 기대치를 한참 낮추었는데도 골프는 여전히 그 정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끔 아주 형편없는 스윙을 만들어 대며 종일 감자를 캐거나 볼링을 하거나 하는 날이 생깁니다. 이날 따라 공이 앉아있는 자리가 예쁘지 않습니다. 페어웨이를 지켜도 공이 디봇자리에 있거나 평평하지 못한 곳에 놓여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불운한 날이라는 생각에 몸은 더욱 경직됩니다. 어깨는 굳어 지고, 스윙은 어색하고, 공은 엉뚱한 방향으로 향합니다.
아, 오늘은 완전히 망했네…
누구에게나 이런 날이 있지요?
아마추어 든, 프로 든, 잘 치건, 못 치건, 젊어 든, 늙었 든 간에, 앞에서 언급한, 공이 참 지독하게 안 되는 날이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저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죠.
이런 날에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나이가 들면 이런 날이 젊은 시절 보다 자주 옵니다. 최근 이런 날을 자주 겪으면서 느낀 바가 많습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잘되는 날 보다 이렇게 엉망인 날에 배울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 살펴 볼까요.
배움 하나: 실수로부터 배우는 학습자료
안 맞는 날의 기억은 좋은 학습자료가 됩니다.
공이 안되는 날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러나 그날의 느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자신의 발전에 귀한 자료가 됩니다.
연습장에서 스윙이 잘못된 사람의 스윙을 보면서 고쳐야 할 점을 찾아내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것과 같이 공이 잘 안될 때는 자신이 몰랐던 단점이 드러나는 날입니다. 안 되었을 때의 기억은 자신의 골프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무기가 됩니다. 공이 잘 안 맞는 날은 골프를 발전시킬 나만의 자료를 구하는 날입니다.
배움 둘: 욕심을 내려 놓은 연습
잘 치고 싶은 욕심, 동반자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자존심, 점수에 대한 집착… 이 모든 것이 스윙을 무겁게 만듭니다. 안 풀리는 날일수록 욕심은 점점 커져갑니다. 잘못된 샷을 만회하기 위해서, 꾸겨진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더욱 굳어지는 욕심으로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욕심 좀 잠시 내려놔, 무겁지 않아? “ 공은 마음의 무게만큼 날아갑니다. 욕심을 무거워진 공이 제대로 갈 리가 없습니다.
배움 셋: 초심을 찾는 날
공이 안 맞는 날일수록 기술적 결함을 찾아가게 됩니다. 도움이 안되는 방법입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스탠스, 그립, 템포 —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플레이를 다시 되돌아봅니다. 트러블이 생길 때 최고의 처방은 초심입니다. 초심 잃고 헤매는 인간을 우리는 여의도에서 많이 봅니다.

배움 넷: 마음을 리셋 하는 법
공이 안 맞는 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코를 땅에 박고 동반자의 샷도 안 보고 걷다가, 볼!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봅니다. 스윙의 준비하는 동반자, 그 뒤에 그림처럼 펼쳐진 골프장의 경치가 새삼 눈에 들어옵니다. 오후의 순한 태양 빛이 내려앉은 페어웨이, 길 잃은 낙엽 하나 무심히 날려보내는 바람이 훌쩍 뺨을 스치면 지나갑니다. 점수를 내려놓고 보면 골프장의 모든 것이 다시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아, 내가 이런 시간을 누리고 있었구나.”
이 깨달음 하나만으로도 상황이 바꿀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이날의 라운드는 충분히 값지게 남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