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무언가를 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업직으로 취직하면 자기가 들어간 회사에서 만들고 있는 제품을 팔아야 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나거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나는 판결이 나는 날에도 첫번째 걱정은 ‘오늘 몇개를 팔았나’, ‘오늘 몇 건을 계약했나’입니다.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제품이 대부분인데, 지금은 마치 내가 이 제품을 팔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이 제품을 파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오늘 판 제품 개수를 어제 판 제품 개수와 비교하고, 이번달에 판 제품 개수를 지난달에 판 제품 개수와 비교하고, 올해 판 제품 개수를 작년에 판 제품 개수와 비교하며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한계까지 몰아부칩니다.
1년을 단위로 ‘XX년도 사업보고 및 YY년도 사업계획서’라는 이름으로 판매량에 대해 평가하고, 평가받으며 만약 내가, 내 부서가, 내 회사가 살아남았다면, 리셋후 다시 시작합니다. 마치 오락실에서 마지막 판을 깨고나면, 첫판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 같은 상황니다. 기획실이나 재무팀, 회계팀 같은 지원부서에 들어가면 아이디어와 숫자가 들어간 보고서를 팔아야 합니다.
아이디어는 참신하면서도 윗사람의 뜻을 벗어나면 안되고, 숫자는 정확하면서도 읽는 이를 지나치게 실망시키거나 과도한 기대를 하게 만들면 안됩니다. 보고서를 쓰는 일은 취객이 살얼음판을 걷거나, 무당이 잘벼려진 작두를 타는 것과 비슷한 일 같습니다. 자영업을 한다면 물건을 파는 일은 보다 ‘현실적으로’ 내 삶에 다가옵니다.
동료의 도움을 받고, 조직의 자산과 평판이라는 힘을 쓸 수 있고, 잘벌때 못벌때를 평균하여 크건 적건 같은날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직장생활과 달리 자영업은 각자도생의 냉혹한 전쟁터입니다. 같은 상권안에서도 잘되는 집과 안되는 집 사이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작년에 잘된 가게가 올해도 잘되리란 법이 없습니다. 재료비, 인건비, 임대료, 전기세, 대출이자는 실시간으로 나가고 있으니, 손님이 없으면 바로 ‘이번달 적자’ 상태에 빠집니다.
손익분기점을 넘으려면 인테리어 비용과 설비 감가상각비까지 뽑아주는 영업이익을 내야 하는데, 손님이 없으면 오히려 현금을 추가로 더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팔아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히 더 잘 파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마케팅이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수많은 마케팅 관련 책과 이론이 있으니, 시간적 한계가 있는 우리는 그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소위 ‘마케팅 거장’의 책들부터 읽어가는 것이 확률적으로나 질적으로 나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수많은 마케터 중에서 필립 코틀러, 알 리스를 마케팅 거장이라 부르는데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캘로그 경영대학원을 마케팅의 성지로 만들고, 한국의 대부분의 경영학과 학생들이 마케팅 교재로 쓰고 있는 ‘코틀러의 마케팅 원리’의 저자인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우며 현대 사회에서 마케팅과 동일시 되는 이름입니다. 다만 그의 책은 학생이 아닌 일반인 입장에선 ‘지나치게 학술적’이라 좋은 줄은 알고 있으나 쉽게 손이 안가는 책입니다. 수능 시험을 보기위해서 조선왕조실록 전편을 읽는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저희집에도 코틀러의 마케팅 원리가 한국어판, 영문판 모두 있지만 이 책을 펼 때마다 ‘슬리퍼 신고 에베레스트산 입구에 선 등반객’ 같은 마음으로 압도 당하곤 합니다. <마케팅 반란>의 저자 알 리스는 코틀러 교수에 비하면 좀 더 실용적이며 토론의 여지가 있는 도발적인 내용의 글을 씁니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는 그의 직업적 배경에서 오는 차이라 생각합니다. <마케팅 불변의 법칙>, <포지셔닝> 두 권만으로도 이미 마케팅 전설이 된 알 리스는 2002년 이 책 <마케팅 반란>을 발표하여 (원제 : The fall of advertising, The rise of PR 광고의 몰락과 홍보의 부상) “고객들이 더 이상 광고의 내용을 믿지 않으며,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지 않으므로, 제 3자를 경유하는 홍보 활동을 통해 신뢰성 있는 브랜드를 구축하여 매출을 높여라” 라는 메세지를 전합니다.

2002년에는 ‘TV광고, 신문, 잡지, 라디오’가 소위 4대 매체로 불리며, 4대 매체 광고는 곧 마케팅 활동과 동일시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온라인 홈페이지 배너 광고가 막 떠오르던 틈새 시장이었던 시절에 ‘광고가 죽고, PR이 뜬다’는 저자의 책은 마케팅을 공부하던 학생들이나 마케팅 실무자들 사이에서도 호불호로 나뉘며 격한 논란을 일으켰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마케팅 환경을 보면 저자가 옳았음이 증명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언가를 사기 전에 ‘검색’을 하고, ‘판매량’과 ‘리뷰’를 보고, 필요시 매장 방문을 통해 실물을 확인해 본 다음, 온라인 ‘가격 비교’를 통해 원하는 날짜에 배달해줄 수 있는 곳에서 가장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삽니다. 검색 과정에서 언론사와 인플루언서들의 ‘긍정적인 내용의 콘텐츠’와 ‘부정적인 내용의 콘텐츠’는 구매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기존 고객들의 ‘리뷰’를 꼼꼼히 본 후에 구매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실제 구매한 후에 적극적으로 리뷰를 남기고, 주변에 추천 후 재구매를 하거나, ‘왜 사면 안되는지’도 리뷰 또는 유튜브 등 SNS 채널을 통해 적극적으로 알립니다. 같은 상권에서 손님이 넘쳐 종업원들이 뛰어다니는 가게와,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종업원들이 스마트폰만 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게가 공존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저자는, 마케터는 고객에게 ‘왜 나의 물건을 사야되는지’에 대한 대답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초’가 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떤 분야에서건 최초가 되지 않으면 유명해질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뭐라도 뉴스거리를 제공해줘야 언론, 인플루언서, 고객들 사이에 ‘입소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만인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벌이려고 하면 결국 아무에게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라고 하며 명확한 대상과 초점을 갖고 마케팅 활동을 할 것을 권합니다. 성공적으로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고객들의 마음속에 의도하는 한 단어를 심어주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말합니다. 고객의 인식속에 나의 제품과 브랜드가 긍정적으로 자리잡은 후에는 나쁜 소문이 나지 않게 브랜드를 보호하고, 새로운 경쟁자로부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고객들에게 지속해서 상기시켜야 합니다.
나쁜 소문에 잘 대처하는 것은 홍보의 영역이고, 브랜드의 강점을 소비자들에게 주기적으로 상기시키는 것에는 광고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책임감 있는 마케터라면 고객은 정말로 빨리 ‘망각’하고, 새로운 브랜드와 제품으로 이동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0여년이 넘게 현장에서 영업 활동, 마케팅, 브랜딩 활동을 하며 제가 가진 생각은 ‘영업의 실패는 내가 팔고 싶은 물건을 파는 것으로 시작되고, 영업의 성공은 고객이 사고 싶은 물건을 파는 것으로 시작된다’ 입니다. ‘내 제품에 호감을 갖게 하고, 사고 싶게 하고, 사용후에 친구에게 추천하게 하는 것’ 그것이 마케팅인것 같습니다.
코틀러 교수의 ‘마케팅 원리’가 중후한 내공을 바탕으로 하는 소림 무술이라면, 알 리스의 ‘마케팅 불변의 법칙’은 무수한 실전에서 그 정수를 모은 장삼봉 도사의 무당검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속한 회사의 제품이건, 내 가게의 물건이건, 내 식당의 음식이건 간에 ‘잘 팔 수 있는 원리와 방법’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 팔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강호의 협객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