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lumn – 초한지(이문열)

– 시작과 끝 –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우리는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면 그 회사에 죽을때까지 다닐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리 저리 치이다 원치 않는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 두게 되거나, 내 목숨이 다하기 전에 그 회사가 먼저 문을 닫을 때 충격을 받곤 합니다. 열심히 유튜브도 보고, 경제 신문도 보고, 주변에서 들은 고급정보(!)도 참고하여 산 주식은 끝없이 오를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사건의 시작과 함께 단두대처럼 수직 낙하를 시작하고 울면서 손절하는 순간이 옵니다. 최근 국세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0대 생활업종의 자영업 3년 생존율은 53.8%(2023년 기준)라고 합니다.

3년안에 폐업한 46.2%의 창업자분 중에 어느 누구도 결코 3년 안에 문을 닫을 거라고 생각하며 가게 인테리어를 공들여 하고, 일생에 거쳐 모은 돈을 임대료, 인건비, 재료비와 맞바꾸는 결단을 내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만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라는 말이 전해주듯이 인간관계도 원하건 원치않건 자연스럽게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얼마전 중학생 딸아이가 ‘베스트 프렌드’가 전학을 가게 되었다고 앞으로 어떻게 학교 생활을 하냐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이 ‘회자정리’라는 말을 알려주며 위로와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반이 바뀌면서, 학교가 바뀌면서, 직장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진 나의 수많은 ‘베스트 프렌드’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전화라도 한통 넣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인간 관계 뿐만 아니라, ‘나’ 자신과의 만남에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까만색 이세이 미야키 터틀넥 셔츠, 리바이스 청바지에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고 무대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고 해서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매킨토시라는 전설의 PC,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서 인류의 생활 양식을 변화시킨 스티브 잡스지만 안타깝게도 56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구상의 모든 건강한 55세의 사람들에게, 55세의 스티브 잡스와 인생을 바꾸게 해준다는 제안을 했을 때 그 제안에 응할 사람은 거의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외모와 심리적인 ‘젊음’에 집착하기 보다는 나이대에 맞는 ‘건강’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 ‘끝’을 좀 더 늦게 만나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 56세에 건강한 심신을 갖고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최소한 스티브 잡스 보다 의학적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초한지>는 전쟁을 다룬 중국 고전중에 가장 ‘기승전결’ 즉 시작과 끝이 분명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경쟁 소설인 삼국지와 비교했을 때 덜 변화무쌍하여 극적인 재미가 떨어지는 면도 있습니다. 그것이 아마 중국 4대 기서인 삼국지연의,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 보다 문학적으로 낮은 대접을 받는 이유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책을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하는 독자에게 <초한지>는 보물 상자 같은 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초기 조직에서 ‘창업’의 타이밍, 성장기의 조직에서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용인’의 비법, 자리를 잡은 조직에서 살아남는 ‘처세’의 비법을 찾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아직도 쓸모가 있는 교훈을 전달해주는 책이 이 <초한지>입니다.

무력 통일을 통해 춘추전국 시대를 끝마친 진시황이 50세의 나이에 순수(지역 순방)중에 가마에서 객사를 하게 됩니다. 불로초를 찾아 ‘불로불사’를 추구하며 영원히 황제를 하려고 했던 유명했던 노력에 비해서는 다소 이른 나이의 허무한 죽음입니다. 조직에서 능력 있는 독재자의 문제점은 후계자 양성 실패입니다. 이후 환관 조고, 재상 이사의 음모를 통해 형인 부소를 제치고 2세 황제가 된 ‘호해’의 실정으로 중국은 다시 반란과 분열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라는 직관적인 불만 포인트를 자극한 ‘진승과 오광의 난’으로 중국 각지에서 시작된 반란 토너먼트는 결국 유방의 한나라와 항우의 초나라로 결승전을 맞게 됩니다. 서민 출신의 유방은 참모 장량, 행정가 소하, 장군 한량을 ‘적재적소’에 쓰며 ‘장군의 장군’이라 불리며 라이벌 항우를 꺽고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진나라에 의해 몰락한 초나라 귀족집안 출신으로 ‘역발산기개세(산을 뽑을 만한 힘, 세상을 덮을 만한 기운)’를 갖추어 개인적인 능력으로는 유방보다 뛰어났던 항우의 실패요인으로는 당시 진나라의 수도였던 관중에서 자리잡고 새로운 왕조를 탄생시킬 기회를, ‘이는 마치 금의야행(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거님)과 같다’고 말하며, 고향 초나라로 돌아간 ‘전략적 식견 부족’을 꼽습니다. 결국 그는 유방과의 마지막 전투에서 ‘사면초가: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리다. 초나라 군대를 포위한 한나라 군대가 초나라 노래를 연주함으로서 성을 지키는 초나라 병사들의 탈영을 유도한 심리전술’의 상황에 처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훗날 황제가 된 유방은 자신의 성공 요인으로 자신은 장량(기획실장), 소하(재무실장), 한신(영업부장)의 도움을 받아 황제가 되었지만, 항우는 하나 있는 범증(비서실장)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평합니다. 한나라의 창업공신 3명도 훗날 모두 다른 끝을 맞게 되니, 스스로 몸을 낮추고 처세를 잘했던 장량과 소하는 천수를 누리지만, 백전백승의 전공을 세우며 중국역사상 최고의 장군으로 꼽히는 한신은 정작 내부 영업 실패로 ‘토사구팽(토끼를 잡은 후에는 쓸모없어진 사냥개를 삶는다.)’이란 고사성의 주인공이 되어 두고두고 억울한 조직인의 모델이 됩니다. 한신의 죽음은 중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토사구팽 사례입니다.

초한지를 읽다 보면 어떻게 하나의 큰 조직이 무너지게 되고, 그속에서 새로운 조직이 탄생하고 경쟁을 통한 성장을 통해 다시 하나의 큰 조직이 되는 과정의 시작과 끝을 볼 수 있습니다. 각 과정에서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보여주고,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해 변화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식견, 결단력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두주불사’의 충성심, ‘배수진’을 치는 절박함, ‘다다익선’의 투자를 통해 성공하여 ‘금의환향’한 후에는 구조조정이라는 ‘토사구팽’이 기다리고 있다는 인생의 반복되는 진실을 알려주며 ‘처세’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권이란 책이 보기에는 부담스럽긴 하지만, 무협지 수준으로 재미가 있어 막상 책장은 잘 넘어가는 책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유방과 항우의 초한 전쟁 뿐만 아니라, 춘추전국 시대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및 다양한 고사성어의 출처를 확인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휴가때 몰아서 보시던가, 1~2달의 시간을 갖고 여유있게 읽으실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으니다. 진나라의 멸망, 초나라와 한나라의 시작과 끝을 통해 사업과 처세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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