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개 성을 34개로 통합… 8만 공무원 감축하는 ‘행정혁명’ 단행
– 외국인 투자환경 개선 기대…단기 혼란 우려도
베트남이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행정개혁을 단행한다. 63개 성(省)과 중앙직할시를 34개로 통합하고 약 8만명의 공무원을 감축하는 이른바 ‘행정혁명’이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개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동시에 제기될 전망이다.
호찌민 ‘메가시티’ 탄생… 인구 1360만 거대도시권
가장 주목받는 변화는 호찌민시(Ho Chi Minh City)의 대변신이다. 호찌민시가 인근 빈즈엉성(Binh Duong), 바리아붕따우성(Ba Ria-Vung Tau)과 통합되면서 면적 6772㎢, 인구 1360만명의 동남아 최대 메트로폴리스가 탄생한다. 이는 서울시 면적의 11배, 인구는 1.4배에 달하는 규모다.
통합 호찌민시는 99개 항만을 보유한 거대 물류 허브로 변신한다. 현재 하이퐁시(Hai Phong)가 보유한 항만 수를 넘어서며 베트남 최대 해상 관문 역할을 하게 된다. 빈즈엉성의 제조업 기반과 바리아붕따우성의 석유화학 단지까지 포함하면서 완전한 산업생태계를 갖추게 됐다.
껀터시(Can Tho)도 대변화를 맞는다. 내륙도시였던 껀터가 속짱성(Soc Trang), 하우장성(Hau Giang)과 통합되면서 해안 접근권을 확보한다. 메콩델타 지역의 해상 경제 거점으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구(區)급 완전 폐지… 성-촌 2층 체제로
가장 파격적인 변화는 구(區)급 행정단위의 완전 폐지다. 기존 성-구-촌의 3층 구조에서 성급과 촌급만 남기는 2층 정부체제로 전환한다. 팜 티 탄 짜(Pham Thi Thanh Tra) 내무장관은 “건국 이래 최대 혁명”이라며 “7만9339명의 공무원이 감축되거나 조기퇴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전체 25만명의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 이 중 13만명은 공무원·공공부문 직원이고, 12만명은 촌급 비정규직이다. 촌급 행정단위도 60-70% 줄어들어 전국적으로 약 5000개 촌이 남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노이(Hanoi), 후에(Hue), 라이쩌우(Lai Chau), 디엔비엔(Dien Bien), 선라(Son La), 랑선(Lang Son), 꽝닌(Quang Ninh), 탄호아(Thanh Hoa), 응에안(Nghe An), 하띤(Ha Tinh), 까오방(Cao Bang) 등 11개 지역은 기존 경계를 유지한다. 나머지 52개 성은 23개 신설 행정단위로 통합된다.
성 통폐합 세부 현황… 52개→23개로 대폭 축소
북부지역 통합
북부 산간지역에서는 대규모 통합이 이뤄진다. 뚜옌꽝성(Tuyen Quang)과 하장성(Ha Giang)이 합쳐져 새로운 뚜옌꽝성이 되고, 라오까이성(Lao Cai)과 옌바이성(Yen Bai)은 라오까이성으로 통합된다. 타이응우옌성(Thai Nguyen)에는 박깐성(Bac Kan)이 흡수 통합되며, 푸토성(Phu Tho)은 빈푹성(Vinh Phuc)과 호아빈성(Hoa Binh)을 아우르는 광역 행정구역으로 확대된다.
수도권에서는 박닌성(Bac Ninh)과 박장성(Bac Giang)이 박닌성으로, 흥옌성(Hung Yen)과 타이빈성(Thai Binh)이 흥옌성으로 각각 통합된다. 항구도시 하이퐁시(Hai Phong)는 하이즈엉성(Hai Duong)과 합쳐져 더 큰 해안 도시권을 형성한다.
중부지역 재편
중부지역에서는 닌빈성(Ninh Binh)이 남딘성(Nam Dinh), 하남성(Ha Nam)과 통합되면서 수도권 남쪽의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한다. 꽝빈성(Quang Binh)과 꽝치성(Quang Tri)은 꽝치성으로 통합되고, 관광도시 다낭시(Da Nang)는 꽝남성(Quang Nam)과 합쳐져 중부 최대 도시권을 형성한다.
꽝아이성(Quang Ngai)은 산악지역인 콘뚬성(Kon Tum)과 통합되고, 지아라이성(Gia Lai)은 해안지역인 빈딘성(Binh Dinh)과 합쳐진다. 까인호아성(Khanh Hoa)은 닌뚜안성(Ninh Thuan)과 통합되어 남중부 해안의 핵심 관광 거점이 된다.
남부지역 메가시티 탄생
남부에서는 호찌민시(Ho Chi Minh City)가 빈즈엉성(Binh Duong), 바리아붕따우성(Ba Ria-Vung Tau)과 통합되면서 동남아 최대 메가시티로 변신한다. 동나이성(Dong Nai)은 빈푹성(Binh Phuoc)과 합쳐지고, 따이닌성(Tay Ninh)은 롱안성(Long An)과 통합된다.
메콩델타에서는 껀터시(Can Tho)가 속짱성(Soc Trang), 하우장성(Hau Giang)과 통합되면서 해안 접근권을 확보한다. 빈롱성(Vinh Long)은 벤째성(Ben Tre), 짜빈성(Tra Vinh)과 합쳐지고, 동탑성(Dong Thap)은 띠엔장성(Tien Giang)과 통합된다. 최남단에서는 까마우성(Ca Mau)과 박리에우성(Bac Lieu)이 까마우성으로, 안장성(An Giang)과 끼엔장성(Kien Giang)이 안장성으로 각각 통합된다.
고원지대에서는 람동성(Lam Dong)이 닥농성(Dak Nong), 빈뚜안성(Binh Thuan)과 대규모 통합을 이루고, 닥락성(Dak Lak)은 푸옌성(Phu Yen)과 합쳐진다.
경제권별 전략적 배치
이번 통합은 지리적 인접성보다는 경제적 상호보완성을 중시했다. 해안과 내륙, 공업지대와 농업지역, 도시와 농촌을 전략적으로 결합해 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특히 해안 성의 비율이 44%에서 62%로 늘어나면서 전국이 해상 경제권으로 통합되는 효과를 거둔다. 21개 해안 성이 모두 항만을 보유하게 되면서 내륙 지역도 해상 물류망에 직접 연결된다.
7조원 절약 효과… 부처도 22개→17개로 축소
베트남 정부는 이번 개혁으로 2026-2030년 기간 190조 동(약 7조3000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정부 부처도 기존 22개에서 17개로 축소됐다.
주요 통합 사례를 보면 ▲기획투자부(Ministry of Planning and Investment)와 재정부(Ministry of Finance) 통합 ▲교통부(Ministry of Transport)와 건설부(Ministry of Construction) 통합 ▲농업농촌개발부(Ministry of Agriculture and Rural Development)와 천연자원환경부(Ministry of Natural Resources and Environment)가 농업환경부로 통합 ▲노동보훈사회부(Ministry of Labour, Invalids, and Social Affairs)와 내무부(Ministry of Home Affairs) 통합 등이다. 새로 신설된 민족종교부(Ministry of Ethnic and Religious Affairs)는 기존 민족위원회(Committee for Ethnic Minority Affairs)를 확대 개편한 것이다.
해안가 성의 비율도 44%에서 62%로 늘어나 물류 경쟁력 강화가 기대된다. 통합 후 21개 해안 성이 모두 항만을 보유하게 되면서 메가 항만 클러스터가 형성될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자에게는 기회와 위기
긍정적 영향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전망이다. 먼저 행정절차 간소화 효과가 크다. 기존 3층 구조에서 2층으로 줄어들면서 인허가 과정이 단축되고 책임 소재가 명확해진다.
대규모 통합 지역은 더 큰 시장과 자원을 제공한다. 통합 호찌민시는 제조업(빈즈엉), 항만물류(바리아-붕따우), 금융서비스(호찌민) 등 완전한 밸류체인을 갖춘 투자처가 된다.
세제 혜택도 기대된다. 정부가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를 위해 새로운 인센티브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통합된 성정부들이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려 요소
단기적으로는 혼란이 불가피하다. 7월 1일 새 체제 출범과 함께 기존 담당 공무원들이 대거 바뀌면서 업무 연속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기획투자부와 재정부 통합은 외국인 투자 승인 과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법적 불확실성도 우려된다. 새로운 행정구역에서는 기존 계약과 인허가의 효력을 재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 세무서, 관세청, 사회보험 등 중앙 기관들의 조직 정비도 12월까지 계속되면서 행정 공백이 우려된다.
호주상공회의소는 회원사들에게 “운영 지역의 구조 변화를 지속 모니터링하고, 지방 당국과 적극 소통하며, 향후 변화에 대비해 컴플라이언스 절차를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2045년 고소득국 도약” 포석
이번 개혁은 베트남이 2045년까지 고소득국 지위 달성을 목표로 하는 장기 발전전략의 핵심이다. 1980년대 도이머이(개혁개방) 이후 40년간 지속된 기존 성장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중 무역갈등 속에서 베트남의 대미 무역흑자가 2019년 470억 달러에서 작년 1230억 달러로 급증하면서 미국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은 베트남산 일부 제품에 46%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베트남 정부는 이번 개혁을 통해 행정 효율성을 높이고 경제 회복력을 강화해 외부 충격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토 람은 최근 “달리면서 대열을 정비한다(Run and line up)”는 독특한 정치철학을 제시하며 신속하면서도 질서정연한 변화를 강조해왔다.
동남아 행정개혁 바람
베트남의 이번 개혁은 동남아시아 전체의 행정개혁 바람과 궤를 같이 한다. 인도네시아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대통령은 1월 국가예산을 8.5% 삭감하겠다고 발표했고, 라오스도 부처 통합을 검토 중이다. 말레이시아는 공공부문 비용 효율성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의 개혁 규모는 단연 압도적이다. 이전 2015년 개혁에서는 공무원 수가 오히려 9만6000명 늘어나는 등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토 람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구체적 실행 계획으로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새로운 행정체제는 오는 7월 1일부터 공식 가동되며, 12월 31일까지 세무·관세·사회보험 시스템의 전국적 정비가 완료될 예정이다. 베트남이 이번 ‘행정혁명’을 통해 동남아 경제 강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