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지역의 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Hormuz) 해협의 통제 상황이 지속되면서 베트남을 포함한 아세안(ASEAN) 10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27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동 분쟁의 전개 양상에 따른 시나리오별 분석 결과 2026~2027년 기간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0.6%에서 최대 2.3%까지 감소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DB는 이번 분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는 분쟁이 올해 6월 말 종료되는 것으로, 이 경우 2분기 유가는 배럴당 105달러 선을 형성할 전망이다. 분쟁이 9월까지 이어지는 중립적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130달러까지 치솟으며, 내년 2월까지 장기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배럴당 155달러에 도달한 뒤 내년 초까지 14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베트남, 인도네시아(Indonesia), 말레이시아(Malaysia), 필리핀(Philippines), 태국 등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 그룹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유가 급등과 공급망 차질은 생산 및 운송 비용을 폭등시켜 거시경제 전반에 강력한 인플레이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동발 비료 가격 상승은 식품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가계 소득과 소비를 줄이고 내수 시장을 위축시키고 있다. ADB는 싱가포르를 제외한 동남아 국가들의 인플레이션이 추가로 3%포인트 더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ADB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가 가격 통제나 보조금 지급 같은 임시방편보다는 시장 가격 신호를 수용하는 정책을 펼칠 것을 권고했다. 국내 에너지 가격이 시장 상황을 반영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에너지 절약과 연료 전환, 대체 에너지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신 재정 지원은 피해가 큰 취약 계층과 산업에 집중하고 한시적으로 운영할 것을 제안했다.
또한 실무적인 대책으로 에어컨 적정 온도 설정, 비필수 조명 소등, 피크 시간대 전기 절약 등 에너지 수요 관리 방안을 제시했다. 도심 지역에서는 재택근무 활성화, 유연근무제 도입, 대중교통 이용 장려 및 ‘차 없는 날’ 운영 등을 통해 연료 소비를 줄일 것을 당부했다.
동남아 각국은 이미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태국은 라오스(Lào)와 미얀마(Myanmar)를 제외한 국가로의 정제유 수출을 일시 중단하고 석유 기업의 법적 비축 의무 비율을 1%에서 3%로 상향했다. 필리핀은 사흘 전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베트남 산업통상부는 4월까지는 비축분과 국내 생산을 통해 유류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 관리하겠다면서도, 에너지 절약을 위해 기업과 국민들에게 재택근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