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점의 구운 고구마부터 최고급 테이스팅 메뉴까지 하노이 옛 거리(Phố cổ Hà Nội)는 수세기에 걸쳐 베트남인의 식문화를 형성해 왔다. 어둠이 내린 골목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수 솥이 등장하고 목욕탕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은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하노이의 상징이다.
서기 1000년부터 형성된 하노이 옛 거리는 유구한 상업의 중심지였다. 미시간 대학의 식품 사학자 정카잉린은 17세기 중국인 이주 물결을 포함해 전 세계 상인이 모여들며 미식 문화가 꽃을 피웠다고 설명한다. 각 거리의 이름은 과거 해당 지역의 상인 조합이 취급하던 품목에서 유래했다. 항박(Hàng Bạc)은 은세공인, 항티엑(Hàng Thiếc)은 납땜업자의 거리였다. 지금은 대부분 음식점으로 바뀌었지만 항콰이(Hàng Khoai) 거리에서 여전히 고구마와 카사바를 파는 노점들을 만날 수 있듯 이름 속에 역사가 숨어 있다.
상인들이 모여들자 이들을 겨냥한 요리사들도 나타났다. 중국에서 유입된 국수 문화는 베트남 식문화의 주류가 되었고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 지배는 건축과 인프라뿐 아니라 미식 지형까지 재편했다. 하지만 베트남은 이를 단순히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컬라이징했다. 베트남의 상징인 퍼(Phở)는 중국, 베트남, 프랑스의 영향이 절묘하게 결합된 대표적 사례다. 1901년 문을 연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하노이(Sofitel Legend Metropole Hanoi)의 르 보리유(Le Beaulieu) 레스토랑 주방장 샤를 드그랑델은 베트남 요리사들이 프랑스 요리의 정수를 흡수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경제 개방 이후 하노이 미식은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았다. 호텔 밖 독립 레스토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항상 옛 거리가 있었다. 1998년 문을 연 하노이 가든(Hanoi Garden)의 롱 응우옌은 옛 거리가 베트남 음식의 핵심 토대이며 이 뿌리가 없었다면 요리사들이 독창성 없이 외국 것을 복제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쉐린 가이드에 선정된 챕터(Chapter)의 쯔엉꽝중 셰프 역시 옛 거리에서 자란 세대다. 그는 민물장어와 옥수수 같은 전통 식재료를 사용해 현대적인 요리를 선보인다. 그는 우리가 베트남 음식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중이라며 옛 거리 특유의 까다로운 손님들이 오히려 전통의 맛을 보존하는 힘이 된다고 덧붙였다.
천년의 세월이 겹겹이 쌓인 하노이 옛 거리의 매력은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모습 속에 살아 있다. 김이 서린 육수 솥과 플라스틱 의자가 존재하는 한 하노이만의 독보적인 미식 유산은 앞으로도 전 세계 미식가들을 유혹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