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충돌이 에너지 시장을 넘어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11일(현지 시각) 국제 금융 시장 및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동발 전운이 길어질 경우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핵심 원료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월 28일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증시는 요동쳤으며, 특히 반도체 부문이 큰 타격을 입었다. 세계 최대 메모리 칩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쟁 시작 이후 시가총액이 2,000억 달러 이상 증발하는 고충을 겪었다. 반도체 업종을 추종하는 VanEck 반도체 ETF(SMH) 역시 전쟁 이후 약 3% 하락하며 시장의 우려를 반영했다.
반도체 업계의 가장 큰 리스크는 원료 공급망이다. 중동은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냉각 및 초미세 회로를 그리는 노광(Lithography) 공정에 필수적인 헬륨(Helium)과 브롬(Bromine)의 핵심 공급처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 공급의 3분의 1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지난주 카타르에너지의 라스 라판(Ras Laffan) 산업단지 내 헬륨 생산 시설이 이란의 드론 공격을 받아 운영이 중단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략적 요충지인 호르무즈(Hormuz) 해협이 봉쇄될 경우, 전 세계 헬륨 공급량의 25% 이상이 시장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반도체 세정 등에 쓰이는 브롬의 경우 전 세계 생산량의 약 3분의 2가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 나오기 때문에 공급망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 역시 반도체 수요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운영하는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의 운용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AI 데이터 센터는 일반 센터보다 3~5배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데, 에너지 비용 상승은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속도를 늦추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 메모리(HBM) 칩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 시점에서는 장기 계약 덕분에 직접적인 생산 차질은 제한적이지만, 전쟁이 수개월간 지속될 경우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이 지연되고 반도체 제조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