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 Column – 한국인이만들어 가는 특별한 서사

베트남의 TET 연휴로 아흐레를 쉬고 나니 2월이 다 지났습니다. 베트남에서의 2월은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외국인에게는 별로 행복한 달이 아닙니다. 일하는 날은 다른 달에 비해 반에 불과한데, 지출은 오히려 2배로 늘어나는 부조리를 감내해야 합니다. 명절을 축하하는 화려한 축포조차 공허해 보이는 것은 행복에서 제외된 자의 외로움 때문인가요?
그래도 그런 외로움을 달래주는 우리 동포들의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그 중 하나는 동계 올림픽에 관한 소식인데, 아주 충격적입니다.
한국의 최가온이라는 17세의 어린 소녀가 지난주 이태리 밀란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하프 파이프 라는 스노보드 종목에서 1차 시도에서 치명적인 실수로 머리부터 떨어지는 대 사고를 겪었지만, 그런 부상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겁니다.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 것이, 하프 파이프 경기장의 바닥은 ‘눈’이지만, 실상은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다져진 구조물입니다. 거기서 머리부터 떨어진다는 건,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사고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어린 소녀는 기권도 하지 않고 다시 도전을 한다는 게 말이 안됩니다.

그녀가 다시 일어나 마지막 3차 시기 출발점에 서자, 전세계 모든 이가 가슴을 조였습니다. 제발 무사히 마치라고 손을 모았지요. 메달을 기대하지도 않았어요. 사고만 없이 마치길 기도했는데, 이런 그녀의 목에 금메달이 걸립니다.

경기장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환호가 터져 나왔고, 그녀와 경쟁을 하는 다른 나라 선수들도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칩니다. 미국 팀 코치가 말합니다. 저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고, 영혼을 갈아 넣은 한편의 예술이라고. 그러나 제 마음 한 켠에서는, 이쯤에서 멈추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너무 어린 소녀잖아요. 다음에는 제발 기권하고 치료하세요.

이렇게 가슴 조인 생생한 서사를 한편 보고 난 다음 날에는 호주에서 가슴 웅장한 소식 하나가 들려옵니다. 아마도 골프 매니아라면 기억하실 만한 이름이 하나 있는데, 2010년 전 쯤에 타이거 우즈의 대항마로 활약하던 한국계 선수가 있었습니다. 앤소니 킴이라고, 20대 중반에 미국의 PGA 대회를 주름잡으며 내노라 하는 솜씨를 뽐냈지요.
타이거 우즈와 비견될 정도니 알만한 실력자였습니다.
성격은 불 같았고, 거침이 없었지요. 도가 아니며 모를 추구하며 늘 핀 만을 노리며 샷을 날리던 그가 한창 나이에 부상에 시달리며 온몸에 철심을 박습니다. 무려 7차례의 대 수술을 거치며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한시대를 풍미하던 천재에게 예기치 못한 몰락은 더욱 견디기 힘든 일이었지요.

결국 골프계를 떠납니다. 이제 대중의 기억에 그의 흔적이 다 지워져 갈 때, 그가 LIV 라는 골프 리그에 출현한다는 소식이 3년 전부터 간간히 들려옵니다. 랭킹이 무려 4천 몇 백위라고 하더군요. 혹독한 재활 과정을 이겨내며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하지만 이제 그의 나이가 이미 40살입니다. 골프 선수로는 부활을 기대하기에는 좀 늦은 기분입니다. 그저 보통 골프 선수로 지내기만 해도 다행이다 싶은 거죠.
그런데 지난 일요일 호주 애델라이드 라는 곳에서 열린 LIV 경기에서 마지막 날 선두에 5타 뒤진 채 챔피언 조에 티 샷을 시작합니다. 선두는 지금 골프계를 주름잡는 존람입니다. 마지막 날 AI가 예상한 앤소니 킴의 우승 확률은 0.1% 입니다.
그런데 그 늙은 소년 앤소니 킴은 그날 9언더파를 치면 존람을 3타차로 따 돌리고 우승컵을 받으며 엄지 소년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무려 4백만불의 상금과 함께. 16년전 그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이후 무려 5,795일만에 다시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골프라는 운동에서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골프는 한번 무너지면 끝입니다. 다시 재기하는 경우는 전무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천재들이 엄청난 활약을 하다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늘 봐왔지만, 이렇게 철저히 무너져 육체적으로 재기 불가를 받은 선수가 다시 부활하는 경우는 들은 적도 없습니다.

골프에서는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도 안 통합니다.
그는 온몸의 수술로 신체가 망가져 아이를 못 갖는다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졌지만, 안타깝게도 조산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생명을 이어가는 딸아이의 처절한 생존의 노력을 보며 나도 이 아이에게 자랑스런 아비가 되자고 맘을 먹고 다시 골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이번 우승 퍼트를 마치고 가장 먼저 달려온 딸아이를 안아들고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감동스러운 장면이었지요.

비록 그의 국적은 미국이지만, 그가 만든 서사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모든 이가 고개를 저어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시 일어서는 선택, 우리에게는 익숙한, 감춰지지 않은 한국적 정서입니다. 앤소니 킴의 부활이 우리 시니어들에게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승리가 아닌 ‘정신력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육체는 소모되고 세월은 흐르지만,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겠다는 의지는 0.1%의 확률을 기적으로 바꿉니다.

한국인의 근성은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곁의 사람을 사랑하기에 우리는 결코 무너질 수 없습니다. 최가온의 용기와 앤소니 킴의 인내처럼, 우리 안에도 여전히 세상을 놀라게 할 서사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무관심하고, 그 무관심 속에 살아가는 이국의 삶이 비록 버겁고 외롭더라도, 한국인이라는 DNA 가 만들어가는 이 뜨거운 도전의 서사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About chaovietnam

chaovietnam

Check Also

Han Column – 리더는 누구인가?

최근 미국의 LAFC 에서 뛰는 손흥민이 영국의 예전 자신의 팀인 토트넘을 방문하여 작별인사를 한 것이 …

답글 남기기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