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세뱃돈 QR로 쏘세요”…500동짜리 지폐 대신 ‘디지털 리씨’

출처: InsideVina
날짜: 2026. 2. 17.

“한국에서는 조카들 세뱃돈 주기도 부담스러워 서로 안 주고 안 받기로 합의했는데, 베트남에 오니 아파트 경비 아저씨 몫까지 챙겨야 하네요.”

호치민 주재원 3년 차 김 모 씨(42)는 뗏(Tết·베트남 설)을 앞두고 은행을 찾았다. 빳빳한 신권을 다발로 바꾸기 위해서다.

베트남의 설은 그야말로 ‘돈이 춤추는 기간’이다. 한국의 설이 간소화와 효율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베트남의 뗏은 여전히 1년 중 최대의 ‘소비 폭발’이자 거대한 ‘관계의 경제학’이 작동하는 시기다.

한국의 세뱃돈이 가족 친지, 그중에서도 아랫사람에게 주는 ‘내리사랑’의 성격이 강하다면, 베트남의 ‘리씨(Lì xì)’는 사회적 관계망을 관리하는 투자에 가깝다.

베트남에서는 가족뿐만 아니라 ▲아파트 경비원 ▲청소부 ▲단골 카페 직원 ▲택배 기사에게도 리씨를 건넨다.

금액은 2만 동(약 1천 원)에서 5만 동(약 2천7백 원) 정도로 크지 않지만, 빨간 봉투에 담긴 이 작은 돈은 “지난 1년간 고마웠고, 새해에도 잘 부탁한다”는 무언의 계약금과도 같다.

심지어 행운을 상징하는 붉은색 500동(약 27원) 지폐나 2달러 지폐를 봉투에 넣어 선물하기도 한다. 액수보다는 ‘행운을 나눈다’는 상징성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5만 원권의 등장 이후 ‘최소 단위 5만 원’이라는 암묵적 룰이 생기며 세뱃돈이 ‘현금성 복지’의 성격으로 굳어지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변화는 ‘송금’ 방식이다. 한국이 카카오페이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메시지와 함께 무심한 듯 시크하게 송금한다면, 베트남은 화려한 ‘QR코드 전쟁’ 중이다.

베트남 결제 앱 ‘모모(MoMo)’나 ‘잘로페이(ZaloPay)’는 뗏 기간이면 앱을 화려한 게임장으로 바꾼다.

리씨를 보낼 때마다 앱 내에서 캐릭터가 춤을 추거나 제사상을 차리는 미니 게임이 실행되고, 바우처가 쏟아진다.

현지 젠지(Gen Z) 세대 사이에서는 QR코드가 인쇄된 베트남의 민족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거나, 세배 대신 자신의 계좌 QR코드를 들이미는 밈(Meme)이 유행이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그 안에 담긴 ‘시끌벅적하고 화려해야 복이 온다’는 베트남 특유의 정서는 디지털 세상에서도 여전하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뗏 지출은 낭비가 아니라, 다가올 1년의 복을 벌어들이기 위한 필수적인 투자다.

‘돈을 써야 돈이 들어온다’는 믿음. 이것이 2026년 오늘,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도 베트남 내수 시장을 뜨겁게 달구는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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