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찌민시에서 활동하는 한 미국인 이사(Director)는 베트남에서 겪은 가장 큰 비즈니스 도전으로 글로벌 대기업과의 대규모 프로젝트 입찰 경쟁을 꼽았다. 자원과 브랜드 파워, 기술력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났던 이 싸움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같았으나, 승자는 베트남의 작은 팀이었다. 그들은 거인이 할 수 없는 세 가지, 즉 고객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민첩성, 그리고 관계의 힘을 활용해 판도를 바꿨다. 축하 파티에서 그는 나직이 말했다. “이제야 베트남이 수많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유를 알겠군요. 당신들은 싸우지 않고, 싸움의 판 자체를 재구성하는군요.”
이 일화는 베트남 북부 하이퐁시에 위치한 박당강(Bach Dang River)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시내에서 약 20km 떨어진 수이응우옌(Thuy Nguyen)의 안개와 침묵 속에 자리 잡은 이곳은 응오 꾸엔(Ngo Quyen), 쩐 흥 다오(Tran Hung Dao), 레 다이 하잉(Le Dai Hanh) 등 베트남의 위대한 영웅들을 기리는 성지이자, 침략 함대를 격퇴했던 목책(wooden stakes)의 현장이다.
박당강 전투의 전략은 경이로울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심오했다. 베트남 조상들은 밀물 때 보이지 않도록 강바닥에 목책을 심어두었다. 적군이 밀물을 타고 자신 있게 진격해 들어오면, 썰물 때를 맞춰 후퇴하며 적선을 유인했다. 물이 빠지자 적함들은 고스란히 목책에 찔려 꼼짝달싹 못 하게 되었고, 베트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는 용어가 생겨나기 수백 년 전부터 이미 존재했던 ‘게릴라적 사고’의 정수였다.
수세기에 걸친 전쟁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적응하고, 생존하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쳤다. 이러한 ‘게릴라 정신’은 오늘날 베트남인의 성격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들은 실용적이며 기회를 포착하는 데 빠르다. 물론 임기응변에 능한 본능이 때로는 단기적인 해결책에 치중하게 만드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이는 안락함이 아닌 생존을 위해 형성된 특성임을 이해해야 한다.
현대 비즈니스에서도 ‘박당 프레임워크(Bach Dang Framework)’는 강력한 통찰을 제공한다. 규모가 무기가 될 수 없을 때는 적응력이 무기가 된다. 첫 번째 원칙은 누구보다 자신의 지형을 잘 아는 것이다. 글로벌 거인이 산업 전반을 광범위하게 안다면, 작은 팀은 틈새시장을 깊이 파고들어 방어력을 구축해야 한다. 두 번째는 시간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다. 대기업이 거대한 자본과 인력을 가졌다면, 작은 조직은 속도를 가졌다. 결정과 수정이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지는 민첩성은 그 자체로 결정적인 우위가 된다. 마지막은 싸움의 판을 바꾸는 것이다. 가격이나 브랜드 인지도만으로 승부할 수 없다면 서비스 품질과 맞춤화, 그리고 신뢰 관계로 승부해야 한다.
박당강의 승리는 단순히 더 열심히 싸웠기 때문이 아니라, 지형과 리듬, 그리고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환경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진정한 전략은 환경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함께 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