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일본 브랜드의 차량 수만 대가 중국 내 중개 네트워크를 통해 러시아 시장으로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다. 14일 로이터 통신과 차량 등록 데이터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러시아에서 철수한 외제차들이 중국을 거치는 이른바 ‘암시장’ 경로를 통해 활발히 판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딜러들은 2022년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제조사들이 철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우회 경로를 통해 수입차 공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수법은 신차를 중고차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중국 내 합작 법인에서 생산된 신차를 현지 딜러가 먼저 등록한 뒤, 이를 중고차로 재분류해 러시아로 수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통하면 원제조사의 공식적인 허가 없이도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연구기관 오토스탯(Autostat)의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거래 규모는 상당하다. 중국에서 제조되어 러시아로 수출된 유럽 브랜드 차량은 2023년 이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25년 기준 러시아에서 판매된 외제차 13만 대 중 약 절반이 이러한 경로를 거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일본 브랜드인 도요타는 지난해 러시아에서 약 3만 대가 판매되었는데, 이 중 24,000대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물량이었다. 마즈다 역시 중국 생산분을 중심으로 약 7,000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독일산 고급차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러시아에 등록된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아우디, 포르쉐, 스코다 포함) 신차 약 47,000대 중 20,000대 이상이 중국 제조 물량으로 확인되었다. 메르세데스 G-클래스나 GLC 300, BMW X1 등 유럽에서만 생산되는 모델조차 중국 접경지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수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 제조사들은 러시아 판매 금지 조치를 엄격히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들은 딜러 계약에 엄격한 조항을 추가하고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나, 제3자를 통한 우회 거래까지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시인했다. BMW는 중국 내 소매 네트워크에 러시아로의 고급차 수출 반대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다.
서방 정부 차원의 단속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는 중고차를 통한 우회 수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며, 독일 경제부 역시 세관 당국이 제재 위반 여부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 상무부와 러시아 산업통상부는 해당 데이터에 대한 언급을 거부하며 일방적인 제재는 불법이라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중국이 주요 경유지로 부상하면서 러시아 자동차 시장의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다. 공식적인 서방 차량 판매는 2021년 100만 대 수준에서 8분의 1로 급감했으나, 실질적으로는 서류상 ‘중고차’로 분류된 신차들이 비공식 경로를 통해 러시아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