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lumn – 고우영 수호지

– 통쾌함과 기연 –

우리는 친구를 만납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매개로 하여 집근처에 사는 또래 친구들과 놀다가 학교에 가면서 같은 반 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반이 바뀌면서 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중학교, 고등학교, 사회 생활을 시작하거나 대학교를 가면서 또 새로운 친구를 만나게 됩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친한 친구가 필요한 이유는 점심 시간때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가장 시급한 문제와 함께 지루하고 스트레스 받는 학교 생활 ( 어른이 되어보면 그 때가 천국이었음을 깨닫지만…)에서 함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어른이 되어 아무리 좋은곳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내도, 고등학교때 학원 친구들과 학원 끝나고 가서 놀던 노래방 만큼 신나게 놀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친구는 또한 다른 집단이나 아이와 외교적이거나 물리적인 문제가 생겼을때 내 편이 되어줄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동맹체입니다. 학교 다닐때 사고친 아이들 부모님이 파출소에서 ‘우리 아이는 원래 착한 아이인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이렇게 되었네요’ 하면서 선처를 호소하지만, 함께 사고친 다른 아이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 ‘자식’이 ‘잘못 사귄 친구’입니다.

친구는 또한 훌륭한 정신과 의사이기도 합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는 말못할, 그러니까 좋아하는 이성 친구가 생겼다거나, 가수가 되고 싶다거나, 몸에 생긴 이상한 변화라든가 하는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문제에 대해 친구에게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무척이나 시원해집니다. 사실상 나와 비슷한 수준인 친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냥 내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얼토당토 않은 해결책을 같이 얘기하다 보면 그 나이대의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대부분 시간과 함께 저절로 해결이 됩니다. 친구라는 것은 ‘취향’과 ‘추억’과 ‘비밀’을 공유한 정치적 군사적 동맹체라고 정리가 되네요.

흔히들 사회에서는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것 같습니다. 같은 학교 친구라는 것은 사회적, 경제적 배경이 얼추 비슷하여 서로 크게 질투할 일이 없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크게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아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할말 못할말 다 하는 사이기 때문에 그런 인연을 새로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회 생활 하면서 ‘미안해, 나도 어쩔수가 없어’ 하는 말과 함께 남에게 서러운 일도 당해보고, 남에게 서러운 일도 해보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 쉽게 사람을 사귀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만나는 인연들 속에서는 같은 조직에서든, 거래처에서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는 ‘적’도 숨어 있다는 슬픈 사실도 우리가 쉽게 친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가 됩니다. 어른이 되면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처럼 ‘사람’과 ‘요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판단을 잘못했을 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잃을 것이 학생때보다 더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나와 생각이 비슷하고,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추억이 쌓이고, 어쩌다가 비밀도 공유하게 되는 특별히 끌리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그가 가진 능력과 내가 가진 능력이 만나면 +알파를 만들어 ‘시너지’라고 하는 긍정적인 이해관계를 만들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생활 중에도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더 큰일을 하고 성장 할수 있는게 사회 생활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친구에서 시작해 친구로 끝난다고 까지 말할 수 있는 중국 고전 수호지는 서유기, 삼국지, 금병매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로 불리우는 책입니다.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은 무송, 그의 형 무대, 희대의 악녀 반금련을 주인공으로 하는 금병매가 사실상 수호지의 한 꼭지인 점을 보면, 중국 4대 기서에서 수호지의 점유율이 50%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것은 수호지가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소설이란 점을 증명하는데, 영화, 만화, 드라마로 끝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서유기나, 조직 생활에서 거의 참고서 수준으로 쓰이고 인용되는 삼국지에 비해 일상에서 언급이 잘 안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주인공들이 본질적으로 정상적인 사회에서 이탈하여 양산박이라는 산에 자리를 잡고 ‘도적질’을 생업으로 삼은 산적들이자 무법자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의적’이라 부를수도 있지만 사실상 전국구 조직 폭력 조직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불온 서적이 오랫동안 고전으로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호지는 판본에 따라 120부작, 100부작, 70부작으로 나누어지는데 시대적 배경은 중국 북송시대 말기 휘종의 즉위 전후부터 요(거란)와의 전쟁, ‘방랍의 난’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후 송나라는 금나라의 침공으로 북송이 멸망하고 남송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나라가 망할 정도로 북송 지배층의 무능과 부패가 심했던 시절 억울하게 관직을 박탈당한 관리와 무관, 저마다의 사정으로 죄를 짓고 도망자 신세가 된 협객(또는 깡패) 등 108명의 영웅 호걸들이 사법 및 행정권이 미치지 못하는 양산박에 모이고 (70부본의 끝) 이후 조정의 사면을 받아 요나라 토벌 및 반란진압에 나선다(100부, 120부 본)는 이야기가 수호지의 기본 줄거리입니다.

중국 원나라 말기에서 명나라 초기에 쓰여진 수호지는 조선시대 허균의 홍길동전, 일제시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 1970~80년대 황석영의 베스트셀러 소설 ‘장길산’ 등 한국 문학에도 영향을 끼쳤고, 1900년대 이후부터 중화권에서 유행한 소위 ‘무협지’ 들의 원조라는 문학적인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가혹한 행정으로 백성들이 무력감과 고통을 겪을때 치외법권에서 강력한 무력으로 부도덕한 정부에 대항한 도적들의 이야기는 힘든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고우영 선생님의 만화 수호지 (20권)

통괘함! 그것이 수호지 전반을 꿰뚫는 힘의 기반입니다. 정부 최고위층의 아들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억울한 누명을 쓰며 귀향을 가게된 무도교관 표자두 임충, 지방 관리를 지내다 친구를 보호하던 중에 우연히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훗날 양산박 최고 두령이 된 급시우 송강, 지방 유지에게 억울한 일을 당한 부녀를 도와주다 군인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화화상 노지심, 형님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형수 반금련과 지방 갑부이자 형수의 정부였던 서문경에게 복수한후 양산박으로 들어온 무송 등 108 영웅호걸들의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그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사는’ 당시의 독자들은 물론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목에 막힌 고구마와 삶은 계란 노른자를 단번에 식도로 직행시키는 ‘사이다’ 역할을 했기에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다고 봅니다.

‘통쾌함’과 함께 이책을 받쳐주고 있는 또 하나의 기둥은 ‘인연과 기연’에 있습니다. 양산박의 영웅 호걸들은 모두 자신들이 평범한 일상에 있을때 친구 사귀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자신이 가진 힘의 범위에서 주변을 돕고 불의한 일에 오지랍을 아끼지 않아 나름의 ‘평판’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억울한 일과 기묘한 사건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고 정처없는 길을 떠났을때 생각치도 못한 장소에서 우연히 과거의 인연을 만나 다시 ‘살길’을 열게 됩니다.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다는 그런 경우죠.

평소 주변의 영웅 호걸들과 가까이 지내고, 자신도 영웅 호걸의 기개를 품고 살아가다 보면 훗날 본인이 원치 않았던 어려움에 처했을때 생각치도 못했던 곳으로부터 도움의 손길이 내려온다는, 겪어봐야 알게 되는 인생의 비밀에 대해 이 책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수호지는 한국에도 여러편의 번역본, 평역본이 있지만 대한민국 최고의 이야기꾼 중 한명인 고우영 선생님의 만화 수호지(20권)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그 분의 유머, 시사, 역사 지식, 화려한 입담에 책을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시리라 장담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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