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SNS대화시대이다 보니 각종 SNS 에 매일 좋은 글들이 올라옵니다.
모두 나무랄 데 없는 좋은 글이 올라오는데, 그 좋은 글들이 다 마음에 남아있지는 않지요. 하루의 영감으로만 남아있어도 감사한 일입니다.
며칠 전 올라온 글 중에서 유독 잊히지 않고 삶에 각인되기를 바라는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주 평범한 글이지만, 주제는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행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젊은 시절에는 행복을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어딘 가에 다다르면 찾아오는, 원하는 조건이 갖춰지면 느껴지는 마음의 결과라는 정의하지요.
좋은 직장, 안정된 가정, 건강한 몸, 여유로운 생활 등이 충족되는 상태가 행복이라고 믿는게 일반적인 행복의 개념입니다.
하지만 세월을 지내고 나며 압니다. 행복은 그런 조건의 완성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행복이란, 마음을 비우고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 평온의 상태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옵니다. 물질적 풍요도 행복을 제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마음의 평온은 행복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평온으로 행복을 찾으라는 말은 이론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없는 말이긴 하지만, 물질만능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저 공허한 공자님 말씀일 수 있습니다. 또한 물질적 성공을 이루지 못한 루저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지요.
그래도 좀 공허하기도 하고, 변명 같기도 하더라도 마음의 평온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면, 한번 추구할 만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지요.
그래서 두리번거려 봅니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골프를 즐긴 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갑니다. 개인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한가지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골프는 맘대로 되는 운동이 아닙니다. 자칫 하다가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 채로 행복과는 먼 마음을 안고 돌아오곤 합니다.
엊그제 멀리 호치민 외각에 위치한 꾸지에 새로 생긴 레만이라는 골프장을 찾았습니다. 새로운 코스를 맞이한다는 설레임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티오프를 시작합니다.
어느 홀, 드라이브를 잘 날리고, 핀까지 고작 100여 야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잘만 올리면 버디 사냥이 가능한 거리입니다. 그런데 기대가 큰 탓인가 그만 생크를 내며 공이 어이없이 엄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순간 실망감이 물려 들지요. 어떻게 이따위 샷을 할 수 있지 하며 자신에게 분노합니다.
그런데 캐디가 한마디 합니다. “너무 빨러…”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붉어집니다. 골프를 친지 40년이 다 되는데, 내 샷의 실수를 나이 어른 캐디가 지적한다는 생각이 드니 부끄러움과 함께 그런 지적을 하는 캐디에게 부화가 치밉니다.
뭐야? 네 일이나 잘해! 하는 소리가 목청까지 올라오지만 차마 입밖으로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혀를 찹니다. 실수한 것도 화가 치미는데, 캐디가 부채질을 한다는 생각을 한 듯합니다.
입술을 잘근대며 공이 떨어진 러프를 향해 몇 걸음 옮기는데, 돌연 이런 생각이 납니다.
맞아, 이 친구 말이 맞지. 내가 너무 서둘러서 실수한 게 맞아. 충분한 백스윙을 하지 않은 채 스윙을 시작해서 그런 실수가 나왔다는 조언인데, 내가 화를 낼 이유가 없지, 오히려 고마운 일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 전 읽었던, 아직까지 울림이 남아있는 [감사가 주는 행복]이라는 글이 순간 떠오른 탓일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순간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실수가 그리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주제넘은 소리를 한다고 째려보던 캐디에 대한 시야가 달라집니다. 맞아 고마운 친구야 로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 다음의 샷을 잘 붙여서 실수를 만회하면 되지 하며 여유로워집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골프장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돌아갑니다. 행복이란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공, 비워내는 상태 같습니다.
더 잘하려는 조급함, 더 우월하다는 허영, 더 인정받으려는 욕망 등, 부족한 인간이 갖고 있는 속된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 평온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행복은 채움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움을 통해 찾아간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긴 현실적으로, 채움으로 느끼는 행복을 추구하기에는 이미 세월을 다 보냈으니 이제부터는 비움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이 적절한 방향인 듯합니다.
집사람이 엊그제 밖에 나갔다가 빗길에 넘어져 무릎에 상처가 났습니다. 무릎이 까져서 상처가 나고 피가 흐릅니다. 다행이 주변의 고마운 베트남 사람들이 약도 발라주고 부축도 해줘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뼈에 충격을 주는 큰 부상이 아닌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다음 날 주일, 교회를 가기 전에 집사람이 감사헌금을 준비합니다. 감사헌금 봉투에 무릎을 다쳤지만 큰 탈이 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다는 문구를 쓰고 헌금을 담습니다. 또한 길에서 넘어진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이라도 준비하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제법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비록 쓰리고 아픈 상처를 입었지만 속상하고 짜증을 내기에 앞서 크게 다치지 않음에 감사하고, 자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사람들의 호의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결코 불행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을 잘 따르며 살고 있는 권사님 입니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결코 혼자만의 감정이 아닌 듯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함께 나누고, 감사를 표현할 때 생겨나는 따뜻한 울림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행복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서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혼자 사는 세상에 행복은 존재하지 않을 터니까요.
결국 행복이라는 건,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성취가 아니라,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여유있는 태도 속에서 저절로 피어나는 사람의 온도를 의미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