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금자 2명 추가 송환·59명 남아… 정부, 총책 20여명 송환 추진·사망 대학생 부검 임박


“범죄조직에 빌려준 통장이 막히면 출금하지 못한 금액만큼 빚이 생깁니다. 그러면 통장 주인인 한국인은 하루 5달러를 받고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일해야 합니다.”
최근 통장을 빌려주면 1천만원이 넘는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말에 속아 캄보디아에 세 차례나 다녀온 A씨는 16일 당시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신용불량자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렵게 생활하던 A씨는 지난 8월 대포통장 모집책인 ‘장집’의 텔레그램(Telegram) 연락으로 “사업자금으로 쓸 통장을 빌려주면 1천만원 이상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A씨는 장집의 말을 듣고 직접 캄보디아로 가서 통장과 여권,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를 조직원인 조선족에게 건넸고 이어 범죄집단 밀집 지역인 ‘웬치(Wenzhi)’로 끌려갔다.
당시 그의 통장에는 범죄자금 3천500만원이 입금됐지만 중간에 지급정지가 되면서 1천200만원이 출금되지 못했고, A씨가 조직원들에 보수를 강력히 요구하자 돌려보내 줬다. A씨는 “제 몸에 문신도 있고 험상궂게 구니 겨우 보내줬다”며 “일반인이었다면 절대 못 빠져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자신이 비교적 덜 잔혹한 웬치에 갔기에 탈출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웬치, 총책마다 한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모두 제각각”이라며 “제가 갔던 곳은 들어가기 전 출입을 확인하는 용도로 신발 사진을 찍던데, 더 잔혹한 곳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촬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곳곳에 통장을 모집하는 장집들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보이스피싱 문제가 잘 알려져 고소득 일자리라는 말에 속아 캄보디아에 넘어가는 사람은 드물다”며 “대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50∼100만원을 빌려주고 신뢰를 쌓은 뒤 ‘잠시 통장만 빌려달라’며 유인한다”고 설명했다.
현지에서 자금세탁 과정 중 자금이 빠져나가거나 지급정지가 걸리는 이른바 ‘돈 사고’가 발생하면, 출금하지 못한 금액만큼 한국인에게 빚이 생기는 구조다. A씨는 “조직원들이 돈을 빌려 카지노를 해보라고 권하는데, 결국 그 모든 것이 빚으로 남는다”며 “여기에 계좌가 동결돼 출금하지 못한 금액까지 합치면 수천만 원의 빚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캄보디아에 구금된 한국인 2명이 국적기를 통해 17일 추가 송환됐다. 현재까지 63명 중 4명이 송환되면서 남은 구금자는 59명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캄보디아 이민청에 구금됐던 한국인 2명은 이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이들은 캄보디아 경찰의 범죄단지 단속을 통해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나머지 인원도 신속한 송환을 위해 협의를 지속하고 있다”며 “아직은 송환 계획이 확정 전”이라고 밝혔다.
캄보디아 국가경찰은 전날 성명에서 구금된 한국인 59명을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과 협력해 오는 17일(현지시간) 본국으로 추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구금 한국인을 한꺼번에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 투입을 현지 당국과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살려달라” 신고 잇따라… 실종자 안전 확인도
한편 전국 각지에서도 캄보디아 관련한 실종신고가 접수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캄보디아로 간 아들이 살려달라고 전화가 왔다’는 신고를 지난 14일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이 남성은 돈을 벌겠다며 이달 초 캄보디아로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남성의 행방을 추적하는 한편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과 구조 방안을 논의 중이다.
한편 지난해 12월 태국으로 출국한 뒤 올해 5월 ‘캄보디아에 일하러 간다’고 알리고 연락이 두절됐던 여수의 A(38)씨는 최근 가족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안전상 문제가 없다고 알려왔다. 다만 A씨는 캄보디아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은 채 조만간 귀국하겠다고 밝혔다.
전남경찰은 A씨 사례를 포함해 모두 3건의 캄보디아 실종 의심 신고를 받아 수사 중이다.
-사망 대학생 장기훼손 여부 부검 조사
캄보디아에서 범죄조직에 의해 살해당한 한국인 대학생 박모(22)씨 사건과 관련, 현지에서 진행되는 공동 부검에서 장기 매매 피해 여부도 조사 대상에 올랐다.
16일 경찰청과 경북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고문당해 숨진 박씨 사건과 관련해 현지 의료기관에서 부검 절차를 조만간 진행한다. 부검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國科搜) 법의관 1명과 보건 공무원 2명, 경찰청 본청과 경북경찰청 소속 수사관 등이 입회한다.
부검에서는 외력 여부와 내부 장기 상태 등을 포함한 사인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며, 부검 항목 중 장기 적출 여부도 확인 대상에 포함됐다. 현재까지 관련 사실이 확인된 것은 전혀 없다고 경찰 측은 설명했다.
정부합동대응팀이 16일 훈 마네트(Hun Manet) 캄보디아 총리를 만나 협의한 만큼 양국 간 협의가 원활히 이뤄질 경우 다음 주 초 박씨 부검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씨는 지난 7월 17일 캄보디아로 출국했다가 3주 뒤인 8월 8일 깜폿주(Kampot Province) 보코산(Bokor Mountain) 인근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연합뉴스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