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N COLUMN

호찌민의 진상들

학년이 시작되면 회장을 뽑는다. 한국 학생과 달리 감투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는 것인지, 아니면 희생 정신이 없는 것인지, 하고 싶어 하는 후보자가 없다. 한국은 초등학교 반장도 서로 하려고 피 튀기는 선거를 하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베트남에는 대학교 학과 회장도 서로 하지 않으려 한다. 허기야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학점에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매일 교재용품이나 가지러 다니고, 칠판이나 챙겨야 하는 회장이 무슨 큰 벼슬이라고 서로 하려고 하겠는가? 이번 학년에도 희망하는 학생이 한 명도 없어 지난해 반장이었던 ‘쩜’이라는 여학생이 그대로 하기로 했다. 쩜은 성적이 좋다. 한국어 학과에서 성적이 좋다는 말은 한국어를 잘 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누구보다 일찍 와서 수업 준비를 하고 학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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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마지막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균형자

통일 베트남 40년, 통일 베트남의 강력함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반도 통일 담론에서 베트남은 우리의 선택적 모델이 될 수 없는가의 의문에서 출발하여 통일 베트남의 긍정적 가치를 살펴봄으로 베트남도 우리의 통일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를 통해 우리의 통일 의지가 다시 불타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통일이 없으면 한민족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이 우리에게 있는가? 통일을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을 바라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통일도 염원해 본다. 분단된 조국을 물려주는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지난 7월 7일, 베트남 권력 서열 1인인 응우엔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으로는 처음 미국을 방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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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8)

미-중 사이에서 발휘되는 통일 베트남의 힘 1991년 12월 25일 소련이 붕괴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2년 한국은 베트남, 중국과 정식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1992~2007)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2008년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동시에 오바마 정권이 출범하면서 미국 주도의 단극체제가 무너지고 G2 시대가 열렸다. G2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 으로 불리는 미국의 리더십 회복 전략과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崛起)의 팽창,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이라고 불리는 21세기 신중화사상, 공간 확장 전략으로 인한 새로운 냉전체제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미국의 사드배치 정책과 중국의 신실크로드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일대일로 정책과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창설과 가입문제로 인해 G2 시대의 갈등이 본격화된 듯하다. 게다가 최근 중국이 베트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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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8)

푸미흥 신도시를 관통하는 대로를 왜 ‘응우옌 반 린’으로 부르는가?’ 베트남의 정치, 경제와 베트남의 개혁 개방을 연구하는 한국인 학자들은 주로 도 므어이(Đỗ Mười)만을 알고 인용한다. 아마 그가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베트남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서기장을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기에 개혁 개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여 개혁 개방의 정착기에 들어서며 그 효과를 보고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베트남이 사회주의 계획 경제 정책에서 개혁 개방으로 급전환하게 한 결정적 인물이 응우옌 반 린(Nguyễn Văn Linh, 1915-1998)이다. 응우옌 반 린은 1986년에서 1991년까지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지냈다. 그는 개혁개방의 길을 연 사람이고 베트남 경제가 개혁 개방으로 들어서도록 최대의 공헌을 한 사람이다. 현대사에 있어서 베트남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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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7)

1976년 4월 25일, 베트남은 통일 이후 제 1대 총선거를 실시하여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국회를 구성하였다. 통일 이후 개최된 첫 총선거와 국회, 이것은 통일 베트남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통일 이후 첫 총선에 전 국민의 98.8%가 투표를 했다. 국회를 구성하고 그해 6월말부터 7월초까지 첫 통일 국회가 개최되었고, 국회에서 국가이름, 국기, 국가, 국호, 수도를 결정했다. 이어 그해 12월 14일부터 20일까지 하노이에서 베트남 공산당 제 4차 전당대회가 개최되었다. 이것은 통일 이후 개최된 첫 전당대회이다. 당시 1,550,000명의 당원 중 대표자 1,008명이 참석하여 사회주의 계획 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계획 경제 이때 정부 체제의 통합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경제를 통합해 나갔다. 경제 통합 정책은 한 마디로 ‘사회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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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6)

40 : 70 베트남 전국에 ’40’이라는 숫자로 도배를 해 놓았다. 2015년 4월 30일은 통일 베트남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통일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 주도의 각종 행사들이 많이 준비되고 있다. 통일 베트남을 연구하기 위한 각종 학술대회가 개최된다는 기사도 신문에 소개되었다. 2015년 을미년, 통일 베트남 40년, 한반도 분단 70년, 통일 독일 25년이 되는 해이다. 연초부터 베트남 전국 주요 거리와 교차로에는 ’40’ 이라는 대형 숫자로 화려한 장식을 해 놓았다. 이 대형 장식이 호찌민시에는 베트남 통일의 상징인 통일궁 앞 레쥬언(Lê Duẩn) 대로에 3개가 있으며, 호찌민시의 상징인 벤탄(Bến Thành) 시장 앞 교차로에도 설치되어 있다. 이 ’40’이라는 장식과 함께 분단기간 남, 북의 국기와 통일 베트남 국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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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5)

사람의이동 통일 베트남 40년, 통일 베트남의 강력함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한반도 통일 담론에서 베트남은 우리의 선택적 모델이 될 수 없는가의 의문에서 출발하여 통일 베트남의 긍정적 가치를 살펴봄으로 베트남도 우리의 통일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를 통해 우리의 통일 의지가 다시 불타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통일이 없으면 한민족의 미래는 없다는 절박함이 우리에게 있는가? 통일을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을 바라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우리의 통일도 염원해 본다. 분단된 조국을 물려주는 부끄러운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해. 베트남 통일 전후 과정에서 세 번에 걸친 대규모 사람의 이동이 있었다. 사람의 이동은 통일을 실현하는 중요한 힘으로 작용했으며, 통일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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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4)

신적시간을 움직인 통일의지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로 정의되는 베트남 전쟁 한반도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분단이 고착화 되었지만 베트남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통일이 되었다. 20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의 가느다란 한 모퉁이에서 30년간 이어진 베트남 전쟁은 프랑스에게는 ‘식민지 재점령 전쟁’이었고, 미국에게는 표면적으로는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산(도미노 현상)을 막는 자유민주주의 수호 전쟁이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미국 식민지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게는 남의 나라 전쟁에 연인원 31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을 파병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쳤지만 결국은 베트콩 잡고 누린 ‘월남특수’의 전쟁이 되었다. 베트남 민족에게 베트남 전쟁은 서구 식민제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이었으며,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의 민족해방 전쟁이자 남북통일 전쟁이었다. 베트남 전쟁은 인류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폭탄과 돈이 투입 되었으며, 가장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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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3)

베트남 통일 이후, 하노이는 베트남 정치,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호찌민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하노이 사람은 사상성이 강하여 경직되어 있고, 호찌민 사람은 개방성이 강하여 유연하다. 이러한 성향의 연유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하노이는 사회주의를 표방한 공산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아서라고 말하고, 호찌민은 자본주의 국가인 프랑스,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시장경제를 표방한 자유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으나 정확하지 않은 말이다. 우리는 통일 베트남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통일 이후, 남북 베트남의 진정한 통합 과정의 이해를 위해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이 부분은 한반도 통일과 통합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세계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 특이한 공식이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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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베트남 더 깊이 알기 (2)

통일 베트남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베트남 통일은 베트남 현대사에서 최고의 가치다. 한국인은 베트남적 가치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왜 한국인의 베트남 인식이 부정적일까?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의 제국주의자들은 식민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강력한 식민사관(植民史觀) 정책을 폈다. 그 결과 지금까지도 한국인들의 역사 인식에 식민사관의 잔재가 많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식민사관이 한국인의 베트남적 가치, 베트남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식민사관의 3가지 핵심은 1) 한국인의 사대주의 2) 한국인의 분열주의 3) 한국인의 남아시아 멸시 사상이다. 한국인은 남아시아인을 멸시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는 분명히 일본인의 독특한 인식이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을 통해 한국인에게 주입된 인식이다. 한국인의 직접적인 인식이라기보다는 일본을 통해 전해진 것이다. 한국인들은 동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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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베트남 더 깊이 알기 (1)

2015 을미년을 맞이하는 베트남과 한국 통일 베트남은 어떤 나라일까? 통일을 이룬 베트남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 왔으며, 어떤 미래상을 그리고 있을까? 2015년 유럽연합에 상응하는 ASEAN(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시아국가연합) 단일 경제 공동체가 출범한다. 아세안의 출범은 통일 베트남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유럽연합은 통일 독일에 가장 많은 혜택을 주며, 통일 독일의 저력을 더욱 드러내는 장이 되었다. 아세안의 출범이 통일 베트남에도 이러한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인가? 2015년 을미년, 베트남 통일 40년, 한반도 분단 70년, 독일 통일 25년이 되는 해이다. 베트남 전국 중요 거리와 교차로에는 ’40’ 이라는 대형 숫자로 화려한 장식을 해 놓았다. 이 대형 장식이 호찌민시에는 베트남 통일의 상징인 통일궁 앞 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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