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다룬 적이 있는 재미동포 이민진 교수의 소설, <파친코>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소설 파친코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 바로 이 글의 제목입니다. 이번 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회사는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 대박이 난 넷플릭스가 아니고 그들과 경쟁 관계로 출발한 애플TV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반응이 어마무시합니다. 예고편이 나오자 마자 이 드라마에 대한 전문가들의 호평이 전세계 영화시장을 흔들어 놓습니다. LA TIMES는 멜로 드라마의 장르가 파친코 이전과 이후로 나눌 것이라고 평할 만큼 이 드라마는 신선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달려있습니다. 세계 스트리밍 시장의 절대 강자 넷플릭스의 아성에 도전하는 애플TV가 새로운 무기를 들고 넷플릭스에 도전하는데, 하필이면 그 무기가 역시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K- 방역의 허상
요즘 한국과 베트남이 좀 냉랭해지는 듯합니다. 코로나 확진자 문제로 인한 한국정부의 베트남 홀대가 드러나면서 벌어지는 일이죠. 현재 코로나 19 세계 확진자 현황을 보면, 미국이 8천만명으로 단연 톱이고, 인도가 4천만명 외에 브라질, 프랑스, 영국, 독일 등이 2천만명 이상으로 상위그룹을 이루고 있고, 베트남은 고작 8백만여명으로 13위, 한국은 1천 2백만명으로 인구의 약 30%가 코로나에 걸려 세계 순위 10위를 자랑합니다. 아마도 인구수를 따진다면 5 손가락 안에 들 겁니다. 문제는 왜 갑자기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왜 적극적으로 방역에 참여하는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설명할 생각을 안 합니다. 결국 한국의 K-방역은 사기 행각이었습니다. 베트남보다도 못한 방역이면서 돈은 돈 대로 쓰며 국민을 우롱한 셈입니다. …
Read More »고전에서 길어 올린 ‘깊은 인생’-우울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
이제 예전처럼 다시 하늘 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실로 얼마만인지요. 어제 그리고 오늘, 한국에 계시는 지인 분들이 격리 기간이 사라지는 상황을 물어옵니다. 그 덕에 오랜만에 나의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출근 길, 차 안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봤는데 파란 바탕에 태극 문양의 비행기가 새초롬하게 지나 갑니다. 이내 무심하게 보던 책을 다시 들여다봤지만,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어느 기관에서 팬데믹 전후의 삶을 비교한 보고서를 우연히 읽었습니다. 특정 기간에 살아간 사람들의 삶의 양태를 수많은 도표로 설명해 놓았는데 복잡한 인간의 삶을 도표와 수치로 설명하려 애쓰는 그들이 조금은 안쓰럽기도 했지만, 인내를 갖고 끝까지 읽어 내렸습니다. 보고서 설명에 따르면,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우울감은 높아지고 행복도와 삶의 만족도는 낮아졌다는 것이 주요 골자더군요. 사회가 …
Read More »베트남에서 세계 명문대학 가기 Global Apply 칼럼 1탄 – 미국대학 바로알기 1편
다른 어떤 나라에서 보다 베트남에서의 한국인은 뭔가 달라야 할 것 같다. 잘사는 조국의 국격을 모든 분야에서 보여주며 발전하고 도약하는 한인 커뮤니티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국가 및 각 지역, 커뮤니티 발전의 중심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상 교육이다. 지역경제와 사업 모든 것의 핵이 가족의 기본단위와 자녀교육이라는 일생의 목표로 시작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학교를 다닌다 (한국식 표현) Go to school (영어식 표현), 그러나 취학 기간 동안 인생모든 시간의 반을 학교에서 보낸다는 근거로 표현해 보면 “학교에서 산다” 라고 하는 것이 맞다. 곧 학교는 삶이고 지식(지성)만의 성장이 아닌 인성도 감성도 이곳에서 성장한다. 자녀의 총체적인 성장에 부모보다 더 많이 개입되어 있고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이 학교인데, 이곳의 우리 자녀들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받고 …
Read More »Book Column – 함께 읽는것의 유익함
똑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이 다 다를 수 있다.’ 는 인생의 불편한 진실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커플이 사귀다 헤어졌습니다. 둘과 모두 친한 친구가 남자, 여자를 따로 만나 헤어진 이유를 묻습니다. 그리고 각자가 말하는 이별의 이유가 너무 달라 놀라죠. 대부분의 사람은 십중팔구 자신의 잘못은 잊고, 상대방의 잘못은 잘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모두 내잘못 때문이야’ 라고 말하는 경우는 성직자이거나, 빨리 헤어지고 다른 인연을 찾고 싶은 연애전문가일 확률이 높습니다. 나는 나를 직원들과 항상 소통하는 직장상사라고 생각하는데, 젊은 직원들은 그를 말많은 꼰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양성 평등주의자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의 눈에는 그/그녀는 남성우월주의자 혹은 골수 페미니스트로 보일수 있어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평가할때 …
Read More »한주필 칼럼-인생의 선택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선택을 합니다. 점심을 뭘 먹을 것인가 하는 작은 것부터 대통령 선거의 선택이나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무거운 선택까지 늘 우리는 선택을 하며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갑니다. 삶은 어찌보면 선택의 연속입니다. 연속된 선택으로 우리의 운명이 만들어지죠. 학생들에게는 오늘 공부를 할 것인지 친구와 오락실을 갈 것인지의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상급학교를 어디로 진학할 것인지도 삶의 경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이고, 군대를 어디로 갈 것인지도 한국의 남자들에게는 중요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 역시 인생이 통째로 바뀔 만한 선택입니다. 나아가 부인을 만나 선택하고 간택 받는 것 역시 자신의 인생을 바꿉니다. 매 순간 신은 그대에게 선택을 묻습니다. 그 선택 너머의 …
Read More »한주필 칼럼- 만만한 희생양
한국의 확진자 수가 무려 40만명이 넘나드는데 그 와중에서도 위드 코로나 정책으로 거리두기 방역 등을 완화하고 동시에 4월 1일 부터 입국하는 외국인 중에 접종을 마친 사람에게는 격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치에 일부 국가에게는 예외를 주었습니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베트남 3개국을 두었는데, 그 3개국에서 온 사람은 접종 여부에 관계없이 무조건 격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베트남이죠. 한국보다 훨씬 양호한 방역을 기록하고 있는 베트남인데 말입니다. 베트남의 2배가 넘는 확진자를 만들고 있는 코로나 왕국 한국이 무슨 자격으로 베트남의 출입을 막습니까? 언젠가 베트남이 한국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한국이 베트남에 복수하고 싶은 것인가요? 이번 조치로인해 손해를 보는 것은 베트남인이 아닙니다. 그들보다 교민들이 먼저 희생양이 됩니다. 앞으로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무가치한 전쟁
행복한 이야기를 늘 썼으면 좋겠습니다. 늘 희망찬 얘기들이 들려오면 좋겠습니다. 뜻하는 바가 생각대로, 기대대로 이루어지고, 세상은 평화롭고, 인간관계에서는 서로를 시기하지 아니하고, 단지 배려하고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인간의 본질상 다툼은 피할 수 없는 가 봅니다. 에덴의 동산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인간사의 사건이 살인이었으니 어쩌면 인간은 태초부터 서로 다투고 죽이는 일이 운명처럼 심어진 것인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인간 다툼의 최정점이 전쟁이죠. 예전 전쟁은 목적이 있었고 결과도 있었습니다. 식량을 확보하거나 자신의 종족을 더욱 번성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있었지만, 요즘의 전쟁은 뭐가 목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눈에 잡히지도 않는 이념이나 권력 아니면 돈? 아무튼, 최근에 그렇게 목적이 불투명한 전쟁은 시작되었고, 그 피해는 아무 잘못도, 아무런 욕심도 부리지 않은 그저 평범한 시민들에게만 돌아갑니다. 왜? 전쟁의 대가를 무고한 국민들이 치러야 합니까? 세상은 너무 부조리합니다. 인권이 나아졌다고 누가 말하던가요? 여전히 일반 국민들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눈에는 소모품일 따름입니다. 나라도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이지요. 자신의 국민을 위한다고 남의 국민에게 폭탄을 퍼붓는 인간도 아니지만, 나라 지킨다는 이유를 내세워 자신의 권좌를 위해 국민에게 남아서 같이 싸우다 죽자는 측도 잘한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숭고한 정신이긴 하지만, 모든 국민이 그래야 한다고 강요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강제로 출국을 막고 총을 쥐여줄 일은 아닌 듯합니다. 자신들의 권세를 위한 싸움이라면 그렇게 고집하는 두 지도자가 단판을 붙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멋지지 않나요? 꿈을 꾸며 삽니다. 진짜 의문이 듭니다. 그들이 영토를 확장시키거나 훌륭하게 방어하거나 그리하여 그 결과로 목숨을 건 국민들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어떤 것인가요? 과연 국민들은 목숨을 건 응당의 대가를 기대할 수 있나요? 다 부질없는 수작입니다. 여전히 국민은 살기가 힘들고 정치인들은 배를 불리며 삽니다. 세상에 가장 악한 자들의 형상은 바로 국민들을 전쟁의 사지로 몰아낸 정치인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한민족은 세상에서 가장 우매한 민족입니다. 6.25로 민간인 기백만이 죽어 나가는 어처구니없는 전쟁을 치루었지만 왜 전쟁을 했는지조차 모릅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이 국민만 죽는 전쟁을 치뤘습니다. 그렇게 국민 3백만을 죽이고 나서 전쟁 전과 똑같이 38선을 기준으로 나라는 분단되었고, 이념은 여전히 충돌 중입니다. 정말 멍청한 전쟁을 치른 것을 깨닫고 계시긴 한가요? 3백만의 생명을 바친 전쟁으로 얻은 것은 황폐한 국토와 세계 최빈곤의 굶주림이 전부였습니다. 그 잘난 이념조차 한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무가치한 전쟁이 한국전쟁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 무가치한 전쟁의 대가를 아직도 치르고 삽니다. 누가 한국전쟁으로 얻는 교훈이 무엇인지 좀 알려주십시오. 3백만의 생명을 버릴 만큼 마땅한 댓가가 있었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겪은 전쟁으로 교훈을 얻지 못했다면 이제는 남들의 전쟁에서라도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가치한 전쟁의 반복을 피할 수 있습니다. 과연 지금의 한민족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의문입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 봄은 왔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움을 느낍니다. 아마도 자신의 생이 너무 힘들었다는 자기 연민에서 나온 감성이긴 할 테지만 큰 위로가 됨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이가 이렇게 차오르면 문득 이제는 그만, 하는 감정이 때때로 밀려옵니다. 이제는 정말 아무 염려 없이 평화로운 마음을 음미하며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요. 너무 큰 기대를 품은 듯합니다. 그래도 매번 잠이 들 때마다 의식 없는 깊은 잠에 빠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이제 그만 안 일어나도 좋을만한 깊은 잠 말입니다. 매년 가을날 색 바랜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문뜩 곰돌이처럼 동면을 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한 3개월 푹 잠자고 일어나서 새싹이 움트는 새 세상을 만나기를 꿈꾸었습니다. 특히 이번 겨우내 그렇게 깊이 잠들고 싶었습니다. 백 년의 세월을 견디시는 모친의 수발을 들고 있는 아들은 그런 마음이 불손하게 여겨집니다. 모친도 스스로 편히 쉬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겠지요. 늘 이승의 종말을 곁에 두고 지내시는 모친의 시간이 아파서 소리 내 외쳐봅니다. 신이여, 무엇을 더 바라나이까? 자리에 누운 이들에게는 잔인하지만, 그래도 어김없이 봄은 옵니다. 뒷마당에 자리한 매화와 산수유는 벌써 그 수줍은 자태를 드러냅니다. 이 뜨락에서 15년이 넘도록 자란 제법 큰 목련 나무에는 가지 가지마다 큼직한 봉우리들이 개화를 준비합니다. 봄꽃이 수줍게 보이는 이유는 잎도 없이 꽃이 먼저 피기 때문인가 봅니다. 시종이 나갈 채비를 마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봄볕 맞이 나온 성급한 어린 공주와 같은 자태입니다. 찬 서리에 하얗게 덮여 겨울을 보낸 대지에는, 서리 녹은 생명수로 깨어난 푸름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봄이 옵니다. 겨우내 쌓은 어두운 시름을 따뜻한 봄볕으로 녹여 주소서. 베트남에 있으면 이런 맛을 모르지요. 봄이라며 말은 하지만 피부를 자극하는 봄바람은 없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이런 봄 풍경을 그리는 게 독자들과 괜한 괴리감을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고국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리한 베트남의 풍경을 가끔 씻어 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유의미한 일이 될 듯합니다. 이 봄에는 꿈을 꾸세요. 귀를 열고 대지의 숨 소리를 들어보세요. 눈을 감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향기를 느껴보세요. 발을 벗고 수줍게 감싸도는 어린 풀의 애무를 즐겨보세요. 봄에는 꿈이 피어납니다. 겨우내 품었던 푸르른 희망의 꿈, 말입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건강에 대한 관심
어제 고혈압에 대한 얘기를 썼는데 음모론을 올렸다고 힐난하는 이들의 눈초리가 보입니다. 그런데, 그게 음모론이라면 음모론이야 말로 진짜 우리가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야 할 이론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고혈압에 관한 WHO의 농간이 수억의 인류를 새로운 고혈압 환자로 만들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은 진짜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산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렇게 우리를 혼란케 하는 사항 중에 하나가 건강에 대한 각종 정보들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팬데믹으로 인해 건강에 관한 주의력이 엄청 상승한 환경에서는 과연 어떤 정보가 타당한 것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주변에도 코로나 감염에 대한 우려가 너무 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에 나갈 때 마스크를 안하고 나가면 거의 전쟁터에 총을 안 들고 나서는 사람 같고,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손을 안 닦으며 화장실 다녀와서 밑도 닦지 않은 경우처럼 신경을 곧추세우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런 분들 좀 위험합니다. 코로나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끌어당김’이라는 얘기 들어보셨죠? 자신이 원하는 일에 집중을 하면 그 일이 그대를 찾아가 이루어진다는 이론인데, 저는 이 이론을 신봉합니다. 세상에는 관심이 있는 일이 있어나지, 관심없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주에서 당신의 관심을 들으며 그 관심거리를 당신에게 운반하는 ‘끌어당김’의 마력은 선악에 대한 구분이 없습니다. 즉, 그 관심이 원하는 관심인지, 원치 않는 관심인지 구분을 못한다는 말입니다. 단지 그대의 관심만을 측정하고 그 관심거리를 그대에게 운반 할 뿐입니다. 코로나에 대하여 너무나 두려워 매일 매 순간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계속 관심을 높인다면, 코로나는 “아, 이 사람이 나를 부르는구나!” 하며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심을 쏟는 것에서도 요령이 있습니다. 코로나에 대한 관심을 쏟지 말고 건강한 모습으로 행동하는 자신을 그리며 관심을 쏟으면 건강이 다가옵니다. 일전에 흥미로운 조사가 있었습니다. 지난 세기에 핀란드에서 조사한 것인데, 38-54세 까지의 남자 회사원을 대상으로 …
Read More »한주필 칼럼- 넘쳐나는 고혈압 환자
오늘 한국의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60만을 기록했습니다. 전 세계 환자의 30%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과연 세계의 대한민국입니다. 환자 3명의 한 명은 한국적이라 이야기가 되나 봅니다. 정말 빼어난 나라입니다. 오늘의 주제로 갑니다. 오늘은 좀 색다른 얘기를 하나 하려 합니다. 고혈압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일전에 백신을 맞을 때 혈압측정을 하더군요. 그때 혈압 150이 넘으면 잠시 대기했다가 안정을 취한 후에 다시 측정하여 혈압이 좀 떨어지면 접종을 허락하고 한 일이 있습니다. 저도 그 과정을 겪었었죠. 그래서 묻습니다. “혈압 과연 심각한 병인가?” 오늘의 화두입니다. 제 혈압은 약을 안 먹으면 160 정도가 됩니다. 의사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10년이 넘도록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마쓰모토 미쓰마사라는 일본인 의사가 쓴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고혈압 기준치가 8년 동안 50mmHg나 낮아졌다는 것을 아시냐고 일갈하며 책을 시작합니다. “2000년에는 고혈압의 기준치가 180mmHg였으나 8년 후 2008년에는 고혈압 기준치가 130mm Hg으로 내려갔다. 이 결과 고혈압 환자는 230만명에서 무려 5500만명으로 늘어났다. 30%의 성인이 고혈압 약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가 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고혈압약 매출은 2조에서 10조로 늘어나며 제약회사의 주머니는 날로 부풀어 올랐다“(일본 통계) 그런데 그동안 아무리 과학적 자료를 뒤져봐도 고혈압의 기준치를 낮춰야 하는 논문이나 연구를 발표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1999년에 세계 보건 기구인 WHO에서 고혈압 기준치를 갑자기 160/95에서 140/90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이 발표 몇시간 뒤,WHO는 이 기준치는 자신들이 정한 것이 아니라 WHO 동의 없이 스폰서인 제약회사에서 정했다고 발표합니다.그런데 다음날 태도를 바꿔,그 기준치를 정식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합니다.그리고 그 기준치에 의해 지금은 세계적으로 고혈압 기준치가 130/80이 되었습니다. WHO는 예로부터 비린내가 풀풀 나는 단체입니다. 이번에 그 실상을 낱낱이 보여주었죠. 그들의 예산의 70%는 제약회사에서 나옵니다. 고혈압 기준치를 낮추는데 과연 얼마를 받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요? 문제는 고혈압 약을 복용한 사람들이 팔다리에 쥐가 나고 팔이 저리고 하는 증상이 나타나고, 또 뇌졸중 환자 중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이 책의 저자는 뇌졸중을 막으려면 혈압을 높여 피를 뇌에 보내야 하는데 혈압약으로 혈압을 낮춰 뇌졸중을 유발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그결과 뇌졸중은 혈압약을 먹는 사람에게 두배이상 높게 나타난다고 합니다.무서운 일입니다. 기억나는 게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 혈압의 기준을 말할 때에는 나이가 변수가 되었습니다.즉 자신의 나이에 90을 더하는게 자신의 적정 혈압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이 60이면 150이 정상입니다. 뭔가 뒤끝이 수상한 WHO가 제약회사의 로비로 고혈압 환자를 수억명 만들어낸 것으로 생각할 수 있군요.그리고 인류의 30%는 고혈압 환자가 되고 그 덕에 뇌졸증 환자는 두배이상 늘어났습니다. 이 책의 작가는 집안에 있는 혈압계를 버리라고 합니다. 혈압도 역시 신체 조절기능의 하나인 만큼 특별하게 (180-200 이상)높지 않다면 인위적으로 조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이 모든 것들이 악취 풍기는WHO의 농간으로 시작된 것 일 수 있군요.그런데 그들은 혈압약만 이리 장난한 것일까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은 어떠한가요? 이 모든 것이 어떤 양반들은 음모론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음모론이 더 논리적이고 설득력있지 않나요? 믿거나 말거나 그대의 선택입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 코로나 푸념
모든 국가가 코로나에 승리의 손을 들었습니다. 한국은 신규환자가 하루에 40만명이 나옵니다. 미국의 2배 수준으로 세계의 탑입니다. 한동안 세계의 위용을 떨치던 K-방역은 이제 K-굴욕으로 바뀐 모양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이 유독 환자가 많은가에 대한 의문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한국사람들처럼 마스크 착용을 잘 지키는 나라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마스크는 개나 줘라” 하며 마스크 착용에 비웃음을 날리는 미국 양반들보다 2배나 많은 환자가 나오는지 그 이유에 대한 답은 없는 건가요? 그렇다면, 방역당국자 나리들 그동안 국민들에게 사기 친거 아닙니까? 마스크 만 잘써도 안 걸린다. 백신 2번 만 맞으면 안전하다 하더니, 곧 이어서 3번 4번 맞으라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매 6개월마다 혹은 매 3개월마다 맞아야 한다느니, 지들 배짱 내키는 대로 떠들어 국민들을 대 혼란으로 몰고간 놈들이 누굽니까? 아는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국민들을 시험 햄스터 정도로 여긴 겁니까? 백신 부작용으로 죽은 사람만 2천명이 넘습니다. 아마 바이러스로 죽은 사람보다 백신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백신부작용을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만 이제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병을 1급 전염병에서 제외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 치료비도 환자 당사자 부담으로 해야 하고 환자수를 밝히는 것도 안한다고 합니다. 결국 방법이 없으니 손털고 자유대로로 뺑소니를 칩니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사기치던 뻥튀기 방역이 구멍이 나자, 이참에 일찍 손들고 말자는 것이죠.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이제는 숨 좀 쉬면서 삽시다. 그런데 그럼 그동안 난리 난리 치며 경제고 관광이고 다 막아놓아 망해버린 소 상공인들은 어찌합니까? 소상공인들 만 입니까? 회사를 3-4개월씩 강제로 문닫게 하여 길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기업인들과 그 종업원은 누구에게 하소연합니까? 그 여파로 영업의 맥이 끊어져 살아도 죽은 것 같은 기업은 어찌합니까? 세상이 말입니다. 요따위로 돌아가면 안됩니다. 욕이 목구멍을 쳐대지만 힘없는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네요. 하긴 뭐, 우리가 언제 하루라도 편안할 날이 있었나요? 한국인, 특히 60대 이후의 한국인은 사는게 전쟁이었죠, 전쟁 중에 혹은 전쟁의 흔적으로 최악의 빈곤의 시기에 태어나 요람에서 저승까지 일만 하다 죽을 운명을 지고난 인생에게 이 정도의 바이러스의 소동은 난리도 아니죠. 원래 그렇게 싸우다 죽을 팔자를 안고 태어났으니 세상을 원망할 일도 아니고, 단지 시대를 잘못 택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전쟁은 우리만 치른 것이 아니네요, 베트남 역시 1975년까지 전쟁의 참화 속에서 지내고 있었군요. 그들의 기억이 우리보다 더 새롭겠습니다. 역시 베트남은 한국과 많이 닮긴 했습니다. 그런 베트남 국민들 역시 억울하긴 마찬가지겠네요. 우리는 그래도 이렇게 푸념이라도 하며 울분을 털어 놓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너무나 착해서 정부의 리드에 순종하며 잘 따르는 듯합니다. 존경합니다. 아무튼 이번에 3월15일 부터 일단 항공로가 열리고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은 무비자 15일 베트남 입국이 가능하게 되었더군요.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아직 보건부와 격리에 대한 조율이 끝난 것 같지는 않지만 곧 최종안이 시행될 것을 믿습니다. 이제 좀 편하게 출입국을 할 수 있게 되어 숨통이 트인 셈이니 축하주라도 한잔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는 축하 할 일이 하나 더 있었군요. 아무튼 모두다. 건배!
Read More »한주필 칼럼 – 세계 속의 한국인
예전에 아마 세계속의 한국인이라는 이름의 방송프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TV인지 라디오인지 잘은 몰라도 아직 한국의 위치조차 세계인의 뇌리에 새겨지지 않을 때, 먼 이국에서 한국인의 기개를 떨친 몇몇 분들을 모시고 그 무용담을 들으며 한국인 모두 국뽕에 빠지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아득히 지난 시절의 전설이 되고 말았네요. 차범근이 독일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때, 독일에서 한국은 차붐의 나라로 불리었지요. 지금도 독일의 시니어들에게는 한국보다 차붐이 더 유명합니다. 이제는 세계 속의 한국인이라는 방송은 시대에 맞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한국인이 세계에서 한국인으로 그리고 지구촌의 일원으로 활약하기 때문입니다 일일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숨찰 정도로 그 존재가 너무 많고 다양합니다. 오늘은 그 수많은 세계속의 한국인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요동치는 세계
요즘 세상의 변화가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전 세계는 너나없이 하루에 수십만명씩 나오는 오미크론 확진자로 인해 더이상 방역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듯합니다. 그리고 3년여 계속되는 코로나 정국을 풀지 않고 살아남을 도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입니다. 결국 모든 나라가 약간의 시차는 있지만 서로 살길을 찾아 문호를 개방하고 다시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며 정책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엄격하게 지키던 백신 패스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반면에 주변에서 들리는 양성자의 소식이 낯설지 않습니다. 가까운 주변에 누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에도 별다른 동요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별다른 고생없이 넘어가기를 기원할 뿐이고 그 기대가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또 믿습니다. 그런 소식보다 곧 격리없이 예전처럼 입국이 가능하다는 베트남 뉴스에 더 신경이 갑니다. 이렇게 코로나는 결국 우리 주변에 당당하게 자리 잡고 함께 살아가는 데 성공한 모양입니다. 인류와 공생에 성공한 코로나는 지금쯤 자축의 파티를 벌이지 않을 까 싶네요. 코로나는 인류와의 공생의 길을 찾아 내 인간과의 치열한 전쟁은 사라졌는데 정작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최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세계인을 불안으로 몰고 갑니다. 전쟁의 시작을 알린지 2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절대 강자인 러시아가 제 모습을 보이지 않자 온 세계가 러시아를 코너로 몰아갑니다. 전쟁보다 이런 러시아에 대한 압박이 더 위험해 보입니다. 러시아가 이런 상황을 인정하고 전쟁을 멈출 것인지, 오히려 심각한 반발을 할런지 진짜 시계 제로인 상황이 벌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전쟁에 대한 책임은 물론 직접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가 지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상황을 몰고간 주동자는 미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미국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를 부추겨 나토 가입에 대한 기대를 주지 않았다면 이번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말로는 러시아에게 침공하지 말것을 요구했지만 이면에는 전쟁을 유발한 측면이 보입니다. 아프칸에서 밀려나며 실추된 미국의 명예와 역할을 다시 세계인에게 인식시키고 또 자국민의 체면을 세울 사건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번 전쟁의 원인은 러시아의 재 도약을 막기 위한 미국의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번 전쟁을 통해 러시아를 세계 경쟁의 구도에서 다시 물러나게 만들고, 세계 에너지 패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러시아의 푸틴은 현 바이든 대통령의 경쟁자인 트럼프를 당선시킨 주모자로 보고있기 때문에 언젠가 손을 보고 싶었던 구원이 있었던 관계입니다. 그런데 바이든이 일부로 눈을 감고 모른척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푸틴이라는 예측불허의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핵무기 버튼을 안 누른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죠. 즉 바이든은 미국의 패권을 위해 우크라이나 국민의 희생 만이 아니라 인류의 멸망을 불러 올 수 있는 위험한 시도를 한 셈입니다. 현재는 모든 나라가 미국의 요구대로 러시아를 제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에 반대하는 나라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 연방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이 차지하는 세계의 인구비중이 41%나 됩니다. 그 외에 20여개의 국가가 러시아 제재를 대놓고 반대합니다. 결국 소련 붕괴 이후 힘을 잃었던 러시아가 에너지 권력의 강화로 다시 기지개를 펴는 꼴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미국의 자존심이 만든 전쟁이 현재 세계인의 운명을 흔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디 지혜로운 사고로 좋은 결말을 가져가길 기원합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 세한도(歲寒圖), 진정한 친구
2020년 8월인가 봅니다.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최고 걸작인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가 국민의 품으로 왔다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좀 뜬금없어 보이긴하지만, 그 세한도에 대한 얘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시절, 가시담장에 쌓여 집 밖 출입마저 제한되고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은 가혹한 세월을 보낼 때, 늘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책을 구해 보내주던 제자인 역관 이상적에게 고맙다는 글에 함께 그려 보낸 그림입니다. 추사가 글만 잘쓰는 줄 알았는데 그림도 잘 그렸군요.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걸작으로, 이 작품을 받은 이상적은 이것을 중국에 가져가 대가들에게 보여주며 대가들의 찬탄문을 줄줄이 받았다고 합니다. 전시회에 가보면 그 대가들의 찬탄문으로도 또 다른 작품이 된다고 합니다. 이 세한도는 추사의 굴곡진 인생 여정답게 제자리를 찾아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올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최초 소장자인 역관 이상적이 세상을 떠난 뒤 ‘세한도’는 몇차례 주인이 바뀐 후 추사 연구에 일가를 이뤘던 일본인 경성제대 교수 후지스카 지카시(藤塚隣·1879~1948) 소유가 되어 일본으로 갑니다. 그 작품을 되찾기 위해 서예가이자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컬렉터였던 소전 손재형이 거금을 들고 일본으로 후지스카의 집으로 찾아가 100일간 문안하며 ‘세한도’를 넘겨달라고 간청했답니다. 감복한 후지스카는 결국 그에게 ‘세한도’를 건넸는데, 석 달 뒤 후지스카 집은 미군의 폭격을 맞아 그가 소장한 상당수 책과 자료가 불타 버렸다고 합니다. ‘세한도’는 극적으로 살아남은 것입니다. 일본에서 세한도를 찾아온 손재형씨가 정치에 입문하고 자금 조달을 위해 개성 갑부인 손세기씨에게 세한도를 넘깁니다. 그리고 그 아들 손창근(91)씨가 이번에 나라에 기증을 한 것입니다. 시가가 얼마가 되는지 측정할 수 없지만 100억은 넘을 것이라 합니다. 손 옹은 그것만 기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차례에 걸쳐 싯가 1000억에 달하는 200만평의 산림과 건물, 304점의 귀중한 문화 소장품을 다 기증하고 세한도만 지니고 있다가 이번에 그 세한도마저 국가에 기증을 한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세한도’ 라는 그림의 제목이 의미하는 유래가 있습니다. 세한歲寒은 공자의 말씀 중에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 한겨울 추운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비로소 알게된다. 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 차가운 세월이라는 의미입니다. 추사는 워낙 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유아독존식 행동으로 주변의 거부감을 샀다고 합니다. 그러던 추사가 유배를 가자 그나마 있던 친구들도 다 떠났지만 제자 이상적 만이 늘 귀한 책을 일부러 구해서 보내주니, 감회가 남 다를 …
Read More »한주필 칼럼-성공의 길, 멘토가 계신가요?
멘토란,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 혹은 그로 부터 배우는 이를 멘티(mentee) 또는 멘토리(mentoree)라 부릅니다. 이 멘토라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메로스(Homeros)가 기원전 약 700년경에 쓴 <오디세이(Odyssey)>에서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그의 친구인 멘토에게 맡기는데,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년동안 멘토는 왕자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고 그 일을 시작으로, 멘토라는 그의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가끔 살아온 자리를 돌아보면, 참으로 바보 같은 순간, 아까운 찬스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순간에 누구와도 …
Read More »전설의 BAD BOY ‘주영’
미국 서부에 위치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거벽을 등반하는 산악인들의 메카다. 19세기 후반 유럽 알프스 봉우리들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며 등정된 이후 1950년대부터 산악인들은 히말라야 8,000m 이상 거봉巨峯에 눈길을 돌렸다. 1970년대까지 히말라야 봉우리들의 대부분이 등정되던 그 시기, 새로운 등반 스타일이 등장한다. 이른바 ‘거벽 등반’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경기도만 한 면적이다. 그 곳에는 63빌딩 다섯 채를 수직으로 쌓아올린 1,000m 이상의 암벽이 즐비하다. 그 바위들은 여러 개의 바위들이 합쳐 진 게 아니라 단 하나의 바위가 그렇게 솟아 있다. 바위꾼들은 그 숨막히는 수직의 암벽을 그냥 두고 넘어갈 수 없었다. 요세미티에서 대암벽 등반, 거벽 등반이라 불리는 등반 사조가 처음 생겨난다. 1970년대 미국의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등반가들이 …
Read More »한주필 칼럼-정권교체의 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 난지 5년만에 다시 보수우파로 정권이 넘어갔습니다. 선거를 마친 어젯밤 아무도 기대하기 싫은 초 접전을 펼치는 바람에 국민들이 밤을 세우며 마른 침을 삼켜야 했지요. 그리고 비록 1%도 안 되는 24만 표로 승부가 갈렸지만, 승자 독식의 정치방식에 따라 모든 권력은 표 차이에 관계없이 일단 이긴 측에 다 돌아갔습니다. 이번 선거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선거가 말해주는, 선거에 담겨있는 시사점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지요. 제 개인적 분석입니다. 먼저 국민의 힘 당의 불화와 무능이 빚은 자충수입니다. 원래 쉬운 선거였습니다. 문정권의 지난 5년간의 혼밥 치적이 워낙 화려한 탓에 국민들은 이미 정권교체라는 생각을 당연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국민의 당에서 통합된 의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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