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씬짜오베트남 467호가 발간되었습니다. 이번 책은 꼭 좀 모두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열심히 글을 쓴 기자나 칼럼니스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교민들이 꼭 좀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은 인지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이번 호 스패샬 리포트는 올해 상반기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상반기 동안 일어난 국내외 뉴스를 간추려 소개했는데 꼭 한 번씩 읽어보시면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시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늘 스페셜 리포트를 써대느라 고생하는 한성훈 기자가 이번에 제법 읽어 볼 만한 훌륭한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 번호 씬짜오베트남에는 올해 상반기 결산 외에 다양한 교민 단체들의 소식과 함께 한 베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준비하는 한인회 문화예술 사업 단장인 김영선 씨와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한베 수교 30주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한 지 30주년이 되었습니다. 올해 11월이 되면 1992년 베트남이 문호를 열며 한국과 수교를 맺은 지 30년이 됩니다. 30년 동안 수많은 민간과 국가 간의 교류가 이어져 오고, 베트남은 한국기업이 해외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국가가 되었고, 베트남 역시 자신들에게 가장 많이 투자한 국가가 한국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특별한 나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양국은 이제 전략적 동반자로서 관계를 승격시키고 국제사회에서도 한국과 베트남은 특별한 관계로 인정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국가 간의 관계로 보자면 수교 30년은 결코 긴 기간이 아닙니다. 여타 다른 나라에 비하면 고작 30년이란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역사는 아니고, 이제 막 청년의 시대에 돌입하며 어른으로서의 관계 맺기에 나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천한 역사임에도 약 8천여 한국기업이 베트남에 투자하고 코로나 전만 해도 약 30만 명에 달하는 한국 교민이 거주한 곳이 베트남입니다. 그 정도 교민수는 아마 모르긴 해도 미국, 중국에 이어 가장 큰 해외 교민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지낸 2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수많은 자영업자와 일부기업들이 철수를 하고 교민수 역시 반 이상 줄은 듯하지만 여전히 베트남은 한국인에게 그저 외면하고 지낼 만큼 가벼운 나라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입국제한이 풀리자 마자 베트남행 비행기는 만석을 이룹니다. 왜 한국사람들이 베트남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지 뚜렷한 이유를 내세울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애증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 인간의 관계란 고난을 함께 겪은 관계일수록 깊어지기 마련이니 한국과 베트남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다가오는 나라라고 보아도 될 듯합니다. 그리고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사돈 국가라는 점입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모든 관계가 다 비정상으로 바뀌었지만, 정상적으로 운영되던 2년전만 해도 한국과 사돈을 맺는 베트남 가정이 년간 5천을 헤아릴 정도로 양국은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모든 세상사에는 빛과 그늘이 있듯이, 한국과 베트남의 사돈 맺기 역시 모두 좋은 관계로 행복을 누린 것만은 아닙니다. 다행스럽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정이라면 문제가 될 수 없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한 가정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나 흔하게 자주 만나곤 합니다. 특히 부모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생산하고 난 후 부모들의 사정에 의해 이혼을 하게 되면서 아이가 갈 길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경우를 가끔 봅니다. 결혼을 결정한 어른들이야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면 되지만, 2국가의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이는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두 국가 사이에 애매한 위치에서 방황하게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한베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며 수많은 축하 행사가 준비되고 있습니다. 물론 축하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많은 행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 우리는 그 찬란한 축하 행사에 마음을 주지 못하고 그늘에 묻힌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미 한베간의 결혼으로 수많은 문제가 드러나자 한국에서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결혼에 대하여 소급하여 무효 판결을 내리는 등 강력한 대처를 시작했습니다. 신성해야 할 결혼이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도구로 오용된 경우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그러나 그런 정력적 결혼이 아님에도 수많은 가정이 국제간의 결혼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권리도, 마땅한 책임도 없는 무법지대에서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법을 모르고, 한국인은 또 베트남 법에 관해 무지한 탓입니다. 서로 원만한 해결을 볼 수 있는 상황에도 서로가 무지한 탓에 상태가 악화되고, 결국 법적으로는 가정을 이루고 있는데, 실제로는 산산이 깨져버린 가정이 너무나 많습니다. 수교 30주년을 이룬 현재는,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는 이렇게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들의 애환을 풀어주는 일입니다. 그들은 우리 한민족과 연를 맺은 우리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수교로 인해 일어난 가정에 대한 법적인 조언을 해주고 그들을 대신하여 법률적 행위를 해 줄 봉사 조직이 필요하다는 생각합니다. 물론 변호사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행정적 절차를 대행할 한국 쪽의 연결조직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미 그런 교민 조직이 있는데 제가 모르는 것이라면 제 무지를 용서하시고, 교민사회에 가장 큰 미디어인 씬짜오베트남을 통해 그이름을 널리 알려서 큰 뜻을 펼치시길 기대합니다. 만약 아직 그런 조직이 없다면 이제라도 중지를 모아 우리 2세들이 그늘에서 자라지 않고 양지에서 한국인으로서, 베트남인으로서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며 자랄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주는 진정한 봉사 조직이 생겨나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 다시 돌아온 이유
왜 베트남에 사는가? 젊은 시절 외국에 나가는 것 자체가 꿈이었습니다. 한동안은 왜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이렇게 빈곤한 한국에서 태어났느냐고 하늘에 불평을 늘어놓곤 했지요. 그리고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에 나가면 나도 그들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란 기대로 외국에 나가는 방법을 연구하곤 했지요. 결국 이공계 대학을 나오고도 기술자의 삶을 거부하고 오파상이라는 직업을 택해 마음껏 세상을 나돌아 다닐 기회를 잡았고, 그 덕분에 세계6대륙을 다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젊은 시절 그리 선망하던 선진국이 아니라 모국보다 결코 부유하지 못한 베트남에서 삶을 산다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젊은 시절의 꿈이 고작 잘사는 나라에 나가서 풍요롭게 지내자는 지극히 세속적인 욕망이라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런 꿈마저도 아련한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
Read More »한주필 칼럼- 내 의견에 책임지는 법
6개월 만에 베트남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마 한국과 베트남을 20 여 년 동안 100여 번은 다녔을 만한데 이번만큼 감회가 깊은 경우가 없네요. 6개월 정도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모의 수발을 직접 들면서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또 가족들의 민낯도 만납니다. 정겹고 따뜻한 순간들도 있었지만, 결코 좋은 기억으로 남지 않을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내 가족의 수준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정하니 그런대로 수긍할 만합니다. 완벽한 인간은 없지요. 신은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바벨탑을 쌓으며 접근하는 인간을 재단한 후 신은 인간에게 정답을 앗아갔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스스로 생각하고 하나의 의견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것을 정답이라고 고집하며 인간관계에 칼을 던집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 부분, 내가 틀릴 수 있고, 세상에는 정답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누군가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비로소 德을 아는 삶이 된다고 옛 성인들이 말합니다.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링컨이 한소리라고 하지요. 40년을 살아왔다면 그 삶의 역사가 얼굴에 나타난다는 것이죠. 어떻게 표정 관리를 하느냐를 보고 그 삶의 행로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장자에 보면 오십이 되면 자신의 지혜에 책임 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 40에는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되는데, 그보다 더 나이가 들면 그때는 지혜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혜에 책임을 진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요? 결국은 고집하지 않는다는 말이구나 싶습니다. 내 생각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소리일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내는 의견이나 사고가 완벽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따라서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바로 어른으로서 책임 질 수 있는 지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의견이 항상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어떤 의견이든, 지혜든,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언제나 옳다고 책임질 수 있는 의견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틀릴 수 있다는 것만은 책임질 수 있지요. 이런 사고는 숱한 실패와 갈등의 경험을 거친 후에 만들어지는 삶의 지혜인 듯 보입니다. 이런 사고가 생기고 난 후에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생겨납니다. 德이란 나와 다른 것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라고 장자는 말합니다. 젊어서는 늘 주먹을 쥐고 살아왔습니다. 세상을 싸우며 살아왔습니다. 누군가 내 의견에 토를 달면 당장 자존심을 걸고 싸워대기 일쑤였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고집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지요.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3번째 고래, 한국
요즘 세상이 참 어수선합니다. 어느 정도로 어수선하지 한번 살펴봅시다. 팬데믹이 주기적 유행으로 전환된다는 기대감이 전반적으로 퍼지고 있지만, 코로나의 시작이던 중국은 제로 코로나를 고집하며 여기저기 봉쇄를 지속하고 있으니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듯합니다. 아직 정치적으로 상황 종료가 되어서는 안 되는 때인가도 싶고, 빌 게이츠의 말대로 필연적으로 다가올 새로운 팬데믹으로 연결이 여의찮아 더 시간이 필요한가 싶기도 합니다. 이렇게 코로나 상황도 아직 정리가 안 되고 있는데, 이제는 장기 봉쇄에 따른 여파가 경제에서 드러납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코로나 봉쇄기간 동안 제한 없이 풀어낸 돈이 시중에 깔리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부릅니다. 미국이 화들짝 놀라 돈을 도로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를 왕창 올립니다. 세계에 퍼진 달러가 금리 높은 미국으로 쏠리면서 각국은 달러가 귀해지고 자국 화폐는 약세를 면치 못합니다. 한국도 그렇습니다. 물가는 널뛰고 한국 돈은 날개도 없이 하락합니다. 환율이 1,300원을 넘어갑니다. 거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유통이 왜곡되기 시작하자, 각종 원자재 가격도 오르면서 모든 제품의 가격은 천장 모르게 올라갑니다. 전쟁은 언제 끝날 줄 모르고, 미국이 직접 군대를 보내지는 않지만, 반러시아연맹을 형성하여 푸틴을 압박하고 있지만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듯합니다. 그 와중에도 한국은 빛을 발합니다. 에너지 수급이 차질이 생기자 LNG 건을 비롯하여 각종 에너지 관련 수송선의 주문이 밀려 들어옵니다. 한국의 조선업은 거의 독점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싹쓸이합니다. 거기에 전쟁으로 소진된 군수품을 채우기 위하여 한국이 만든 군수 장비 대한 수요가 솟구칩니다. 한국 군수산업은 천재일우의 호황을 맞이합니다. 70년 전 한국전쟁으로 온 세계의 지원을 받아서 생명을 건진 한국이 이제 다른 나라 전쟁으로 또 다른 기회를 맞이하다니 참 세상사 새옹지마 입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25일이 한국 전쟁 72주년이 되는군요.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세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는 전쟁입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평화를 위해 설립한 유엔의 위상을 확고하게 만들 계기를 제공한 것이 한국 전쟁입니다. 한국과 유엔은 그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1948년 한국 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가 유엔의 한국 감시 위원회의 관리하에 치뤄집니다. 즉 유엔이 탄생한 이후 처음으로 한 나라의 정부 수립에 관여하며, 유엔의 힘으로 정부가 수립되는 최초의 국가가 한국입니다. 유엔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자신들이 만든 모델 국입니다. 그런 인연과 인식은 2년 후 일어난 한국 전쟁에서 지체 없이 유엔 연합국을 결성하여 자신의 힘으로 일으킨 나라를 지켜줍니다. 한국 속담에 아이를 낳으면 온 동네가 키운다고 하지요. 그것처럼 한국은 세계를 대표하는 유엔이 키운 아이인 셈입니다. 비록 70여 년 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지만, 단시일에 성장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한 한국은 그야말로 세계의 모범국가입니다. 비록 아직 통일이 안 되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하지도 못하면서도, 세계의 어느 나라에 못지 않는 위상을 쌓아가는 한국은 그야말로 유엔이 만든 희대의 역작입니다. 이렇게 성장한 한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하여 책을 쓴 영국의 교수가 있습니다. 영국의 킹스칼리지 런던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라만 파체코 파르도 하는 교수는 <새우에서 고래로, SHIRP TO WHALE> 라는 저서에서 한국의 경이적인 발전과정과 앞으로 보여줄 한국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얘기를 썼습니다. 그는 현재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고래 두 마리가 세계의 패권을 두고 싸우고 있는데, 이들의 승부는 한국이라는 신흥 고래가 어느 편에 서느냐에 달려있다고 진단하며,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한국의 막강한 국제적 영향력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세계의 패권을 결정하는데 이니시어티브를 쥐고 있는 국가라는 말입니다. 한 중국 학생이 그런 강의를 하는 교수에서 한국 같은 작은 나라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시해 보았지만, 실제 한국 외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다른 나라를 찾아내지 못 합니다. 유럽연합의 프랑스나 영국은 이미 늙어 활력을 잃었고, 이태리, 스페인은 이미 한국의 국력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고, 일본과 독일처럼 전범국으로 제대로 된 군대를 양성할 수 없는 나라에게 그런 역할이 부여될리 없으니, 오직 한국만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그런 역할이 가능한 충분하고 유일한 국가라는 것입니다. 와우, 한국이 제3의 고래랍니다. 새우에서 고래가 된 한국, 가히 어깨를 펼만한 얘기입니다. 이렇게 잠시 국뽕에 취해봤지만, 현실은 팬데믹 이후 벌어진 어지러운 상황이라는 현타가 밀려옵니다. 또 넘어야 할 장애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하긴, 언제 우리가 맘 편히 순조롭게 지낸 적이 있던가요, 원래 난세에 빛을 발하는 게 우리 한국인 아닙니까? 자, 다시 한번 신발끈 질끈, 동여매고 열심히 뛰어봅시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초 간단 방법
아마 현대인이 가장 많이 먹는 약을 하나 들라면, 아마도 진통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집에도 아스피린 통, 두어 개를 눈에 띄기 편한 곳에 두고 수시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식탁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식사 후 먹는 상비약과 함께 자리 잡고 있는데, 혈압약과 함께 아스피린 한 알을 복용하면 혈관질환이 방지된다고 해서 아예 고혈압약과 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고혈압 약 참 고약합니다. 최근에 고혈압 기준을 140에서 130으로 낮췄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나이에 90을 더한 수치가 기준치였는데 어떻게 그리 달라진 것인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만, 의사 양반이 약을 먹어야 할 환자 취급을 하니 할 수 없이 먹기는 하는데 마음에 내키지는 않습니다. 혈압 기준치를 10만 낮추면 약을 먹어야 할 고혈압 환자가 1억명 이상 새로 생긴다고 합니다. 제약회사의 농간이 의심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아도 제가 혈압 약을 먹는 이유는 부친이 고혈압으로 일찍 돌아가신 탓입니다. 많은 병이 유전적 원인을 갖고 있는데 특히 혈압은 더욱 그런 듯합니다. 그래서 보험에 든다는 기분으로 혈압약과 혈관질환을 방지한다는 목적으로 아스피린도 복용합니다. 수년 전 허리가 삐끗하여 진통을 느끼며 고생하는데 의사인 큰 형이 아스피린을 먹으라 하더군요. 진통제인 아스피린이 허리에 작용한다는 생각은 못했죠. 머리 아플 때만 먹는 약인 줄 알았는데 허리 아픈 것도 통증이니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통제는 아픈 부위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뇌에 작용하여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에 어느 아픔이든지 다 같은 작용 합니다. 짐작은 하겠는데 실제로 의사의 입으로 확인하니 실망이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진통제가 뇌에 작용하여 아픔을 느끼지 못할 뿐 상처치료에는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아무튼, 그 후로는 진통제라는 약이 치료 약이 아니라 진통을 감추는 약이라는 것을 알고 그리 자주 사용할 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행하게도 대표적인 진통제인 아스피린이 혈관을 물게 만들어 혈관이 막혀 일어나는 각종 질병을 막아 주는 물리적 작용을 한다기에 자주 복용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진통제가 육체의 진통만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아픔에도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아시나요? 즉 정신적 아픔 역시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면 진통제는 그것마저 덜하도록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왕따를 당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등, 아무튼 정신적 아픔을 느끼는 부류를 둘로 나눠서 한쪽에만 진통제를 주었는데, 진통제를 먹은 부류가 정신적인 고통을 덜 느끼며 사회활동에도 더욱 적극적이었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즉 진통제를 먹음으로 정신적 고통을 덜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상식과는 좀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진통제가 뇌 안에 고통을 느끼는 부위에 작용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신적인 고통 역시 뇌가 느끼는 것이라면 뇌에 작용하는 진통제가 안 들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정신적 아픔을 표현하며 가슴이 아프다 하는데, 가슴이 아픔을 느낄 수는 없지요. 실제로는 뇌가 아픔을 느끼는 것이니 그런 아픔은 진통제가 다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실연의 아픔, 이혼의 아픔,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아픔, 말로 입은 마음의 상처 등 모든 마음의 고통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진통제를 권하면 되나 봅니다. 이런 연구결과를 발표한 책에서 덧붙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접고 일단 상처가 아물도록 위로하고 보살펴줍니다. 평소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이고, 하다못해 미운 사이라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성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로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지 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립니다.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에게 왜 상처 입었냐고 나무랄 수 없는 것과 같이, 정신적인 아픔을 느끼는 사람에게 꾸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들 역시 육체적인 환자처럼 대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모든 것을 접어두고 상처가 낫도록 돌봐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들 역시 진통제와 같은 치료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임을 인정하고 더 이상 상처를 쑤시지 말고 일단 병석에서 일어나도록 보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렇죠, 우리는 정신적 환자들에게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가볍게 취급한 듯합니다. 정신적 환자도 육체적 환자와 같이 일단 한 수 접고 환자로 대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또 한편 거꾸로 생각해보면 마음의 상처도 그리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통제로 치유가 되니 말입니다. 은퇴 후 집에서 밥을 축내고 있다고 마누라에게 꾸중을 듣고 마음의 상처를 받는 불쌍한 늙은 남편들, 아스피린 한 알 털어 넣고 잊어 버립시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선진국 베트남
엊그제 일본 어느 연구소에서인가 베트남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나왔는데, 2035년경에는 베트남이 대만을 추월하고, 그 후 멀지 않아 선진국에 들어선다고 발표하여 베트남인들의 가슴을 부풀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게 가능할까요? 베트남이 20년 안에 선진국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베트남에서 20여년을 살아본 경험자로서 제 의견을 말하라면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그 이유를 한번 짚어봅시다. 베트남은 일단 하드웨어가 참 좋은 곳입니다. 지하자원도 풍부하고, 농업을 할 만한 농지도 넓고, 어업 역시 2천 킬로 이상의 해변이 길고 넓게 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관광자원도 풍부하고, 날씨 역시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하늘이 내린 천혜의 기후입니다. 하드웨어 쪽으로는 도무지 모자란 것이 없습니다. 정치적 구조도 안정적이라는데 점수를 줍니다.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별개로 치더라도 일단 정치적 혼란이 없다는 점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치적인 변수로 인한 대 변역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로 넘어가 국민의 수준을 보자면 일단 교육열이 높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베트남의 여러 가지 중요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으로의 성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베트남 사람들의 일에 대한 자세가 가장 큰 장애가 아닌 가 싶습니다. 이들에게 일에 대한 가치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가볍습니다. 일을 단순히 돈을 버는 작업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을 통해 삶의 가치나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입이 조금만 좋으면 직장을 쉽게 옮깁니다. 베트남에 와서 가장 먼저 실망했던 일은 이들의 넉넉한 시간관념입니다. 저의 초기 경험에 의하면, 한 시간 이상 늦도록 약속한 상담자가 나오질 않아 돌아왔더니, 나중에 연락이 와서 기다리지 않고 갔다고 화를 내면서 베트남에서는 그렇게 행동하면 사업하기 힘들다는 충고를 들을 정도로 이들의 시간관념은 우리와 다릅니다. 또한, 국가적으로 불운한 사안인데, 베트남 사람들은 제조업에 관심이 덜합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업은 서비스 관련 사업과 부동산입니다. 베트남처럼 개발 도상국에서 균형 있는 발전을 하려면 제조업이 강해져야 하는데 이들은 제조업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집을 팔아 공장을 지었지만, 이들은 공장을 팔아 건물을 삽니다. 어려운 일을 피하고 쉬운 일만 하려는 국민 성향이 작용한 듯합니다. 나라의 균형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멘탈입니다. 공무원을 포함하여 전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역시 발전에 심각한 저해를 가져옵니다. 나라가 발전하면 부정부패는 줄어드는 것이 정상인데 중국과 같이 베트남의 경우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이 관대하여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합니다. 즉 부정을 저지르고도 도덕적으로 부끄러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인식으로 자기 행동의 올 그름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베트남 사회에서는 부정부패에 대한 도덕적 질타가 없고, 누구나 그 자리에 앉으며 하는 일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박혀있어 부정부패가 사라지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공무원만이 아니라 사기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더불어 사업상의 신뢰가 부족합니다. 베트남에서는 오랜 고객이 대접받지 못합니다. 이들은 잡은 고기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속담을 신봉하며 삽니다. 새로운 고객을 잡기 위해 특혜를 주지만 이미 고객이라고 생각하면 관심이 소홀해집니다. 이 역시 새로운 커미션의 발생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개인의 창의력이 부족합니다. 아무리 오래 일을 해도 일이 확대되거나 변화되지 않습니다. 주어진 일만 합니다. 20년이 넘도록 근무한 직원의 업무가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연수에 따라 급료만 올라갑니다. 자기 학습을 통한 개발 등의 성실함도 찾기 힘들지만, 업무의 개선을 요하는 창의성은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이들이 창의성이 보일 때는 부정한 일을 도모할 때입니다. 창의성이 위험하다는 얘기입니다. 아마도 앞에서 말했듯이, 일에 대한 가치가 돈 버는 작업으로 인식되어있는 탓인 듯합니다. 또한 정부의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것도 사업에 불안을 던져주는 요소의 하나입니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된 탓인 듯합니다. 베트남이 선진국에 입성하기 위해서는 하늘이 준 훌륭한 하드웨어를 잘 이용하고 관리 할 국민들의 교육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우선 일에 대한 가치를 높여야 하고, 어렵고 궂은 일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는 근면성, 상황을 개선 시키는 창의성, 그리고 부정부패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높여 상호 신뢰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베트남이 선진국이 될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합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걱정 덜하며 살기
인생은 늘 첫 경험입니다. 오늘이 제 인생에서 처음 마주하는 날이듯이, 오늘 만나는 모든 것도 다 처음인 셈입니다. 설사 오늘 만나는 일의 형태가 예전과 같다고 해도 시간이 다르니, 같다고 할 수 없습니다. 늘 하루하루가 유일하고 새롭듯이 우리 인생은 매 순간이 늘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움이란 두 가지 느낌을 던져 줍니다. 호기심 혹은 불안감. 여러분은 어떠세요, 새로운 일에 호기심을 느끼신다면 삶을 흥미롭게 사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호기심과 함께 뭔가 모를 불안이 스미는 것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그런 막연한 불안, 걱정으로 행복을 말아먹는 사람들을 위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가 바로 그런 인물이기에 저 자신을 위한 글이 되기도 합니다. 삶에서 불안만 느끼지 않는다면 인생은 진짜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모든 조건을 다 접어두고 마음만 편안할 수 있다면 인생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리 편안하게 살지 못합니다. 온통 걱정과 염려로 삶을 불안에 몰아넣습니다. 돈의 부족으로 인한 빈곤의 불안으로 시작하여, 벌어둔 재산을 말아먹을 수 있다는 재정적 몰락의 불안, 건강에 대한 불안, 불안정한 직장에 대한 불안, 하다못해 요즘 일본처럼 지진이나 쓰나미가 두려운 재해의 불안 등 세상의 모든 걱정을 머릿속에 담고 노심초사 애를 태우며 사는 사람들이 요즘 현대인 입니다. 이런 불안을 그냥 내버려 두면 필경 우리는 스트레스에 의한 위궤양, 신경쇠약, 불면증으로 수명이 줄어들고 삶은 불행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주신 명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이 망할 놈의 불안을 없애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수많은 석학과 현자들이 비법을 알려 줍니다.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가 가는 두 가지 현실적 방안을 찾아봤습니다. 1, ‘미리 대비하기’입니다. 자신에게 불안을 안기는 일에 대하여 충분한 대비를 한다면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가벼워질 것입니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걱정이 된다면 인터뷰 요령을 숙지하고 미리 연습 한다면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고, 내일 야유회에 비가 올 것 같아 염려된다면, 우산과 천막을 준비하고 실내 장소를 미리 물색해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안을 주는 대부분 문제들은 대비만으로 방지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생을 시작한 인간은 마치 훈련도 받지 않고 급하게 전쟁터에 나온 병사와 다름없기 때문 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저 모든 것이 막연히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런 대책 없는 불안을 떨쳐 낼 방안은 무엇이 있을 까요? 현자들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2, ‘그저 내버려 두기’입니다. 미래의 일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내가 그 일에 영향을 미치건 말건 내가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걱정의 무게도 가벼워집니다. 세상일은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납니다. 내가 걱정한다고 일어날 일이 안 일어나지는 않지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자세,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겠다는 자세로 세상을 살면 참 편해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결과는 내 영역이 아니다.” 하고 버티면 세상이 편해집니다. 일등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사라지고, 타인과의 비교도 필요치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부분은 나의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무 무책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자신에게 묻습니다. 최선을 다했는가? 골프를 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스윙만 하면 됩니다. 남이 잘 치거나 혹은 못 치는 것을 내가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늘 한국의 형편없는 정치가 국민을 걱정스럽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투표를 하는 것뿐이고, 국대 축구가 맨날 백패스만 하며 혈압을 올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TV를 끄는 것뿐이고, 나를 미워하는 이의 마음을 돌리는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것뿐입니다. 어떤 일에서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내 손에 있는 이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고 난 후에 세상사를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삶을 편안하게 살아갈 방법의 하나입니다. 저는 이 방법 사랑합니다. 적당히 무책임하고 결과의 부담도 덜어줍니다. 마치 답답하던 마스크를 벗은 것처럼 숨도 편안해집니다. Don’t worry, Just Let it go
Read More »한주필 칼럼-받은 만큼 돌려주시게
요즘 한국의 부모들이 가장 염려하는게 무엇인가요? 자녀들 결혼 문제 아닌가요? 이 문제는 개인의 사정을 떠나 국가적으로도 큰 일입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세계 최저를 기록 중입니다. 뭔가 한다 하면 끝장을 내고 마는 한 민족 답습니다. 80년대만 해도 딸 아들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던 정부가 이제는 자식만 낳으면 이런 저런 명목으로 지원금을 아끼지 않지만 세계에서 제일 똑똑한 한민족은 그런 사탕발림에 안 넘어갑니다. 관료들의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나라가 사라질 판입니다. 아무튼 이 상태로 진행되다가는 한국은 곧 초 고령사회에 접어들어 생산성은 떨어져 국가경쟁력이 낙후되고, 국민수는 줄어들고 결국 한민족은 지구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민족이 된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출산율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습니다. 사실 실감은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시시비비의 지옥
나이가 들면서 가장 자주 마주하고, 자습하고, 자책하기도 하는 큰 가르침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내세우고 고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시비를 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한 대화에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를 따지다가 서로 충돌을 하고, 감정싸움이 되고 결국은 관계에 금이 가는 말도 안 되는 사항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이에 대하여 장자는 이리 말합니다. “聖人不由, 而照之於天” (성인불유 이조지어천) “성인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대신 하늘의 이치를 따른다” 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장자가 말한 하늘의 이치란 자연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에는 올 그름이 없지요. 죽음도 자연의 하나라는 말처럼 자연에는 삶과 죽음마저 구분이 없는데, 올 그름의 구분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식으로 풀이 한다면, 수양이 된 자는 문제를 판단함에 있어 고정된 관점이 없이 자유롭게 모든 것을 헤아린다는 뜻입니다. 네가 옳다, 너도 옳다, 부인도 옳소 하던 황희 정승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은 늘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핏대를 세웁니다. 자신의 옳음을 인정하지 않고, 내세우는 다른 의견을 모욕으로 받아 들이며 분노하고 저주합니다. 좀 지나고 보면 그리 난리 칠 일이 아닌데, 그 당시는 자신의 의견에 목숨을 걸고 상대에게 양보를 강요합니다. 작은 의견의 차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관계의 의가 틀어질 정도가 됩니다. 시비의 지옥에 빠진 인간은 평생 쌓아온 의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도, 그깟 것이 무슨 대수냐 하며 이성 줄을 놓아버립니다. 아 우매한 인간이여. 아무리 올바른 생각이라도 평생 쌓아온 인연보다 귀하던가요? 그저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양보한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맞는 것처럼 보여도 영원토록 바른 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런 불투명한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수십 년을 쌓아온 인연을 내칠 수 있나요? 그리고, 자신의 삶에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우둔한 이가 내세우는 의견이 뭐 그리 옳겠습니까? 나라는 구하고 인류의 생사가 달린 일이 아니라면 고집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진 게 없는 미천한 인성이 만들어 낸 자기 방어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으로 반성합니다. 이렇게 자기 방어에 무게를 두고 사는 인생은, 시비를 가리는 것이야 말로 자신을 지옥에 빠트리는 일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절대 깨닫지 못합니다. 다른 이와 비교하고 상대적 쓸모를 겨루며 내가 우월하다는, 어린 마음으로는 절대로 자신의 잘난 의견을 양보하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내가 그보다 더 잘나고 멋지다고 으스대고 싶은 젊음은 오히려 시비를 가리려고 팔을 걷어 붙이며 달려 듭니다. 그런데 얻는 게 있나요? 요즘 말대로, 개뿔입니다. 시비를 통해 얻는 것은 그저 순간의 정신적 승리감이 전부지만 그 대가로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기고, 덕분에 자신도 지옥에 빠져 헤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곤 밤에 이불을 걷어 찹니다. 지옥을 아시나요? 인간관계에서 만나는 지옥이란,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지고 서로 갈등의 늪에 빠져 헤매는 것이 지옥입니다. ‘타인은 지옥이다’ 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새겨보면 지옥의 감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르트르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건 상관없이 저는 사랑과 배려가 없는 관계가 바로 지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 곁에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천국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
Read More »선진국의 골칫거리, 한국
지난 주에는 세상이 한국의 이름을 어쩔 수 없이 되뇌이게 만드는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BTS건이고 하나는 손흥민 건입니다. 먼저 BTS, 이외의 곳에서 초대를 받고 미국의 백악관을 방문 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BTS는 미국 ‘아시아·하와이 원주민·태평양 제도 주민(AANHPI) 유산의 달’ 마지막 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면담하고 ‘반(反) 아시안 증오범죄 대응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BTS가 세계적 이슈인 반 아시아인 증오범죄에 대한 대응에 나섰는데 세계최강 미국의 수장인 바이든 대통령과 단독 대면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는 겁니다. 거기다 백악관 브리핑 룸에 등장하여 한국어로 스피치를 하여 세계인의 이목을 받았다는게 믿어지십니까? BTS는 이미 유엔에서 2018년에는 자신을 사랑하라는 내용의 청소년을 위한 연설을 했고, 지난해는 유엔에서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立不敎 坐不議(입불교 좌불의), 존재로 주는 가르침
요즘 한국의 위상은 그야말로 황금기입니다. 반만년의 한민족 역사상 이렇게 풍요롭고 국력이 성세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게 지금의 대한민국은 엄청난 위상을 자랑합니다. 하루 세끼 먹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너무 먹는다고 살을 빼는 일이 전국민의 과제가 되었으니 참 세상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백세를 넘기신 노모를 아침 느즈막한 시간에 기침하게 하고 얼굴을 닦고 이동식 변기에 앉혀드립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변기에 앉아 계신 노모의 편안한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에서 100년 찐 세월의 깊이를 어렴풋이 감지합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북한에서 일본의 이등국민이 운명인 줄 알고 태어나, 만주사변, 대동아 전쟁의 참화를 고스란히 겪고, 18세 나이에 함경도 종성 한씨 목사님 집안에 시집와서 지긋지긋한 일경의 감시속에 지내다가 해방을 맞아 일경의 눈에서 자유로워졌다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 곧 북한지역을 점령한 공산당에 의한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자 다시 전 가족이 남쪽 서울로 내려오고, 수년간의 노력으로 간신히 자리를 잡았으나 곧이어 터진 한국 전쟁, 결국 4남매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 그곳에서 이 글을 쓰는 인간을 낳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병약한 남편을 대신해 열 식구 살림을 도맡아 이끌다가, 고작 나이 50에 남편을 여의고, 그 후 반백 년을 혼자 지내시며 7남매 모두 제대로 교육시키고 건강하게 키우신 김성실 권사님. 그리 강건하시던 분이, 그 모진 세월을 꿋꿋이 이겨내신 분이, 이제 백년을 넘기니 더 이상 혼자 지탱할 기력조차 없으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보내신 분이 이렇게 오래 사시는 것도 참 신기한 일입니다. 평생을 영혼으로 의지하신 예수님의 은총인가 싶기도 하고, 아직도 이 땅에서 하실 일이 남아있나 싶기도 하지만, 어찌 높으신 하늘의 뜻을 짐작이라도 하겠습니까? 단지 그 뜻 덕분에 그 자손들이 매일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어머니는 어떤 생각일까? 일본의 탄압과 최악의 빈곤, 굶주림을 일상처럼 지내던 세월에, 주검이 바람에 날린 길가의 낙엽처럼 널부러진 지옥의 참화를 겪으셨다가, 이제 전세계가 부러워 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이 변화를 어머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어머님이 흔쾌한 답을 주실꺼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웃으시겠지요. 立不敎 坐不議(입불교 좌불의) 라고 “서있을 뿐 가르치지 않고, 앉아있을 뿐 의견을 내세우지 않는다” 처럼 그저 무언의 가르침을 주시겠지요. 요즘 눈과 귀가 다 어두워지신 탓에 대화가 거의 없으신 어머니지만 대화를 못한다고,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듯합니다. 대화에 꼭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오히려 과한 대화가 불화를 일으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목소리가 터지면 늘 당신의 소리를 낮췄습니다. 말씀이 없으시면 가르침은 더욱 깊어갑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나이 든 자식들은 그만큼 자기 생각이 굳어집니다. 굳은 신념은 곧잘 잦은 충돌로 드러납니다. 어머니는 침묵으로 기도합니다. 말을 멈추고 생각하라 합니다. 시간이 문제를 도닥이고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립니다. 어머님은 늘 이렇게 가르침을 줍니다. 아무 말씀도 없이 그저 가만히 앉아계실 뿐인데 말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존재는 이승이든 천국이든 문제가 안됩니다. 그 이름은 모든 이의 영원한 가르침, 그 자체입니다. 어려서 읽은 박인노의 시조는 우리에게 孝 라는 것을 되새기게 만듭니다. 조홍시가(早紅枾歌)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가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이 없으니 …
Read More »한주필 칼럼- 세계 영화계의 주류로 등장한 한국영화
지난주 프랑스 칸에서는 제75회 칸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통상적으로 늘 5월에 2주간 열립니다.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칸 영화제는 독일의 베를린, 이탈리아 베니스 영화제와 함께 국제 3대 영화제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합니다. 특히 한국 영화는 칸 영화제와 인연이 많습니다. 많은 배우들과 영화가 수상을 했습니다. 특히 2007년 영화 밀양으로 전도연 씨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온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 기록으로는 2019년 기생충이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그 여세를 몰아 기생충은 아카데미를 휩쓸었죠. 이번에도 경쟁 부분에 한국 영화가 2편 초청되었습니다. 하나는 박찬욱 감독, 박해일, 탕웨이 주연의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라는 영화고, 또 하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일본인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 아이유, 강동원,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손흥민 스토리
유난히 밝은 얼굴에 애교가 많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호반의 도시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도시 춘천에서 축구선수 출신 아빠의 영향으로 축구에 자신의 미래를 건 소년입니다. 독특한 훈련과정을 거쳐 축구선수로 성장한 그 소년은 독일 분데스리거를 거쳐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인 영국의 프리미엄 리그에 진출하여 나이 30에 누구나 인정하는 일급 축구선수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여전히 이루지 못한 꿈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시안에 대한 인종차별이 끊이지 않은 영국에서 명실공히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기 위하여 그 리그의 득점왕에 오르는 것입니다. 득점왕이야 말로 의심의 여지 없이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것을, 세계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길입니다. 어제 영국의 노리치 축구장에서 일어난 스토리는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득점왕이 되는 꿈을 가진 그 소년의 일대기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 마지막 장면을 중심으로 손흥민 이야기를 꾸려보겠습니다. 어느덧 춘천의 소년에서 어엿한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구단의 일류 축구선수로 발돋움 한 손흥민 선수, 그러나 늘 실력에 비해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에게 그런 모든 편견을 지울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올해의 득점왕에 오르기까지 고작 한 골 만을 남겨두고 있고, 그의 팀은 3년만에 다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는 위대한 성취를 위한 마지막 게임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그 게임에서 자신이 한 골 이상을 넣고 팀이 승리하게 되면 자신은 득점왕으로 등극하고 팀은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는 일거양득의 대망을 이루게 됩니다. 상대는 다행스럽게도 리그 최하위인 노리치로 그리 어려운 게임은 아닙니다. 이렇게 이 이야기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갑니다 손흥민의 특징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군계일학의 골 결정력입니다. 양 발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쏘아대는 그의 슛은 골키퍼 한 명으로는 막아내기에는 너무 예리하고 강합니다. 더구나 그는 골대 앞에서 극단적으로 침착합니다. 골키퍼의 동작을 감지하고 그 동작이 채우지 못하는 빈 공간으로 공을 보냅니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골망을 흔듭니다. 그러던 그가 마지막 게임에는 달랐습니다. 득점왕을 인식한 부담감 때문인가요. 몸이 무거워 보였고 그 답지 않게 결정적인 찬스를 날려보냅니다. 그저 대기만 하면 들어갈 수 있는 찬스를 놓치기도 하고, 결코 실패한 적이 없던 골키퍼와 1대 1 단독찬스에서도 두 번이나 골을 놓칩니다. 어이없는 실수에 절로 헛웃음이 나옵니다. 하긴 축구에서 골을 넣는 것은 마음 먹는다고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평소 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실패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브닝 스탠다드라는 신문의 딘 킬패트릭이라는 기자인데, 이 친구는 손흥민의 빌런이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늘 손흥민을 폄하하고 괴롭히던 인물입니다. 손흥민이 한 두 게임만 부진하면 선발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대 놓고 요구하는 최악의 빌런입니다. 오늘 경기에서 손흥민이 계속 골을 놓치자 그 친구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손흥민, 동료들이 마련한 밥상을 걷어차다> 라는 제목의 기사를 미리 쓰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늘은 이렇게 심술을 부립니다. 늘 클라이막스 전에는 마지막으로 가장 난해한 장애와 갈등을 깔아 놓습니다. 전날만 해도 모든 전문가들은 손흥민의 득점왕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마지막 남은 두 게임에서는 살라를 추월하는 골을 넣어 단독 득점왕이 되리란 전망을 했는데, 그 전 게임에도 골을 못 넣고, 마지막 게임에도 예전과는 달리 그렇게 쉽게 넣던 골을 번번히 놓칩니다. 골문 앞에서 침착하지도 못했고 위치 선정도 예전과 달랐습니다. 득점왕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불안이 몰려오고 갈등은 최고 조에 달합니다. 손흥민 자신도 그렇고, 게임을 보는 수 억의 축구팬들의 머리 속에 서서히 손흥민의 득점왕 등극에 대한 의심이 심어들 때, 카메라는 손흥민의 굳게 다문 입술을 보여줍니다. 그는 게임 후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계속 쉬운 골을 놓치자 어이도 없고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춘천에서 아버지와 맨땅에서 하루에 1000개씩 때려대던 슛 연습을 상기하며 “나는 할 수 있다” 고 외쳤습니다.” 어깨를 두드리며 침착하라고 격려하는 아버지 손웅정 감독의 얼굴이 스칩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고개를 들고 또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 시간은 70분을 넘어서고 게임은 막바지로 흘러갑니다. 초조함은 더욱 깊어갑니다. …
Read More »한주필 칼럼 – 에너지 충전하기
어느날 친구와 전화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친구가 말합니다. 제 글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요즘 올라오는 글이 예전과 다른데, 하며 시작하는 말이 송곳이 되어 가슴에 꽂힙니다. 한 마디로 매일 쓰는 어려움을 이해하겠는데 그런만큼 글의 내용이 부실해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가뜩이나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매일 올리는 글에 대한 아슬한 불안감이 있었는데, 결국 터지고 맙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가까운 친구가 터트려 준 것이라 조금 아픔이 덜합니다. 글쟁이에게 가장 충격을 주는 얘기가 이런 얘기입니다. 정신없이 쓰느라 뒤돌아 볼 시간도 없는데 누군가 저를 대신하여 냉정하게 객관화된, 실체를 들려주면 정신이 번쩍납니다. 그간 너무 쉽게 쓰곤 했습니다. 지난 7개월 동안 무슨 글을 쓰는지도 모르고 기억도 못하면서 매일 글을 써서 올렸지요. 맘에 들지 않았지만 관성적 물결을 타고 있는 터라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친구의 말에 뜨끔해진 가슴으로 편집부에 연락을 해서 당분간 글을 못 올린다는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부터 마냥 쉬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쉬는 것은 아닙니다. 결코 슬기로운 방안이 아닌 것은 알지만 일단 마음 속으로 스톱을 외치고, 사고를 세우고, 손을 놨습니다. 멈춰야 생각할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요즘은 달리며 생각하는 시대라는데 저같은 실버세대는 그게 안됩니다. 행동이 멈춰야 비로소 사고할 여력이 생겨납니다. 이런 저런 책이나 보면서 뭔가 떠오를 때까지 버티는 겁니다. 대책이 없을 때는 손을 빼야지요. 바둑에서도 별다른 대응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일단 손을 빼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리고 나면 오히려 적절한 대응이 생각나곤 하지요. 그냥 쉰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슬그머니 듭니다. 그런데 쉰다는 것은 에너지의 축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돌리니 제법 쉬는 것에 대한 당위성도 생겨납니다. 그래 다시 일어날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야 하고 말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제법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그동안 적지않은 에너지를 충전도 않고 짜내 온 셈입니다. 정신적 에너지는 어디서 충전이 되나요? 저같은 경우는 독서나 멍 때리기 같은 사고의 집중으로 흩어진 에너지를 집합시키는 듯합니다. 에너지가 집합되면 아이디어도 생겨납니다. 그런데 혼자서 집에서 하는 이런 행동은 이미 갖고 있는 에너지의 결집은 될 듯한데 새로운 에너지의 생성은 안되는 듯합니다. 독서가 그나마 간접적인 충전의 기회를 제공하긴 하지만 그리 오래 남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간접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상태는 기존 에너지의 결집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듯합니다. 더 충만한 에너지를 얻기 위하여 외부로 눈을 돌려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외부 에너지 충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외부에서 마주하는 세상과의 만남으로 발생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조직원으로 일상을 갖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통해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겠지만 이미 사회에서 은퇴하고 집에서 소일하는 시니어들에게는 사회생활을 통한 기초 에너지 충전 방법은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 경우 나름대로 자신만의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
Read More »한주필 칼럼- 윤석열 대통령 취임을 보며.
제 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어제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마치 천지를 만드시고 기뻐하신 하나님처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가 단상에 올라 대통령 선서를 하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좋았습니다. 윤 대통령처럼 단시일에 대통령으로 부상한 인물은 한국의 역사에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굳이 꼽는다면 보안사령관 출신 전두환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는데, 두 사람 다 대통령 취임 1년 전만 해도 국민 사이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은 당시 초법적인 정치구도를 이용하여 대통령이 되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정식 민주주의 절차에 의한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었다는 점이 다릅니다. 정권의 정통성은 민주절차에 의한 직접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형성됩니다. 그런 면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늘 정통성 시비에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번 윤석열 정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출범한 윤석열 정권에 기대를 거는 가장 큰 이유는 윤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빚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작 지난해에 정치판에 들어온 탓에 정치적으로 누구에게도, 중국에게도 신세진 일이 없으니, 정권을 활용한 빚 갚음이 필요 없다는 것은 그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어느 정치인이든 대통령까지 올라오고 나면, 그때부터 대통령은 정치적 채무자가 됩니다. 특히 중국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정치인의 경우 목불인견의 장면을 연출합니다. 중국은 자신들이 키운 정치인들은 나중에 그들이 어떤 지위에 있든지 관계없이 종처럼 부립니다. 그런 장면을 보는 국민의 속은 뒤집어지고 국가의 위상은 길거리에 버려진 껌딱지처럼 더럽혀 집니다. 도무지 무슨 약점이 잡혀있길래 국가의 위상마저 내동댕이 치며 중국에게 복종해야 하는지 국민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행히 윤대통령은 적어도 그런 행동을 감수해야 할 만한 정치적 채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럴 시간조차 없었으니 말입니다. 또한, 그가 정치적 이력이 없다는 사실은 몇 가지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야당에서 말하듯이 신출내기 정치인으로 미숙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정치적 경험이 적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긍정적 가능성도 많습니다. 정치적 이력이 없는 탓에, 3공화국 이후, 영 호남으로 진영이 나눠져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적폐, 혹은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가해진 정치 보복의 행태를 끊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윤대통령은 어쩌면 정치적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우파가 기대하는 지난 정권자들에 대한 적폐청산이라는 정치적 보복은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정치적 미숙은 노련한 정치인들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진흙탕 싸움을 피하려다가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진흙탕에서 뒹굴며 온갖 부정 부패에 관여한 정치인들과 그들에게 기생하여 먹고 사는 언론 기레기들을 제거하여 사회를 정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늘 내부의 적 때문에 위험을 겪습니다. 정치인이란 여야를 막론하고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목표로 일하는 동업자입니다. 단지 그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다릅니다. 나라 발전의 여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상대진영이 잘되는 것을 막는 것이 자기진영의 정책입니다. 외부의 적보다는 내부의 적이 5만배 무섭습니다. 외부의 적은 대놓고 우리가 망하길 바라지만 내주의 적은 나라가 망하는 것 조차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상대진영만 무너지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 외부의 힘도 차용합니다. 개인적으로 늘 느끼는 일인데 우리나라는 정치인들만 깨끗하다면 세계를 호령하는 세계의 왕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치인의 범죄에 관한한 음주법처럼 특별 가중죄를 무조건 적용하는 법안을 국민들이 정식으로 제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옛말에 군자의 작은 잘못은 소인의 큰 잘못보다 크다 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들은 작은 잘못이라도 크게 벌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디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우리사회가 다시 도래하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하며, 국가의 무궁한 발전과 그의 개인적 성공을 기원합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외로운가요?
나이가 들면 모두 다 외로움을 느낍니다. 안그런가요? 다들 바쁜데 혼자만 한가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며 망할놈의 외로움이 슬슬 피어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나이가 들어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는 가만히 보면 전부 다 자기가 부른 것입니다. 그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롯이 자신이 원하여 그리 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동안 살면서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아온 댓가입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친구를 사귄 탓입니다. 늙어서라도 친구들과 허물없는 감정을 나누며 살려면 말 그대로 허물이 없어야하는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귀어 왔으니 허물이 벗겨질 리가 없습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는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항상 예의 바른 경어를 사용하고 의도적으로 일정 거리를 확보하며 지내는 사람, 주로 올바른 생활을 해 온 지식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죠. 자신이 상대에게 예의를 차리는 만큼 상대에게도 그런 예의를 요구하는데, 만약 조금이라도 예의가 무너진 모습으로 접근하면 가차없이 돌아서는 매정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구분하는 방법은 식당이나 서비스업체에서 서빙하는 사람들의 실수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에 당황한 종업원에게 미소로 보듬어 주는 사람은 늙어서도 절대 혼자 지내는 고독한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업원의 사소한 실수에도 서늘해지거나 냉정한 질책을 하는 사람들은 말년에 친구가 없이 외롭게 지낼 소지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만큼, 타인의 실수에도 관용이 없습니다. 평소에 친구에게도 실수하는 자신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민낯을 감추며 사느라 피곤한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 올바른 삶을 살지만 외로움을 댓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늙어서 고독하지 않으려면 우선 타인에게 관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합니다. 아는 친구는 많은데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지요. 대부분 먼저 친구에게 다가서는 시도를 하지 않는 분들입니다. 신세지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한데, 그만큼 공감할 만한 경험을 나눈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나중에 외로운 병실에서 혼자 죽기 싫다면, 이제부터라도 먼저 다가서서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상대의 형편에 배려해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친구가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무슨 고민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연인처럼 친구에게도 관심을 가져 보세요. 어쩌면 연인 못지 않게 소중한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면 부인에 대한 사랑이나 친구에 대한 사랑이나 다 소중하긴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에 대한 것을 생각하는데 모든 시간을 다 소모하지 말고, 하루에 한 두 시간씩이라도 주변사람들,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습관을 갖는다면 그 습관이 그대의 외로움을 멀리 차 버릴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주변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면 궁금한 일도 생기고 연락할 일도 생깁니다. 궁금해지면 당장 전화를 하던가 톡이라도 날려 안부를 물어보세요. 나이가 들면 바쁠 때 전화와도 반가운 것이 안부 연락입니다. 하긴 별로 바쁠 일도 많지 않지요. 진정성있는 인간관계를 위하여는 이렇게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말 하지 않아도 그대를 이해하고 챙겨 줄 사람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하두 세상이 바쁘다 보니, 자신의 일만 생각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그렇게 분주한 시간이기에 오히려 시간을 내서 자신을 생각해주는 친구의 마음이 더욱 고마울 것입니다. 사실 왜 이런 글을 뜬금없이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한 구석에서 외로움에 흔들리면서도 자신은 고독을 즐긴다고 구차한 변명을 하는 이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이가 누구인지 몰라도 말입니다.
Read More »한주필 칼럼- 밥
오늘은 밥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한국인에게 밥은 어떤 의미 인가요? 우리 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밥이 들어갑니다. 밥 먹었어? 언제 밥 한번 먹자. 우리는 매일 삼시세끼 밥을 먹어 대면서 늘 밥 타령입니다. 요즘 한국의 음식이 외국인의 관심을 끌면서 우리 음식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봅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음식명은 그대로 우리말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긴 한데 그 이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경우, 영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한국식 스프 니 한국식 바베큐 등을 사용하는데, 밥은 어떻게 번역이 되나요? 밥은 한자의 반飯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이론도 있는데 그 누구도 확실하게 정의 내리기 힘들게 밥은 우리만의 정의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우리에게 밥은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쌀로 지은 쌀밥이 그 첫번째고, 두번째로는 밥 묵었나? 하는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식사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식사의 낮춤말 정도가 됩니다. 영어로 밥을 번역한 문장을 보면 흔히들 RICE를 사용하는데, 쌀이라는 단어를 직역한 RICE는 아무래도 우리의 밥과는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 차라리 식사라는 의미와 곡식의 가루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MEAL이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데, 그 역시 쌀밥이라는 것을 대입시켜보면 그 또한 의미 전달이 달라지니 선뜻 영어로 우리가 사용하는 밥의 의미를 정확히 채울 만한 단어는 없는 듯합니다. 밥이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까닭은, 바로 밥에 담긴 한국인의 역사와 한恨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대중적 굶주림과 한국전쟁에서 겪은 최악의 빈곤은 우리에게 밥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앞선 최우선 가치로 각인되었습니다. 최근 애플 TV에서 방영된 파친코에서는 하얀 쌀밥에 담긴 우리민족의 역사와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 잡지 에스콰이어에서는 “드라마 파친코는 밥 한 공기로 한국의 과거를 비친다” 라는 칼럼을 실어, 한국인이 갖는 밥에 대한 의미를 조명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의 문화는 이제 세계인의 공통의 관심사로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유명 대중 잡지도 팔걷고 나서 한류에 페이지를 할애하고 독자를 부릅니다. 파친코, 꼭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은 드라마입니다. 굳이 애플TV를 새롭게 신청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 무료 영상사이트를 조금만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무료 시청이 가능합니다. 스포츠 무료 중계사이트에서 흔히 나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너무 슬픕니다. 그 드라마가 보여주는 우리 역사의 일단이 너무 안쓰러워 영상이 자꾸 흐려집니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의 결혼식날, 선자 엄마가 쌀가게 주인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일본인에게만 판다는 하얀 쌀 두홉을 구해, 백옥같이 흰 쌀밥을 정성껏 지어 선자를 먹입니다. 목이 메어 차마 그 밥을 넘기지 못하는 선자의 모습에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 할머니가 된 선자가 손자 솔로몬의 일을 도와주러 들린 한국인 할머니의 집에서 식사를 하며 조국의 쌀밥을 다시 느낍니다. 한 톨의 쌀밥에서 영혼이 담긴 고국의 향기를 느끼는 할머니 선자의 모습과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는 손자 솔로몬의 모습이 교차되며 역사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그렇지요, 우리의 밥 한 공기에는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恨이 소복이 담겨있습니다. 이제는 쌀에 대한 수요가 점차 줄어들며 더 이상 밥에 대한 애착은 사라지나 싶은데, 아직도 북녘 땅에서는 이 밥에 고기국을 노래하고 있으니, 여전히 흰쌀밥에 대한 민족의 한풀이는 끝나지 않은 듯 싶습니다. 월요일 오늘, 다시 일주일을 힘차게 출발하시는 교민 여러분, 한국인은 밥심으로 삽니다. “밥먹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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