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항쟁1945~1954년 19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지배아래 있던 베트남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 항복한 프랑스의 비시정부 아래 식민정권을 유지하다 일본군의 진주로 친일세력을 등에 업은 바오다이가 명목상의 국가원수, 즉 꼭두각시 황제로 옹립되어 있었다. 한편 1941년,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설한 호찌민은 30년간의 해외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베트남 독립동맹’(비엣민; Việt Minh)을 결성하고 유격대를 조직, 일본과 프랑스를 동시에 공격한다. 비엣민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변변한 개인화기조차 갖추지 못했지만 식민지 조국을 당당한 독립국가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용사들이었다. 시대적 배경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자 연합국은 북위 16도선을 경계로 베트남을 분할해 북쪽은 장개석정부의 중국군이, 남쪽은 영국군이 주둔하도록 합의한다. 당시 베트남독립연맹은 중국군이 진주하기 전 일본의 괴뢰국가였던 안남의 윙조(阮朝)를 전복시키고 …
Read More »1858년~1945년 프랑스, 일본과의 투쟁 그리고 민족해방
지난 호에 살펴본 대로 윙안자롱(Nguyễn Ánh Gia Long)은 프랑스군의 도움을 받아 따이선의 난을 평정하고 1802년 왕좌에 올라 윙왕조(1802-1945)를 세웠다. 하지만 윙왕조의 초기 왕들인 쟈롱(Gia Long)과 민망(Minh Mạng)은 일단 프랑스의 도움으로 나라를 얻었지만 천주교(당시 신자 30만)에 대해서는 비호의적이었다. 결국 민망 황제시대 프랑스 선교사를 살해하기도 했는데 이런 이유로 프랑스 내부에서는 베트남을 정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었다. 한편 티우찌(Thiệu Trị) 황제시절에는 다시 우호적인 관계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결국 1847년 다낭 항에서 베트남과 프랑스배의 충돌로 사태가 격화되기 시작했고, 뜨득(Tự Đức) 황제가 쇄국정책을 더욱 굳게 하자 마침내 나폴레옹 3세는 1858년 프랑스 국서를 거부했다는 명목으로 다낭항을 공격한다. I. 베트남,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복속 프랑스는 제국주의 등장으로 인한 식민지 …
Read More »만탄 (Mãn Thanh;淸) 과의 전쟁 (1788~1789)
광쭝 황제 청나라 대군 30만을 섬멸하다! 청나라 30만 대군 탕롱으로 진격하다! 1788년 11월, 청나라의 깡롱(Càn Long; 건륭)제는 이 기회를 놓칠세라 똥시응이(Tôn Sĩ Nghị-손사의;孫士毅)와 함께 30만 대군을 보낸다. 당시 그가 이끄는 본대는 Lạng Sơn으로, 섬응이동(Sầm Nghi Đống) 장군의 부대는 까오방(Cao Bằng), 오다이낀(Ô Đại Kinh) 장군의 부대는 광닌(Quảng Ninh)을 지나 속속들이 탕롱(Thăng Long)을 향해 진격한다. 여기에 민족의 반역자 레찌우똥(Lê Chiêu Thống) 황제도 청나라 군대를 이끌고 합류하여 그 기세가 엄청났다. 건륭은 또한 지난해에 베트남이 대 흉년을 겪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군량보급이 어려울 것을 염려하여 운남과 광서의 양로에 70개가 넘는 역참을 설치하여 대비를 철저히 했다. 게다가 베트남 강을 건너는 작전이 어려울 것으로 여겨, 병사들로 하여금 …
Read More »랏감 – 소아이 뭇 전투
베트남 남부 해전사의 백미 1771년, 따이선(Tây Sơn;중부 베트남 빈딘성 일대)에 살던 윙냑, 윙르, 윙후에 삼형제는 당시 남부지역을 관할하고 있던 윙(Nguyễn)씨 수하 권신의 전횡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킨다. 당시 이들이 부유한 세도가의 재물을 탈취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 의병의 세력은 날로 강대해져 갔다. 1776년, 따이성 의병군은 그 여세를 몰아 퀴년성(城)과 광응아이성을 점령하고, 다시 빈투언성을 공격해 윙(Nguyễn)씨 군대를 격멸했으며, 야딘(Gia Định; 호치민시)성에까지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1783년 6월, 결국 윙가의 주군 윙안(Nguyễn Ánh)은 사이공을 버리고 남쪽의 푸국섬과 꼰다오섬을 전전하다 급기야 태국에 구원을 요청해 5만여 군사와 300여 척에 이르는 태국 군대의 힘을 빌려 메콩 델타 지역을 공격하기로 한다. 전투 일지 1784년 7월, 태국군대는 윙안(Nguyễn Ánh)을 도와 따이선(Tây …
Read More »민심은 천심! 1, 2차 베-명 전쟁
호귀리와의 1차전 (1406-1407) 14기 말 쩡 왕조(Triều Trần)시대의 실권자 호귀리( 왕을 압박하여 왕위를 찬탈한다. (1400년) 과감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호귀리는 베트남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하지만 수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왕조를 찬탈했다는 이유로 민심은 이미 그에게서 떠난 상태였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트남을 호시탐탐 노리던 중국이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쯩푸(Trương Phụ) 대장군과 20만 대군을 파병한다. 당시 호귀리는 군을 재편성하고 전력을 세우는 등 항쟁의 의지를 굳게 한다. 특히 당시 베트남의 전략무기였던 대포 ‘숭텅꺼’(súng thần)는 명나라의 것보다 우수했다. 그는 또한강 하류와 협곡 여러 곳에 쇠사슬과 쇠말뚝을 박아 적의 공격에 대비하였으며, 특히 땅빙(Tản Viên;Hà Tây)산에서 다(Đà)강, 홍(Hồng)강, 룩(Luộc)강, 타이빈(Thái …
Read More »대중국전략, 화전(和戰)양면 1~3차 베 – 몽 전쟁
1200년대, 세계 최강의 제국을 이룬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는 모두 세 차례 베트남을 침공했다. 1차(1258년) 3만명, 2차(1284년) 50만명, 3차(1287년) 30만명. 전국의 병사를 다 모아야 20만명에 불과한 소국 베트남을 상대로 몽골족의 원나라는 거침없는 정복욕을 불살랐다. 하지만 세 차례 전쟁의 결과는 모두 원의 패배로 끝났다. 원은 정복군의 숫자가 말하듯, 얕잡아보고 벌인 1차 전쟁의 복수전으로 엄청난 병력을 재차, 삼차 동원했지만 결국 베트남의 저항에 무너졌다. 마지막 3차전 때 베트남군은 현재의 하롱베이 부근 밧당강 전투에서 퇴각하는 몽골군이 다시는 침공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처절한 타격을 가했다. 사서에 의하면 당시 전투가 끝났을때 밧당강에는 10만 구에 달하는 몽골군의 시체가 둥둥 떠다녔다고 기록되어 있다. 1차전- 몽골, 초유의 굴욕(1258년) 1258년 …
Read More »송나라와의 항쟁
전쟁을 통해 배우는 베트남의 역사 제 5탄 리트응끼엣 장군, 송나라 황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다 지난 호에 살펴본 대로 938년 밧당(Bạch Đằng)에서의 승리는 중국의 지배를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939년 띵응오붕(Tiền Ngô Vương)은 스스로 왕이 되어 꼬로아(Cổ Loa)를 수도로 정하고 중앙집권화된 정부를 세우는데, 이것이 베트남의 첫 독립국가이다. 하지만 944년 응오귄(Ngô Quyền)이 사망하고 나자 12명의 군 지도자들은 나라를 나누어 가진 후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레호안 (딘 왕조), 송나라 원정군 격퇴 (송과의 1차 전쟁; 981) 924년 닌빈성 호아르(Hoa Lư)에서 태어난 딘보린(Đinh Bộ Lĩnh)은 12 사군 시대를 종식 시키고 국가를 통일한 후 왕위에 올라, 국호를 다이꼬 비엣(Đại Cồ Việt)으로, 수도를 호아르로 정하니 이가 바로 딘 …
Read More »밧당 전투(Trận Bạch Đằng; 938)
전쟁을 통해 배우는 베트남의 역사 제4탄 응오귕(Ngô Quyền)과 남한(Nam Hán)과의 혈전 시대적 배경(Hoàn cảnh) 서기 907년, 당이 멸망하고 중국은 마침내 5대 10국 시대를 맞게 된다. 이때 광동을 장악했던 나라가 남한(Nam Hán;南漢)이었고, 이즈음에 베트남을 통치했던 집안은 쿡(Khúc, 曲)씨 일가였다. 이 둘은 한동안 후량에 머리를 조아리다 중원의 혼란이 가속화되자 독립을 선언한다. 남한의 1차 침공 당시 베트남보다 몇 배나 강력한 남한은 내분을 이용해 베트남 지역까지 병합하려고 하였다. 그 결과 남한은 930년, 베트남을 침공해 쿡씨 세력을 대대적으로 몰아내고 하이구엉(Hải quân) 지역을 병합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남한은 1년 만에 베트남 토착세력의 반격으로 베트남에서 쫓겨나고 만다. 즉, 931년 증딘응에(Dương Đình Nghệ) 장군이 군사를 모집해 남한군을 몰아내고 …
Read More »Bà Triệu 바 찌우(찌우부인)
세상을 구하기 위해 천상에서 하강한 장수 역사 속으로 3세기 초, 고대 베트남은 중국 오(Ngô)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정세는 후한이 망하고(220년 10월) 위(220~265), 오(222~280), 촉(221~263) 등 삼국이 서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는데, 오나라 관리들은 전투를 모르던 이곳의 선량한 농민들을 닥치는 대로 징발하여 싸움터로 내몰았다. 게다가 그들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당시 비엣(越)족들이 집중적으로 살고 있던 북부지역인 끄우쩡 (Cửu Chân)과 야오찌 (Giao Chỉ) 사람들을 눈에 띄는 대로 끌고 가 노역에 종사시켰다. 그 결과 이곳저곳에서 민중들의 신음과 불평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금빛 갑옷의 전사 태어나다 바로 이 시기에 바찌우(찌우부인)가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찌우티찐 (Triệu Thị Trinh)으로, 전설에 의하면 229년 음력 10월 2일 구엉잉 …
Read More »한-비엣 전쟁(Chiến tranh Hán-Việt, 42-43)
하이바쯩 자매, 베트남 여성의 강인함을 전하다. 베트남 역사학자 레만탁(Lê Mạnh Thát)옹의 설명에 의하면 한 비엣전쟁은 후한의 폭정에 맞선 단순한 봉기의 차원이 아닌, 여성리더에 의한 최초의 독립전쟁이자 실제로 독립을 쟁취한 획기적인 사건이다. 베트남 사가들 특히 이 전쟁의 주인공인 하이바쯩 자매에 대해 한결같이 “중국 1 천년간의 지배기간 (B.C. 111~A.D. 938) 중 최초로 독립국가를 세운 여성지도자들이자 최초의 여왕(쯩짝)으로 평가한다. 쯩 자매가 세운 나라는 A.D. 40부터 3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당시 이들의 부대에는 무려 75 명의 여성장군이 있었는데, 이는 세계사적으로도 거의 전무한 특별한 경우였다. 전쟁의 발단 지난 호에 소개한 대로 BC 179년 찌우다는 앙증브응 왕이 다스리는 어우락국을 빼앗고 남비엣에 복속시켰다. (훙브응시대 종말) BC 111년 전까지 …
Read More »베트남 전쟁역사 History of Vietnam War
도전과 응전의 장대한 서사시 베트남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의 표상인 베트남의 전쟁역사는 중국등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오는 외세에 맞서 싸우는 도전과 응전의 산 현장이자 눈물과 애환의 파노라마다. 그렇다면 베트남은 왜 유독 이 처럼 많은 전댕에 시달려야 했을까? 이에 대해 현지인 사가들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파라다이스 베트남은 비옥한 홍강 델타지방에서부터 3,260km에 이르는 해안선을 따라 남부 메콩델타 지역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각종 천연자원이 넘쳐나는 데다, 동남아 일대를 사방팔방으로 연결해주는 지리상의 요충지라는 이유로 고대에서 중세, 근세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탐욕에 눈이 먼 세계열강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베트남을 침공해 들어왔다. 하지만 이로 인해 베트남인들의 핏속에 잠재되어 있던 단결심과 희생정신, 불굴의 의지가 유감없이 발현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수천여년에 걸쳐 이들 …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