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아름다운 항구도시 닌하이 그리고 하이퐁

  베트남 북부의 산업 항구도시 하이퐁의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 이야기 하이퐁(Hải Phòng)은 북부의 대표적인 해변도시로, 북쪽은 Quảng Ninh성,서쪽은 Hải Dương성, 남쪽은 Thái Bình성, 동쪽은 동해를 접하는 위치에 있다. 지리적으로 하이퐁은 수도 하노이(Hà Nội)에서 동북쪽으로 120km떨어진 저지대에 위치하며(하노이에 비해 기후 또한 1도 가량 낮음) 해변 길이는 125km에 이른다. 하이퐁은 경관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한데 이중 도선(Đồ Sơn) 지역은 맑고 깨끗한 물과 황금빛 모래로, 깍바(Cát Bà)섬은 란하(Lan Hạ)만과 함께 하롱만(Vịnh Hạ Long)에 속한 가장 큰 섬이자 생태보존지구로 멋진 해수욕장이 여럿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깍바(Cát Bà)섬은 특히 원시 생태계 보존지역으로, 석회암위에 조성된 밀림이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하이퐁은 중앙직할시 5개 중 하나며 주요 산업 도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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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도시 탕롱 그리고 하노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수도이자, 중요한 경제·사회 중심인 하노이 이야기 하노이는 인구가 많고 부유한 홍강 삼각주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베트남 역사의 초기부터 정치,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1010년, 리 타이 또(Lý Thái Tổ) 왕이 리(Lý) 왕조의 첫 황제로 즉위하면서 이 땅을 탕롱(Thăng Long)이라 칭하며 새로운 수도로 지정하였다. 리(Lý), 쩐(Trần), 레(Lê), 막(Mạc) 왕조 동안 수도 탕롱은 문화, 교육, 무역의 중심지였다. 떠이 썬(Tây Sơn) 운동 이후 응우옌(Nguyễn) 왕조가 권력을 쟁취했을 때, 수도를 후에(Huế)로 천도하였고 1831년, 민망(Minh Mạng) 왕 시기에 탕롱은 하노이로 불리게 되었다. 민망 왕12년(서기1831년), 북성에 설립된 한 행정구역의 이름이 하노이성(tỉnh Hà Nội)이었는데, 그때부터 하노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노이”의 한자는 “河內”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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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세계 [역사를 바라보다 3편] – 프랑스 식민시대부터 현대 베트남까지

  지난호에서는 서기 첫 밀레니엄부터 19세기 말엽인 1887년까지의 역사를 다루었다. 이 당시 역사의 특성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해진다는 점과, 중세적인 세계질서에서, 몽골제국의 세계정복을 통한 첫 세계화, 그 후 대항해시대를 거치면서, 교역으로 시작한 세계화가 유럽제국의 식민지배로 변화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풍파안에서 베트남은 1000여년 만의 중국의 영향력에서 벋어나, 독립왕국 시대를 맞게 되지만, 지형의 험난함과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하여 중앙집권왕조가 아닌 호족연합체로의 성격이 계속 이어져 왔다. 이로 인하여 중국, 한국과는 달리 왕조의 교체가 매우 잦은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베트남의 고질적인 균열은 차후 19세기경 서양세력 침략에 대처하기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887년 프랑스에 의하여 본격화된 식민화로 시작하는 베트남의 현대사,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역사이지만, 베트남 현대사를 보지 못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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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세계, 역사를 바라보다 2편

지난 호에서는 역사를 다루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베트남의 고대사 기원전 2800년경부터, 베트남의 역사가 중국과 본격적으로 분리가 되는 서기 980년까지의 약 3000년간의 역사를 알아보았다. 고대 역사는 항상 한계가 있다. 기간이 넓고, 사료가 부족하며, 정황성은 있으나, 물증이 부족하여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고대 역사는 미스테리한 구름 안에 항상 가려져 있다. 예를 들어 승자가 기록을 지운 역사가 많은 동양사는 이러한 점이 특히 심각하여, 일본사 같은 경우 서기 3세기~4세기는 미스터리이며, 한국사 같은 경우도 서기 4세기~5세기경이 자료부족으로 인하여 교차검증이 불가능한 시기다.   ❖ 왜 서기 10세기부터 시작 하는가? 서기 10세기 첫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시기는 유적과 기록이 많아지며 교차검증이 가능해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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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세계, 역사를 바라보다 1편

흥방왕조부터-쩐레왕조 창건 까지 BC 2800~AD 979년 베트남과-세계역사는 과연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세계와-베트남의 역사를 연대표 비교로 바라보자 역사는 단지 어느 한 부족, 특정 민족에게 속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에 따라 달라기지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역사란 사전적 의미에서 “인류와 사회가 겪어온 과거의 변천 모습이나 그 기록”을 말한다. 역사는 많은 지역 내 역사와 세부 시기적인 역사 등 파생되는 부분의 연구도 적지 않지만, 역사의 본질은 인류와 우리가 속한 사회의 변천 모습을 기록한 보편적인 기록을 말하는 것이다. 언론지 상에서 바른 역사 의식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바른 역사의식이란 사건 해석에 관한 일정한 방향성을 의미한다. 일본의 식민통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같은 경우가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바른 역사의식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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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라-태프트 밀약의 교훈

‘가츠라-태프트 밀약’은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권익을 인정하는 대가로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인정한 비밀 협정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믿을만한 나라가 못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단골 레퍼토리이다. 과연 그런 것인가? 정확히 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밀약’은 정식 외교용어가 아니다. 밀약이라는 외교 용어가 있을 리가 없다. 본래 문건의 명칭은 “Agreed Memorandum”이다. 1905년 7월 29일 미국 육군장관(secretary of war) 윌리엄 태프트(William H. Taft)와 일본 총리 가츠라 타로(桂 太郞)사이의 회담 내용에 대한 기록이다. 합의각서, 비망록(備忘錄) 정도로 보는 것이 맞는 문건을 왜 밀약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주인공은 미국의 역사학자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이다. 데넷은 1924년 미 의회도서관에서 태프트-가츠라간 비망록 전문(電文)을 발견하고, 이를 소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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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다른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나라 조선

급진개혁파는 대비 안씨를 겁박하여 이성계를 고려 제35대 국왕으로 등극시킵니다. 등극 후 첫 어명은 국호는 고려라 하고 직제와 의례는 고려의 것을 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성계는 대궐인 수창궁에 기거하지 않고 한 달간 사저에서 출퇴근한 유일한 국왕입니다. 그러나 한 달 후 새 왕조 창업을 본격화합니다. 우선 국호를 정하는데 명나라에 국호를 선택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조선과 화령 둘 중 선택을 요청하는데 조선은 단군조선의 후예라는 뜻이라고 밝혔고 화령은 이성계의 고향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정도전은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해놓고 명나라에 요청서를 보낸 결과 국호는 조선으로 결정 한다는 명나라의 답서가 도착하여 조선이라는 국호가 탄생합니다.   조선은 고려와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어 갑니다. 국호 제정에서 보듯이 중국을(여기서는 한족을 뜻함) 종주국으로 받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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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건국과 그 주역들

  388년 1월 고려의 부패세력 이인임 일파를 제거한 최영과 이성계는 고려의 국정을 장악합니다. 그러나 한 달 후 벌어지는 철령위 사건으로 고려는 다시 위기를 맞고 최영은 요정정벌로 응수합니다. 정도전의 계책에 따라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한 신흥사대부는 개혁을 추진하는데 재산권이 걸린 토지제도의 개혁에 대한 입장 차이가 너무 커서 신흥사대부는 급진개혁파와 온건 개혁파로 갈라집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 최초의 분당사태가 발생합니다. 역성혁명을 진행하던 급진개혁파는 정몽주에 의해 마지막 반격을 받았으나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이고 1392년 조선은 건국됩니다.   이인임 일파를 제거한 최영과 이성계는 시중(총리)과 수시중 (부총리)을 맡아 고려의 국정을 장악합니다. 그리고 최영은 우왕의 장인이 됩니다. (최영의 서녀는 우왕의 후궁인 영비) 이인임이 경계한 이성계를 최영은 국정 파트너로 선택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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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지는 신흥사대부와 고려말 정치

1374년 공민왕 시해사건을 처리한 권문세족 출신의 이인임은 10살의 어린 우왕을 고려 제32대 국왕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섭정이 되어 고려의 국정 전반을 장악합니다. 같은 권문세족 출신의 최영에게 군권을 맡기고 신흥 무장세력 이성계를 견제합니다. 그러나 성인이 된 우왕은 최영과 이성계를 끌여들여 이인임 일파를 제거했으나 곧이어 명나라가 철령위 사건을 일으켜 옛 쌍성총관부 영토 반환을 요구합니다. 고려는 만주 정벌을 결정했으나 이성계와 정도전 세력의 위화도 회군으로 우왕은 퇴위되고 재산권이 걸린 과전법의 시행을 놓고 신흥사대부는 급진개혁파, 온건개혁파로 쪼개집니다. 우리 정치 최초의 분당 사태 그리고 우리 정치 최초의 당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고려 말 상황을 살펴보러 갑시다. 1383년 혁명가 정도전은 이성계를 찾아 함주(함흥) 군영으로 가서 두 사람은 역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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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신흥무장세력과 신흥사대부

신돈은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시도했고 백성들이 지지를 얻었으나 이러한 백성들의 지지는 공민왕과 기존 정치인들의 위기감 을 조성시켜 신돈은 참소로 실각하고 유배형에 처해집니다. 유배 4일 후 신돈은 참수 당하고 노국 대장공주를 잃은 공민왕은 정 치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원제국이 몽고로 쫓겨가고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가 중국을 통치합니다. 공민왕 사망 후 변화된 외교정책으로 마찰을 빚은 혁명가 정도전은 귀양을 가고 귀양지에서 큰 깨닳음을 얻은 정도전은 역성 혁명을 계획합니다. 역성혁명은 현실적인 힘(군사력)이 필요하므로 이성계와 정도전은 운명적인 만남을 가집니다. 여기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세상을 설계합니다. 치열한 투쟁과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는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러 630년 전 과 거로 갑시다. 신돈의 개혁정치가 순조롭게 진행되던 1368년 국제정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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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의 개혁정치와 그 주역들

14세기 중반 고려 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었죠.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공민왕은 개혁을 위해 양대 세력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기존의 부패한 권문세족은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의 주체세력이 될 수 없었죠. 그러나 현실을 무시할 수 없어서 공민왕은 어느 정도의 권문세족을 유지시키되 이들을 견제할 신흥세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세력이 이성계 일파의 신흥무장 세력과 이색 학당의 신흥사대부 세력입니다. 문 무 양대세력 중 고려에 급한 것은 군사력이었죠. 당시의 고려는 끝없는 외환을 겪고 있었는데 이때 나타난 무장세력이 권문세족 출신의 최영 장군과 신흥무장 세력의 이성계입니다. 쌍성총관부 수복에 공을 세우고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입지를 확보한 이자춘은 홍건적의 2차 칩입때 사망합니다. 그리고 등장한 26세의 젊은 청년 장군 이성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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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탐방, 첫번째

베트남과 한국의 시련과 극복 우리 문화는 어떻게 정착되고 지금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베트남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문화를 가지게 되었을까? 특정 국가의 문화는 역사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데 지금부터 추적을 시작합니다. 지금부터 700년 전 우리나라는 성리학(주자학) 유입으로 과거와 다른 문화를 체험했고 계속 발전하여 정착하게 됩니다. 5,000년 역사 전부 의미있고 소중하지만 700년 전 부터 우리문화는 조금씩 방향을 바꿔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베트남은 약 700년 전 엄청난 국가 시련을 극복하고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베트남 사람의 자존심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사실을 추적합시다. 그러면 지금부터 저와 함께 700년 전 베트남 여행을 떠나 볼까요? 그리고 고려도 함께 갑시다! 고려에 성리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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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이선 왕조에서통일 조국까지

이번 호에는 베트남 역사 그 마지막 부분으로 광쭝황제로 유명한 떠이썬 왕조에서 베트남 최후왕조인 윙 왕조, 그리고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열강의 압제속에서 끈질기게 투쟁해 마침내 조국통일을 이룩한 베트남 현대사 전반을 다루어보고자 한다. 떠이썬 왕조 (Nhà Tây Sơn, 1778~1802) 1771년, 윙냑(Nguyễn Nhạc), 윙르(Nguyễn Lư), 윙후에(Nguyễn Huệ) 3형제는 떠이썬 혁명을 일으켜 중부의 윙 왕조를 타도했다. 1785년 떠이썬 군대는 랏감-쏘아이 뭇(Rạch Gầm-Xoài Mút) 전선에서 태국부대를 격파한 후 당응와이로 행군하여 찐(Trịnh)왕조를 전복시켰다. 레 왕조의 마지막 왕인 레찌우통(Lê Chiêu Thống)은 중국으로 건너가 진나라에 도움을 청했다. 1788년 윙후에는 현재 후에라 불리는 푸쑤언(Phú Xuân)지역에서 왕좌를 빼앗았으며, 이 후 1789년 음력 1월에 탕롱(Thang Long)에 있는 청나라 29만 군사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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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건국시조 흥왕제사 황금연휴 4월 16·17·18일

음력 3월 10일, 베트남 국조, 흥왕 제사 올해 음력 3월 10일, 즉 2016년 4월 16일은 베트남 건국시조인 흥왕의 제삿날(Giỗ Tổ Hùng Vương 2016)이다. 특별히 이번 국경일에는 토요일부터 시작되어 다음주 월요일까지 공식적으로 3일간 연속 쉴 수 있어 근로자들이 한껏 기대에 들떠 있다. 한국의 ‘단군’에 해당하는 베트남의 시조이자 국조인 훙왕 (Hùng: hùng은 웅(雄), 즉 영웅, Vương은 王이란 뜻)을 기리는 제사일을 ‘요 또 흥붕'(Giỗ tỗ Hùng Vương: Giỗ는 제삿날, tỗ는 선조, 조상, 국조, 시조 등의 의미)이라고 한다. Giỗ Tổ Hùng Vương 2016 수천 년 동안 베트남인들은 매년 음력 3월 10일이 되면 ‘천룡의 후예’를 자부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전국각처에서 한 곳 흥(Hùng: 雄, 즉 영웅호걸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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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한국 역사를 만나다

베트남과 한국 그 파란만장한 역사를 만나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조상들의 활동상을 민족사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사적 차원에서 상호관련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한국과 베트남 두 나라의 시대상황을 비교해보는 것은 단순한 흥미의 차원을 넘어서서 서로의 역사적 공통점을 발견하고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동반자로서의 유대감을 끈끈히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민족사의 다양한 역사전개 과정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학습하여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각능력을 키워나가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를 보는 안목과 통찰력이란 것이 역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꾸준한 탐구 없이 하루아침에 생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번호에서는 한눈에 짚어보는 한국·베트남 역사 연대표를 통하여 역사의 중요함을 공부한다.   PDF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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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베트남 10대 수전

세계역사상으로도 그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vô tiền khoáng hậu) 배트남 수병의 용맹스러움은 이미 고대시대부터 널리 알려졌다. 비록 전투에서 패하기도 하지만 베트남 수병은 예로부터 세계최강, 중국과 몽골군, 프랑스 함대에 조차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QUỲNH CHÂU(琼州 海峡)전투 고대 HÙNG VƯƠNG시대 베트남 사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베트남 민족은 이미 고대 Hùng왕 시대부터 수전에 능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고대 베트남 최초의 해전은 사서에 남아있지 않다. 다행히도 Hải Phòng지역에서 전해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Văn Lang국 제 6대 훙왕(Hùng Vương thứ 6)이 나라를 다스리던 시절, 중국 해남 Quỳnh Châu섬에서 해적들이 수시로 해안에 출몰해 베트남 민족을 괴롭혔다. 당시 왕은 군사를 이끌고 가 하이퐁 일대, 항부어(Hang Vua;왕의 동굴이란 뜻)에 매복해 있었는데,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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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을 대표하는 전쟁영웅 4인

전쟁을 통해 배우는 베트남의 역사 마지막회 리 트응 끼엣 중국 본토공략, 송나라황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다! 리트응끼엣 장군은 크메르 왕조와 중국 송황조의 침략을 차례대로 물리쳐 베트남의 국민적 영웅이 된 인물이다. 리트응끼엣의 본명은 응오뚜언(Ngô Tuấn)으로 하노이 출신이며, 나라에 큰 공을 세운 후 Lý 황제의 성을 사하 받아 Lý Thường Kiệt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는 베트남 남진 역사상 가장 공이 큰 인물로 남진을 통해 Trần, Hồ, Lê, Nguyễn 시대를 열어준 장본인이다. 1069년 당시 중국은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인 위기를 벗어날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다이비엣의 부를 차지하기 위해 리왕조를 공격하였다. 한편 이 시기, 리왕조의 왕좌에 겨우 10살짜리 아이가 오르면서 왕국의 모든 권력은 리 트응 끼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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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강, 미국의 콧대를 누르다! 미군과의 항전 1954~1975

전쟁을 통해 배우는 베트남의 역사 12탄 당시 남 베트남에서는 부패의 극을 달리던 정권이었던 바오다이 황제의 베트남국은 쿠데타에 이은 1955년 10월 26일의 국민투표로 무너지고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이 성립된다. 하지만 대통령으로 선출된 응오딘지엠(Ngô Ðình Diệm)의 정권은 미국의 원조로 눈먼 돈이 넘쳐나면서 급속도로 부패하기 시작한다. 지엠의 일족들이 국가 요직을 독점했고 미국 원조금은 경제개발이 아닌, 사치품 수입으로 낭비된다. 심지어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비밀경찰을 조직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마구 투옥시킨다. 그 결과 국민들이 등을 돌리며 지엠 정권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59년말 동커이(Đồng Khởi;총궐기)운동이 일어나고 1960년 11월 20일에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Mặt trận Dân tộc Giải phóng Miền Nam)이 결성되었는데 목사, 승려, 학생 그리고 일부 좌익인사들이 한데 뒤섞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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