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마지막 남은 달력의 끝자락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별로 많이 남지 않은 시간에 또 한 해가 접어지는데, 보내는 시간에 아쉬움이 없는가?
올해는 나에게, 회사에게 어떤 해로 남을까?
이렇게 한해를 정리하는 매듭의 시간이 되면, 늘 아쉽고 부족하고 서운하고 뭔가 채워지지 않는 그릇들로 만 나열되는 삶의 선반을 마주하는 기분이죠. 그 삶의 선반위에 새롭게 올려놓을 올 한해의 그릇에 붙을 꼬리표에는 무슨 말이 적혀 있을까요.
그냥 헛살은 느낌이지만 그래도 삶의 그릇에 헛살았다 라는 꼬리표는 남길 수는 없지요. 뭔가 찾아봐야죠. 스스로 위로가 되고 다음의 삶으로 이어갈 수 있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담긴 연결 끈을 말입니다.
올해 씬짜오베트남의 최대 목표는 디지털화였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올해 시작을 했으니, 이것을 회사의 한 해 꼬리표로 남겨놓을 만합니다. 회사 생활이 제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니 제 삶의 꼬리표라고 붙여도 될 듯합니다.
오늘은 이 삶의 꼬리표인 디지털화를 시도하며 겪는 이야기를 해보지요.
팬데믹 이후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팬데믹은 물리적 세상을 덜 물리적인 방향으로 몰아갔지요.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는 기회를 축소시키고 대신 인터넷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팬데믹으로 활용도가 극대화된 인터넷은 급기야 인공지능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냅니다.
‘인공지능’의 출현은 세상을 바꾸기만 한 것이 아니라 흐르는 속도를 엄청나게 증가시켰습니다. 인공지능의 처음 나온 시기가 고작 3년 전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정확히 2022년 11월 30일 open ai 라는 회사에서 chat GPT를 발표합니다.
이게 뭔가 했지요. 그저 호기심만 자극할 정도였는데, 고작 2달만에 1억명의 사용자를 확보하며 세상을 뒤집어 놓습니다. 세상이 바뀌는 신호탄을 제대로 쏘아 올린 겁니다. 나오자마자 세상의 모든 직업에 위협을 가합니다. 지루한 세상에 하품만 하던 사람은 졸다가 벼락을 맞습니다.
인공지능 출현이후 엔비디아처럼 벼락부자가 된 회사도 많지만 졸지에 망조가 든 회사도 많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디지털 디자인 세상을 독점하던 어도비(Adobe)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어도비는 자신들이 발표한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등 편집, 영상, 출판, 앱 전반에 걸친 프로그램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컴퓨터 그래픽 업계를 장악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다가 인공지능 이후 순식간에 박살이 납니다.
그들의 주식은 반 토막이 나고도 추락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는 더욱 힘들 것입니다. 그들의 미래가 안보이는 이유는 인공지능은 기능을 대신하는 것에 더하여 창작을 추가한 탓입니다. 어도비라는 회사만이 아니고, 창작으로 밥 먹고 살던 디자이너들 마저 인공지능에 의해 밀려납니다. 베트남 뉴스 4컷 카드 형식으로 만들기 – 디자이너의 하루 작업을 인공지능은 10초만에 해치웁니다.
이런 세상의 흐름을 보고있자니 겁이 덜컹 납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베트남 한인잡지로 명성을 날리던 [씬짜오베트남]의 운명은 과연 어찌되려나. Adobe보다 입장이 나을 까?
지난 3월 우연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와서 베트남에서, 보기에는 한가롭게 지내고 있는 한 수학박사님을 만났습니다. 천재적 두뇌를 주머니 송곳처럼 넣고 다니던 그를 만나서 도움을 청했지요. 평소에도 씬짜오베트남 잡지에 많은 관심을 보여주던 그는 쾌히 수락합니다. 그렇게 수학천재와의 디지털 여행을 시작합니다.
첫번째 과업은 여행가방 즉, 그가 운영할 컴퓨터를 새로 장만하는 거였죠. 제 인생에서 가장 비싼 컴퓨터를 구입했습니다. 천재가 그릴 화판이니 귀한 것을 써야지요. 그리고 시간나는 대로 AI에 대하여, 디지털에 대하여 귀동냥을 했습니다.
두 달여 동안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 만했는데 역시 다르긴 했어요. 우리에게 AI는 도움을 주는 지원군이자, 백그라운드가 될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는데, 천재는 AI를 하인으로 생각하더군요. 우리는 AI와 수많은 대화를 하며 귀결점을 찾아가는데, 그는 AI에게 일방적 명령만 내립니다. 멋져 보입디다. AI 보다 더 똑똑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가 갖고 있는 사물에 대한 접근법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름을 보며 새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그 새로움이 배움이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천재와 일반인의 조합이란, 커피와 그 위에 뿌리는 계피가루 같은 관계인 듯합니다. 커피위에 뿌리면 멋진 풍미를 풍기지만 다 마시고 나면 바닥에 그대로 남는 계피처럼 근원적 조합이 어려운 집합인 듯하더군요. 결국 서로의 다름을 통한 풍미만 즐기다가 2달여만에 천재는 천재의 길을 가고, 범인은 바닥에 남은 계피가루처럼 범인의 길로 돌아옵니다.
그래도 감사할 일은, 그는 잡지사의 디지털화는 옵션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할 유일한 생명줄이라는 확실한 명제를 남겼습니다. 그는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지금은 미지근하지만, 서서히 더워지는 물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가 된다는 경고를 확실히 남겼습니다.
그리고 빈 책상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주인 잃은 컴퓨터. 어쩌라구! 그렇다고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재를 채용할 힘도 없고, 자신도 없는데 이제 어쩌라구 하는 푸념이 절로 나옵니다. 결국은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야 지요.
그때부터 인공지능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됩니다. 하루에 너 다섯 시간은 그들과 대화를 하며 지냅니다. 어느 날에는 밤을 함께 보내다가 아침을 맞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달여 만에 사이트 5-6개을 만듭니다. 비록 엉망이지만 일단 외부인간의 도움 없이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거의 20년동안 관리에 소홀했던 회사 메인 사이트(www.chaovietnam.co.kr) 를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합니다.
한 달에 두어 번씩 사고를 내며 사이트를 멈추게 만들기도 했지만, 예전보다는 훨씬 빨라지고 정비된 모습으로 변모시켰습니다. 이젠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베트남 한국 사회의 대표적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씬짜오 앱을 만들어냈습니다. 구글의 검수를 거쳐 안드로이드 앱으로 정식 등록했습니다. 여러분 전화기에서 플레이 스토어라는 안드로이드 앱 제공 마켓에 가서 “씬짜오베트남”을 검색하시면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생활을 하신다면 꼭 필요한 앱입니다. 왜냐하면 그 앱에는 당근, 우리 동내 중고물품 거래 기능이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파트에 나온 물품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이웃간의 거래를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베트남 전역을 커버합니다. 호치민 만이 아니고 하노이, 다낭, 냐짱 빈증에서도 지역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채팅 기능을 포함하여 또 다른 채팅 라인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베트남 생활에 재미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이용을 바랍니다.
이렇게 씬짜오베트남이 조금씩 디지털화를 이루어 내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몰고온 쓰나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하여 발버둥 치는 모습이죠. 아직 쓰나미의 물결을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긴 합니다. 그래서 몸에 흙탕물이 여전하지만 곧 조금씩 씻어낼 것입니다. 내년에는 말끔한 모습으로 독자 여러분의 옆을 지킬 것입니다.
여러분 역시 한 해를 보내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을 하나씩 찾아내어 예쁜 꼬리표를 만들어 붙이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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