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 제재 동참·FIU “테마 점검”… 천즈 회장 행방 묘연·프린스은행 뱅크런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대상 납치·감금·살인이 잇따르면서 정부가 이르면 이달 중 관련 범죄조직을 대상으로 금융 제재에 착수할 것으로 19일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캄보디아 범죄단지 배후로 지목된 프린스 그룹(Prince Group) 등을 공동 제재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한국 정부도 실질적인 압박에 나서는 것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Financial Intelligence Unit)은 캄보디아 범죄 관련자를 금융거래 제한 대상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는 공중협박 자금조달이나 대량살상무기 확산 등과 관련된 개인·법인·단체를 금융거래 제한 대상자로 지정·고시할 수 있다. 금융거래 제한 대상자로 지정되면 금융위의 사전 허가 없이 금융·부동산·채권 등 재산 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사실상 자금동결 조치로, 불법 재산의 이동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캄보디아 범죄 단체 성격을 무엇으로 규정해 대응할지 등을 두고 부처 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제재 대상 결정이 이뤄지면 금융거래 제한 조치 등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 제재 대상으로 캄보디아 프놈펜(Phnom Penh)의 ‘프린스 그룹’과 금융서비스 기업 ‘후이원 그룹(Huione Group)’ 등이 거론된다.
프린스 그룹은 부동산·금융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며 캄보디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거대 기업집단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인신매매·온라인 사기·불법 감금 등 각종 강력범죄의 배후 조직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이 감금돼 보이스피싱 등 사기에 동원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 범죄단지인 ‘태자(太子·Prince) 단지’도 프린스그룹이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이원 그룹은 사기·탈취를 통해 확보한 가상화폐 자금을 수년간 세탁해온 혐의를 받는다.
미국과 영국 정부는 최근 이들을 ‘초국가적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제재를 발표했다. 미 법무부는 천즈(陳智·Chen Zhi) 프린스 그룹 회장을 온라인 금융사기와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유죄 확정시 최대 40년의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다. 법무부는 천즈 회장이 보유해온 약 150억달러(약 21조원) 상당의 비트코인(Bitcoin) 12만7천271개를 몰수하기 위한 소송도 제기했다.
금융위를 비롯한 관계부처는 사안의 긴급성과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해 이달 중 제재에 나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등은 자국민 피해가 발생하자 금융 제재나 외교적 압박 조치를 적극적으로 하는 데 반해, 한국 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란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라 관련 절차 진행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거래 제한 대상자 지정·고시를 위해서는 기획재정부, 외교부, 법무부 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실무적으로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National Security Council) 절차도 거칠 것으로 알려졌다.
FIU는 연내 캄보디아를 비롯한 동남아 지역 범죄자금의 ‘가상자산 세탁’과 관련해 테마 점검도 하기로 했다.
FIU는 지난 17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가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개최한 ‘동남아 범죄자금 사례 공유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전달했다. 동남아 지역에서 범죄 수익 송금·환전에 가상자산이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모니터링과 의심거래보고(STR·Suspicious Transaction Report)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차원이다.
FIU는 고위험 고객으로 분류될 경우 관련 법상 거래 중지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안내했다. 또 프린스 그룹 등이 미국과 영국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만큼 해당자와 거래할 경우 2차 제재(제재 대상자의 거래상대방 제재)를 받을 수 있다고 업계에 경고했다.
한편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18일 전해졌다. 현지 매체 캄보디아데일리(Cambodia Daily)와 크메르타임스(Khmer Times) 등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정부가 지난 14일 프린스그룹 등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 가운데 천즈 회장 행방이 묘연해 실종설이 나오고 있다.
천즈 회장은 캄보디아에서는 최고 실세 훈 센(Hun Sen) 전 총리의 고문을 맡는 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1987년 중국에서 태어난 천즈 회장은 2014년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하고 정계와 유착해 급속도로 사업을 확장해왔다.
중국 당국도 프린스그룹이 사기범죄로 불법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보고 2020년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천즈 회장의 캄보디아 시민권 박탈과 중국 송환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현재 그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천즈 회장은 지난해 12월 프린스그룹 계열 프린스은행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캄보디아 범죄단지 배후로 지목되는 프린스그룹 등에 대한 압박과 제재가 가해지자 프린스은행에서는 ‘뱅크런(bank run·예금 대량 인출)’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정부의 강력한 제재 이후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주요 지점에 예금을 인출하려는 고객들이 몰려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프린스은행은 “캄보디아 중앙은행(NBC·National Bank of Cambodia)의 감독과 규제 하에 독립적이고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모든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 청년들을 캄보디아로 유인하며 보이스피싱 등 각종 관련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하데스 카페’의 접속이 막히자 ‘고수익 아르바이트’ 구인 광고가 다른 곳으로 흘러드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1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보이스피싱과 대포통장 모집 등의 중개 플랫폼 역할을 해온 하데스 카페가 전날 접속 불가 상태가 된 뒤 교민 커뮤니티 등에 해외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글이 잇달아 게시되고 있다.
중국 교민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전날부터 ‘해외 TM(텔레마케팅) 직원 모집한다’, ‘태국에서 일할 채팅 직원 구한다’ 등 제목의 글 70여건이 올라왔다. 한 작성자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탄탄하고 안전한 회사”라며 홍보했다.
‘총판(영업책) 연합’을 자처하는 텔레그램(Telegram)의 비밀 단체 대화방에서도 관련 정보들이 공유되고 있다. 참가자 7천800여명의 한 대화방에서는 전날부터 ‘출국장(해외 대포통장) 매입한다’, ‘필리핀과 베트남 대면 가능’ 등의 메시지가 연달아 올라왔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채용 단계에서부터 범죄 네트워크가 작동했음에도 정부 당국이 방관한 결과 ‘골든타임’을 놓치고 구인 광고가 음지로 숨어들었다”며 “인신매매가 의심되는 구인 글에 대해 자동으로 필터링하고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플랫폼을 차단하는 해외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2025.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