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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은 아주 긴 연휴를 보냈더군요. 한가위 연휴와 이런 저런 국경일이 겹치면서 마치 모아둔 연차를 한꺼번에 쓰는 것처럼 온 국민이 긴 휴일을 즐기게 된 한국이 부럽습니다. 그런 국민의 휴일에도 함께 하지 못하고 이국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이방인의 처지에 가벼운 연민이 일어납니다.
3년전 노모가 별세한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한국을 방문하는 횟수가 줄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개인적인 사유로 가능하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외면하며 살고 있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이 확인되는 민족의 명절에는 피할 수 없는 고국의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특히 가을의 한가운데라는 한가위가 되면 더욱 그렇습니다. 온 산야가 붉은 색동 옷으로 갈아입는 한국의 가을 정취가 그립고, 어린시절 형제들과 성묘를 다니며 겹겹이 쌓아온 수많은 추억들이 색 바랜 사진처럼 다가와 이방인의 가슴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 시절 모습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낮은 미소로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 봅니다.
“역시 어머님이 계셔야 했어요”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말썽꾸러기 넷째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볼 것 같은 어머님을 그리며 되도 않는 푸념을 털어봅니다. 지난 7월 어머님 3주년 기일에 참석하지 못한 것이 못내 가슴을 울립니다. 이렇게 가슴이 아릴 일이었다면 만사를 제키고 다녀올 일이었는데.
한국의 한가위 소식을 전하는 후배가 이번 명절을 맞는 요즘 젊은 세대의 어려움을 공감한다며 하는 말이, 한가위 제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늘었는데 그 중에 상당부분이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라며 가득이나 힘든 세상에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마저 인플레가 되어 명절을 보내는 것도 힘든 일이라며 어려운 세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수고를 위로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묘하게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조선시대 학자 박인로의 [조홍시가] 라는 시조가 있습니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
유자가 안이라도 품은 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기리 없슬새
글로 설워하노라.
박인로가 한음 이덕형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를 대접한다고 한음이 내놓은 소반에 담긴 홍시를 보고 홍시를 좋아하시던 모친을 그리워하면 읊은 시조입니다.
풀이를 하자면, “소반 가운데 놓인 붉은 감이 먹음직스럽게도 보이는 구나 이것이 유자가 아니라도 품에 넣어 가져갈 만하다마는 품 안에 넣어가도 반가워할 이가 없으니 그것을 서러워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유자가 안이라도(아니라도의 옛말)”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 문장을 이해하려면 또 다른 고사를 하나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삼국시대에 육적이라는 사람이 원술을 찾아가 유자, 귤을 대접받았는데 그 중에 몇 개를 품에 넣고 나오며 원술에게 인사를 하다가 그만 그 유자가 흘러나와 발각되었는데, 원술이 이유를 묻자 집에 있는 모친이 유자를 좋아해서 가져가 어머님을 드리려 했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다는 고사입니다.
박인로는 이 홍시가 육적이 품에 넣어가려 했던 유자는 아니지만,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붉은 감이니 그와 같이 품이 넣어 어머님께 드리고 싶지만, 그렇게 넣어가도 정작 그를 반길 이가 없으니, 그것이 서럽다고 노래합니다. 그에게는 어머님이 살아 계시는 육적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이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 용돈조차 드릴 이가 없는 신세가 안타깝다는 생각에 이 시조가 생각납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동안 기쁘게 해 드리세요. 지나고 나면 그 못함이 씻지 못한 한으로 남기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재미없을 수 있는 말이지만, 한자고사를 하나 소개하면 풍수지탄 (風樹之歎)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 풀이만 하자면 바람이 그치지 않음을 나무가 한탄한다는 뜻이지만, 원래 어원은 “나무가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을 하려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 주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라는 말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일은 때가 있지요.
배움도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배움도 버거워집니다. 연애도 열정이 오를 때 할 수 있는 일이고, 사업도 패기가 넘칠 때 시도할 일입니다. 특히 부모님의 효도는 돌아가신 후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선시대 문인 송강 정철은 이 마음을 이렇게 술회합니다.
“어버이 살아계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에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어떻게 자신을 희생하였는 가는 그분들의 호칭만을 떠 올려도 눈물이 나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한국사에 가장 혹독한 시절로 기록될만한 잔혹하고 험난한 세상을 만나 일찍 사별한 남편을 대신하여 7남매를 고이 키우신 어머님의 강인함을 생각하면 왜 그 강인함은 다 사라지고 당신 눈에 고인 눈물만 떠오르는지 알 수 없습니다.
큰 아들 경기 고교 졸업 시 마지막 등록금을 내지 못해 대학교 입시원서를 써주지 못하겠다는 세상의 매정함에 통곡을 했다는 일화를 털어놓으시며 눈물을 훔치시던 모친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콧등이 찡해옵니다. 전쟁의 난리를 겪으면서도 서울대학교에 둘 씩이나 보내고도 등록금 문제로 늘 발을 동동 구르시던 모친의 모습, 그래도 이 모든 것이 이제는 아문 상처로 덮어둘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늘 세상과 싸우며 자식 키우는 것으로 당신의 생을 보내신 모친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그리워집니다.
언젠가 가을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면 어머니에게 아들의 안부 담긴 이국의 엽서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 엽서에는 국경 없이 떠오른 한가위 밝은 달이 그려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달을 바라보며 하늘의 조상님에게 안부를 전하고, 고국의 가족들과 인사도 나눠볼 수 있게 말입니다.
한가위날 조상의 성묘도 가지 못한 불효자식의 아쉬운 마음을 이 초라한 글로써 용서를 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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