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한인사회에 한인단체가 생겨난 것은 1996년, 베트남과 수교 4년만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하노이를 공식 방문하면서 시작됩니다.
그 당시 교민이라고는 고작 기천명에 불과했으며 자생적으로 전체 교민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는 존재하지 않은 시기인데, 모국의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다고 하니 교민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공관에서는 비상이 걸립니다.
한국의 최고 수장이 베트남을 방문하다고 하는데, 공식적인 행사들도 준비를 해야 하지만 대통령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반드시 있는 행사, 교민과의 대화 자리에 누가 교민대표로 나서서 대통령을 맞이해야 할 지 고민이 깊어집니다.
교민과의 대화 행사는 대통령 외국 행차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 나라에 대통령이 와서 만날 교민조차 없다면 그 나라의 방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수교 자체도 의미가 없겠지요. 그러니 교민과의 만남은 대통령 방문 중에 가장 의미있는 행사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교민사회의 외형도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 고민이 깊지요.
결국 호찌민 총영사관은 한인회를 급조합니다. 그때 하노이는 아직 교민들이 별로 많지 않은 상황이라 그나마 기천명이라도 교민이 있는 호찌민에서 나선 것입니다.
당시 호찌민의 진출기업중의 하나인 아스트로라는 가방 제조업체의 법인장으로 베트남에 나와있던, 교민내 최고의 엘리트인 서울대 법과대학 출신인 박옥만씨를 내세워 그를 회장으로 지정하고 회원도, 조직도 존재하지 않은, 실체 없는 한인회를 급조합니다. 그리고 박옥만 회장은 하노이에 올라가서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찍는 사건을 시작으로 베트남 교민사회에 한인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한인회와는 전혀 태생자체가 다른 한인회가 만들어 집니다. 여타의 나라들은 한인이 많아지면서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만들어지는데 비해, 베트남의 한인회는 정치적 목적에 위해 탄생했으니 일반 교민들과는 동떨어진 단체가 된 셈입니다.
그렇게 최초의 교민단체가 공관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교민들의 의사가 반영된 한인회가 아닌 탓인가요, 늘 교민과의 궁합은 그리 잘 맞지 않은 채 자신들만의 영역에서 따로 활동하며 교민들의 호응을 받지 못합니다. 결국 나중에는 회장 자리의 정통성을 두고 다투다가 한국의 외교부로 부터 호찌민은 교민사회 사고지역으로 분류되어 한 3-4년간 교민을 상대로 하는 공식행사가 사라집니다. 태생적 한계가 만든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그후 코참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경제 단체라는 특수성으로 전 교민을 상대로 하는 단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호찌민에서는 교민들이 필요에 의해 만든 자생적 단체가 하나 생기는데, 그것이 바로 한인 골프협회입니다. 그때 한인사회 최고의 골퍼로 자타가 공인하는 김윤영씨가 회장을 맡아 시작하는데, 교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서로 간의 대화의 갈증을 느끼던 교민들이 많이 모이면서 한인사회의 가장 큰 단체로 등장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골프가 교민사회에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막중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골프대회를 유치하며 자신을 홍보했지요. 전 교민들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사는 매년 무료로 교민들 상대로 한 대대적인 골프대회를 개최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높이려 노력하고, 국제적 기업이나 한국의 내노라 하는 기업들 역시 너도 나도 골프대회를 통해 자신을 알리는 행사가 붐을 이룹니다.
자연스럽게 골프협회를 통해 교민들의 대화가 이루어지게 되며 한인골프협회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가 되었고, 골프대회를 통해 교민사회의 많은 일들이 논의되곤 했습니다. 한국학교 설립을 위한 성금 모금도 골프대회를 통해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졌고, 새로운 단체가 생기면 어김없이 골프 대회가 가장 중요한 사업의 하나로 작용하곤 했지요. 그런 골프대회에는 총영사를 비롯하여 많은 영사들이 참여하여 교민과의 교감하는 자리를 갖곤 했습니다.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총영사나 영사들이 누구인지 얼굴도 본적이 없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골프 덕분에 교민들과 공관원의 교류가 빈번했었지요.
그후, 한국과 베트남의 교류가 깊어지고 여러 교민단체들이 자생적으로 생겨나며 골프협회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자연스럽게 활동이 미미해지면서 이제는 그 골프협회가 존재하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사라진 단체가 된 것입니다.
얼마전, 교민사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오던 후배와 골프를 치는데 그런 얘기를 합니다. 예전에는 거의 매달 골프대회를 있어서 교민간의 소통이 원할 했는데, 요즘은 대회도 뜸해지고 골프인구도 줄었는지, 동반자 구하기도 힘들어졌다며 가벼운 푸념을 털어놓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제야 말로 골프단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골프 단체는 자생적 최대의 교민 단체로 교민들의 구심점 노릇을 일정부분 담당했는데,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하는 단체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특정한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 경제단체나, 다툼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인회와는 달리 순수한 친목을 나누며 교민간의 화합을 유도하는 단체가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 아닌 가 싶고, 그런 역할에 적합한 것이 골프단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베트남 교민사회가 팬데믹을 거치면서 급격하게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이제는 어디를 가나 낯선 얼굴뿐입니다. 연령의 폭도 깊어지니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도 사라지지요. 그렇다고 제대로 활동하는 순수 교민단체도 존재하지 않으니, 교민간의 대화 창구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현재도 각급 경제단체들이 존재하지만, 일반 교민들에게 문호가 개방된 것도 아니다 보니 일반 교민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름대로 넓은 연령층을 소화하고 동시에 현지인과의 교류도 행사할 수 있는 골프단체가 하나 만들어지면 골프를 통해 서로 간의 만남의 기회도 늘어나며 세대 간의 간극도 줄어들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골프를 안 치시는 분들에게는 이게 무슨 소리냐 하고 외면하실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적 이권이 개입되지 않고, 단기간에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교민사회의 화합과 소통 그리고 현지인과의 교류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골프단체의 재 탄생을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혹시 이런 생각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한인 골프단체 하나 만들면 그 역시 우리 교민사회의 화합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을 하는데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다.
이글을 씬짜오 커뮤니티 게시판인 씬짜오 라운지에 올릴 예정이니 그 자리에서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시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