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생존 전략이 만든 식탁의 경계선
이슬람교도인 회족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소고기가 주된 단백질원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도 델리의 길거리를 가득 메운 소들을 보며 “왜 굶어 죽어도 소는 잡아먹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어본 적이 있다면, 그 답 역시 종교 너머에 있다.
전 세계 18억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거부하고, 10억 힌두교도가 소고기를 멀리하며, 5억 불교도가 육식을 꺼리는 이유. 단순히 “종교적 금기”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사연들이 있다. 사막의 생존법칙, 농업 혁명의 경제학, 유목민의 이동 전략까지. 인류의 식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 그 정체를 추적해봤다.
사막에서 태어난 돼지고기 금기
중동 지역 이슬람교도들이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금기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종교적 교리보다는 실용적 생존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
“돼지는 땀샘을 갖지 않는 동물이라 태양이 강하고 건조한 사막 지대에서는 자기냉각장치를 갖고 있지 못해 섭씨 30도 이상으로 체온이 올라가면 열사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다”고 음식문화 연구자들은 설명한다.
더 중요한 것은 돼지의 습성 자체가 유목 생활과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돼지는 느리기도 하거니와 무리 생활을 하지 않는 동물로 이동이 제멋대로다. 그러니 유목민들에게 돼지를 데리고 먼길을 이동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양이나 염소, 낙타처럼 풀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과 달리 돼지는 잡식성이어서 별도의 사료가 필요했다.
이는 이슬람교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몽골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도 전통적으로 말, 소, 야크, 낙타, 양, 염소, 산양, 당나귀 등은 길렀지만 돼지는 기르지 않았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같은 축산물도 있기는 하지만 울란바토르 같은 대도시가 아니면 구경이 어려운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돼지는 비효율적이었다. 돼지는 소처럼 농사일을 돕지도 않으며, 닭이 달걀을 제공하는 것처럼 먹거리를 주지도 못하고, 양처럼 따뜻한 털이나 우유를 주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돼지고기는 상하기 쉬워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오래 저장이 되지 않으면 짧은 시간에 모두 소비를 해야 하는데 이는 낭비이다.
무하마드 시대에 와서 이러한 현실적 필요가 종교적 교리로 체계화됐다. 이슬람 율법은 “저절로 죽은 동물의 피, 돼지고기, 소와 양의 기름, 갈고리발톱을 가진 육식 조류” 등을 명확히 금지하고 있다.
기마민족이 전한 우육면의 역사
종교와 음식의 복잡한 관계는 중국의 우육면(牛肉麵)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란저우 지역의 대표적인 회족(回族) 음식인 우육면은 이슬람 문화와 중국 문화의 독특한 융합 산물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회족 유목민들에게 소고기는 주된 단백질 자원이었다. 여기에 실크로드를 통해 유입된 향신료(팔각, 큐민, 고수 등)가 더해져 오늘날의 란저우 소고기라면이 탄생했다.
1949년 국공내전 이후 200만 명의 국민당 인사들이 대만으로 이주하면서 우육면도 함께 바다를 건넜다. 대만에서 우육면은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이주민들의 위안이 되었고, 이후 대만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농업 혁명이 만든 소 숭배
힌두교에서 소를 신성시하는 문화 역시 종교적 신념 이전에 경제적 실용성에서 출발했다. 인도 아대륙에서 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농업 혁명의 핵심 동력이었다.
“소는 딱딱한 토양을 갈아줄 뿐 아니라 암소는 농경에 필요한 황소를 낳아주며, 고기보다 효율이 좋은 우유를 생산해 주었다”는 점에서 소의 경제적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여기에 소똥은 중요한 땔감이 되었고, 소의 배설물은 정화 작용까지 한다고 여겨졌다.
간디는 “소는 대지가 인간의 생명으로 가득 차 넘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인도인의 소 숭배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인도의 케라라주와 서벵갈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소의 도살과 식용을 금지한 법이 제정되어 있을 정도다.
카스트 제도가 만든 음식 계급 사회
힌두교의 음식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스트 제도와 연결된 음식 계급이다. 브라만,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로 이어지는 카스트 계급은 음식 문화에도 엄격한 위계질서를 만들어냈다.
힌두교 음식 문화에는 ‘Pakka’와 ‘Kacca’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다. Pakka는 기(ghee, 인도식 버터)를 사용한 상위 계급의 음식이고, Kacca는 기를 사용하지 않은 하위 계급의 음식을 의미한다. 브라만 계급은 최고급 음식을 먹는 반면, 달리트(불가촉천민)는 ‘만지면 안 되는 존재’로 여겨져 별도의 그릇과 식재료를 사용해야 했다.
법적으로는 폐지됐지만 여전히 문화적으로 지속되는 이 제도는 인도 음식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좋은 위생 관념과 고급 식재료는 주로 브라만 식당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불교 종파별로 다른 음식 철학
불교 내에서도 종파에 따라 음식에 대한 접근이 크게 다르다. 한국, 중국의 대승불교는 엄격한 채식주의를 고수하지만, 동남아시아의 소승불교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티베트,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의 승려들은 유제품은 물론 고기도 즐겨 먹는다. 미얀마와 태국의 불교도들은 돼지고기, 쇠고기, 물소고기, 닭고기, 오리, 누에, 뱀, 개구리까지 먹는다. 다만 자신이 직접 죽이거나 자신을 위해 죽은 짐승, 죽음의 현장을 목격한 짐승의 고기만은 부정하다고 여겨 먹지 않는다.
태국과 미얀마에서는 덕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달걀을 깨서는 안 된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깨는 행위는 물론 타인이 자신의 눈앞에서 깨는 행위까지 금기시한다.
중세 기독교의 엄격한 금식 문화
현재는 비교적 자유로운 기독교이지만, 중세 시대에는 이슬람교 못지않게 엄격한 음식 규제가 있었다. 성서에는 “반추하는 것이나 발굽이 갈라져 있지 않은 낙타나 바위너구리, 산토끼, 돼지 등의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는 사순절 40일간의 금식 기간과 매주 금요일의 육식 금지가 엄격히 지켜졌다. 이 시기에는 생선과 채소만 섭취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유럽의 생선 요리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또한 성경에는 식용 동물에 대한 세밀한 규정들이 있다. ‘가축에 다른 종을 교배시켜서는 안 된다’, ‘밭에 두 종류의 씨앗을 뿌려서는 안 된다’, ‘소와 당나귀를 짝지어 밭을 갈게 하면 안 된다’,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과 함께 삶아서는 안 된다’ 등의 조항들이다.
유교와 한국 음식 문화의 뿌리
한국인이 숨 쉬듯 행하는 많은 음식 문화가 실제로는 유교에서 비롯됐다. 어른 먼저 먹는 문화, 제사상 차림 방법, 혼례나 장례 음식 등이 모두 유교적 예절에서 출발한 것이다.
유교에서는 조화와 예절을 중시하며, 제사, 결혼, 회갑 등 여러 행사에 올려야 할 음식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올리는 순서, 요리하는 순서, 상 차리는 방법까지 아주 세밀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결혼식에서는 신부 측 가족이 수프와 음식을 준비하고, 임신 시에는 임산부를 위해 비타민이 많은 과일이나 쌀, 계란 등 건강식을 제공한다. 장례 시에는 49재를 지내며 이 기간 동안은 거의 금식에 가까운 식사를 한다.
종교 축제와 특별 음식들
각 종교의 주요 축제는 특별한 음식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슬람교의 라마단 금식월이 끝나는 이드 알-피트르에서는 단과자와 단케이크가 주요 축제 음식이다. 해가 떠 있는 낮 동안 완전 금식을 한 후 해가 지면 가족들이 모여 성대한 만찬을 즐긴다.
힌두교의 크리슈나 축제에서는 제프라 밥(바스마티 쌀에 시나몬, 건고추, 큐민, 베이 리프 등을 넣고 만든 향신료 밥)과 팔락 파니르(고타 치즈와 시금치로 만든 카레)가 대표 음식이다.
불교의 연등절이나 부처님 오신 날에는 요마리(송편 같은 떡)와 달바트(콩으로 만든 수프)가 공양 음식으로 올려진다.
글로벌 푸드 산업에 미치는 영향
종교적 음식 금기는 현대 글로벌 푸드 산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맥도날드는 인도에서 소고기 패티 대신 치킨이나 생선 패티를 사용해 햄버거를 만들고, 중동 지역에서는 모든 육류를 할랄 방식으로 조리한다.
할랄 인증은 ‘허락된 것’을 뜻하는 아랍어로, 무슬림이 먹을 수 있도록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처리·가공된 식품에만 부여된다. 인도네시아 BPJPH, 말레이시아 JAKIM, UAE ESMA 등 각국의 할랄 인증 기관들이 까다로운 검증을 거쳐 인증을 발급한다.
이슬람 국가에 식품을 수출하려면 반드시 할랄 인증을 취득해야 하며, 이 시장은 전 세계 20억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현대적 변화와 지속되는 전통
불교의 채식 문화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역에서 건강식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 불교의 사찰음식은 오신채(마늘, 파, 달래, 부추, 양파)를 제외한 채식 위주의 요리로 현대인들에게 새로운 식문화를 제시하고 있다.
기독교의 경우 중세 시대의 엄격한 금식 규정은 대부분 완화됐지만,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등의 명절 음식 문화는 여전히 서구 사회의 중요한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존 전략에서 문화 정체성으로
종교적 음식 금기는 단순한 교리적 규범을 넘어서 각 문화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막의 생존 전략에서 시작된 돼지고기 금기가 이슬람 문화의 상징이 되고, 농업 사회의 경제적 필요에서 출발한 소 숭배가 힌두교의 핵심 신념이 된 것이다.
음식문화 연구가들은 “종교적 금기 음식을 이해하는 것은 해당 문화권의 역사와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강조한다. 세계화 시대를 맞아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현실에서, 이러한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종교와 음식의 관계는 신성함과 세속함,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인류의 지혜와 적응력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역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