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lumn – 맹 자 (나준식 옮김, 새벽이슬)

– 인의예지 –

매일 매일을 전쟁하는 마음으로 정신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몸은 나이 마흔이 변곡점이 되어, 건강 신호등에 빨간불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합니다. 살이 좀 찐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못 입는 바지를 쌓아 놓은 공간이 옷장 한 구석에서 63빌딩처럼 높아지게 됩니다. 건강 검진을 받으면 고혈당, 고혈압, 고지혈증 이란 그물에 적어도 한 개는 걸리며 지나간 세월을 원망하게 합니다. 술자리에서 함께 취하길 바라는 고객이나 상사가 권하는 술을 거절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회식할 때 불판 위에서 묵은지와 함께 노릇노릇 익어가는 삽겹살 조각에 젓가락이 가는 것을 멈출 수 있는 자제력이 있었다면 필시 나는 지금보다 더욱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었을 겁니다.

외근 나갔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햄버거집에 들어가 크게 고민할 것 없이 맨날 먹는 ‘셋트’ 하나를 자동으로 시켜, 콜라, 햄버거, 감자튀김 혼합물의 흡입을 마친 후에 다시 다음 거래처로 빠른 걸음을 옮깁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스파게티, 리조또, 피자를 시켜 먹습니다. 레귤러를 시킬까 라지를 시킬까, 클래식 콜라를 먹을까 제로 콜라를 먹을까 잠깐 고민하지만 대세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아닙니다. 담배를 사러 들어간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줄을 서며 기다릴 때, 잠깐 눈을 돌려 매장을 바라보면 이곳은 가공 식품의 천국입니다. 라면, 빵, 탄산음료, 감자칩, 초코바, 천하장사 쏘세지, 아이스크림…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허할 때 쉽게 손에 잡히는 음식들입니다.

스트레스 받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생각하다가 도대체 스트레스를 안 받을 방법을 찾지 못해 스트레스가 찾아옵니다.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이처럼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살’의 질은 점점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입니다. 3고(고혈당, 고협압, 고지혈)의 위협에서 벗어나고,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음식의 양과 질을 조절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동양 고전은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회’와 같습니다. 숙련된 요리사가 재빠르게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피를 깔끔히 뺀 후에, 비늘, 껍질, 뼈를 제거한 살코기를 도마 위에 올립니다. 어종에 따라 원래 전체 고기에서 얻을 수 있는 살코기는 30%~70% 밖에 안됩니다. 정성껏 벼린 칼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진 살코기는 무채를 깐 그릇 위에 올려져 식탁 위로 나옵니다.

연어, 광어, 도다리, 우럭, 방어 등 횟감에 따라 그 식감과 담백함은 다르겠지만 대표적인 고단백, 저지방, 저칼로리 식품입니다. 저는 살아가면서 제 마음속에 인간관계 중에 생긴 ‘당과 지방’이 가득차 어지럼증이 몰려오고, 생각의 압력이 높아져 마음의 벽에 상처가 생길 때 동양 고전을 찾습니다.

한자로 쓰여진 짧은 텍스트에 번역과 옮긴이의 해설로 구성된 논어, 맹자, 노자, 장자, 손자병법 등의 동양 고전은 2500년을 살아남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표현으로, 영양가 높은 성찰과 사색의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2025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2500년 전의 어떤 이가 나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구체적으로 했고, 심지어 나름대로의 답까지 내놓았다는 사실이 놀랍고,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됩니다.중국 전국시대의 유학자였던 맹자(BC 372~ BC 289)는 유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고, 대한민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유명한 인물이지만 막상 맹자가 어떤 가르침을 주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기억이 안나는 인물입니다. 아들에게 올바른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3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주인공인 그의 어머니가 오히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8학군 대치동맘의 원조 모델로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맹자가 공자의 제자라고 잘못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맹자는 공자보다 100년 후의 인물로서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제자에게 공부한 한참 아래의 후학입니다. 물론 그는 공자를 가장 완성된 성인이라 부르며 그를 향한 존경심을 <맹자> 곳곳에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이론을 완성시킨 끝판왕 캐럭터의 업적을 얘기할 때 흔히 쓰는 말인 ‘집대성’이란 말은 맹자가 공자에 대해 기존 모든 성인들의 학문과 사상을 종합하여 완성된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하며 쓴 표현입니다. 그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맹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서삼경(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시경, 서경, 역경)의 하나로서 성리학의 7대 중요 서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 유교에서 그의 위치는 서양 철학사에서 플라톤의 제자로 그와 함께 고전 철학의 쌍두마차로 여겨지는 ‘아리스토텔레스’급의 위상을 갖고 있다고 봐야할 것 같네요.

맹자는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보다 더 심한 약육강식의 시대였던 ‘전국시대’를 살았습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은 지켜졌다는 춘추 시대와, 힘이 모든 것을 결정했던 전국 시대는 또 차이가 있습니다. 패도 정치(힘을 가진 패자가 무력을 써서 하는 정치)가 난무하던 시절에 맹자는 도덕이 정치의 근본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왕도 정치’를 내세워 각국의 왕을 설득하러 다녔고 결국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주장으로 여겨져서 정치적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후진양성에 힘을 썻습니다.
이렇게 그의 삶을 결과적으로 요약해서 들으면 좀 세상물정 모르는 선비 같은 이미지를 떠오르실 수도 있는데, 그는 인간의 본성과 정치와 외교의 생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치에 있어 경제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하며 강한 나라를 만들기위해 백성의 행복을 정치의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실용주의 학자였습니다.

왕이 정치를 제대로 못할 때는 백성이 왕을 바꿀 수 있다는 ‘역성혁명’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당시로서는 다소 과격한 생각도 했고,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성선설’을 주장했지만 인간의 위선과 소시오패스 같은 이기심도 간파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자 같은 면모도 갖고 있습니다. 당시의 시대상이었던 ‘전쟁의 일상화’가 백성들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를 깨닫고, ‘어떻게 하면 전쟁을 없앨까’하는 고민 끝에 도덕을 앞세운 ‘왕도정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거죠. 평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진부한 해결책으로 보이지만, 전쟁이 난무하던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다소 ‘신선한’ 해결책이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의예지’란 말에서 ‘인’은 불쌍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마음, ‘의’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부당한 일에 분노할 수 있는 마음, ‘예’는 겸손하게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마음, ‘지’는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구분할 수 있는 마음으로 맹자는 이 네가지 마음을 ‘사단’이라 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고, 이러한 마음을 잘 가꾸고 발전 시켜나가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핸드폰 샀을때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앱과 같네요. 내가 ‘인의예지’를 갖추고 산다면 내 삶이 당당하고 떳떳할 것 같습니다. 인의예지를 갖춘 주변 사람들과 살아간다면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 같습니다. ‘호연지기’를 키워 흔들리지 않는 마음(부동심)으로 남의 부림을 받지 않는 대인, 덕과 교양을 갖춘 군자의 삶을 살고 싶은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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