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lumn – 백범일지(도진순 주해)

살다보면 막막한 때가 있습니다. 큰 맘 먹고 시작한 일이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있고,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평범했던 일상이 ‘난(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동란, IMF 대란, 코로나 마스크 대란…)’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직장이 잘 안잡혀 미래가 잘 안보일 수도 있고, 결혼을 못한 채 나이만 들어서 답답할 수도 있고, 자식이 내 맘대로 크지 않아 한숨만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내 능력 이상으로 잘 풀릴 때도 있고, 내 잘못 없이 희한하게 꼬일 수도 있는 인생 속에서 내 한 몸 지키는 현명한 방법은 세상의 흐름에 따라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처세술을 익히거나, 세상을 등지고 산과 강을 벗 삼아 은둔 생활에 드는 것이죠.

세상을 등지기에는 아직 이 세상에 미련이 많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강약약강’의 태도를 취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 현명해 보이는 처세술 역시 공짜는 아니니, ‘꿈’, ‘자존심’, ‘의리’ 등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그 비용으로 쓰입니다. ‘꿈이 밥 먹여주냐?,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의리가 밥 먹여주냐?’ 라는 말은 살면서 우리가 궁지에 몰려 막막할때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주문이 됩니다. ‘밥’ 앞에서 최소한의 꿈, 자존심, 의리를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 ‘백범일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구 선생님이 1부(1929년, 54세, 어린시절~상해 망명 초기), 2부(1947,72세, 상해 망명 초기부터~해방후 대한민국 귀국 시기)로 나누어 자신의 일생을 정리하여 대한민국 독립 후에 출간한 자서전이 ‘백범일지’입니다. 김구 선생님은 1876년 생이시고 1949년 돌아가셨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전에 테어나셨고, 저 같은 40대 후반 사람과 비교했을때 딱 100년전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100년전의 김구 선생님과 제 삶을 나이대별로 비교해보며 읽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17세때 과거시험(낙방)을 보았고, 19세때 동학농민운동에 참가합니다. 20세때 안중근 의사의 아버지 안태훈 진사에게 몸을 의탁하고, 유학자 고능선 선생에게 위정척사 사상을 교육받고, 그의 후원으로 청나라 만주 지방을 다녀오고, 세상 보는 눈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해 서울(경성)에서는 경복궁에서 국모인 명성황후가 시해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납니다. 21세때 치하포에서 국모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 쓰치다를 죽인후 인천감옥에 갇히고, 감옥에서 서양학문을 접하고 위정척사사상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사형을 앞두고 23세때 탈옥하여 삼남(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지방 유랑 끝에 ‘원종’이란 법명으로 중이 되나 24살때 환속하여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감옥에 있을때 후원자였던 이들과 ‘동지’의 연을 맺고 무너져 가는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 믿었던 근대식 교육사업에 몰두합니다.

27세에 신교육에 도움이 되는 기독교에 귀의합니다. 29세로 결혼했던 1904년에는 러일전쟁이 있었고 다음해 1905년 을사늑약(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되었고, 동지들과 함께 상소 운동을 펼치나, 부족한 힘을 느끼고 다시 신교육 운동에 매진합니다. 32세에 항일비밀결사 신민회에 참가하고, 교육자로서 강연회 등 애국계몽운동에 몰두합니다. 35세였던 1910년 나라를 잃고, 독립의 길을 모색하던 중 1911년에 일본헌병에게 체포되어 15년형을 받고 수감된 후 40세(1915년)에 가출옥합니다. 교육과 농촌 운동을 하던중 1919년 3.1 운동발생후 44세의 나이로 동지들과 상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웁니다. 차츰 임시정부의 활동이 지지부진해지고, 좌우익 사상갈등의 와중에 이름있는 사람들이 떠나고,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백범은 임시정부를 꿋꿋이 지켜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57세였던 1932년 이봉창 의사의 일본 천황 폭탄 투하,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커우 공원 의거를 후원하여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고, 임시정부의 존재감을 국내외로 알립니다.

58세의 나이에 중화민국 주석 장개석과 면담하여 중국 정부의 임시정부에 대한 법적, 재정적, 군사적 후원을 이끌어내고, 광복후 대한민국에 돌아가기까지 중국에 있는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듭니다.1937년도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여 피난생활을 시작하고, 1939년도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1940년 65세의 나이에 중국 사천성 중경에서 임시정부 주석이 되고, 광복군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시작합니다. 1945년 70세의 나이에 해방후 대한민국에 개인 자격(미군정이 임시정부 주석 자격으로 입국하는 것을 반대함)으로 입국하고, 국내에서 남북한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정치활동을 실시하다가 1949년 74세의 나이로 육군소위 안두희의 권총에 암살당합니다. 그의 사후 1년후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합니다.

김구 선생님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한장으로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일이지만, 100년전 말도 안되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신념을 지키며 살아간 한 개인의 삶을 돌아보며, 그 이후 100년을 살아가는 또 다른 개인들이 얻을 수 있는 교훈때문에 이 무리한 일을 시도했습니다.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있는 구한말에 상놈의 자식으로 태어나, 유교, 동학, 불교, 기독교, 신학문을 섭렵하고, 감옥을 2번이나 다녀오고, 중국이라는 이국땅에서 오랜세월을 쫓기며 생명의 위협속에서 방랑생활을 하면서도 신념을 잃지 않고, 가족과 동지와 민족을 챙기면서 살아온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불행하다’라는 기준이 점점 높아지는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왠지 손이 안 가는 구간이 구한말과 일제시대입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갑오개혁, 갑오농민운동, 을미사변, 을사늑약 등 헷갈리는 이름의 역사적 사건들과 무력감과 수치심을 자아내는 그리 자랑스럽지 않은 과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시대에도 ‘애국’이란 신념을 갖고 꿈과 자존심과 의리를 지킨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백범일지는 전합니다. 백범일지를 몰입하여 읽다보면 앞글자가 비슷비슷한 역사적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를 그 시대의 개인이 되어 하나하나 현실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신민회, 신간회, 의열단, 광복군 등 학교 다닐때 이름이 헷갈려서 불평불만을 가졌던 애국 단체들이 생겨난 전후 배경도 알게 됩니다. 그 모든 모임의 참가자들은 본인의 인생과 심지어 목숨까지 걸었었던 걸 생각하면 그 이름 외우는 것도 못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100년전 파란만장한 시대를 살았던 풍운아, 혁명가, 교육자, 지도자, 어른 김구를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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