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화의 비결 –
우리는 대화를 합니다. 대화는 삶에서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많은 치킨집, 호프집, 커피숍이 어떻게 운영이 될까요? 점심 빨리 먹고, 맘에 맞는 동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커피숍은 황량한 실크로드 사막길 중간 중간에 있는 오아시스 같은 곳입니다. 머리 아파서 담배 한대 피러 올라간 회사 옥상에서, 비슷한 이유로 올라와 있는 입사 동기를 우연히 만나 맘에 있는 얘기를 주고 받다 보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힐링된 느낌을 갖고 사무실로 돌아가게 됩니다.
남편을 일터로 보내고, 아이들은 도시락 챙겨 학교로 보낸 후에 집근처 까페에서 동네 언니, 동생들 만나 수다를 떨다 보면 즐겁고, 외롭지 않고, 행복 지수가 올라갑니다. 그런가 하면 대화는 삶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왕복 8차선을 오가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통행 1차로를 달리는 대화가 그렇습니다. 상대는 내 말을 들을 생각 자체가 없고, 답을 정해놓은 그의 ‘언어’는 끊임없이 내 귀로 들어옵니다.
메모를 하는 척도 해보고, 귀기울여 듣는 척도 해보지만, 머리속은 고양이가 갖고 노는 실뭉치처럼 복잡하고, 심장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차가워집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아빠와 딸이 대화하고, 아내와 남편이 대화하고, 대리와 부장이 대화하고,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대화하고, 남자친구와 여자친구가 대화하고, 학생과 선생님이 대화하고, 친구와 친구가 대화하고 있습니다.
대화라는 것을 단지 입에서 귀로 음성이 전달되는 것을 넘어, 카카오톡 같은 메신져 서비스, 이메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미디어로 확대해 본다면 우리는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은 우리의 대화 중에 즐거운 대화의 비율이 끔찍한 대화의 비율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릴적에 배워 평생 잊지 못하는 지식 하나가 ‘세계 4대 성인은 공자,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이다’ 입니다. 앞의 3명은 각각 유교, 불교, 기독교라는 세계 굴지의 종교의 창시자 또는 지도자로서 말 그대로 ‘성인(聖人 )’이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왜 그분들과 같은 반열에 올라 있는지 중년의 성인(成人 )이 된 지금까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소크라테스는 UFC 헤비급 파이터들 사이에 낀 라이트급 파이터 같은 느낌을 주었죠. 어쩌다 서양 철학 및 종교와 관련된 책이나 글을 읽다 보면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더 많이 인용되고 있어서, 소크라테스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인상이 옅어지고 있었죠. 저에게 소크라테스란 ‘너 자신을 알라’, ‘악법도 법이다’, ‘산파법(산파가 산모의 아이 낳는 것을 돕듯이,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직접 답을 찾게 하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란 학교 다닐때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짧은 정보로만 남아있었습니다.
<허클베리핀>의 저자인 작가 마크 트웨인이 내린 고전의 정의인 ‘고전이란 누구나 읽고 싶어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에 가장 부합하는 책의 하나가 오늘 소개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입니다. 저도 아마 평생 안 읽었을 책이 분명한데, 우연히 한 북까페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마치 우연히 발길이 닿은 장충동 왕족발 원조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식당문을 열고 들어간 맛집 탐험대의 마음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지금 이 책을 소개하는 제 마음은, 지금 심장이 두근거려서 키보드 위의 제 손이 떨리고 있습니다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동안 속았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동네 ‘XX 왕족발’ 사장님에게 속았고, ‘소크라테스를 이 정도로밖에 소개하지 못했던 저희 고등학교 국민윤리 담당 이X동 선생님에게 속았고,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며 저를 찍어눌렀던 어떤 사회 선배에게도 속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감옥에서 신성모독죄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로 71세의 나이에 독배를 마시고 죽은지 2,400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너무나 몰랐고, 오해했고,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자기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시도했으나 결국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해 절망했던 구도자였으며 (너 자신을 알라 ), 사형을 앞두고 탈옥을 권유하는 친구 파이돈에게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님을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행복한 죽음을 택한 순교자였으며 (악법도 법이다), 자신을 따르는 젊은이들에게 강의를 한 것이 아니라 한개씩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가 답을 찾게 도와준 최고의 멘토 (산파법)였습니다.
그는 신의 완전성과 함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불완전성’을 믿었으며 ‘이성’을 통해 불완전한 인간이 보다 완벽해질 수 있음을 믿었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전달하기 보다는 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람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때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참된 스승이었습니다. 대화를 하다가 상대가 건방지거나 기어오른다는 생각이 들면 니 주제 파악을 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너 자신을 알라’, 조직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개선책이 나왔을때 귀찮기도 하고 ‘위’와 부딫치기 싫을때 자주 쓰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결코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제대로 요약한 말이 아님을 이 책을 읽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명성에 비해 그리 두껍지 않고, 연극 대본처럼 대화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 < 소크라테스의 변명 >을 읽는 내내 소크라테스 같은 멘토를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과 나도 소크라테스 같은 아빠, 직장상사,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 소크라테스는 결코 좋은 남편은 아니었습니다. 강의료를 받지 않았던 소크라테스는 유투브가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아쉽게도 구독자들로부터 별도의 수입원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책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인세 수입도 없었습니다.
그의 언행을 책으로 엮고, 그리스 최초의 대학 ‘아카데미아’를 세워 대학총장이 된 플라톤이 현실적인 재미는 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학연이 형성되었습니다.
대화가 즐거운 경험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기본 조건은 ‘들어주기, 배려, 궁금증’입니다. 반대로 끔찍한 대화는 ‘혼자 말하기, 말끊기, 캐묻기’로 구성이 되죠. 순수한 궁금증과 캐묻기는 겉으로 보아서는 구분이 안되지만 설탕과 소금, 된장과 대변처럼 그 화학 구조에서 명백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듣는 이가 귀에서 흡수한 후에 입으로 내뱉는 언어에서 같은 성분으로 되돌아 오게 됩니다.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늘리시고, 끔찍한 대화를 나누는 상대를 줄이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모든 대화가 마냥 즐겁거나, 모든 대화가 끔찍하다면 혹시 나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자기 점검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장연 – 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