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Column – 거리 이름으로 보는 베트남의 역사<허종>

– 거리에 거리를 무는 역사 –

우리는 베트남에 살고 있습니다. 경기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가시거나 베트남으로 들어오시는 교민수가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암묵적으로 호찌민 교민수를 10만명 정도로 추정하는게 일반적인 통설입니다.

도요타, 혼다, 캐논 등 베트남에 한국 기업들보다 먼저 진출했고, 나름 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고 있는 일본 교민의 수를 1만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노이를 중심으로 점점 교민수가 늘고 있는 북부의 교민들까지 합쳐 본다면 결코 적지 않은 수의 교민들이 베트남에 살고 있습니다. 단신 부임이 일반화된 일본 기업에 비해, ‘가족은 오래 떨어져서 살면 안된다’라는 문화 속에서 상황만 된다면 가족 부임을 허용하거나 권장하는 한국 기업의 문화도 교민수 증가에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출 기업 수의 증가에 따라 식당, 슈퍼, 미용실, 학원, 물류 등 교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도 증가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교민 사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교민수가 늘어남에 따라 전에 비해 베트남 시장 및 문화에 대한 정보 및 책도 늘어나고 그 깊이 또한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어떤 나라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국사 공부 조차 제대로 할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베트남 역사까지 공부를 하냐고 하소연할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다행히 베트남 역사 공부는 우리 교민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다니고 있는 길 이름 자체가 역사속 위인, 영웅,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날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본인 명함에 있는 사무실 주소, 집주소, 평소 자주 다니는 길 이름의 유래만 제대로 알아도 베트남 역사에 대해 30%는 알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또 길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그 길 이름을 자연스럽게 암기하면 일상 생활이 더 편리해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습니다. 예전 영어 공부할때 너무 재미있게 봤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한호림 저)’라는 책처럼, ‘거리에 거리를 무는 역사’ 공부를 통해 역사와 지리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서 출장 온 직장 동료나, 지인들에게 차가 막히는 거리에서 ‘이 길의 이름은 Tran Hung Dao 라고 하는데, 이분은 몽고군의 침략을 전투를 통해 막아낸 분으로 베트남에서는 우리 나라 이순신 장군같은 대접을 받으시는 분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본인의 현지 지식을 뽐낼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드리는 <거리 이름으로 보는 베트남의 역사>는 삼환기업 베트남 하노이 지사장을 지내셨던 한 기업인이 베트남의 거리 이름을 통해 베트남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으로. 베트남의 시조 락롱 (Lac Long Quan,11군)과 어우꺼 (Au Co, 떤빈군) 부터, 그들로부터 태어나 베트남 최초의 왕국인 반랑(Van Lang)국을 세운 흥브엉(Hung Vuong, 5군) 왕의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환웅, 웅녀, 고조선, 단군 할아버지 이야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덧붙여, 락롱꿘 길과 어우꺼 길이 다른 길들에 비해 매우 길고, 서로 교차하는 것은 이런 건국 신화와 역사에 바탕을 둔 작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흥브엉 기일은 음력 3월10일로 우리나라 개천절처럼 중요한 공휴일입니다. 4월 30일 통일절(1975년 사이공 해방일), 5월 1일 노동절과 함께 음력 날짜가 맞춰지면 황금 연휴를 만들어내기도 하죠. 1군을 나가면 자주 지나게 되는 하이바쯩(Hai Ba Trung, 1군) 길은 ‘두 명의 쯩 할머니’라는 뜻으로 중국 후한 제국에 맞서 베트남 역사에서 최초의 독립 투쟁을 했던 Trung 자매의 이름을 딴 길입니다. 그 길 바로 옆으로 언니 Trung Trac 할머니의 남편의 이름을 딴 Thi Sach 길이 있는 것도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중심에는 사이공강을 향해 서 있는 쩐흥다오(Tran Hung Dao)

7군 푸미흥에서 1군을 나갈때 똔득탕 (Ton Duc Thang, 1군) 길을 지나게 되는데 이 길은 통일 베트남의 초대 주석을 지낸 똔득탕 주석의 이름을 딴 길이고, 이 길의 중간 지점에 있는 메린 광장( Cong Truong Me Linh)의 중심에는 사이공강을 향해 서 있는 쩐흥다오 (Tran Hung Dao) 장군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선착장의 이름이 박당(Bach Dang) 인것은 쩐흥다오 장군이 1288년 몽고군의 3차 침입에서 대승을 거둔 장소인 박당 강과 연관이 있습니다. 참고로 메린 광장의 메린은 베트남 최초의 왕국 반랑국의 수도 이름입니다.

많은 일본 식당과 슈퍼들이 있어 관광객들에게 ‘일본인 거리’로 통하는 레탄똔(Le Thanh Ton,1군) 길은 조선왕조와 비슷한 시기에 레러이(Le Loi, 1군) 황제에 의해 건국된 Le왕조(1428~1788)의 4대 황제의 묘호( 레 성종)을 딴 이름으로 베트남에서 레탄똔 황제는 우리의 세종대왕과 비슷한 업적을 세운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고려왕조와 비슷한 시기의 Ly왕조는 (1009~1225년) 리타이또 (Ly Thai To, 10군)황제에 의해 건국되었는데, 리타이또 길은 타이어 가게들로 유명하고, 그 길과 연결된 호티끼(Ho thi ky) 길은 음식 거리, 꽃시장으로 유명합니다. 참고로 호티끼 길은 베트남 전쟁중 1970년 21세의 나이로 전사한 Ho Thi Ky 열사의 이름을 딴 길입니다.

저는 이책을 읽고 베트남 역사와 지리에 대한 지식을 넓힌 한편, 이후 서울에서 충무로, 세종로, 을지로, 충정로, 도산 4거리 등을 지날때마다 우리 나라 역사를 돌아보는 습관도 함께 생겼습니다. 사실 신입사원때 을지로에서 2년 넘게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을지로와 을지문덕 장군을 연관지어 생각해본적이 한번도 없고, 충무로는 한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이자 4호선과 3호선의 환승역이라고만 생각했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역사는 사실 몰라도 사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역사를 알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거나, 인생에서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험 볼때 그냥 컴퓨터 싸인펜 한자루 들고 보는 것과 교재를 갖고 들어가서 오픈북으로 보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요. 해외여행갈때 가이드북 들고 가는 것과 안들고 가는 것의 차이라고 할까요. 역사란 것은 인생의 좋은 교재이자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 길을 통해 베트남의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베트남의 위인과 한국의 위인들을 비교해보며 오히려 국사와 중국사, 세계사 지식까지 늘고, 베트남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와 비교해보는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를 중국의 통일과 분열에 따른 동아시아의 역학관계의 변화, 세계사적 흐름속에서 객관적으로 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목적과 이유로 인해 베트남 교민이 되었습니다. 베트남 역사를 주변의 길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베트남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특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백과사전식으로 지식을 나열한 형식이라 시대순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다보면 약간 지루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곁에 두고 자기 주변에 있는 길부터 찾아 읽는 방식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트남 역사, 문화, 지리, 그리고 국사, 중국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장연 –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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